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년대🌺 |
✿1599년 7월6일 권율장군 사망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장군이 1599년 7월 6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62세였다. 장군은 1537년(중종 32년) 영의정 권철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45세인 1582년 식년 문과에 응시하여 병과에 급제했다.
권율장군의 모습 권율장군의 동상
권율장군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아버지는 영의정 철(轍)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46세 때인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좌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鏡城判官)·의주목사 등을 두루 지냈다. 행주대첩 430년을 맞아 열린 행주대첩제에서 권율 장군의 표준영정이 공개됐다. ⓒ고양특례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서 전라도순찰사 이광(李洸), 방어사 곽영(郭嶸)과 함께 서울을 회복하기 위해 북진했다. 용인에서 일본군과 마주치자 권율은 우선 임진 나루를 확보할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되었고, 결국 일본군의 매복에 걸려 패전했다.
이후 광주에 되돌아갔다가 전라좌도도절제사로 임명되어 금산군 이치(梨峙)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정예부대를 크게 이기고 호남을 지켰다. 이 공으로 전라도순찰사로 승진했다. 이해 12월 병마절도사 선거이(宣居怡)를 부사령관으로 삼아 1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로 진격하다가 수원 독왕산성(禿旺山城)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었다. 행주대첩 상상도.
이 소식을 들은 왜장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대군을 보내 성을 공격했으나, 수비를 굳게 하면서 유격전술로 맞서 이를 격퇴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은 서울에 고립되었다. 1593년(선조 26) 2월에 선거이에게 5,000의 병력을 나눠주어 시흥 금주산(衿州山)에 진을 쳐 도성의 왜적을 견제하게 하고, 자신은 관군 2,300명과 처영(處英)의 승병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주둔했다. 이때 왜장 우키다가 지휘하는 3만의 적군이 7대로 나뉘어 맹렬히 공격했으나, 관민이 일체가 되어 싸워 적을 격퇴하고 크게 이겼다.
그뒤 파주산성으로 옮겨 주둔했다가, 명과 일본 사이에 강화회담이 진행되면서 휴전상태가 되자 전라도로 돌아갔다. 그해 6월 행주에서의 전공으로 도원수(都元帥)에 올랐으나, 도체찰사(都體察使) 및 순찰어사(巡察御使)와의 불화로 말미암아 도망병을 즉결처단한 일이 빌미가 되어 1596년 해직되었다. 그러나 바로 한성부판윤으로 기용되어 비변사당 상을 겸직하고, 충청도순찰사를 거쳐 다시 도원수가 되었다. |
|
| 🌱1900년대🌱 |
|
| 🌿09년 강화 전등사 장서각의 사책 경복궁으로 옮김 |
|
🌿33년 미국 프로야구 첫 올스타전 개막
1933년 7월 6일 시카고 코미스키 파크에서 미국 야구 팬들의 열전인 올스타전이 처음으로 개최됐다. |
|
🌿46년 미 · 소 공동위원회 무기 휴회 🌿48년 제2육군병원 대전에 설치 🌿51년 0시를 기하여 섬머 타임 실시 🌿52년 국회, 장택상 국무총리 인준 🌿52년 서울-부산 간 민간 전화 개통 🌿65년 신아일보 창간 |
|
🌿65년 화가 박수근 세상 떠남
1965년 7월6일...화가 박수근 세상 떠남
|
|
🌿71년 재즈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 사망
재즈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0년 7월 4일 ~ 1971년 7월 6일)이 심장마비로 1971년 7월 6일 사망했다.
암스트롱이 죽었을 때 미국 매스컴은 `문화의 한 시대가 끝났다`고 추도했다. 그는 재즈의 역사였다. 그는 트럼펫, 트럼본, 클라리넷의 대위적 선율을 주축으로 삼는 뉴올리언즈 재즈의 리듬과 아프리카의 블루 노트를 유럽의 음악유산으로 완성, 1930년 이후 태동한 스윙재즈의 빅 밴드스타일로 넘겨준 사람으로 재즈사에 기록되고 있다. 그는 무지막하게 커다란 입이라는 의미의 슬랭인 `사치모(Satchmo)`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즉흥연주의 대가로 초창기의 재즈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거목 루이 암스트롱은 `블루베리 힐`(1949) `맥 더 나이프`(1956), `헬로 돌리!` 등의 명곡을 남겼다. 훗날 재즈의 황제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재즈가 무엇이냐"고 묻자 루이 암스트롱은 "이봐, 뭘 알려고 드나, 영원히 모를 걸세"라고 대답했던 일화는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
|
🌿71년 진산파동, 신민당 유진산 당수, 전국구 1번으로 등록. 당내의 반발 유발 🌿73년 동화작가 강소천 세상 떠남 🌿77년 서울대, 여주군서 석기시대 농경기구 발견 🌿77년 세검정 중건 🌿80년 대학가시위, 학원문제에서 정치문제로 번지며 가두진출 🌿81년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82년 워커 주한 미국대사, 관훈클럽 초청 연설에서 한국내 반미감정은 보편적 움직임이 아니라고 지적 🌿84년 서울시 경찰국, 내한중인 교황에게 장난감총을 쏜 정신질환 증세 대학생 이준규를 검거 🌿85년 제17차 한ㆍ미연 안보협의회의 개막(∼8일, 워싱턴). 북한의 기습남침대처방안 마련코 공동성명 발표 🌿85년 서울 마포일대 14개 동(1만여가구)에서 대낮에 도시가스 동시폭발. 주택 13채 소실 🌿85년 호우로 변한 봄비, 영·호남을 강타. 사망 3명·이재민 250명 🌿86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민주화위한 시국성명서 발표 🌿87년 제9차 한,미안보회의 개막(워싱턴), 7일긴급 통신망설치.방위산업협력각서교환 등 13개항공동성명 🌿87년 조선대방화 폭행-불지르고 교수등에 각목세례 🌿87년 한양대 안산캠퍼스 학생 500여명, 지방캠퍼스 차별 항의 및 학내민주화 요구 방화 시위 🌿88년 서울시내 228개 택시회사, 임금인상안에 불만 2일간의 시한부파업에 들어가, 7일 타결 🌿88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 납치-관리이사 충성심 강해 저질러 🌿88년 한미 무역실무회담 타결 🌿89년 폴란드 유학 북한학생 동연준·김운학군 망명, 김포공항 도착 🌿89년 전대협, 비폭력 평화시위 선언. 경찰에 최루탄 사용, 강경진압 중지 요구 🌿90년 MBC 노조, KBS에 공권력이 투입된 데 항의, 시작한 제작거부 농성을 7일부터 조건부 정상화 결정. 🌿91년 정부, 방위소집 대상자 가운데 5년간 기능직 근로자로 일할 경우 병역의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키로. 🌿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6월.포르투갈)1차 평가전을 갖는 북측선수단 70명 판문점 거쳐 서울 도착. 🌿92년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려 고령 이산가족 교환 방문에 우선 합의. 🌿92년 민주당, 3.24총선거 선거비용 수입지출을 공개- 우리나라 선거 및 정당 史上 최초. 🌿92년 삼성전자,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4메가 S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 🌿94년 한국공보원(중국명 한국문화신문처), 중국 북경에 개관 🌿94년 유로 터널 개통-영국-파리 연결 49.9킬로미터 |
|
🌿95년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방한
김영삼 대통령이 방한한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을 맞아 사열하고 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의 초청으로 2박 3일간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하기 위해 1995년 7월 6일 오후 특별기편으로 공식 방한했다.
만델라대통령은 7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간 외교, 민주화투쟁 경험과 개혁,경제적 협력방안 등을 협의했다. 두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무대에서 계속 긴밀히 협조해 나가기로 하고,북한이 하루빨리 고립에서 벗어나 교류와 협력의 세계 조류에 합류해야 한다는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한편, 남아공이 오는 2004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도록 한국이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며,김대통령은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
|
🌿95년 경기 남양주시 오남출장소, 오남면으로 승격 🌿96년 북한, 나진ㆍ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두만강 유역 개발자금 마련 위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추진 🌿97년 유종하 외무장관, “북한은 연간 약5000t의 🌿 화학무기 생산능력과 현재 약5000t의 화학무기 보유 추정 🌿97년 대우중공업(주), 방청도장후 탱크 내부에서 폭발사고 발생, 사망1, 부상 9명. |
|
🌿98년 국산 중어뢰 ‘백상어’ 개발
국산 중어뢰 ‘백상어’.
1998년 7월 6일 잠수함에 탑재돼 적의 수상 함정이나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중어뢰 ‘백상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 가격은 1발당 9억5천여만원이다. 당시 실전배치돼 있는 일부 209형 잠수함은 1발당 22억원에 달하는 독일제 어뢰 ‘수트’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개발로 모두 2천여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백상어’는 ‘수트’가 잠수함에서 선으로 유도하는 유선 유도 방식인데 비해 적 함정의 소리를 스스로 추적해 공격하는 첨단 능동형 음향 호밍 어뢰이다. TNT 폭약 3백70kg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괴력도 갖고 있다.
1990년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 아래 lg정밀 등 13개 업체와 연구소 등이 참여해 개발에 착수했으며 국산화율이 94.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제원은 사정거리 30여km, 최고 속도 35노트(시속 65km),길이 6m,무게 1.1t,직경 19인치(4백83mm)이다. |
|
🌿98년 국무회의, `98년 규제개혁종합지침' 의결 🌿98년 행정자치부, 7월1일부터 정부의 모든 문서에 정책실명제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혀 |
|
| 🌺200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