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목사 제도를 통과시킨 네덜란드 해방파 개혁교회
Gereformeerde Kerken vrijgemaakt의 2011년 보고서의 성경관
네덜란드 해방파 개혁교회의 2011년 보고서의 논지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안은, ‘성경관’과 ‘계시’에 대한 이해라 할 것이다. 즉 성경을 그 자체로서 영속적인 표준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고 해석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의 문제가 기본적인 전제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다
전통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관점에 있어서, 개혁주의 신학에서의 성경관은 기본적으로 ‘계시’revelation의 측면은 독자가 아니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전제한다. 이 점에 있어서 바빙크는, 그의 개혁교의학 1권 9장에서 “종교의 본질과 기원에 대한 연구 자체는 계시에 도달하고, 종교 역사는 계시 개념이 단지 기독교와 성경에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필수적으로 상관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vol I, 박철현 역,『개혁교의학 I』393쪽-고 하면서도, 동시에 “신구약 성경의 종교는 이 모든 종교적 현상들과 그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절대 거부한다.”-446쪽-고 했다. 그리고 더욱 “성경에서 종교적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면서, “이방 종교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다(행 17:27).……하지만 성경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다.……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자비와 은혜로, 공의와 사랑으로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을 찾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현현, 예언, 기적은 또한 여기서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자신을 주는 방편들이다.”-447쪽- 라고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성경계시의 입장을 언급한다. 비록 그 계시가 인간의 이해와 그 한계에 충분히 맞춰서 ‘적응’accommodation하여 제시된 것일지라도, 성경을 계시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계시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읽히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현대 네덜란드의 해방파 개혁교회 보고서, 성경을 ‘독자의 관점’에서 이해
반면에 현대 네덜란드의 해방파 개혁교회 보고서에서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계시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읽기’와 ‘이해’의 관점, 즉 ‘독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시로서 성경을 기록토록 하셨을지라도, 항상 중요하게 전제되는 것이 바로 계시의 수납자의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기록으로서의 성경, 그리고 그러한 성경을 본문text으로서 읽는 독자들의 이해와 해석의 문제에 착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덜란드 해방파 개혁교회의 2011년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바울은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지 않았으며(예를 들자면 고전 7:12 및 40에서 그는 종종 그렇게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글을 썼다(고전 14:36-37). 하지만 우리의 상황과 바울의 상황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섯 가지의 측면”들을 언급한다.
그것은
첫째로, “남자와 여자의 행동에 관한 디모데전서 2장에서의 바울의 처방prescription은 남성-여성male-female의 관계의 틀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범주가 처음에는 별개로, 그리고 다음으로는 상호 관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그의 상황에서 남성에 대해 여성이 다스리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반면, 우리 문화에서는 남성에 의해 여성이 다스려지는 것에 대해 경고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둘째로, “바울의 처방은 교회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가 교회에서 추구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선도적인 도덕 철학자들이 변호했던 것과 실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회에서 여자가 잠잠해야 한다는 규정은(로마에서 들어오는 자유주의적 여성운동과는 달리) 그의 시대에 일관되게 용인되고 지배적이었던 사회적 상황과 일치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 명령은 받아들여진 사회적 상황과 반대된다.”고 언급한다.
셋째로, “신약시대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의 크게 다른 점은 그 때의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생각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개인주의에 훨씬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의 범위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에,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더욱 강력하게 [참여하여] 살았다. 오늘날 우리들은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훨씬 더 쉽게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이미 확립된 도덕적 전통에 의해 이끌릴 가능성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넷째로, “신약시대 안에서의 지중해 문화(그리고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명예와 불명예의 양극단에 의해 각인되었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평등equality이 우선이다(갈 3:28절 비교). 그러므로 특별히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난잡하게’ 태도manner를 보이는 사람은 전체 공동체에 불명예를 안겨준다. 이는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도 진실로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섯째로, “교회와 국가가 분리된 이후로, 교회는 공적인 영역에서 곁으로 밀려났다. 주후 1세기 가운데서의 바울의 처방들은 여전히 비기독교적인 환경과도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와 같은 처방으로 우리는 불필요하게 복음 선포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만들거나 강화한다.”는 것인데, 이처럼 네덜란드 해방파 보고서는 성경을 계시로서의 본문[즉 ‘Canon’]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문구[즉 ‘Text’]로서 전제한다. 그리고 이는 마치 칼 바르트Karl Barth의 성경관과 아주 유사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성경비평Biblical criticism에서 중요한 것, ‘실제 배경’life-setting
결국 네덜란드 해방파 개혁교회의 2011년 보고서는 다분히 성경비평Biblical criticism적이다. 즉, 본문의 용어와 구성, 그리고 전거reference, 연대, 저자 등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문학적 기법들을 통해 성경을 다루며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전승tradition 및 양식form 비평의 방법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고 보는데, 그것을 표면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을지라도 원리적으로 그러한 비평적 방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첨부된 삽화(원래는 다이어그램a diagram이다)에서 그 개념이 표명되는바, 1차 독자와 2차 독자로 구별하여 설명되는 가운데서 1차 독자에 해당하는 시선이 바로 자료에 언급된 역사에 대한 비평적 연구의 방법이 가지는 성격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즉 1차 독자는 계시를 수납하는 자로서의 성경 저자이기보다는, 그 성경 저자의 자료를 전달하는 자, 혹은 계시의 자료를 전달하는 자인 것이다. 심지어 이해하려는 대상이 1차 독자가 아니라 본문 자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전승비평에서 중요시 되는 ‘실제 배경’life-setting인 것이다. ‘실제 배경’이란, 성경비평에서 쓰는 ‘삶의 정황’Sitz im Leben에 해당하는 용어로서, 독일의 구약학자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에게서 시작된 개념의 용어이며,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성경 구절이 기록되었는지가 본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결정적이라는 개념이다.
이 보고서가 1차 독자와 2차 독자의 구별을 통해서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인간에게 있다. 대표적으로 바울 사도라 할지라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의 사도직분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면이다. 비록 “바울은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지 않았으며(예를 들자면 고전 7:12 및 40에서 그는 종종 그렇게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글을 썼다(고전 14:36-37).”고 할지라도, “우리의 상황과 바울의 상황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는 다섯 가지 측면들은, 공히 바울의 인간적인 측면(바울 당시의 시대와 문화)을 다룬다. 그러므로 이러한 설명들 가운데서 보고서가 다루는 ‘여성 사역자’의 문제는 다분히 수용적이고 융통성 있게 고려될 여지가 있다.
개혁주의 성경관, 성경 외에 부수적이고 부가적인 정황들 고려하지 않아
반면에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하는 성경관은 이미 1561년 벨기에 신앙고백 제3조에서부터 명료하게 이르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사람의 뜻을 따라 보내졌거나 전달된 것이 아니고, 사도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서 말씀하셨다고 고백한다.”고 했다. 특별히 제7조에서 “성경에 있는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우리는 관례나 많은 대중이나, 고전, 시대나 인물들의 전승, 공의회들, 법령들, 혹은 법규 등을 하나님의 진리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며, 공허 그 자체보다도 더 공허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성경 본문(Text가 아니라 Canon인) 외에 그 어떤 부수적이고 부가적인 정황들도 고려하지 않는 단호한 성경관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성경관은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의 주제인 “성경”에 관한 조항들 가운데 9조에서도 분명하게 언급하는바 “성경 해석의 무오한 법칙”이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적이거나 확대되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고도 분명하다. 즉 “어떤 성경 구절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에 문제가 있을 때(참되고 완전한 의미는 여럿이 아니고 하나뿐임)에는, 그 구절을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다른 구절들에 의해 자세히 살펴서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런즉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성경관은,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신적권위를 지닌 성경 본문 외에 다른 것(독자의 상황을 포함하여)에 근거하지 않는 해석을 견지한다.
사실 1561년 벨기에 신앙고백과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그리고 2011년 네덜란드 해방파 개혁교회의 보고서 사이에는 성경을 바라보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 즉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을 인정하고 성경본문 자체에 근거하여 본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내적인 관점과, 인간 저자와 독자, 그리고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외적인 관점 사이의 구분이 있는 것이다.
물론 2011년의 관점에서는 벨기에 신앙고백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모두 시대적 산물로서 인정되겠지만, 오히려 1561년 벨기에 신앙고백의 성경관과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관이 약 한 세기에 걸쳐서 다르지 않게 잘 고수되고 유지되어 왔던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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