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28(월)맑음
<칼 융의 집단 무의식과 보살의 원력>
칼 융은 인류가 저질렀던 모든 죄악과 광기의 기억이 집단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는 통찰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집단 무의식을 불교적으로 이해한다면 집단적 알라야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共業공업이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승보살은 수행을 통하여 자기의 개인적인 악업을 정화하여 열반을 성취하는 데 머물지 아니하고, 인류적, 민족적, 국가적, 사회적, 집단적 무의식을 정화하는 일에 과감히 뛰어듭니다. 그것도 현생의 일회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세생생을 두고 이어 나갈 소명으로서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그리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과 번뇌가 다할 때까지 나는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과 함께 하면서 보살의 원행을 완성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인간이 지구라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래 벌였던 집단적 악업-광기와 폭력, 전쟁과 학살, 수탈과 멸종-의 기억이 含藏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각성되고 정화되지 않는 이상 인간의 비극은 반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개인적인 불선업을 정화하여 해탈을 지향하는 동시에, 인류적 민족적 국가적 사회집단적 불선업-광기와 폭력, 전쟁과 학살의 흑역사 -집단 무의식을 정화할 것이 요청됩니다. 소수의 깨어난 자들이 양심과 정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집단 무의식을 정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런 통찰에서 대승불교는 보살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즉 먼저 깨어난 자들이 양심과 정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집단 무의식을 정화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일체 중생의 동시 열반, 사회적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과 신념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함께 그 길을 갈 것을 다짐합니다.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85세): 스위스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첫댓글 *유투브 예도tv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다.
예도선생님, 영감을 주는 강의입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중생과 열반이라는 대극의 통합은 초기불교(소위 소승)의 locus를 초월한 대승불교에서 핵심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금강승(소위 티베트불교)에서는 불성에너지는 평화존과 분노존(wrathful deity)로 발현됨을 보여줍니다. 분노와 애욕 및 광기라는 shadow 에너지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transform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도구로 사용하는 분들을 mahasiddha라 합니다.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은 할 일을 마치면 다시 진흙이 됩니다. 그분들은 진흙과 연꽃을 오가며 우주적 놀이를 합니다. 용수와 파드마삼바바, 원효와 편조(신돈), 스피노자와 체 게바라도 그랬고 예도선생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