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소설가이며 사상가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미카엘이라는 천사가 벌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 구두 만드는 일을 하며 세 가지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 사람이 사는 이유와 목적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소설이다. 주제는 보편적 사랑에 대한, 광의로 해석하면 agape 적인 사랑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삼 오래된 그의 소설이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시국이라는 단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에로스적인 사랑을 벗어난 모든 사랑의 근원과 대상은 주변이며 이웃이다. 물론 자기 연민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상대방에 대해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이며, 가장 자신을 낮게 두는 것을 말할 것이다. 내 말을 따르라는 것보다 당신 말을 귀담아듣고 내가 당신 말에 따른다는 말이다. 주체가 내가 아닌‘너’에 있다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생각이다.
“줏대”라는 단어가 있다.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을 말한다. 당연히 줏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줏대가 나와 당신의 합리적 판단에 의한 줏대가 아닌 맹목적 자기 보호 내지는 자기 합리화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줏대가 아닌 변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설‘에 근거하여 생각해 보면 공동체의 이익이나 공동의 선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집단의 다수결에 의한 이익으로 판단한 것을 볼 수 있다. 거시적일지 모르지만, 공동의 이익, 공동의 선이라는 것의 배경엔 ’사랑‘이라는 근원적 배경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만 손해 보지 말아야 하고, 나만 이익을 봐야 하고, 나만 사태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어야 한다는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행동하지 않는 양식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다. 어쩌면 사회라는 것은 손해 볼 줄 아는 사람이 많아야 건전한 사회가 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알고도 손해 본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그 셈법에는 온기가 있다. 내가 좀 더 손해 볼게라는 말의 속 뜻은 네 이익에 대해 내가 감수해 준다는 말이다. 좀 더 확장하면 저울추의 균형이 안 맞아도 평평함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우린 누구나 내가 세계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내가 세상의 기준이라는 생각으로 살기 마련이다. 눈만 한 번 질끈 감으면 없어지는 것이 세상이고 세계라는 것도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 사회에서 모두 그런 의식으로만 산다면 혼돈의 세상이 되고 만다. 나만 잘 났다고 하면 모두가 못난 사람이 된다는 단순한 공식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모두 잘 났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면 모두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다. 세상에 잘 나고 못난 사람은 없다. 다만, 개성의 차이일 뿐.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배경을 생각해 본다. 사람 + 무엇으로 + 삶의 등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공동체‘라는 단어들이다.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인본적 근본 이전에 누구와 무엇으로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더불어라는 말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삶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삶에 대한 방정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말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나를 낮추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배경을 가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