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눈높이 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작
깡통 외 3편
심강우
나보고 깡통이래
축구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고
머리가 텅 비었다고
형은 나만 보면
깡통 깡통 하는 거야
학교에서 오다가
깡통을 봤어
길 한복판에
떡 버티고 있는 거야
냅다 걷어찼지
일주일 동안
발에 깁스를 하고 다녔어
깡통은 무조건 비어 있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지 뭐
나를 뭘로 채워야
형이 조심할까?
꽃이 피기까지
사전 속 낱말들이 심심해졌어요
한밤중에 몰래 빠져나와
아이들 꿈속으로 들어갔어요
글짓기 시간에 아이들이 낱말들을
끄집어내어 동시를 지었어요
공책에 갇힌 동시들이 심심해졌어요
새벽에 몰래 공책을 열고 나와
아이들 귓바퀴를 타고 들어갔어요
귓속 동시들이 심심해졌어요
귀를 씻기 전에 서둘러 아이들
머리로 들어가 악보가 되었어요
아이들이 심심할 때
귀에 익은 노래를 흥얼거려요
노래가 창문을 넘어가
가깝고 먼 꽃대를 흔들어요
자고 있던 꽃들이 깨어나요
울긋불긋 노랫말에 어울리는 색으로 피어나요
일등이 두 명
공원에서 만난 친구에게
할머니가 내 자랑을 한다
공부도 일등 그림도 일등 노래도 일등
할머니 친구가 벙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번엔 할머니 친구가 손자 자랑을 한다
공부도 일등 그림도 일등 노래도 일등
할머니 친구의 손자 이름은 민규, 나랑 한 반이다
그래서 우리 반에는 일등이 두 명이다
새들의 책
1
새들에겐 나무가 책인 거야
탐스럽게 핀 꽃은 제목이지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책이 주는 교훈 같은 거란다
숲은 그러니까 수많은 책이 꽂힌
책장인 셈이지
그러니 준기야,
조금 전에 너는
책 한 페이지를 찢은 거란다
저기,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목눈이 좀 보렴
찢겨 나간 내용을 생각하느라
벌레가 지나가도 모르잖니?
2
선생님 몰래 준기는 책이 꽂혀 있는 곳으로 간다
오목눈이가 마저 읽으라고 부러진 나뭇가지
조그만 돌로 눌러놓고 온다
심강우 시인
대구 출생
2013년 제15회 수주문학상 수상
2014년 월간문학 시부문 신인작품상 당선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17년 제25회 눈높이아동문학상 동시 당선
2017년 <어린이 동산> 중편동화 당선
2016년 동시집『쉿!』 2017년 시집『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