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925 경기문화재단 연수(발표) 지명 유래의 조사 방법
지명 유래의 조사 방법
배 우 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땅이름 연구 과정)
1. 드는 말
땅이름은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귀중한 무형의 유산이다. 나라 곳곳마다 남아 있는, 우리 조상들이 익히 써 왔던 토박이 땅이름들이 모두 귀한 유산이다. 이러한 귀한 유산들이 의식 없는 이들에 의해 마구 바뀌고, 또 행정구역이 마구 조정되거나 새로운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고 상처투성이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 데다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우리 얼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의 우리 땅이름들을 마구 손질하여 없애 버렸거나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땅이름들을 남겨 놓아, 그러한 수치스러운 땅이름들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무형의 문화 유산을 길이 보존하고, 우리 땅이름(지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며, 우리의 주체성 확립을 위해 전국 땅이름을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은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에, 땅이름 유래의 조사 방법에 있어 유래할 점과 참고되는 사항을 밝혀 우리 땅이름이 후세에 옳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2. 땅이름의 변천 과정
모든 사람에게 자기 이름이 있듯이 땅 곳곳마다엔 땅이름(地名)이 있다. 사람의 이름을 비롯한 모든 고유명사가 다 그렇듯 땅이름도 일종의 고유 기호라 할 수 있다. 즉, 알기 편하고 불리기 쉽도록 정해진, 축약된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땅이름은 조상에 의해 붙여졌으므로 이것을 조사, 연구하면 조상의 생각에 접할 수 있고, 역사나 조상들의 의식 구조의 일면까지도 알 수 있으며, 전통이나 풍습의 일부도 알 수가 있다. 특히, 땅이름 중에는 그 내력이나 전설, 설화가 얽힌 것도 적잖이 있어, 이 속에서 조상이 훈훈한 얼과 접할 수 있다. 또한, 땅이름 속에는 각 지방 특유의 방언이나 옛말(古語)이 숨어 있기도 해서 지방말과 옛말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런 뜻에서 볼 때, 본디의 땅이름은 사라져서도 아니 되고, 함부로 고쳐져서도 아니 되며, 마구 지어져서도 아니 된다. 근래에 화서 각국에선 땅이름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인식, 이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땅이름학(地名學)'이라는 분야까지 새로이 개척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선 지금까지는 땅이름에 지극히 무심해 왔고, 아직도 여기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 1984년 9월에 '한국땅이름학회'가 생긴 이후, 이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해져 우리 땅이름이 무형의 문화 유산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1996년 3월에는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땅이름 연구' 과정을 둠으로써 이에 대한 연구를 보다 심층적으로 할 수 있는 땅이름은 좋은 계기를 마련하였다.
3.땅이름의 종류와 수
땅이름에는 나라 안에서만 보더라도 '경기도', '수원시' 등의 도`시명과 같은 큰 지역명이 있는가 하면, '쇠골'(金梧:경기 의정부시 금오동), '도드람산'(경기도 이천시 마장면)과 같은 좁은 지역명이 있다. "우리 나라의 땅이름은 총 얼마냐?" 이 물음에 대해서는 누구나 확실히 답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산, 내, 바위, 골짜기와 같은 자연적인 것이나 마을, 절, 다리, 터널 등의 인위적인 것이나 이름이 붙은 것은 모두 다 땅이름이라 할 수 있어, 땅이름은 붙이기 나름과 쓰기 나름으로 그 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도 수원시만 보더라도 '장안동' '이목동'과 같은 법정동명이 있는가 하면, '매탄3동' '팔달로2가동'과 같은 행정동명이 있고, 단순히 '버드내'(수원), '봉바위'(동두천), '윗갈래'(용인), '달고개'(양주)와 같이 지도에도 잘 표기되지 않은 채 불리기만 하는 땅이름도 있다. 그리고, 같은 지역만 보더라도 '널문이'와 '판문(板門)', '복사골'과 '도화동(桃花洞)'처럼 오래 전에 불리던 땅이름과 현재에 불리는 땅이름이 따로 있는 곳도 아주 많다. '삼거리'(고양시 덕이동), '건넛말'(시흥시 미산동), '아래모퉁이'(안성시 금광면 옥정리)와 같이, 땅이름이랄지 아니랄지 딱 잡아 말하기 어려운 것도 상당수 있고, '다랑골'(김포), '줄우물'(양평), '젓고개'(강화)와 같이 이미 사람들의 입에서 거의 떠나 지금은 막연히 어디쯤으로만 통하고 있는 땅이름도 많다. 땅이름의 종류는 어떻게 정할 수 있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를 수 있는데, 한글학회에서 30여 년 전에 간행한 <한국 지명 총람>에는 땅이름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실어 놓았다. ` 행정 구역명; 특별시, 광역시, 구, 출장소, 도(道), 시, 군, 읍, 면, 동, 리. ` 자연 땅이름; 강, 개, 고개, 골(골짜기), 곶(串,반도), 나루, 나무, 내, 너설, 논, 늪, 들, 만, 모래톱, 모퉁이, 못, 바위, 밭, 버덩, 산, 산맥, 섬(군도 포함), 소, 숲, 약수터, 여울, 웅덩이, 진펄, 터(址, 자리), 폭포, 해수욕장, 해협. ` 인공 땅이름; 고적, 공원, 광산, 굴(터널 포함), 길, 놀이터(유원지, 공원 포함), 농장, 능, 다리, 당, 동상, 뚝, 마을, 묘, 문, 물문(水門), 미륵(부처), 배수장, 보, 봇돌(水路), 비석, 비행장, 빨래터, 수원지, 양수장, 양어장, 역, 염밭(염전), 온천, 우물, 운동장, 장(시장), 저수지, 절, 정자, 철도, 탑.
4.땅이름의 내력
어느 나라나 거의 같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언제부터 이 땅 곳곳에 땅이름이 있었는가는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만주와 이 땅에 퍼져 살기 시작하면서 땅이름이 하나하나씩 붙여졌을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땅이름은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있고, 어디에 그것이 남아 있고를 말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가) 우리 나라 땅이름의 시초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책인 <삼국유사> 앞쪽에 보면, '아사달산(阿斯達山)'이란 땅이름이 가장 앞에 나온다. '위서(魏書)에 말하되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아사달산(經에는 無葉山이라 하며, 또는 白岳으로, 白州 땅에 있다 하며, 開城 동쪽에 있으니, 지금 白岳宮이 그것이라 한다)에 도읍을 세우고 개국하니 이름이 조선이다'<삼국유사 其一> 따라서, 역사에 기록된 땅이름으로는 '아사달산'이 처음이라 할 수가 있다. 연구에 의하면 '아사달'의 '아사'는 옛말 ' '('일찍' '새로' 또는 '아침'의 뜻)에서 온 것이고, '달'은 '땅'(또는 '들')의 옛말이니, 결국 이 이름은 '아침의 땅'이란 뜻이 된다. '조선(朝鮮)'도 이 '아사달'의 한자식 표기라 한다. 그러므로 '아사달'을 한자로 풀이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어서 <삼국유사>에는 '태백(太白)', '신시(神市)', '궁홀산(弓忽山)', '금미달(今彌達)' 등의 땅이름이 나오는데, 당시의 땅이름들은 이처럼 모두 한자로 표기되었다. '고구려', '가라(가야)'와 같은 땅이름도 순수한 우리 말인 '크다'나 '땅(나라)'의 뜻을 가진 옛말이 한자로 표기된 것이라는 사실은 익히들 알고 있는 터다.
나) 삼국시대와 통일 신라시대
신라는 삼국 통일 후, '삼국 이전은 연대나 도읍지 등에 관해 생각지 않는다(年代國都不可考)'라는 금도(今度)에 따라 삼국시대 이후만을 말할 수 있었다.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의 잔재를 없애려 그들 문화를 흔적없이 하는 정책을 썼던 탓일 것이다. 삼국시대의 땅이름은 우리말에 한자를 빈 이두나 향가식 문자로 나타난다. 고구려의 '달기현'(達己縣.지금의 고양시), 백제의 '두잉지현(豆仍只縣)'(지금의 충남 연기군), 신라의 '갑화랑곡현(甲火良谷縣)'(지금의 경남 기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 모든 군현 이름 등의 땅이름이 거의 일제히 두 자씩으로 된 중국식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땅이름의 큰 변동으로 삼국 또는 그 이전의 우리말 땅이름들의 본뜻을 알아 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와서도 땅이름이 다시 한번 크게 바뀌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지리지가 간행되었는데, 여기에 새 땅이름이 많이 실려져 나왔다.
라) 조선시대
조선이 건국되고 국세가 안정되면서 <세종실록 지리지>가 간행되었는데, 이 때 또 한 차례의 땅이름 개칭이 있었다. 이 지리지에 실린 땅이름은 무려 8,129개에 이르며, 별도로 간행된 <경상도 지리지>에는 7,202개의 땅이름이 실려져 있다. 양성지(梁城之)의 <팔도지리지>, 노사신(盧思愼) 등의 <동국여지승람> 및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는 땅이름이 2만 개 가량 실렸다. 그러나, 이들 자료에는 순수한 우리 땅이름이 모두 한자로 표기되어 일반인들에게 익히 불리던 '할미산'은 '노고산(老姑山)', '모래내'는 '사천(沙川)', '애고개'는 '아현(阿峴)', '삼개'는 '마포(麻浦)'와 같은 식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경기도의 옛 땅이름(군현급)의 변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현재의 시`도 가나다순)
[현재]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재위치 [가평] 근평(斤平.幷平) 가평(加平.嘉平) 속 춘주(春州) 감무(監務)를 둠 `` [강화] 고목근현(高木根.海島也) 교동현(喬桐縣) 교동현(喬桐縣) 교동현(喬桐縣) ※현 강화 교동 [강화] 동음내현(冬音柰縣) 강음현(江陰縣) 강음현(江陰縣) 강음현(江陰縣.속 강화) `` [강화] 수지현(首知縣) 수진현(守鎭縣) 진강현(鎭江縣) 진강현(鎭江縣.속 강화) `` [강화] 혈구군(穴口郡.甲比古次) 해구군(海口郡) 강화현(江華縣) 강화현(江華縣) `` [고양] 개백현(皆白縣.王逢.王迎) 우왕현(遇王縣) 행주(幸州) 행주(幸州) ※현 고양시 행주 [고양] 달을성현(達乙城縣) 고봉현(高烽縣) 고봉현(高烽縣) 고양군(高陽郡) `` [과천] 율목군(栗木郡.冬斯 ) 율진군(栗津郡) 과주(果州.菓州) 과천현(果川縣) `` [광주] 한산군(漢山郡.南漢山城) 한주(漢州) 광주(廣州) 광주목(廣州牧) `` [김포] 검포현(黔浦縣) 김포현(金浦縣) 김포현(金浦縣) 김포현(金浦縣) `` [김포] 호유압현(乎唯押縣 분진현(分津縣) 통진현(通津縣) 통진현(通津縣) ※현 김포 통진 [남양주] 골의노현(骨衣奴縣) 황양현(黃壤縣) 풍양현(豊壤縣) 풍양현(豊壤縣.속포천) ※현 남양주 진접 [서울] 북한산군(北漢山郡) 북한산주(北漢山州) 한양군(漢陽郡) 양주도호부(楊州都護府) `` [수원] 매홀군(買忽郡) 수성군(水城郡) 수주(水州)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 [시흥] 잉벌노현(仍伐奴縣) 곡양현(穀壤縣) 금주(金今州.금양) 시흥(始興) ※현 서울 금천구 [안산] 장항구현(獐項口縣) 장구군(獐口郡) 안산현(安山縣) 안산군(安山郡) `` [안성] 개차산군(皆次山郡) 개산군(介山郡) 죽주(竹州) 죽산현(竹山縣) ※현 안성시 [안성] 나혜홀(奈兮忽) 백성군(白城郡) 안성군(安城郡) 안성군(安城郡) `` [안성] 사복홀(沙伏忽) 적성현(赤城縣) 양성현(陽城縣) 양성현(陽城縣) ※현 안성시 양성면 [양주] 내을매현(內乙買縣) 사천현(沙川縣) 사천현(沙川縣) 사천현(沙川縣.양주도호부 속현) `` [양주] 매성현(買城縣.馬忽) 내소군(來蘇郡) 견주(見州) 양주목(楊州牧) `` [양천] 재차파의현(濟次巴衣縣) 공암현(孔巖縣) 공암현(孔巖縣) 양천현(陽川縣) ※현 서울 강서구 [양평] 골내근(骨乃斤) 황려현(黃려縣) 빈양현(濱陽縣) 양근현(楊根縣) ※현 여주`양평 일부 [여주] 술천군(述川郡.省知買) 소천군(芟川郡) 천령군(川寧郡) (폐속 광주) ※현 여주 일부 [연천] 공목달현(功木達縣) 공성현(功城縣) 장주(獐州) 연천현(漣川縣) `` [연천] 양골현(梁骨縣) 동음현(洞陰縣) 동음현(洞陰縣) 영평현(永平縣) ※현 포천 영중면 [용인] 구성현(駒城縣.滅烏) 거츨현(巨 縣) 용구(龍駒) 용인(龍仁) `` [이천] 남천현(南川縣.南買) 황무(黃武) 이천현(利川縣)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 `` [이천] 노음죽현(奴音竹縣) 음죽현(陰竹縣) 음죽현(陰竹縣) 음죽현(陰竹縣) ※현 이천군 [인천] 동자홀현(童子忽縣) 동성현(童城縣) 동성현(童城縣) 동성현(童城縣) ※현 인천 부평 [인천] 매소홀현(買召忽縣.미추홀) 소성현(邵城縣) 인주(仁州)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 `` [인천] 수이홀(首爾忽) 술성현(戌城縣) 수안현(守安縣) 서원군(瑞原郡) ※현 인천 일부 [인천] 주부토군(主夫吐郡) 장제군(長堤郡) 수주(樹州)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현 인천 계양구 [장단] 장천성현(長淺城縣) 장단현(長端縣) 장단현(長端縣) 장단현(長端縣) `` [장단] 장항현(獐項.古期也忽次) 임강현(臨江縣) 임강현(臨江縣) 임강현(臨江縣) ※현 장단 [장단] 진임성(津臨城) 임진현(臨津縣) 임진현(臨津縣) 임진현(臨津縣) ※현 장단 [파주] 술이홀현(述爾忽.首泥忽) 봉성현(峯城縣) 서원현(瑞原縣) 원평현(原平縣) 서원현. ※현 파주 일부 [파주] 천정구현(泉井口縣.於乙買串) 교하군(交河郡) 교하군(交河郡) 교하현(交河縣) ※현 파주 교하 [파주] 칠중현(七重縣.難隱別) 중성현(重城縣) 적성현(赤城縣) 적성현(赤城縣) ※현 파주 적성 [파주] 파해평사현(把害平史縣) 파평현(坡平縣) 파평현(坡平縣) 파주목(坡州牧) `` [평택] 하팔현(下八縣) (하팔) 평택(平澤)>천안 평택현(平澤縣) `` [평택] 부산현(釜山縣.松村活達) 진위현(振威縣) 진위현(振威縣) 진위현(振威縣) ※현 평택 일부 [포천] 마홀군(馬忽郡) 견성군(見城郡) 포주(抱州) 포천현(抱川縣) `` [화성] 당성군(唐城郡) 당은군(唐恩郡) 강녕군(江寧郡)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 `` [화성] 상홀현(上忽縣.車忽) 차성현(車城縣) 차성현(車城縣) 용성현(龍城`수원도호부 속현)`` -------------------------------------------------------------------------------------------------
라) 일제시대
19세기 말, 일본은 대륙 침략의 길잡이와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한국의 지형도를 간행코자 본격적인 땅이름 조사에 착수했다. 이 때 모아진 땅이름은 약 180만 개로서 상당수가 일본 육군 참모본부 간행의 지형도에 기입되었다. 1899년, 육군 참모본부 간행의 군용 지형도(축척 5만분의 1)는 300 장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6만 개 마을 이름(법정지명)을 반 정도로 줄여서 이 지도에 표기하였다. 그러나, 이 때의 땅이름 조사·정리는 불충분했고, 더우기 일본 사람들의 사용에 편리한 땅이름으로 변질된 것이 상당히 많았으며(예를 들면 '蛤井洞>合井洞'), 또 지형도에는 일본글인 가다가나를 병기했으므로 여기에서 파생된 혼란이 심했다. 오늘날 지도 등에 나타난 땅이름들이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지지>와 서로 다른 것이 많은 것은 지형도 간행 때 일본군이 저질러 놓은 결과이다.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는 많은 땅이름들이 없어지거나 변질되었는데, 이는 행정구역을 크게 줄임으로써 일어난 현상이었다. 즉, 군(郡)이 377개에서 220개로 줄었고, 면은 1,338개에서 2,521개로, 동·리(洞里)는 62,532개에서 28,366개로 줄게 되었다. 일제 때(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없어진 군현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표: 1914년 일제에 의한 군현 폐합 사례(경기) ※현 행정 시군의 가나다 순 +------------------------------------------------------------------------------------------------ | | 없어진 군현 | 달라진 군 (*표는 면이름으로 옮겨 놓은 것) |----- -------------------- -------------------------------------------------------------------- | | 조종현(朝宗縣) | → 가평군(加平郡 상·하·외서면) | | 미원현(迷原縣) | → 가평군(加平郡 설악면) | | 교동현(喬桐縣)* | → 강화군(江華郡 교동면) | | 양천군(陽川郡) | → 김포군(金浦郡), 부천군(富川郡) ※현 서울 강서구(중심지는 가양동) | | 통진군(通津群)* | → 김포군(金浦郡) ※현 김포군 통진면 일대 | | 수안현(守安縣) | → 김포군(金浦郡 대곶·양촌면) | | 동성현(童城縣) | → 김포군(金浦郡 하성면) | | 풍양현(豊壤縣) | → 남양주군(南楊州郡 진건·진접·별내·미금·구리면) ※현 남양주시 | | 안산군(安山郡) | → 시흥군(始興郡), 수원군(水原郡) ※현 안산시, 수원시 | | 과천군(果川郡)* | → 시흥군(始興郡 과천면) ※현 과천시 | | 양성군(陽城郡)* | → 안성군(安城郡 양성면) ※현 안성시 | | 죽산현(竹山縣)* | → 안성군(安城郡 일죽·이죽·삼죽면), 용인군(龍仁郡 외사·원삼면) | | 천영현(川寧縣) | → 여주군(麗州郡 금사면) | | 적성현(積城縣)* | → 연천군(連川郡)→파주군(坡州郡) | | 마전현(麻田縣) | → 연천군(連川郡 미산·왕징·백학), 파주군(坡州郡 적성면) 일부 | | 삭녕현(朔寧縣) | → 연천군(連川郡 왕징·중·북면), 강원도 철원군 일부 | | 양지현(陽智縣)* | → 용인군(龍仁郡 양지면), 안성군(安城郡) ※현 용인·안성시 | | 교하현(交河縣)* | → 파주군(坡州郡 교하면) ※현 파주시 | | 임진현(臨津縣) | → 파주군(坡州郡 군내·진남·진서면) ※현 파주시 | | 송림현(松林縣) | → 파주군(坡州郡 군서면) ※현 파주시 | | 진위군(振威郡) | → 평택군(平澤郡) ※현 평택시 | | | 영신현(永新縣) | → 평택군(平澤郡·당시 진위군 고덕면) ※현 평택시 | | 용성현(龍城縣) | → 평택군(平澤郡·당시 진위군 청북·오성면) ※현 평택시 | | 광덕현(廣德縣) | → 평택군(平澤郡·당시 진위군 현덕면) ※현 평택시 | | 영평현(永平縣) | → 포천군(抱川郡) 영중·영북면) | | 남양부(南陽府)* | → 화성군(華城郡 남양면) | | 재양현(載陽縣) | → 화성군(華城郡 비봉면) | | 쌍부현(雙阜縣) | → 화성군(華城郡 장안·우정면) | | 정송현(貞松縣) | → 화성군(華城郡 정남·봉담면) ------------------------------------------------------------------------------------------------
마) 광복 후
해방 후엔 청소년이나 시·읍·면 직원이 한자 지식에서 멀어짐에 따라 부정확한 발음과 오기(誤記)로 땅이름의 혼용·오용이 많아졌다. 이같은 혼란은 군사면에도 큰 지장을 주었다. 지도상의 땅이름과 현지의 땅이름이 서로 틀려 작전상 막대한 차질을 빚었다. 또한 미군이 로마자 표기에서 채택한 매큔·라이샤워(McCune-Reishawer)식의 표기로 미군과의 작전 수행에 불편도 따랐다. 이에, 땅이름 호칭과 로마자 표기의 통일을 위해 국무회의 결정으로 1958년에 국방부 산하에 지리 연구소와 중앙 지명 제정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어서 시도·시군·읍면 지명 제정 위원회가 구성되어 남한의 124,198개의 땅이름이 심의·채택되었다. 이를 토대로 신판 지형도의 편찬 간행이 끝나고, 땅이름 제정 사업은 일단락, 그 기능은 새로 제정된 측량법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땅이름의 오기, 억지, 작명(作名), 개작(改作) 등에 의한 혼란은 심각하므로 땅이름의 정리를 위한 작업은 더욱 꾸준히 연구되고 계속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5. 땅이름 해석의 함정
땅이름 속에는 우리의 말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더러는 지금의 말 그대로 나타내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옛날에 쓰던 말들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또 표준말로 남아 있기도 하고, 지방 고유의 말로 남아 있기도 하다. 한자로 표기된 이름 중에는 소리빌기(音譯)에 의해 된 것이 있는가 하면, 뜻빌기(意譯)로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자나 한글로 나타난 땅이름을 무조건 글자 그대로 풀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땅이름은 그 생긴 지역의 언어 특성이나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데다가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 원형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표기하는 사람들의 표기 방법에 따라 똑같은 땅이름도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땅이름의 연구에는 우리의 옛말, 방언, 음운 현상 등 언어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많은 땅이름을 접하면서 우리말과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전국에 깔려 있는 땅이름 중에서 흔한 것 몇 가지를 골라 자칫 글자의 함정에 빠져 엉뚱한 풀이를 할 수 있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가) '가재울(가잿골)'은 대개 가장자리 마을
전국에는 '가재울'이라는 땅이름이 무척 많다. 그리고, 비슷한 땅이름에 '가잿골', '가잿말' 등이 있다. 그리고는 대개 그런 곳은 가재가 많아 그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고들 있다. 한자로는 주로 음차되어 '가좌(佳佐.加佐)'로 표기되고 있다. ·가재울(加佐); 경기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加佐里) ·가재울(加佐); 경기 고양시 일산구 가좌동(加佐洞) ·가재울(佳才); 경기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佳才里) ·가재올(佳材月);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가재월리(佳材月里) 그러나, 꼭 가재가 많아 '가재'가 붙은 것이 아니다. 이런 땅이름 중에는 '가장자리'의 뜻으로 이름붙은 것이 무척 많다. 즉, 들의 가장자리거나 내의 가장자리에 있을 때 이러한 이름이 곧잘 붙는다. ' (갓,갖)'은 '가장자리'의 옛말이다. 이 말과 '마을'의 뜻인 '울' 또는 '골'과 합해질 때 소유격조사와 같은 '애'가 개입되어 이런 이름이 될 수 있다. 갖+울=갖애울>가재울 갖+골=갖애골>가재골(가잿골)
나) '꽃'자 땅이름은 대개 '곶'에서 나와
땅 한쪽이 삐죽하게 튀어나간 곳을 '곶'이라 한다. 그래서, 황해도 서해안의 '장산곶'이나 서울 성동구의 '살곶이' 같은 땅이름이 생겼다. 곶의 안쪽이면 '곶안(高棧)', 곶의 바깥쪽이면 '곶밧'과 같은 땅이름이 나온다. '밧'은 '밖'의 옛말이다. 곶+안=곶안>고잔 이런 땅이름은 서해안 일대에 무척 많다. ·고잔(高棧); 인천시 남구 고잔동(高棧洞) ·고잔(高棧);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高棧洞) ·고잣말(高尺);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고척리(高尺里) '곶의 바깥쪽'이란 뜻의 '곶밧'은 경음화하여 '꽃밭'으로도 옮겨갔다. 그리고 이것이 의역되어 한자식 지명 '화전(花田)'이 되었다. ·꽃밭(花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花田洞) ·꽃바테(花田);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수촌리 화전(花田)
다) '구석 마을'의 뜻인 '구억말'이 '꿩말'까지
'구석'의 옛말 또는 방언은 '구억'이다. 그리고, 이 말의 뿌리말은 ' '이다. 이 ' '은 '구시', '구세', '구이(귀)' 들의 말로도 옮겨져 씌어 오면서 많은 관련 땅이름을 이루어 놓았다. '구석'의 방언 '구억'과 '마을'이란 뜻의 '말'과 합해지면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꿩말'까지 갈 수 있다. 구억+말>구억말>구엉말>꾸엉말>꿩말 그래서, '꿩말' 중에는 '구석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것이 많다. ·구억말(九億); 경기도 평택시 서턴면 장등리 구억리(九億里) ·궉말;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시미리 -- ·꿩뫼섬(雉島); 전북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雉島里) ·꿩마(雉洞); 경북 예천군 풍양면 풍신리 치동(雉洞) ·꿩매(雉山); 전남 영광군 군남면 설매리 치산(雉山)
라) '넓다'는 뜻이 '널'이 되고 '노루'가 되고
'넓다'는 말을 전라도쪽에서는 '누릅다(노릅다)', 충청도쪽에서는 '느릅다', 경상도나 강원도쪽에서는 '널따'로 되는데, 땅이름에서도 '넓다'는 뜻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넓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쪽으로 옮겨간 것도 있다. 즉, '넓다'는 뜻의 '너르'가 음의 변화로 '누르'가 되어 '누렇다'는 뜻으로 간 것도 있고, '노루(獐)'가 된 것도 있으며, '널'로 되어 '날판지'와 같은 뜻으로 간 것도 있다. 또, '널'이 '날'로 되어 '날다'의 뜻으로까지 가 버린 것도 있다. ·너른바우(廣石); 경남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廣石里) ·누렁구지(黃口池); 경기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黃口池里) ·노루목(獐項);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獐項里) ·너(널)다리(板橋);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板橋洞) ·날뫼(飛山);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飛山洞)
마) '돌'이 '항아리'로 뜻으로 옮겨가
'독'은 '독(甕)'일 수도 있지만, '돌(石)'일 수도 있다. '돌'의 옛말은 '돍'인데, 이것이 '독'으로 되었다가 '항아리'와 관련된 땅이름처럼 보여 지형이 독과 같아 그렇다느니, 독을 구웠던 곳이라느니 하면서 엉뚱한 풀이가 나오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독'자 땅이름 중에는 '돌'이 있어 붙은 것이 적지 않다. '돌'의 옛말인 '독(돍)'은 그 뒤에 오는 음에 따라 '동'으로 되기도 하면서 땅이름쪽에선 '동쪽'이란 뜻으로 이끌려 간 것도 있다. ·독실(甕谷);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의 옹곡(甕谷) ·독우물(甕井); 경기 김포군 통진면 옹정리(甕井里) ·밧독재(外甕峙); 강원 속초시 외옹치(外甕峙) ·독다리(石橋); 경남 남해군 남면 석교리(石橋里) ·독고지; 경기 고양시 일산구 산황동의 독고지 ·독섬(獨島); 동해의 독도(獨島) ·동몰(東村);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동촌리(東村里)
바) '뫼'가 '매'로 되면서 전설이 만들어지고
'산이 매(鷹)처럼 생겼다-산에서 매 사냥을 했다-매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얘기와는 달리 '산'의 옛말이 '메(뫼)'이기 때문에 '매산', '매봉', '매봉산'이 되고 이것이 한자로 옮겨져 '응산(鷹山)', '응봉(鷹峰)', '응봉산(鷹峰山)'이 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매봉(鷹峰); 강원도 인제군과 양구군 사이 매봉(응봉.鷹峰) ·매봉(鷹峰); 경기도 가평군 상면의 매봉(응봉.鷹峰) ·매산등(鷹山); 전북 장수군 산서면 학선리 응산(鷹山) ·매봉산(鷹峰山); 경북 청송군 부남면 응봉산(鷹峰山)
사) '산'의 뜻인 '몰'이 '모래'로 되어
'모래재', '모래말(모랫말)', '모라' 등을 보고 모래가 많아서 나온 이름이라고 무조건 믿는 것도 잘못이다. 여기서의 '모래' 또는 '모라'는 '산(山)'의 옛말인 '몰'에서 나온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원래 '몰'보다는 '말'이 '산'의 옛말로 더 많이 씌었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몰'로 발음하는 곳도 많다. 이것이 그 다음에 끼어 든 모음과 연결되면 '모래'도 되고 '모라'도 된다. 몰+내=몰애내>모래내 한자로 옮겨간 것 중에는 '몰'이 '모래'로 되었다가 뜻빌기로 '모래사(沙)'자가 취해지기도 하고, '모라(毛羅)'로 취음(取音)되기도 했다. ·모래내(沙川);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사천(沙川) ·모래말(沙村); 경기 양주군 남면 구암리의 사촌(沙村) ·모래논;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윗툭골의 모래논 ·모라(毛羅); 부산 사상구 모라동(毛羅洞) ·모래촌(沙村); 전남 강진군 신전면 사촌리(沙村里)
아) 벼루. 별
땅이름에 '벼루'자가 들어가면 사람들은 곧잘 땅모양이 '벼루'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름 중에는 '벼랑'의 뜻에서 나온 것이 무척 많다. '벼랑'의 옛말은 '볃', '별'인데, 이 말이 '벼래'로도 가고, '벼루'로도 갔다. ·밤벼루(栗峴); 강원 횡성군 유천면 두곡리의 율현(栗峴) ·꽃벼루(花硯); 강원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화연(花硯) ·벼루재(硯峙); 경기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의 벼루재와 벼루재들 '벼랑'이라는 뜻의 '벼루'와 '고개'가 합쳐져 '벼루고개'가 되고, 이것이 다시 '벼룩고개'가 되어 '벼룩'과 관련된 땅이름처럼 되기도 한다. ·벼룩고개; 전북 순창군 유동면 창신리의 벼리고개(비리고개) ·벼룩뿌리(별유불); 충남 예산군 예산읍 주교리의 벼룩뿌리 '벼랑'의 옛말이 '별'이기 때문에 땅이름에 '벼랑'의 뜻이 그대로 '별'로 들어간 것이 많다. 그리고는 한자로 '별성(星)'자로 옮겨가기도 했다. ·별고개;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용암리의 별고개 ·별재(星峴); 경기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의 별재(星峴) ·별말(星村);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의 별말(星村) ·별태(星谷); 경북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星谷里) ·별티재(星峴);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현리(星峴里)
자) '샘말' 중에는 '사이'의 뜻 들어간 것 많아
'샘말'이란 땅이름이 무척 많다. 그러나, '샘'자가 취해졌다고 해서 무조건 '샘'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새(사이)+말+샛말>샌말>샘말 즉, '사이의 마을'이란 뜻이 이렇게 '샘이 있는 마을'이란 뜻처럼 옮겨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런 과정으로 '샘말'이 되었으면서도 한자로는 대개 '샘천(泉)'자가 취해져서 더욱 뜻의 혼란을 가져오게 한다. ·샘말(間村); 경기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간촌(間村) ※샛말 ·샘마루(泉旨); 경북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泉旨里) ※샛마루 '골짜기 사이의 내'란 뜻으로 '싯내'('싯'은 '골짜기'의 옛말)가 '쉰내'로 되었다가 '쉰'을 '오십(五十)'으로 옮겨 강원도의 '오십천(五十川)'과 같은 이름이 나오게도 했다. 물굽이가 50 군데여서 그렇다거나, 물여울이 50 곳이 있어 그렇다거나 하는 것은 글자에 빠져 잘못 풀이한 것이다.
차) 쇠말·쇠벌
'새'가 '쇠'로 옮겨가 한자의 '금(金)', '철(鐵)'자로 취해진 땅이름을 많이 볼 수 있다. '새'는 '사이'의 뜻을 갖고 있기도 하고, '새로움'의 뜻을 갖고 있기도 한데, 이것이 '쇠'의 음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쇠가 났던 곳이라느니, 쇠가 날 곳이라느니 하면서 엉뚱한 해석을 낳게 만들었다. ·쇠실(金谷); 충북 영동군 용산면 금곡리(金谷里) ·쇠실(金谷); 충북 영동군 용산면 금곡리(金谷里) ·쇠골(金谷); 경기 성남시 중원구 금곡동(金谷洞) ·쇠터(金垈); 경기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金垈里) ·쇠말(金村); 경기 파주시 금촌읍 금촌리(金村里) ·쇠벌(鐵原); 강원 철원(鐵原) '새'가 '쇠'로 되면서 '쇠머리', '쇠꼬리' 같은 낱말에서의 '쇠'처럼 '소(牛)'의 뜻으로 가기도 해서 그와 관련된 뜻으로 생각하게 된 땅이름도 많다. ·쇠골(牛洞); 전북 김제시 금구면 하신리의 쇠골(牛洞) ·쇠내(牛川);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천리(牛川里) ·쇠묵(牛項);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 중산리의 쇠묵(牛項) ·쇠일(牛谷); 경기 이천시 백사면 우곡리(牛谷里) ·쇠재(牛峙); 강원 영원군 수주면 도원리의 쇠재(牛峙)
카) 무수울-무쇠울
'물'의 옛말은 '뭇'이다. '물의 마을'이란 뜻의 땅이름이 될 때는 이 곳이 '뭇애울' 또는 '뭇이울', '뭇으울'이 되거나 '뭇애골', '뭇애말'이 된다. 뭇(水)+울(마을)> 뭇애울(무새울) 뭇이울(무시울) 뭇으울(무스울) 이 과정에서 물 관련 땅이름이 '무쇠(鐵.金)'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무쇠'와 관계가 있는 듯한 이름의 땅이름인 '무쇠울' 또는 '무수막'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무쇠막(水鐵);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무쇠막(水鐵里) ·무쇠골(水鐵); 충남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水鐵里) ·무쇠다리(水鐵);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水鐵里)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의 길을 달리다 보면, 먼저 원주 땅에서 '문막'이라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 마을도 원래 '무수막', '뭇막'으로, '물의 마을'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 곳에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蟾江)이 지나고 있고, 그 강가에 마을이 형성되어 이 이름이 붙었던 것이 일제 때 뜻도 알 수 없는 '문막(文幕)'으로 바뀐 것이다. 뭇(물)+막(마을)>뭇막>문막 이처럼 '뭇'의 뜻이 '뭇'으로 전해지다가 뒤에 '마을', '뫼', '내', '나무' 등의 ㅁ, ㄴ의 음과 만나게 되면, '뭇'이 '문'으로 자음동화하여 엉뚱한 뜻으로 이해될 땅이름을 낳기도 한다.
타) 벌말-벌실
'벌의 마을'이란 뜻의 땅이름인 '벌실'이 '벌이실(버리실)'이 된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이름은 다시 '보리실'이란 이름으로 옮겨가면서 '보리(麥)'과 관련한 땅이름인 것처럼 생각하게도 만들었다. ·보리실; 충남 공주시 유구면 입석리의 보리실(茅谷) ·보리실; 강원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의 보리실(麥谷) ·보리미; 경기 평택군 현덕면 권관리의 보리미(麥山) ·보리섬; 전남 목포시 눌도동의 보리섬(麥島) ·보리고개; 경북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의 보리고개(버리고개.麥峴) '벌'이 '불'로 옮겨간 경우도 있다. ·불고개; 경남 거창읍군 거창읍 정장리의 불고개(화현) ·불목; 전남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佛目里)
파) 달골-다릿골
'달'은 원래 '땅'이라는 뜻의 우리말로, 이 말은 '들'로 변하기도 하고, 연철되어 '다리'로 되기도 했다.. 이렇게 되어 '넓은 들'이란 '너덜'이 '너더리'가 되어 앞에서의 경우처럼 '판교(板橋)'라는 한자식 이름으로 되기도 했는데, 실제 전국의 땅이름들 중 '다리'와 관련된 듯한 '교(橋)'자가 들어간 땅이름들 중에는 '들'의 뜻에서 출발한 것이 무척 많다. ·삽다리;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삽교리(揷橋里) ·다리실; 강원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橋谷里) ·다리실; 충남 당진군 석문리 교로리(橋路里)
하) 잣골
지금의 말에서 '고개'라는 뜻의 '재'는 원래 '산'의 뜻을 가졌던 '잣'이 그 바탕이었다. 잣>잣+이>잣이>자이>재 전국에는 '잣골'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무척 많은데, 한자의 '백(栢)'자로 취해지면서 '잣나무가 많은 마을'로 인식케 하고 있다. 또, '산 마을'이라는 뜻의 '자골', '잣골'이 한자의 '척(尺)'자를 취한 이름이 된 것도 많아 원래의 뜻이 희석된 것도 많다. ·잣골(栢子);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栢子里) ·잣밭골(栢田); 경북 상주시 외서면 백전리(栢田里) ·잣고개(栢峴); 경기 성남시 중원구 백현동(栢峴洞) ·자골(尺洞); 경북 상주시 함창면 척동리(尺洞里) ·자머리(尺旨); 경남 산청군 산청읍 척지리(尺旨里)
6. 땅이름 유래집 만들 때의 유의 사항
군지(郡誌)나 시지(市誌) 또는 읍·면지(邑面誌)를 만들 때, 또는 향토사를 낼 때에 거의 빼 놓지 않고 실리는 것이 땅이름이다. 이 때 땅이름 유래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유의할 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가) 알기 쉬운 어투로 서술한다. 너무 어렵게 서술하면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주므로, 땅이름 유래는 되도록 쉬운 어투를 쓰는 것이 좋다.
㉠ 산정(山頂)에서부터 연결된 지세가 말의 형상이어서 '말뫼'라고 명명(命名)되었다가 '말미'로 변음(變音)되고, 이것이 한자로 의역(意譯)되어 '두미(斗尾)' 또는 '두산(斗山)'으로 정착되었다. ㉡ 산꼭대기에서부터 이어져 내린 등성이가 말의 모양을 닮아 '말뫼'로 되었다가 '말미'라는 이름으로 옮겨가고, 이것이 한자로 뜻옮김되면서 '두미(斗尾)' 또는 '두산(斗山)'이란 이름으로도 옮겨갔다. 위에서 ㉠보다는 ㉡이 훨씬 이해하기가 쉽게 서술된 것이다.
나) 두 가지 이상의 설이 있을 땐 함께 취급함이 좋다. 한 가지 땅이름을 두고도 여러 가지 설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그 두 가지 이상의 설을 다 취급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 경우, 어원적인 설을 반드시 빼 놓지 않도록 한다. ㉠ 땅의 모양이 노루의 목을 닮아 '노루목' 또는 '장항(獐項)'이라 한다. ㉡ 옛날부터 이 곳이 노루가 다니는 길목이므로 '노루목' 또는 '장항(獐項)'이라 한다. ㉢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내린 목(지점)이므로 '너르목' 또는 '누르목'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노루목'이 되어 뜻옮김된 한자식 이름의 '장항(獐項)'이 되었다. 너르+목(지점)>너르목>노루목>노루(獐)+목(項)>장항(獐項) 위에서, ㉢이 어원적으로 밝힌 땅이름 유래이다.
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땅이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거나 견강부회(牽强附會)하지 말아야 한다. '금곡(金谷)'이라 하면서 금이 나온 골짜기라거나 '판교(板橋)'라고 하면서 널로 된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 식의 해석은 잘못일 수 있다. 앞에서의 예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금곡(金谷)'은 '사이의 마을'이라는 뜻의 '샛골'이 '쇳골'로 변했다가 한자로 뜻옮김된 경우가 많으며, '판교(板橋)'는 '너른 들'이라는 뜻의 '너덜(너들)'이 한자로 뜻옮김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 시각적 자료를 많이 넣는다. 사진, 지도, 도표 등의 시각적인 자료를 많이 넣는 것이 좋다. 특히, 옛날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이나 지도를 곁들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위치를 설명할 때는 '새터 마을의 북동쪽' 식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지도로써 그 위치를 알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 중요한 자료가 되는 사항은 출전을 밝힌다. 옛 자료나 어느 누구의 견해를 옮긴 경우는 반드시 그 출전을 밝히도록 한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실롤 지리지> 같은 고전을 이용했을 때는 그 원문을 함께 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 종류별로 나누어 싣는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땅이름을 마을, 산, 하천 등으로 종류별로 나누어 싣는 것도 바람직하다. 필자가 맡아 집필한 <과천 향토사>(과천문화원. 93.12.16) '지명 유래' 부분에선 땅이름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서술하였다.
\·제1절 과천의 옛 지명 동사힐(冬斯 ), 율목(栗木), 율진(栗津), 과주(果州, 菓州), 과천(果川), 금과(衿果) 등
·제2절 과천 지명의 개요 1. 개요 2, 과천 지명의 특색 3. 옛 영역(삼국시대-퉁일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일제 강점기-광복 후) 4. 과천의 법정동(갈현, 문원, 관문, 과천, 막계, 별양, 부림, 원문, 주암, 중앙동 등) 5. 과천의 자연 마을(옛 갈현리 일대, 옛 문원리 일대, ---식으로 서술) 6. 과천의 산(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삼성산, 응봉, 망경대, 옥녀봉 등) 7. 과천의 하천(양재천, 홍촌천, 매봉골내, 관문천, 사기막골내, 항골내, 배랭이내 등) 8. 과천의 들(쟁천들, 상화벌들, 구리안앞들, 피물들, 한들, 배랭이들, 부림들, 상하벌, 소앞들 등) 9. 과천의 골짜기(관악산의 골짜기들, 청계산의 골짜기들, 우면산의 골짜기들로 나누어 서술) 10. 과천의 고개(남태령, 가루개, 능어리, 매봉산고개, 배랭이고개, 모탯고개, 좂살고개, 무네미 등) 11. 과천의 바위(칼바위, 용마바위, 연주대, 마당바위, 금관바위, 개구멍바위, 뾰족바위, 범바위 등) 12. 기타 (절, 암자, 벼랑, 누각, 향교, 길, 저수지, 공원, 폭포, 우물, 벌, 다리 등)
사) '주(註)'를 너무 많이 넣지 않는다.
그 해당 쪽 옆이나 아래 또는 항목 설명 뒤에 '주(註)'의 난을 따로 두어 설명해 놓는 것은 내용의 이해를 크게 돕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경우에 따라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안겨 줄 수가 있으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본문의 설명에서 다루도록 하고, 특별한 경우에 한해 '주'를 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 색인(찾아보기)을 넣는다. 땅이름 설명에서 빼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찾아보기(색인-INDEX)를 넣는 일이다. 대개의 경우, 향토사 자료를 이용하는 이들은 소설과 같이 차례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필요한 자료를 찾아 보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찾아보기를 이용하도록 하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찾아보기 난의 낱말(땅이름) 배열은 가나다순 원칙으로 하되, 그 내용의 성격에 따라 지역적 또는 항목 분류 형태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찾아보기 난에 넣어야 할 낱말이나 땅이름은 잘 선별해 넣어야 한다. 무조건 그 낱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찾아보기 난에 이를 넣는 것은 자료 이용자에게 도리어 큰 불편을 준다.
"관악산이 남성적이라면 청계산은 여성적이다. 과천시의 시가지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에 정답게 자리잡고 있는 두 산은 가운데 양재천 물줄기를 품에 안고 과천 땅의 큰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과천시의 중심에서 남동쪽으로 5㎞, 안양시에서 북동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있는 청계산(淸溪山)은 그 큰 덩치를 남북으로 길게 깔면서 북쪽으로는 서울특별시, 서쪽으로 과천시와 의왕시, 동쪽으로는 성남시와 접해 있다.---" 이 경우, 찾아보기 난에 넣을 수 있는 중요 항목은 오로지 '청계산'뿐이다. 더 넣고자 하면 여기에 '관악산' 하나가 더 추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설명에 나온 '과천시', '양재천', '안양시', '서을특별시', '의왕시', '성남시' 등은 찾아보기 항목에 넣을 필요가 없다.
아) 씨디(CD)롬도 제작한다. 정보 사회의 급격한 변화·발전에 따라 앞으로는 영상 자료를 많이 이용하는 시대로 올겨갈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향토사 서적 자료와 함께 문자·음성·영상을 함께 담은 씨디롬을 따로 제작해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 때, 향토사와 씨디롬은 상호 보완 자료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 씨디롬 제작에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는 문제점이 있다.
7. 닫는 말
이상으로 땅이름 조사를 할 때의 유의 사항과 이를 자료로 남길 때의 참고할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조사 방법이나 기술(記述) 방법, 자료 기록 방법 등은 그 내용이나 목적 또는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무형의 문화 유산인 이 땅의 땅이름. 이를 지켜 가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값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노력과 열정이 따라야 하고, 아울러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