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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한라산과 제주 올레길
2010. 2. 20. 제가 회원으로 몸담고 있는 EBM 포럼이 서귀포시 효돈동 바르게살기위원회와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자매결연식을 위해 제주도로 날아가는 것, 이왕이면 행사 전후로 등산이나 관광도 하고 올레길도 걷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여 회원들은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 모여 제주항공의 비행기를 탑니다. '저가 항공', '저가 항공'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타보기는 처음입니다. 제주항공은 제주의 상징을 색으로 나타내려고 하였는지 비행기의 동체를 오렌지색으로 칠하였습니다. 제주 밀감의 색을 나타내는 것이겠지요. 7:25경 이윽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그런데 활주로를 너무 열심히 박찼나? 잠시 기내에 타는 냄새가 살짝 나다가 사라지는데, 기장이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해결되었다며 사과방송을 하는군요.
8:20경 제주비행장 도착.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공항을 나온 회원들은 먼저 식당으로 직행하여 제주의 미각 성게미역국으로 맛있는 아침을 하고는, 등산팀과 골프팀, 관광팀으로 나뉘어 출발합니다. 이제 등산팀을 태운 버스는 어리목을 향하여 한라산을 오릅니다. 오늘은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를 막 하루 넘긴 2. 20. 그런데 우수 다음날에 멋진 하얀 눈꽃 세상을 거닐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제주공항을 나설 때만 하여도 제주에는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봄의 전령이 여기저기서 살짝 살짝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가 어리목으로 올라가는 동안 봄의 전령은 아직은 우리를 따라 올라오지 못합니다. 그러더니 어느덧 주위의 풀자락에는 눈가루가 반짝이더니 어리목 등산로 입구에서 차를 내리니 주위는 두터운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서울에서 모처럼 우리가 내려온다고 전날 밤 하나님께서는 올겨울의 마지막 눈 선물을 보내주셨나봅니다.
차에서 내린 이비엠(EBM) 포럼 회원들은 종아리에 각반을 두르고 아이젠을 착용하는 등 눈꽃 산행 준비에 바쁩니다. 저는 장비 착용도 착용이지만 그보다는 몸을 특히 다리 근육을 푸는데 집중합니다. 사실 이번 산행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난 1. 16. 태백산 산행에 나섰다가 왼쪽 장딴지 근육 일부가 파열된 이후 처음으로 산행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당시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뛰다가 아이젠을 착용한 발이 지면에서 잘 떨어지지 않으면서 장딴지 근육 일부가 파열된 것이죠. 오늘의 산행을 위해 장딴지에 테이핑을 하고 종아리 보호대까지 착용했지만 저는 양손에 지팡이를 잡고 조심조심 발길을 떼어놓습니다.
11시경 어리목 등산로로 들어섭니다. 등산로 입구에는 한라산이 2007. 6. 27.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있습니다. 표지판에는 남벽 분기점부터 한라산 정상까지는 자연자원을 보호하고 훼손된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 고시가 있을 때까지 출입을 금지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욕심대로라면 정상을 밟아야 할 것이나, 세계자연유산을 길이 보존하기 위해서는 출입금지 조치에 따라야하겠지요.
등산로 양옆에서는 지난 여름 녹색의 넓은 잎을 흔들며 등산객을 맞이하였을 활엽수들이 지금은 녹색 옷 대신에 하얀 눈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보고 어서 오라 합니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하얀 눈세상으로 들어갑니다. 어리목 계곡을 흘러내리는 광령천을 건너 사제비동산을 향하여 오르막을 오릅니다. 오르는 길가에서는 아직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는 산죽(山竹)이 숲속을 포근히 덮은 하얀 눈이불 위로 고고하게 솟아올라 말없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고, 어느 나무의 하얀 가지 위에서는 까마귀 한 마리가 고개를 외로 꼬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사이에서는 키 작은 침엽수들이 온몸에 잔뜩 눈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밤 갑자기 자기들 몸 위로 내려붙은 눈친구가 힘에 겨운지 우리를 향하여 몸을 수그리면서 겸사겸사 우리에게 인사도 해주고 있네요. 후후! 겨울에 푸른 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는 것이 이럴 땐 고역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미 어리목 등산로에는 올겨울 마지막 눈꽃산행이 될지도 모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산님(등산객)들이 오고갑니다. 내려오는 산님들을 피하기 위해 다져진 등산로를 벗어나니 길옆의 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발목을 잡아당깁니다. 각반을 차지 않았다면 벌써 눈들은 내 신발 속까지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다들 이 설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자꾸 발길이 더뎌지는데, 특히 이동찬 교수는 입으로만 감탄사를 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첩을 꺼내어 그 느낌을 수첩에 잡아두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사조의 시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한창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죠. 또 한쪽에서는 이런 설경을 그냥 시간의 흐름 속에 흘려버릴 수 없다며 망원렌즈로 길게 카메라 코를 당긴 값나가는 카메라를 들쳐 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포인트를 찾아 예리한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습니다.
12:08경 숲속을 벗어나니 오른쪽으로는 야트막한 오름(기생화산) 사제비동산입니다. 그래도 오름인데 자기한테 '동산'으로 이름 붙였다고 사제비 오름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사제비'는 '새잽이'에서 유래한 말로 '새 매'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하네요. 길은 윗세오름을 향하여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고, 나무들은 듬성듬성 흩어져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길옆으로는 규칙적으로 빨간 깃발이 흔들흔들 하고 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 길의 경계까지 없애버릴 때 사람들로 하여금 이 깃발을 따라 오가라는 것이겠지요. 내 왼편으로는 출발할 때부터 우리를 따라오던 모노레일이 아직도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습니다. 이 모노레일을 통하여 윗세오름 대피소로 물품들이 오가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모노레일은 군데군데 눈에 묻혀 지금은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한라산 산록이 부드럽게 내려가는 가운데 붉은오름, 쳇망오름 등 여기 저기서 오름들이 살짝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한라산은 저렇게 평화스럽게 그 산자락을 넓게 펼치고 있지만, 불과 60여 년 전에는 좌,우익의 핏발 선 다툼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평화의 산자락을 붉게 물들였죠? 4.3 사태, 그 증오의 다툼에서 얼마나 또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렸을까요? 지금도 저 어느 기슭에서는 아직도 찾아주기를 바라는 시신들이 누워있지 않을까요?
사제비동산을 뒤로 하니 이제 또 바로 오른쪽으로 만세동산입니다. 만세동산까지 오면 드디어 백록담 화구벽이 보이기 시작하니 누가 만세를 불렀나? 이제 백록담을 둘러싸고 있는 화구벽이 바로 앞에서 보이니 저도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부상당한 다리도 다시금 힘을 냅니다. 여기서 보니 백록담 화구벽은 방패 모양으로 부드럽게 솟아오른 순상화산(盾狀火山) 위에 누군가가 손으로 흙을 꼼지락꼼지락 만져 사발을 빚어 엎어놓은 것 같습니다. 한라산의 형성이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죠. 처음의 대폭발 때에는 점성이 낮은 현무암 계열의 용암이 흘러내려 완만한 산세를 만들고, 나중에 또 다른 폭발에서는 점성이 높은 유문암 계열의 용암이 흘러내리는데 그 끈적끈적한 점성에 많이 흘러내리지 못하고 저처럼 사발 모양으로 얹혀있는 것이죠. 한라산은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고 하여 은하수를 뜻하는 '漢'에 붙잡을 '拏'를 써서 한라산(漢拏山)이라고 한다는데, 저렇게 정상이 사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둥그스름하니 원산(圓山)이라기도 하고, 정상이라고 할 만한 머리가 없다고 하여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한다네요.
전설에는 제주도를 이렇게 만든 이가 그 거대한 몸짓의 설문대 할망이라고 합니다. 설문대 할망이 치마로 육지에서 흙을 실어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이렇게 치마로 흙을 나를 때 여기저기 떨어진 흙덩어리들이 360여개의 오름이 되었다지요. 이 할망이 얼마나 큰지 한라산을 베게 삼고 누우면 한쪽 다리는 남쪽 지귀도에, 또 한쪽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북쪽 관탈섬에까지 걸쳐졌다고 하고요, 오줌발이 얼마나 센지 오줌발에 땅이 패여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생긴 섬이 우도라고 하네요. 하하! 허~참~~ 지리산이나 우리나라 해안지방에도 마고할미라고 하여 거녀(巨女) 설화가 많이 전승되어 내려오는데, 우리나라가 남성 중심 사회로 넘어오기 전의 모계사회의 신화가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요?
1:17경에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백록담까지는 올라가지 못해도 남벽 밑에까지는 갈 수 있는데, 그것도 1시 넘으면 통제를 합니다.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1시 전까지 올 수 있었을 텐데... 먼저 도착한 일행들에게 미안하군요. 대피소에는 뜨뜻한 라면 국물에 점심을 먹기 위하여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만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까마귀들이 눈밭에 몰려와 이제나 저제나 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먹을 것을 주면 얼른 먹이 앞으로 달려듭니다. 설악산에 갔을 때에는 다람쥐들이, 청계산에서는 곤줄박이가 도봉산에서는 멧새들이 먹이를 줄까 하며 주위에서 얼쩡거리던데, 한라산에서는 까마귀들이 찾아오네요. 하~ 그놈들... 이렇게 손쉽게 먹이 구하는 장소가 있으니, 다른 데서 고생하며 먹이를 구하려 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 애네들도 자기 구역이 있어 딴 놈들이 이곳에 얼쩡거리면 쫒아내는 것은 아닌가요?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잠시 쉴 때 먹이를 줄 듯 하면서 안주고 손에 쥐고만 있으니 어떤 용감한 다람쥐는 먹이 갖고 장난 치냐며 먹이를 채가데요. 청계산에서도 땅콩을 손바닥에 올려놓거나 심지어는 입에 물고 고개를 들고 있으면 곤줄박이가 내려와 땅콩을 채가고요.
1:56경 윗세오름 대피소를 떠나 영실로 내려갑니다. 노루샘을 지나는데 안개가 살짝살짝 몰려오고, 영실에서 올라오는 산님들은 안개 속에서 다가옵니다. 길옆의 안내판은 지금 지나고 있는 이곳이 봄이면 산철쭉과 털진달래로 붉은 바다를 연출하는 산상정원 선작지왓이라고 합니다. 선작지왓은 서 있는 돌(작지)밭(왓)이라는데, 이쯤 되면 제주도 사투리는 완전 이국적인 말이 되네요. 이 하얀 바다도 이제 봄이 오면 붉은 바다로 변신할 텐데, 저 눈 밑에서는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산철쭉과 털진달래가 겨울잠을 자고 있겠지요? 조금 더 나아가니 안내판이 저에게 '시로미를 아시나요?'라고 물어보네요. 이곳에 또 한반도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에서만 자라고 있는 시로미라는 키 작은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시로미는 불로초로도 알려져 있답니다.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제주에 온 서복 일행이 불로초를 찾다가 이 시로미를 갖고 돌아갔다나요. 그런데 안내판 뒤로 눈 위로 살짝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은 시로미가 아니라 조릿대입니다. 조릿대가 시로미 군락지까지 침투해 들어왔다고 걱정들을 많이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선작지왓을 지나 내리막 구상나무 숲속길로 들어섭니다. 어리목에서 올라오는 숲속의 나무들에는 하얀 눈이 부드럽고 푹신푹신하게 얹혀 있었는데, 이곳 구상나무들에는 잔가지마다 눈이 촘촘하게 달라붙어 있는 게, 순간적으로 얼음과자 생각이 나 제 손가락이 움찔합니다. 병풍바위 위로 내려오니 앞으로는 다시 바로 앞의 볼레오름을 비롯한 오름들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수직으로 내려선 병풍바위 건너편으로 탑궤에서부터 내려오는 능선으로 영실기암의 오백나한(오백장군)들이 보입니다. 밑으로 내려오면서 병풍바위를 올려다보니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위쪽으로는 안개가 감싸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한여름이면 구름이 몰려와 병풍바위에 몸을 씻고 간다고 되어 있네요. 이 안내문을 쓰신 분은 시적 감각이 있으시군요.
오백나한은 설문대 할망의 자식들이 죽어서 바위가 된 것이라고 하지요? 설문대 할망이 사냥 나간 자식들이 돌아오면 먹이기 위해 커다란 솥에 죽을 끓이는데, 500명의 자식들에게 먹이려니 솥이 엄청 커야했겠죠. 그래서 솥 위에 올라가서 국자로 죽을 젓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죽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네요. 사냥에서 돌아온 자식들은 배고픔에 허겁지겁 죽을 먹다가 솥바닥에서 뼈다귀를 보고는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은 걸 알게 되고요. 지 어미의 몸이 녹아든 죽을 먹은 아들들은 통곡을 하다 죽어 이곳 오백나한이 되었다는 것이죠. 다만 막내아들만이 부끄러움에 달려 내려가 차귀도의 장군바위가 되고요. 막내아들은 어머니 오시면 먹는다고 끝까지 기다렸다고도 하네요. 해마다 봄이 오면 피는 한라산 철쭉의 붉은 꽃들은 이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꽃을 물들인 것이라고 하고요. 설화가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또한 부계사회로 이행된 후 억압받는 여성상이 설화로 내려오는 것 아닐까요?
하여튼 이런 전설이 있기에 이곳에는 영의 기운이 감돈다고 영실(靈室)이라고 한 것인가요? 이런 영적인 기운이 감도는 곳이고, 또 이곳 바위들을 오백나한이라는 불교용어를 쓸 정도이면 이곳에 절도 있을 법하겠지요? 볼레오름 밑에 2,500년 전에 세워졌다는 존자암(尊者庵)이 있습니다. 고려대장경 법주기에 석가모니의 열반 직후 16존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불법을 전했다는데, 그 중 6존자인 발타라 존자가 정착한 곳이 탐몰라주라고 하는데, 이 탐몰라주가 탐라 즉 제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자암의 '尊者'는 발타라 존자를 말하겠네요. 주장대로라면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북방불교를 받아들이기 훨씬 이전으로 한국 최초의 사찰이 되겠지요. 아무래도 불교가 바닷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제주도에 먼저 상륙하겠지요. 그래서 이런 존자암을 그대로 폐허로 방치할 수 없다하여 2002년 존자암을 복원하였답니다.
오백나한들이 슬픔에 몸이 굳어버린 건너편 능선 아래쪽으로는 병풍바위를 만들다만듯한 바위절벽들이 있는데, 시커먼 절벽 면 위에는 우유가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듯이 몇가닥의 하얀 자국들이 있습니다. 비폭포(Rain Waterfall)라는데 평소에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가만히 있다가 비만 오면 폭포가 된다고 하여 비폭포라고 한다네요. 지금은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우윳빛 색채를 발고고 있는데, 어떤 놈은 다 흘러내리기 전에 얼어붙었는지 우윳빛 줄기가 절벽 중간에서 멈춰버렸군요.
3:32경 드디어 영실휴게소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눈 때문에 통제를 하는지 우리의 고단한 몸을 실을 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가 기다리는 곳까지는 도로를 따라 한참 내려가야 합니다. 도로는 눈을 치운다고 치웠지만 그래도 아직은 도로는 자기의 본래의 색을 드러내기보다는 하얀 색을 없애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밑에서 용감하게 속도를 내며 올라오던 승합차 한 대가 오르막 커브길에서 90도로 빙그르 돌다가 가까스로 멈춥니다. 이크! 우리 앞에 와서 미끄러졌다간 우리가 몸으로 막을 뻔했네.
4:20경 영실샘에서 영적 기운이 감도는 샘물을 들이키고 나니 눈앞에는 우리를 데려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버스로 올라서니 이미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회원들은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우리를 환영하며 저한테는 다리 괜찮냐며 걱정해줍니다. 다시 한 번 다리를 점검해보았습니다. 비록 왼다리가 묵직하긴 하지만 큰 이상은 없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리목을 오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연 등산을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로 고민했는데, 이렇게 용감하게 도전하니 영실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제 다리를 보호해주었나봅니다.
6시 집결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기에 우리는 등산으로 쌓인 피로를 온천물에 풀기위하여 산방산 탄산온천으로 향합니다. 탄산온천이라 냉탕에 들어가니 피부에 사이다 방울이 달라붙듯 물방울들이 오밀조밀 달라붙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온천물에 몸을 담근 등산팀이 제일 뽀송뽀송하네요. 행사장엔 효돈동 주민들도 참석하였는데, 효돈동 주민들이 특식으로 마련해준 돼지고기는 일품이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숙소인 피닉스 아일랜드에서 방을 배정받으며 오늘의 행사를 마감합니다. 이제 내일의 올레길이 기다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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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에 오르는 것 만으로도 힘들어 컥컥----------사진 찍을 여유-----언제쯤 생길지-------아마 영영 아니생길수도------
부럽습니다. 소생도 한 20여년 전에만 해도 겨울 산행을 했던 기억이 되 살아 나는군요! 암튼, 축하 드립니다.20일에 뵙지요. 여 해 룡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