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기도는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여야 합니다.
사무엘의 이야기는 그의 어머니 한나의 눈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한 시대를 바꾸는 도구가 되는 과정을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보게 됩니다. 한나는 단순히 자식을 얻기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맡기는 믿음을 드렸습니다. 그 헌신의 기도는 사무엘이라는 한 생명을 통해 응답되었고, 그 생명은 다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한 세대의 눈물과 기도가 다음 세대의 순종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역사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흐릅니다.
어린 사무엘의 신앙은 특별한 사건 이전에 이미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자라며, 제사장 엘리 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배웠습니다. 그의 일상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그는 그 음성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세 번이나 엘리에게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무지함이 아니라 순수함의 표현입니다. 결국 그는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가장 바른 자세를 보여주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 속에 묻혀 살아갑니다. 정보와 생각과 감정의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은 점점 희미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산다는 것은 다시 듣는 존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귀를 여는 삶입니다. 신앙은 무엇을 더 아는 데 있지 않고, 누구의 음성을 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듣는 자만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 사무엘의 삶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듣겠습니다.” 이 고백은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시작되었지만, 평생을 이끄는 신앙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그 고백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부르심 앞에 어떤 태도로 서느냐하는 것 입니다. 어린 사무엘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다만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장 순수한 만남을 보여주는 깊은 영적 순간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린 시절을 미숙함의 시기로 여기지만, 성경은 오히려 그 시기를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증언합니다. 어린 사무엘의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믿음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지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상태에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