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신학자 존 머레이는 교회를 단순히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개인들의 모임(called-out ones)'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자리에 '불러 모아진 유기적 공동체(called-together ones)'로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교회가 인간이 마음대로 운영하는 자발적 동호회가 아니라 주님이 피로 사신 거룩한 제도이기에, 인간의 편의나 지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명령과 권위에만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I』의 구분선 아래 내용은 개인주의에 빠지기 쉬운 현대 성도들에게 교회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를 일깨워주며, 공동체적 책임과 순결성을 지켜나갈 것을 권면합니다.
| 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교회의) 제도
이 표제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제도,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다.
흔히 교회는 ‘불러낸 무리들’(called-out ones)이라고 말해져 왔다. 그리고 신약에서 ‘교회’라는 단어의 어원은 이것을 규정적인 개념으로 고정시킨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교회의 회원들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사람들이 유효하게 세상으로부터 부르심 받았으며, 어두움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가 불러 낸 무리들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어떤 증거도 없다. 성경의 증거는 회집 또는 회중의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교회는 불러 모아진 무리들(called-together ones)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교회는 신실한 자들의 회중, 성도들의 친교, 신자들의 교제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제도-머리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 조성된 조직이다. 교회가, 불러낸 무리들로 구성된다는 관념은 중심적인 것을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념이, 공동체적 책임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순결성과 통일성을 보전할 필요성을 버리는 개인주의에 기여했다고 우려할 만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제도 또는 조직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게시된 뜻에 따라 규제되고 경영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의 정치에 있어서 꼭 피해야 하고, 또 만약 존재한다면 바로잡아야 할 관념들 중 하나가 교회는 자발적인 조직 또는 회(會)라는 관념이다. 어느 누구도 교회에 속하도록 사람들에 의하여 강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자발적이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의 목적과 기능들을 규정하며, 자신의 구성을 고안해 내며 자신의 직원들을 계획한다는 의미에서의 자발적인 회는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교회다. 그리고 그 목적과 기능들은 교회의 머리에 의해 명령되며, 그분에 의해 그 구성이 결정되고, 그 직원이 계획되며 지명된다.
아마도 신약 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가르침보다 이러한 사실에 더한 존엄성을 부여하는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장로들 또는 감독들이 치리하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그의 소유이며, 겟세마네의 고뇌와 갈보리의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의 피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교회는 죄와 사단과 사망에 사로잡힌 것이었으며, 그리스도는 그것을 구속하여 자신의 귀한 소유가 되게 하셨다. 이제 교회는 그의 몸이며, 그는 교회의 머리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권위를 빌려 행하지 않는다면, 감히 우리가 어떻게 그 몸에 손을 댈 것이며, 감히 우리가 어떻게 그 일들을 지도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인간의 지혜와 편의에 따라 치리되어서는 안되며,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그분의 명령에 따라 치리되어야 한다.
존 머레이, 『존 머레이 조직신학 I』(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267-269.
첫댓글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초신자와 가독성을 위하여 요약해 봅니다:
교회는 어원상 세상에서 '불러낸 무리들'이 아니라 한자리에 '불러 모아진 무리들(회중)'로 정의하는 것이 성경적 증거에 부합합니다.
교회를 단순히 불러낸 자들로만 보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공동체적 책임과 순결성, 통일성을 저해하는 개인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도들의 회중이자 신자들의 교제이며,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조성된 거룩한 제도이자 조직입니다.
교회는 성도가 강제로 가입당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자발적이지만, 인간이 목적과 기능을 마음대로 규정하는 자발적 동호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철저히 하나님의 교회이자 그리스도의 교회이므로, 그 구성과 기능 및 직원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분에 의해 결정되고 명령됩니다.
신약성경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교회에 최고의 존엄성을 부여합니다.
교회의 감독과 장로들이 치리하는 양 떼는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의 고뇌와 갈보리 십자가의 피로 대가를 치르고 구속하신 귀한 소유입니다.
사단과 사망에 사로잡혔던 교회를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기에, 이제 그분만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가 되십니다.
@장코뱅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인간의 지혜나 편의가 아니라,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진 그분의 명령에 따라 치리되어야 합니다.
요약만 봐도 전체를 읽은 느낌을 주네요^^
칼빈은 교회를 단순히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사교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품어 기르시는 ‘성도들의 어머니’로 규정합니다.
그는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며, 모든 성도는 그 머리 아래 긴밀하게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유기적 공동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사신 교회는 인간의 임의적 판단이 아닌, 오직 주님의 말씀과 통치 아래서만 그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집행되는 곳에만 참된 교회가 존재한다는 확고한 교회의 표지를 제시합니다.
이 표지에서 벗어나 인간의 화려한 외형이나 교황 제도 같은 인위적 권력 구조를 앞세우는 로마 가톨릭의 교권주의를 철저히 비판했습니다.
교회 정치와 제도는 인간의 편의나 세상의 지혜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오직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법과 질서를 따라 규정되어야 합니다.
목사, 교사, 장로, 집사라는 성경적 직분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계급이 아니라,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주님이 주신 유기적 봉사의 도구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한 지체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연합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닌 영적 생존을 위한 필수적 의무입니다.
그는 교회의 순결성을 보존하고 거룩한 연합을 지켜내기 위한 영적 근육으로서 교회의 권징과 질서 확립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칼빈의 교회론은 인간 중심의 교만과 개인주의적 태도를 철저히 배격하고, 교회의 참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명령과 권위만을 극대화합니다.
기독교강요 제4권에 나타난 참된 교회의 두 가지 표지와 거짓 교회를 식별하는 기준은 요한 칼빈의 핵심 신학에 입각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성도들의 어머니리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천이다 네, 공감합니다.
루터는 교회를 눈에 보이는 외형적·계급적 조직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믿는 신자들의 영적 연합체인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로 정의합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 제도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했다고 격렬히 비판하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와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천명합니다.
루터의 교회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만인제사장설'로,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나 감독은 신분상 특권을 가진 계급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직무적 봉사자'에 불과합니다.
그는 건물의 화려함이나 제도의 전통이 교회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복음)'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그곳에 참된 교회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구속의 은혜는 교회를 인간의 공로나 편의로 움직이는 자발적 동호회가 될 수 없게 만듭니다.
교회의 참된 보화는 교회가 보유한 제도나 권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거룩한 복음 그 자체입니다.
신자는 홀로 고립되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으며, 설교를 듣고 성례를 행하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지체들과 유기적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루터는 건물이 아닌 '신자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의 본질이기에,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는 연합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루터의 견해는 교회의 모든 제도적·인간적 권위를 폐하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 은혜만이 교회를 통치하는 유일한 기준임을 일깨워줍니다.
루터의 이상, 주장과 달리 현실의 루터 교회는 카톨릭 요소의 외형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츠빙글리는 교회를 인간이 고안한 가시적 제도가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선택된 자들의 영적 공동체'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과 사제 계급이 그리스도의 독점적 권위를 가로챘다고 보아 이를 격렬히 비판하고,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뿐임을 확언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참된 교회의 신적 권위가 인간의 유전이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만 나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성례(세례와 성찬)는 은혜를 주입하는 신비적 수단이 아니라,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주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연합을 확인하는 공동체적 표지였습니다.
특히 성찬을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와 성도들의 기념적 교제로 봄으로써, 성찬에 참여하는 온 회중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유기적 책임감을 고취했습니다.
츠빙글리는 교회의 거룩한 질서와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실한 기독교 시 정부(시의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공동체적 훈련과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교회는 개인의 취향이나 편의에 따라 모이는 자발적 결사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 전 삶의 영역을 복종시키는 거룩한 언약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단순히 개인적인 구원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공의를 행할 책임을 가집니다.
그는 교회의 모든 예식과 제도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철저히 단순화하여,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회중 가운데 높임 받게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츠빙글리의 교회론은 인간의 교만과 개인주의적 방종을 배격하고, 오직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전 공동체가 순결하게 개혁될 것을 요청합니다.
교회를 거룩한 언약 공동체로 본 츠빙글리의 견해는 청교도 사상과도 연결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천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벌코프는 교회를 단순히 인간들이 편의를 위해 조직한 자발적 단체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으로 세워진 ‘신적 제도’로 규정합니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인 ‘무형 교회’와 이를 지상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유형 교회’의 이중적 관점으로 조화롭게 설명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성령의 영적인 띠로 긴밀하게 결합된 선택받은 신자들의 유기적 공동체(유기체로서의 교회)에 있습니다.
동시에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고 은혜의 수단을 집행하기 위해 교사의 직분과 거룩한 정치 질서를 갖춘 공식적인 조직(제도로서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벌코프는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참된 주님의 교회임을 입증하는 세 가지 객관적 표지로 말씀의 신실한 전파, 성례의 정당한 집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을 제시합니다.
교회의 권세는 인간적인 세속 권력이나 다수결의 편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직접 부여됩니다.
따라서 교회의 직원들이 행하는 모든 정치와 치리는 인간의 지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계시하신 법과 권위에만 복종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지체로서 연합하고 연대하는 것은 개인주의적 성향에 따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머리이신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필수적 의무입니다.
그는 교회의 순결성과 통일성을 보존하기 위해 세속적인 타협을 배격하고, 언약 공동체로서 성도들이 서로에 대해 영적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결국 벌코프의 교회론은 철저한 신본주의에 기초하여 인간의 자율성을 배격하고, 교회의 주권이 오직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있음을 확고히 성명합니다.
칼빈과 츠빙글리의 개혁주의 사상을 종합한 것 같으며 매우 공감합니다.
교회가 기존의 사고대로 '불러낸 무리들'로 볼 것이 아니라 '불러 모아진 무리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엄밀히 다르네요. 후자는 together에 방점이 있군요. 예수님이 머리고 주인이셔서 교회를 직접 다스리시고 회중은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성경적인 교회 제도라는 설명이 공감을 받을만 합니다. 내용이 좋습니다.
공감합니다.
불러냄을 받은 자발적인 회중들의 모임이라는 말에는 유의할 함정이 있다는 설명을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겠네요.
네, 저도 그 지점에 특히 공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