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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
오늘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아 나섰다. 현재 기온이 75°F다. 미국은 섭씨(°C)가 아닌 화씨(°F)만을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다소 혼란스럽다. 여전히 흐린 날씨지만 그래도 점점 날이 개면서 해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섭씨에 습관이 되면서 화씨로 표기되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귀찮아도 섭씨로 환산을 해보아야 겨우 알 수 있다. 지금 75°F는 섭씨 24°C쯤 된다. 또한 86°F는 30°C이고, 68°F는 20°C가 되는 셈이다. 화씨를 섭씨로 바꿔 계산해보려면 0°C가 32°F와 같으며 그 차이는 32이고 100°C는 212°F와 같아 그 차이는 180이 된다. 따라서 그 공식은 °C = (°F - 32) / 1.8로 계산하여야 한다. 수학문제 풀이시간과 같다.
염소섬(고토섬)을 사이에 두고 캐나다폭포와 미국폭포로 나뉜다. 나이아가라 강물이 이리 호에서 온타오리 호로 흘러가며 100여 미터 낮아져 생긴 폭포다. 나이아가라 강을 건너 입국수속을 하고 캐나다에 입국했다. 새벽같이 대전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을 달려 인천공항에 갔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의 무례한 횡포를 꾹꾹 누르면서 열다섯 시간 동안 비좁은 비행기에 갇혀 여행이라는 달콤한 이름표를 달고서 뉴욕에 왔다. 뉴욕에서 다시 열 시간 동안 딱딱한 의자에 불평 없이 꼿꼿이 기대앉아 버스로 달려 나이아가라에 온 셈이다. 물론 곧바로 온 것이 아니라 때로는 중간 중간에서 절차를 밟기도 하고 숙박을 하며 관광도 하였다.
간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했어도 고행이라는 아름다운 구속을 즐기면서 힘겨운 의식을 가까스로 치룬 나의 아리따웠던 신부여! 이렇게라도 달려와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설 수 있다니 그저 자랑스럽지 않은가.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을 잘 볼 수 있는 곳은 캐나다 쪽은 퀸빅토리아 공원이고 미국 쪽은 미국폭포의 끝에 있는 프로스펙트 포인트와 이곳에서 300m쯤 하류 쪽으로 내려가 계곡에 걸쳐있는 레인보 다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말발굽폭포)는 그 너비가 약671m이고 낙차는 55미터이다. 뉴욕 주의 미국폭포는 너비가 약305m에 낙차가 51m다. 흘러 떨어지는 물살에 바위가 깎이면서 폭포는 매년 약1m씩 상류로 옮겨졌다.
이곳 나이아가라 폭포는 아프리카의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 (너비 1,676m 최대낙차 108m)와 남미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너비 약4,500m 낙차 70m)와 더불어서 세계 3대 폭포로 불린다. 나이아가라 강변을 따라 낙차지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한눈에 들어오는 강물과 폭포에는 선명한 무지개가 떴다. 하나가 아니라 발걸음을 따라서 눈길이 멎는 곳마다 새로운 무지개가 활을 그리며 걸려 있었다. 강위에 배가 떠있다. 배를 가운데 두고 큼직한 꽃목걸이 무지개를 걸었다.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보기에도 짜릿한데 저 속에 있으면 어떠하랴. 머뭇머뭇 뱃머리를 돌렸고 무지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대로였다.
한 치 앞을 모르며 연신 중얼중얼 달려오던 강물이 엉겁결에 높은 절벽을 만났다. 무색이던 강물이 낙하지점에서 옥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방앗간 쌀방아보다도 더 하얗게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50여 미터를 불과 3초만에 내동댕이쳐댔다. 엄청난 속도로 부딪치면서 깨어지고 으스러져 금세 시퍼렇게 멍들었을 텐데 연이어 밀려드는 물결에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밀려나면서 나이아가라 강물로 흘러갔다. 하룻밤이 밝아서 다시 찾아간 나이아가라 폭포는 어정쩡한 반가움도 없다. 형용하기 어렵게 무지개를 휘감고 또 다른 변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면서 여전히 귀청을 때리고 마음을 때리고 가슴을 때렸다.
조무래기 부질없는 아우성에 목 놓아 울부짖던 탄성에서 말 내닫는 소리, 새벽을 달리는 기차, 굉음의 천둥소리, 아옹다옹 살아가는 짓궂은 이야기, 고지식함을 넘어선 외곬 편협한 마음까지 한순간에 쓸어내렸다. 폭포에서 나이아가라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11킬로 아래 저점이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었던 곳이란다. 1억2천만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두고 흐르면서 강물이 줄어 매년 2미터씩 위쪽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상류에 수력발전소가 있어 물의 흐름을 조절하여 10년에 고작 3센티쯤 변화가 생겨난다. 세찬 물길에 씻기고 깎인 흔적이 강의 절벽에 고스란히 다른 색깔로 켜를 이루면서 화석처럼 뚜렷하게 드러났다.
절벽을 깎은 물줄기는 성에 찾지 않았는지 시속 110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로 내달았다. 한 쪽 벽면에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면서 흐름을 바꿔놓은 소용돌이 ‘월풀’이 생겨났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사람도 자신을 조절 못하고 분노가 지나치게 넘치면 저렇게 마음이 깎여 보이지 않는 상처로 월풀이란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만병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월풀 위로 케이블카가 유유히 지나갔다. 한국보다 위도가 다소 위쪽으로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지고 있다. 우리의 아카시아 꽃처럼 소담스럽지 않고 꼬질꼬질해 보였다. 자연은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기다리며 때가 되면 갈 길을 찾아 제몫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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