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부산 사람, 부산말, 부산의 품
---김홍희 시집 『부산』의 의미
정훈(문학평론가)
유명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김홍희 작가가 시집을 펴내리란 사실은 평소에 상상하지 못했다. 작가의 시적 감성이나 필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내가 보통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사진 작품을 더러 글과 함께 엮어내거나 전시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전문 사진작가가 시집을 내는 경우는 과문한 탓인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홍희의 이번 시집은 남다르고 특별한 데가 있다. 나는 그를 TV에서만 보았다. 같은 부산에 살면서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활동하는 장르가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십여 년 터울의 나이 차도 한몫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건 사진과 문학이라는, 장르가 다른 작품활동을 각자 해 오고 있어서 먼발치라도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일이 없다. 더러 SNS나 미디어를 통해서 그의 왕성한 활동을 보고 들었다. 걸쭉한 부산말로 국내외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많은 분 정도로만 그는 나에게 인상을 남겼다.
아직 나와 그럭저럭한 인연으로 엮이지 않은 그지만 이번 시집 발간으로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그건 나에게도 행운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의 시집에 수록된 시제들에 나오는 지명만 훑어봐도 얼마나 이곳 부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작가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황령산, 해운대, 자갈치, 이기대, 오륙도, 서면, 복천동, 산복도로, 문현동, 몰운대, 달맞이 언덕, 낙동강, 기장 등이 그렇다.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아련하고, 그립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기분이 생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정서와 느낌은 남다르다. 단순하게 ‘향토애’라는 말로는 많이 부족한 느낌과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오래 살았던 터전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나 정서가 생기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애착이나 사랑의 감정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뭐라고 할까. 벗어나 있으면 늘 아른거리고, 막상 돌아오면 본래부터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이물스럽지 않고 포근한 느낌이다. 발문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렇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와서 지금껏 살고 있지만, 부산이 주는 묘한 매력을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겠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많은 이들이 부산을 말해왔고, 부산을 썼으며, 부산을 전시했다. ‘부산학’의 열풍이 2000년대 이후 이곳 부산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전국에 부산을 알리기도 했다. 이 나라 제2의 도시라거나 최대의 항만도시라는 상투화된 캐치프레이즈만으로 부산을 말하기는 택도 없다.
부산, 이곳은 수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서만 자리매김되어 있지 않은 도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부산은 다른 항구도시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맥락을 품은 도시다. 부산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남다른 자리를 꿰찬 도시이고, 특별한 풍경을 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토박이가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여러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다양한 빛깔이 공존하는 땅이다. 그 땅이자 보금자리인 부산은 저 자신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남몰래 숨겨온 슬픔을 오랫동안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자아내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부산에 살면 알게 된다. 조금은 투박하고, 조금은 담백하고, 조금은 인정과 의리가 넘지치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숙맥(菽麥) 같은 면도 없지 않다. 그런데 묘한 사실은 거기에서 부산의 매력이 나온다는 점이다.
나에게 부산은 개인의 애증사이지만, 크게는 민족의 시련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고 넉넉히 채워준 가마솥이다. 전쟁으로 밀어닥친 피난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안아준 넉넉한 터이자 독재에 항거한 수많은 열사를 낳은 곳이다.
바깥으로는 물건을 내다 파는 관문으로, 안으로는 민족의 주린 배를 채우는 입의 역할을 건강하게 해온 불 밝힌 항구다. 정치적 멸시와 천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야당으로 살기를 수십 년. 그래도 꿋꿋하기만 하고 뒤끝 없는 사내들의 바다이자 억척스런 삶을 시장바닥에서 보낼지언정 자식만은 당당히 키워낸 어머니들의 땅이다.
「부산」 부분
시집의 첫 장을 장식하는 작품의 한 대목이다. 시인도 밝히듯이 부산은 “민족의 시련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고 넉넉히 채워준 가마솥”이자 “피난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안아준 넉넉한 터이자 독재에 항거한 수많은 열사를 낳은 곳이다.” 아울러 “물건을 내다 파는 관문”이자 “민족의 주린 배를 채우는 입의 역할을 건강하게 해온 불 밝힌 항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꿋꿋하기만 하고 뒤끝 없는 사내들의 바다이자 억척스런 삶을 시장바닥에서 보낼지언정 자식만은 당당히 키워낸 어머니들의 땅”이 바로 부산이다. 워낙 사람들이 부산을 말할 때 곧잘 언급하곤 하는 내용이라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미처 잡아내지 못한 결들을 매만질 수 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한 항구도시 부산의 내력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 물자와 사람이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부산항의 기구한 역사를 조금만 훑어보아도 부산이 걸어왔던 가시밭길을 헤아릴 수 있다. 이곳에는 한탄과 눈물, 그리고 희미하나마 희망을 점치며 악착같이 생명을 부여잡은 사람들이 질기게 목숨을 이어온 곳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역사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형성된 부산이기에 길마다, 골목마다, 집마다, 강과 바다와 산기슭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내력이 주름져 있다. 한편으로는 눈물겹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끈적끈적한 정과 마음이 널리 퍼지고 배어 있는 곳이기에, 부산 사람으로 사는 일은 생명의 빛과 그늘을 한꺼번에 흡수하면서 축축하게 젖어오는 울컥함이나 아리고 쓰라린 페이소스를 퍼올리는 일과도 비슷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 있을 것이다. 부산을 단순하게 대도시나 관광도시, 혹은 투박한 사투리의 항구도시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부산의 매력을 설명할 수 없다. 매력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성품의 일종이기도 하겠지만, 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운과 빛깔을 전해주는 점과도 상통한다.
봉수대에서 본 고향 땅의 동서남북은 그 방향마다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동쪽이 골수냐 하면 서쪽이 드러나고, 남쪽을 보자 하면 북쪽이 탓을 한다. 강을 찍자 하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를 찍자 하면 산이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미천한 재주를 한탄하며 바위틈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어느새 도시는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이 만든 불이 일시에 바다를 드러내고, 어두운 산들을 드러내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모두 집으로 집으로 이어졌다. 바위틈을 빠져나온 나는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챙기며 홀로 말했다.
“그래, 동쪽이면 어떻고 서쪽이면 어떠냐? 사람이 살지 않으면 별인들 무슨 소용이고 봉수댄들 무슨 소용이냐? 카메라는 온 우주를 다 담아도 그 무게 하나를 더하지 않는 법.”
「황령산」 부분
황령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이는 부산의 풍경을 찍으려 했지만 계획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산에서 내려온 경험을 담은 글이다. 사진에 문외한이라 쉽사리 뭐라 하긴 그렇지만, 사진도 예술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사진이 지닌 작가의 철학과 세계관이 들어가 있음에 분명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각도의 방향과 어떤 피사체에 주안점을 주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과 해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작가가 원하고 뜻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남들이 봐서 근사한 사진이라도 작가로서는 실패작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나는 위 시에서 작가가 생각한 최적의 프레임을 찾지 못하고 실패해서 포기했다는 드러난 의미보다는,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부산의 풍경에서 작가가 터득한 순간의 깨달음에서 위 시의 진정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천한 재주를 한탄하며 바위틈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어느새 도시는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이 만든 불이 일시에 바다를 드러내고, 어두운 산들을 드러내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모두 집으로 집으로 이어졌다.”는 구절에서 어떤 말할 수 없는 느낌이 찾아오는 걸 어쩔 수 없다. 풍경의 한복판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몸을 뉘는 보금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진 작품도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을 이루는 바다와 산조차 사람의 영역을 뺀다면 맥없는 정물로만 그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작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부산의 한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규정 내릴 수 없는 이곳 부산의 표정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김홍희는 이번 시집에서 부산을 중심으로 자아내는 갖가지 느낌과 의미를 다양한 시선으로 엮어낸다. 중심에는 역시 부산이 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았던 삶의 의미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 어조에는 질박하면서도 진정성이 묻어 있다. 그의 ‘부산학’은 필설로 해명할 수 없는 개별 감각과 정서로 가득 차 있지만, 그가 고백하는 자전적 삶에서 비롯하는 메시지는 보편적인 앎과 인식에서 샘 솟는 지혜가 들어 있다. ‘부산’이라는 개별성과 ‘인생’이라는 보편성이 만나면서 빚어내는 성정의 향이 새롭다. 이것이 아마 김홍희의 매력이 아닐까. 한 사람의 매력은 그의 삶에서도 형성되지만,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도 결정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하루하루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생각의 두께를 늘리는 삶에서 엿볼 수 있다.
저의 어머니 정수선 권사님은 이미 팔순 중반을 넘기고 계시고
저는 한 눈 없이 회갑 진갑을 다 지나 육십 중반을 향해 갑니다.
이쯤 살아보면 세상에는
없어도 견딜 만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감동과 사랑이 그래도 세상에 있다면
우리의 삶은 고초로 피우는 꽃인 셈입니다.
「한 눈으로」 부분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이쯤 살아보면 세상에는/ 없어도 견딜 만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울러 “감동과 사랑이 그래도 세상에 있다면/ 우리의 삶은 고초로 피우는 꽃인 셈입니다.”라고 했다. 청년을 지나 장년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살아온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 몇 개의 문장 속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리란 짐작을 하게 된다. 그건 아마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삶의 자명한 지혜로 수렴된다.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아서 더 이상 부릴 욕심이 없는 상태로 해석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우리 삶이 “고초로 피우는 꽃”이라는 진술은,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 터득한 인생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시련과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면서도 다가올 시간에 펼쳐질 밝은 세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삶의 태도야말로 살아가면서 끝내 버리지 않아야 할 덕목이 아닐까.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도 더러 비극과 슬픔이 잡히겠지만 더욱 큰 긍정과 낙관의 빛을 믿기에 시인은 지금도 당당하게 자신의 작업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해낼 수 없는 어제는 눈을 감고 되새겨야 한다. 눈을 감은 곳에 길이 있다. 해녀들은 원망과 체념의 말 대신 오늘 집을 나서며 있었던 집안 이야기로 공허한 폐허를 메운다.
그럼! 절망으로 메울 수는 없지. 일상으로 메워야지.
밤이 되자 등대에 여지없이 불이 들어온다. 폐허 전의, 기억의 불을, 사랑하는 당신이 밝혔다.
「오륙도 등대」 부분
작가의 ‘인생 낙관론’은 「오륙도 등대」에서도 환하다. “눈을 감은 곳에 길이 있다. 해녀들은 원망과 체념의 말 대신 오늘 집을 나서며 있었던 집안 이야기로 공허한 폐허를 메운다.// 그럼! 절망으로 메울 수는 없지. 일상으로 메워야지.”와 같은 진술이 특히 그렇다. 나날이 닥쳐오는 고통과 절망을 언제까지 마음에 담으며 살지는 못한다. 이 점은 생명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생명에게 어느 한쪽의 상태가 지속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쪽에 기울면 또 다른 한쪽이 일어나는 게 생명의 원리고 이치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반드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가는 일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과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평온하냐에 따라 앞날의 공기가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을 붙잡는 일만큼 어려운 것도 사실 없다.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의 심지는 생명의 힘줄을 더욱더 단단하고 여물게 만든다. 낙관주의자나 낙천주의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자이다.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찾아오기 마련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운명의 방향이 잡힌다는 사실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상처받은 길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욕망은 청춘을 상처 주고 상처받은 청춘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아문다. 욕망으로 상처받고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단단히 아문 것이 길이다. 아물지 않은 것은 아직 길이 아니다. 단단히 아문 것만이 다른 상처를 치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은 단절을 넘어 연결을 꿈꾸는 자다.
「산복도로」 부분
부산 지형을 구성하는 독특한 형상 가운데 하나인 ‘산복도로’를 매개로 해서 작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작품이다. 산복도로는 도시가 사람을 받아들이고 주거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거친 뒤 물밀듯이 밀려온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서 만들었던 공간이다. 도시계획이나 주거정책이 뚜렷하지 않고 갈팡질팡했던 시절 비록 ‘난개발’이라는 부정적인 명칭과 함께 묵묵히 시대를 견뎌왔던 이름 또한 산복도로이기도 하다. 산복도로는 달동네, 서민, 배고픔, 도시빈민 등의 숱한 낱말과 엮였다. 그래서 그 이름은 지난날 먹고 살기 위해 악착같은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호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개념의 외연 확장을 수도 없이 거치면서 마치 거미줄처럼 부산사람의 뇌리를 어지럽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만큼 인정과 온기를 머금고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 산복도로다. 작가는 그런 산복도로를 “욕망은 청춘을 상처 주고 상처받은 청춘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아”무는 것으로 형상화한다. 무수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 산복도로의 어지러운 형상에서 욕망과, 청춘과, 거기에서 배태된 상처가 아문 단단한 길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단절을 넘어서 연결을 꿈”꾼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급기야 한 생명과 다른 생명을 이어주는 역사가 농축된 선, 이 끝없이 산을 휘돌고 나오는 줄기에서 사람과 공간이 합심하고 어우러지는 존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상상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의 시작과
비구름과 햇살의 언약인 무지개의 끝과
하늘의 별을 돌다리 삼아 건너는
저 무리의 영혼 중에
누가 지식으로 하늘의 구름을 셀 수 있으며
가슴속 지혜와 수탉의 슬기로
먹이를 사냥해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울 수 있겠는가
다만 한 생각과
창조의 때에 이르러
스스로 의심을 거두고 홀로 적요한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 또한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 부분
이번 시집의 주요 소재인 부산과 함께, 불교적 세계관의 형상화는 작가의 사고를 형성하는 주요한 토대이다. 불교적 사유를 가져왔다고 해서 곧바로 종교적인 수행이나 믿음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시와 종교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불교적 세계관과 맥을 함께 하지만, 김홍희 작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은 깊은 관념의 세계에서 끄집어낸 듯한 말들의 오솔길을 걸는 것처럼 사념의 공간으로 우리를 빠지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지식이나 인식의 힘에서 비롯되어 세계를 해석하는 일의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오는 일과도 같다. “누가 지식으로 하늘의 구름을 셀 수 있으며/ 가슴속 지혜와 수탉의 슬기로/ 먹이를 사냥해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울 수 있겠는가”는 다소 오묘한 의미를 지닌 듯한 구절이 그런 점을 증폭시킨다. 불교적 지혜와 ‘불가지론’의 철학적 속내가 버무려진 듯한 위의 말에서 우리는 스스로 믿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식에서 비롯하는 망상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 당위를 일깨운다. 모든 것이 공(空)이고 무(無)라고 하는 무책임한 말도 아니다. 그것은 허무로 귀결해버려서 존재의 의미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마지막 상태는 의심마저도 방편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래 무구한 지경으로 돌아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그런 산태를 상상이나 꿈조차 꾸기 힘들다. 다만 작가가 언급한 대로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에 대해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한 번쯤 마련해 보는 일도 보람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많고 높더라도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셀 수 없이 많은 ‘세계들’의 눈에서 보자면 티끌보다 못한 마음의 한 자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늘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유지하는 게 필요한 것이다. 작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홍희의 부산사랑은 곧 인간애와 우주애와 연결된다. 이것은 작가가 발 딛고 사는 장소와 공간에서, 작가와 마찬가지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모든 부산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지나지 않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까마득한 옛사랑이 불현듯 떠오르는 날. 도무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랑에 미련하기만 했던 부끄러운 기억의 통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우적거리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날.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밤새 입술을 맡겼던 눈 밑 검은 소주잔을 내던지고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 옛 길을 더듬다 어두운 기억의 긴 통로 끝에서 마주치는 눈빛.
「낙동강역」 부분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구절이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경전선 낙동강역 부근이 눈에 훤하다. 작가는 “그런 날 있지 않은가? 까마득한 엣사랑이 불현 듯 떠오르는 날, 도무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랑에 미련하기만 했던 부끄러운 기억의 통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우적거리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날,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라 자문하듯 진술했다. 그런 날이 왜 없지 않겠는가. 시인이 자문하듯 불쑥 직접적으로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마구 후벼판다. 강가 흐르는 물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설움 같은 사랑의 맹세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흐느적거리는 눈길을 따라, 먼 곳으로 흘러가 버린 듯한 먹먹한 추억의 시간을 따라 지나가면서 지금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지나가 버렸지만 늘 앞선 곳에서 다시 우리를 부르는 아름다운 사람과 풍경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바다와 산과 강이 우리를 저 높은 곳으로 보듬어 올리고선 천천히 우리 보금자리에 뉜다. 그 포근하고 따뜻한 손길이 있어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김홍희는 그런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자리에서 둘러보면서 기록하고 새기는 사람이다. 그에게서 결코 떨어져 나갈 수 없는 시간의 품은 나날이 또렷해지고 명확해짐에 틀림이 없다. 천천히 흐르는 산허리의 각도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북받쳐 오르는 사랑의 감정에 흐느끼면서도 아픈 자리 놓치지 않는 서늘한 눈매를 지닌 사람이 김홍희다. 그는 사진작가 이전에 평범한 부산 사람이며, 시인이기 전에 부산말로 노래하고 대화를 나누는 이웃집 아저씨다. 그는 예술가이기 전에 부산의 품에서 노닐면서 그림을 그리는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이 소년은 자신을 키워준 곳, 바로 이곳 부산이 내어준 모든 꿈과 희망과 사랑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의리 넘치는 청년이다. 한 줄 빛처럼 은혜처럼 내리꽂히는 예술의 영감이 그를 휘돌아 나갈 때면 또다시 새로워진 공간과 풍경이 그 앞에 오랜 나무처럼 서 있을 것이다. 이 나무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 아우성치며 애타가 불렀던 이웃들의 입술과 옷자락이 스쳐 간 일기장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면 보이는 세계의 속살을 천천히 매만지면 되살아나는 부산, 부산 사람, 부산말, 그리고 포근한 부산의 품을 만날 수 있다. 억수로 치솟아 올라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눈물 되어 흘러내린다. 부산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