하종오 시인의 시집 『세 개의 주제와 일흔일곱 개의 서정』(도서출판 b).
시인의 나이 종심(從心)의 해에 간행한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 나에 대한 연작시 모음 시집이다. 제1부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 제2부 「아내에게」, 제3부 「당신과 나를 위하여」... 예상성을 주는 제목이지만, 성실함과 진실성으로 작품들이 새롭게 읽힌다.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시인이 산물 앞에서 존경심을 갖는다. 부러움도 갖는다. 2023년 8월 22일 간행.
모독하는 짓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종오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비질하시던
젊은 아버지를 곧잘 떠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시를 쓰지 않는
나를 힐책한다
밤낮으로 재봉틀을 밟으시던
젊은 어머니를 곧잘 떠올리며
밤낮으로 시를 쓰지 않는
나를 힐책한다
직업이 운전수였던 젊은 아버지는
트럭을 세워놓던 마당을
늘 말끔하게 치워 놓으셨고,
직업이 전업주부였던 젊은 어머니는
자식들이 벗어놓은 솔기 터진 옷을
늘 살펴 꿰매어 놓으셨다
직업이 시인인 나는
언제나 시를 쓰려고 애쓰지만
완성하지 못한다
시에 매료되어 지내기 위해
유리한 측에 가담하지 않고
사소한 사건에 집착하고
이익을 좇는 자들을 멀리하는 성격을
나는 스스로 터득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성격을 물려받았다느니 안 물려받았다느니 따지면
아버지 어머니를 모독하는 짓
(28~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