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 31,31-34; 마태 16,13-23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1170년경 스페인에서 태어나신 성인은 사제가 되어, 주임 신부로 성실히 사제직을 수행하다가 주교님과 함께 북유럽을 여행하게 됩니다. 여행 중에 알비파 이단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는데, 알비파는 이 세상에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모든 물질을 악으로 보았고, 따라서 강생의 신비를 부정하고 성사도 부정했습니다. 물질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산을 금했고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을 먹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알비파의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찬미하고 추종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사람들을 이단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복음의 말씀을 따른 순회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10년간 순회 설교를 하던 성인은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 학문 연구, 기도를 이상으로 하는 수도원을 1215년에 세우셨는데, 이 수도원이 발전하여 도미니코 수도회가 되었습니다. 성인의 이상은 “오직 하느님에 대하여, 하느님과 함께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1221년, 51세의 나이로 선종하신 성인은 13년 뒤인 1234년에 성인품에 오르십니다. 도미니코회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알베르토, 마이스터 에카르트와 같은 위대한 학자와 영성가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니코 성인은 세상이 성모님의 중재로 구원받는 광경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로 두 사람을 지적하셨는데 한 사람은 도미니코 자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다음날 성당에서 도미니코는 꿈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누더기를 입은 거지 차림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그 사람을 껴안으면서 “당신은 나의 친구이며, 나와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 세상의 어떤 힘도 우리를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프란치스코 성인이셨습니다.
두 성인께서 삶과 모범으로, 그리고 설립하신 수도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너무나 크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서는 새 계약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야훼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이 새 계약은 시나이산에서 맺으신 계약을 파기하시고 새로 세우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계약이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짐으로써 체결될 계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에 예레미야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셨는데요, 잔을 드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사제는 미사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예레미야서의 말씀은 결국 이렇게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이 법은 이제 우리 마음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두 가지 얼굴을 만납니다. 하나는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시몬 바르요나,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라고 예수님께 최고의 칭찬을 받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반대했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책망받는 모습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바위’를 의미하는 ‘페트라’의 남성형 명사입니다. 그런데 뒤이어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돌인데, 한편으로는 반석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따르면 반석이 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면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가 단지 열심하다고 해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미니코 성인이 맞서 싸우셨던 알비파 이단은, 지나친 열심으로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거룩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거룩함을 추구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말합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야훼를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있기에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있고 하느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다만 그렇게 하기 싫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새겨진 하느님의 법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에 우리를 내맡겨야 하겠습니다.
프라 안젤리코, 도미니코와 프란치스코의 만남, 1429년경 작
출처: File:Fra Angelico - Teil einer Predella Die Begegnung der Heiligen Dominikus und Franziskus, 1429, 61.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