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원 10만명이 넘는 특새 시즌의 인원 동원 능력은
메가 쳐치의 능력,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초대형 교회 무한 성장의 동력이 된 특새는 신년의 기원을 비롯하여
부활절을 앞 둔 소위 말하는 사순절과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의 절묘한 특새 시즌이 되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그리고 금은동목석의 우상이 아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은 성경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신년을 맞아 일출의 기원을 하고....
설날...조상신을 모시고....
정월 보름날 오곡밥 먹고 달짚 태우며 달신께 한 해 농사의 풍농을 기원하는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여기에 3월 기독교 신앙의 반전은
사순절의 행사와 특새로 샤마니즘적인 민속 신앙의 분위기를 대역전 시킵니다.
세속적 민간 신앙과 맞서 싸우는 영적 전쟁은
특새의 전사로 무장하여 새봄의 향연을 창조의 서정으로 빛나게 하였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낮이 점점 길어지는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이 지난 부활절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차치하고서라도 계절적으로 희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계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봄의 향년을 무르익게 하는 새봄의 따스한 기운이 넘치는 시절.....
초대형 메가 쳐치의 신기원을 이룩할 특새 시즌은 한국 교회 무한 성장의 동력으로 완전 자리잡았습니다.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늘과 땅에 가득한 복을
쌓아 둘 것이 없을 정도로 넘치도록 받을 것입니다.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늘의 기쁨으로 넘치는 성령의 충만한 복을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은혜로 누릴 것입니다.
기도하라, 그리하면 성공하고 번영하는 형통의 복을
충만한 가정의 복으로 누릴 것입니다.
기도하라, 그리하면 북한의 핵을 없애고 북한을 붕괴시키고 마침내 평화 통일을 이룩하여
열방 가운데 왕같은 제사장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오직 기도....하늘의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 나라와 사회와 가정에 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는 정오의 빛처럼 빛날 것입니다.
특새에 참여하는 특권은
영통하고 물통하고 인통하는 만복의 근원을 풍요롭게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특새에 참여하여 은혜의 복을 받지 못하면....
세상에서 고통과 환란을 받다가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매력은
종교적 힘의 기원을 갖게 합니다.
제사장의 은 나팔 소리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성막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은 나팔 소리 같은 오늘날 목회자의 특새 호령은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든든히 서 가게 하는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명령과 우주적 통치를 제사장의 은 나팔 소리에 담아내는 특새의 목회적 구령 열정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땅의 새 예루살렘 교회를 새마포 입은 하늘의 신부로 단장시킬 것입니다.
여기까지......
초대형 메가 쳐치를 소망하는 한국 교회를 대변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어도
초대형 메가 쳐치를 지향하는 비전의 날개짓은 특새의 상그릴라가 되었습니다.
영적 상그릴라를 찾아 나서는 특새는
꿈의 기원과 비전의 날개짓으로 연금술사가 그토록 갖기를 소원하는 현자의 돌을 갖게 할 것입니다.
문득....
거위의 꿈이라는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홀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에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 해요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에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 상그릴라를 찾아 나서는 특새는
거위의 꿈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없는 도전과 열정의 꿈을 찾는 특새의 날개짓은
바알 선지자의 몸부림같기도 합니다.
함께 날아 오르기 위해 특새로 모여든 사람들......
그들의 목마른 갈증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은혜인가?
가난한 심령의 허한 마음인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복음의 갈증인가?
십자가의 은혜로도 용서받지 못한 죄성의 울부짖음인가?
믿음의 실적으로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기복 신앙의 거친 몸부림인가?
영적인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한 연금술사의 광폭적 행보인가?
진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천국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지 못하였는가?
천국의 문 밖에서
또 다른 천국을 찾아 문 두드리는 아우성이 특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천국문은
휘장을 찢으시고 그 가운데로 내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찾아 오셔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바로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 특새의 상그릴라가 필요한가?
사도 요한처럼...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면 될 것입니다.
언약의 복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막연한 천국의 소문을 듣고.....
은혜가 보이지 않으니까
그 놈의 복이 보이지 않으니까
바로 그 천국의 문이 확실히 보이지 않으니까
특새의 방주를 타고.....
미지의 상그릴라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날개없는 특새는
범신론적이며 주술적이며 무속적이며 샤머니즘적인 집단적 종교 체험 현상으로
종교적 욕망을 광신하는 바알 신앙의 거친 몸부림일 뿐입니다.
가늘고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고요한 묵상의 기도로 만나는 믿음은
특새의 정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의 하신 말씀은 집단적 메가 쳐치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따뜻한 봄 기운을 성령의 복음으로 받아
온 천지에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꽃피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은 나팔 소리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따라
성막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하였던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였습니다.
성경에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 은 나팔은
오직 이론의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위해 두 개만 은을 두드리고 돌쳐서 제작되었습니다.
훗날 제사장은 은 나팔이 아니라 양각 나팔을 불었으며
은 나팔을 선지자의 사역이나 사도적 사역으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또한 목회 사역으로 적용하는 것은 성경 저자의 시각과 관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전과 열정의 특새 호령은 제사장의 은 나팔 소리가 아니요,
성령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교회 성장의 메가 쳐치 현상을 지향하는 끝없는 열정의 드라이버를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사이비와 삯꾼 목자의 교주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사장의 은 나팔 소리를 목회 비전의 특새 호령으로 이해하는 것은
순전한 목회자의 메타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