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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1
영광이 충만한 교회 / 김창인 목사
오늘은 열왕기상 8장 1절에서 11절까지 있는 말씀가지고 “영광이 충만한 교회” 혹은 “영광이 충만한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서 제사장들이 섬길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가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가봇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엘리 대 제사장에게는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형제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안좋게 표현되어 불량자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을 가리켜 불량자라고 하였던 까닭은 하나님 앞에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서 송아지나 양을 끌고 와서 제사 드리려고 하면 사환을 시켜서 제사드리기 전에 고기를 빼앗아가곤 합니다. 그때 백성들이 삶을 것은 삶고 기름은 다 태워 제사 드린 후에 제사장에게 주게 되어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고 합니다.
사환이 다시 말하기를 제사장은 삶은 고기를 원치 않고 생고기로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자신이 먹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괘씸합니까? 하나님께서 블레셋 나라로 하여금 쳐들어오게 합니다. 백성들의 간담이 녹습니다. 그때 백성들의 소원은 한시바삐 법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홉니가 법궤를 앞에서 메고 비느하스는 뒤에서 메고 전쟁터에 갔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고 법궤는 빼앗겼습니다. 그 법궤를 메고 나아갔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엘리 대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고 둘째아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기를 해산하기 직전이었는데 충격을 받으면서 아기를 낳고 이 여자는 죽어갑니다. 그러자 산파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자 그 며느리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는데 아들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며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 집안에게서 떠난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가정도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거나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 이상으로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가정에 가득한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시간에 어떤 교회와 가정이 영광이 충만한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모이는 교회(가정) (1-2)
조직신학에서 교회는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고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사람은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하늘나라도 교회입니다. 먼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 있는 백성들이 하늘에 모여 있는데 그 것을 우리가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분명히 교회이지만 볼 수 없습니다.
이것뿐입니까?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이 택하셨지만 아직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해 놓은 사람들까지도 성경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누구를 택하셨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까? 즉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또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광성교회,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등등은 보이는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 중에는 또 두 가지가 있는데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설명을 안해도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흩어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모여서 예배하고 예배가 끝나면 모두 흩어집니다. 흩어진 후에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교회가 되고 여러분 각자가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잘 되려면 모일 때는 잘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되지, 교회에 10만명이 등록을 했더라도 모일 때에는 한 명도 안 모이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예배 마친 후에는 힘을 얻고 은혜 받고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향해 흩어져 나가야 합니다.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아침밥을 먹고 수저를 놓자마자 흩어져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딸은 딸대로 흩어져 나가야 합니다. 흩어지지 않고 모여만 있으면 그 집안은 망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구조조정 때문에 실직 당하고 갈 데가 없으니 집에 있고, 아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집에 있고, 딸도 직장생활을 못하고 집에 있다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흩어져 나가서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벌어야 합니다. 돈을 열심히 벌고, 번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혼자 벌어서 흥청망청 써도 됩니까? 아닙니다. 모두 번 돈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와서 엄마와 아내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모는 가정에서 여왕노릇하며 살림을 잘해야 합니다.
이렇게 잘 모여야 합니다.
저녁시간에 가족이 모이자고 언제 결정한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모이곤 합니다. 남편, 아들, 딸, 며느리 모두 모여듭니다. 그래야 가정이 평안합니다. 그런데 새벽1시가 되었는데도 남편이 안 들어왔다면 어디에 가 있는 것입니까? 밤이 늦었는데도 딸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 가정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모일 때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흩어지지 않으면 망하고 모이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 흩어지고 잘 모여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이는 일이 없이는 흩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먼저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모이는 교회, 열심히 모이는 가정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 충만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절부터 3절 상반절까지를 보면,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칠월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제일 먼저 짓지 않습니까?
다윗이 지으려다가 못 짓고 성막만 아름답게 지어 놓았습니다. 그곳에 법궤를 모셨습니다. 하나님의 궤입니다. 그래서 이 궤를 메어 올리기 위해서 먼저 사람들을 모두 소집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명령을 내리기를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부다 모이라고 하였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가져다 지성소에 모셨더니 제사장들이 섬기지 못할 정도로 영광이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충만함에 첫단계가 모임이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만왕이 모이라고 했음에도 모이지 않았다면 일이 되지 않고 일이 안되었으면 영광이 나타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왕이 명령하니까 왕을 중심으로 모두 모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왕을 중심으로 모였다 함은 만왕의 왕 되시고 왕중의 왕 되시는 예수 중심으로 모인다는 그 모임의 상징적인 예표입니다. 왕 중심으로 모였더니 영광이 나타났듯이 예수 중심으로 모이는 모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예수 없이 백만명 모여봐야 거기에는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예수 중심으로 모이는 모임이 귀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도 예수 중심의 가정이 될 때 그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저는 작은 외삼촌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8.15 해방된 해 가을에 저희 집과 30리 떨어진 곳에 외가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오시면 저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노아 이야기, 아브라함 이야기, 야곱 이야기, 요셉 이야기, 모세 이야기 등등 성경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옛날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듣고는 친구들한테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이면 꼭 외삼촌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일날이 노는 날이니까 이야기를 더 해주면 좋은데 왜 자꾸 가시냐고 했더니 외삼촌은 계속 가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교회에 나가고 예수를 믿고 보니 토요일에 왜 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날이 주일이니까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집에 돌아가서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외삼촌이 교회학교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교회 집사인데 엉뚱한 곳에 가서 예배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토요일이면 집으로 돌아가서 주일에는 제자리에서 꼭 예배하고 교사봉사하고 성가대와 교사로 봉사를 해야만 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그렇게 배웠습니다. 제 얘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픈 경우 외에는 주일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목사가 된 후가 아닙니다. 목사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혼자 피난을 내려와서도 이것만큼은 꼭 지켰습니다.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임에 빠짐없이 전부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이 교회도 예수 중심의 모임이 되고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식구 하나 빠짐없이 모여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은혜를 체험하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씀의 교회(가정) (3-8)
말씀 중심의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한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도 충만합니다. 물건이 길고 짧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면 자를 사용하면 됩니다. 길이의 표준은 눈짐작이 아니라 자입니다. 다음으로 부피가 많고 적은지에 대해서 헤아려보려면 말로 되어보면 됩니다. 쌀이 한말인지, 두말인지 눈짐작으로 보면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돈주고 쌀을 사려고 하면 두말도 한말로 보이고, 돈 받고 팔려고 하면 한말도 두말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말인지 두말인지 정확히 알려면 말로 되어봐야 압니다. 또 물건이 무거운지 가벼운지에 대해서 알려면 저울로 달아보면 됩니다. 솜 한근이 무겁습니까? 쇳덩어리 한근이 무겁습니까? 한근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느낌으로는 쇳덩어리 한근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저울로 무게를 달아봐야 합니다. 이것을 도량형이라고 합니다. 표준이 있기에 세상이 혼란하지 않습니다. 표준이 없다면 이 세상은 혼란스러워서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표준이 없으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행위와 생활도 표준이 없으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이 표준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표준이 됩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신조의 첫째가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법칙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법칙이요, 성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행동의 법칙이 됩니다. 내 행동이 제대로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알려면 성경을 봐야 합니다. 내 믿음이 제대로 된지 안된지를 알려면 성경을 봐야 합니다. 성경이 표준이기 때문입니다. 요리문답에서는 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데 부족하거나 혹 어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법은 열 가지인데 아홉 가지만 순종하고 한 가지는 못했다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하면서 전부를 무시하면 이것 역시 죄가 됩니다. 열 가지 중에 아홉가지는 순종하고 한가지만 못했으니 나는 의인이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한 가지를 어기나 열 가지를 어기나 똑같은 죄인입니다.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법을 어기거나 순종하는데 부족하면 모두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하게 우리의 믿음과 행위에 표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해서 안 되는 것은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도량형이라는 것은 자를 갖다 대보고 말로 되어보고 저울로 달아보는 표준입니다. 그 표준이 없다면 혼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사는 사람의 생활과 믿음은 혼란이 일어나고 또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축복이 넘치게 임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부터 8절을 보면,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저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채가 긴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법궤를 옮길 때에 궤를 메니라, 메고 올라가되, 메고 올라가매, 메어 들였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말끝마다 법궤를 어깨에 멨더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꼭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서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손도 대지 말아야 합니다. 더구나 편하다고 소달구지로 실어서 옮기면 더욱 안됩니다.
옛날 아비나다랍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법궤를 20년 동안 방치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성막을 짓기 전이니까 개인의 집에 모셔놓은 것입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윗이 성막을 짓고 그 법궤를 옮겨 성막에 모시려고 할 때 아비나다랍의 아들인 웃사와 아요가 힘들게 메고 옮길 것이 아니라 소달구지에 편하게 실어서 옮기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지키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소달구지에 실어서 옮기려고 하는데 소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습니다. 소가 달구지를 메고 갈 때 뛰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뛰었습니다. 나중에는 법궤가 쓰러지려고 하였습니다. 쓰러지게 되면 모두 박살납니다. 그래서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잡았는데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베데스웃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웃사와 충돌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충돌하면 박살납니다.
하나님과 충돌해서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법궤를 메어 올리라고 하셨지 소달구지에 실어 올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꼭 제사장이 메라고 하셨고 무슨 일이 있어서 박살나게 될지언정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웃사가 소달구지에 실어 끌고 가는가 하면 뒤뚱거리게 되자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들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충돌해서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아는 솔로몬이 다윗이 지은 성막에서 새 성전 지성소 안으로 법궤를 옮길 때에 제사장으로 하여금 메고 옮기라고 한 것입니다.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내가 좀 힘들고 손해볼지라도 심지어 이 방법이 싫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해야만 축복이 있고 영광이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하며 하나님과 충돌해서 살아남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의 가정과 다윗의 가정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도 충만합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통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교회, 말씀의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셋째, 사랑의 교회(가정) (9-11)
본문으로 돌아가서 9절부터 11절까지를 보면,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메어 옮기는 법궤 안에는 두 돌비 외에는 왜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본래는 그 안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살구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서 짚고 다니다 보니까 지팡이가 바짝 말라죽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성막 안에 두었다가 꺼내니 살구나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습니다. 그 살구나무 지팡이를 법궤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죽은 나무가 살아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부활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지팡이가 언젠가는 모르지만 없어졌습니다.
여하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 못됐던 남편이 변화되어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능력이 아니면 안됩니다. 문제 일으켰던 자녀들이 교회에 나와서 새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그 안에는 금항아리에 담은 만나가 있었습니다. 금항아리에 꼭 만나를 담아 법궤안에 넣어 두었었습니다. 그런데 금항아리에 담은 만나가 없어졌습니다. 금항아리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믿음을 가리키고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 즉 말씀을 가리킵니다.
교회 안에는 말씀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없어지고 두 돌비만 남았던 것입니다. 돌비가 무엇을 가리킵니까? 돌비가 두 개인데 하나님께서 직접 써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남아 있었습니다. 한쪽 돌비에는 십계명 중에서 네 가지, 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내용이 있었고 한쪽 돌비에는 십계명의 나머지 여섯 가지, 즉 이웃을 사랑하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합해놓으면 사랑입니다. 십계명은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것 같아도 사실은 사랑을 가르치는 법입니다. 그래서 법궤 안에 다른 것은 없어도 사랑은 있었습니다. 법궤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에는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가정에도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이 충만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축복도 충만합니다.
사랑 대신에 미움과 싸움이 가득한 교회에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까?
받을 축복이 있습니까?
사랑 대신에 싸움이 가득한 가정에 나타날 영광이 있고, 받을 축복이 있습니까?
사랑이 충만한 교회,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축복이 넘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사랑과 미움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을 드립니다.
열심히 모이는 교회와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곳에 영광도 축복도 넘칩니다. 그런가하면 사랑이 충만한 교회와 가정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