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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아 시몬아, 베드로야 (눅22:24-34) 2014. 4. 13 주낮
-오늘은 노래 한 곡 감상하시겠습니다. 오래된 노래입니다만 가슴으로 젖어 드는 노래입니다. 하덕규 집사님이 만들고 조성모 집사님이 부른 노래입니다. 가시나무새.
-노래를 만든 분도 크리스챤이고 부른 분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노래는 고백이고 탄식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당신의 쉴 곳 없네의 당신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언어입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음악)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요. 그런데 내가 아는 나도 있지만 나도 모르는 내가 살고 있어요. 내가 몰라요. 내가 싫은 나도 내 속에 살고 있어요. 나도 모르는 내가 왜 그렇게 나를 찌를까요? 왜 그렇게 다른 사람 고통스럽게 할까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까요? 으스대고 자랑하고 무시라고 멸시하고, 미워하고 시기할까요?
-왜 그렇게 큰 소리 치고, 왜 그렇게 교만할까요?
-내게 좋은 것도 많은 데, 왜 나는 늘 불평이고 원망일까요? 내 속엔 나도 모르는 내가 너무 많아요. 가시나무 새 같은 내가 내 안에 너무 많아요. 그래서 탄식입니다.
-베드로는 몰랐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몰랐습니다. 자기 안에 비겁함이 살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큰소리 쳤습니다. 당당하게,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각오했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베드로 아닙니까? 의리의 사나이, 옥에 가신다면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습니다. 큰소리 쳤습니다. 그는 자신만만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믿었습니다. 나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잘 났다면 얼마나 다를까요? 뭔가 다를까요?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다를까요?
-돈이 좀 많으면? 권력을 잡으면? 지식이 많으면? 잘 생기면 다를까요? 죄인인데, 다 죄인인데, 죽음 앞에서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는 죄인일 뿐인데,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인데요. 누구도 특별한 거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몰랐습니다. 자기 속에 가시나무 새가 살고 있음을, 나도 모르는 내가 살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합니다. 절말, -나도 모르는 내가 들통나게 됩니다. 나는 모른다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저 예수를 모른다고 처절하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망하고 절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가시면 얼마든지 따라가겠다고 큰 소리 치던 베드로가, 어떤 이들이 당신도 예수의 제자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무슨 소리냐고? 나는 모르는 소리라고,
-도대체 어느 것이 시몬이고 베드로란 말입니까? 진짜?
-죽을 지언정, 십자가의 길을 가겠습니다 하는 게 베드로일까요? 아니면 나는 모른다, 예수 모르는 사람이다? 그게 베드로일까요?
-베드로만 그런 갈등을 갖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정직한 자들은 모두 이런 갈등을 갖고 있어요. 사도 바울, 그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면서도 넉넉히 극복했던 사도 바울은 어땠을까요?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롬7:18-19, 24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나는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가? 왜?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내가 너무 많구나. 탄식
-큰 소리 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아시는 베드로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십니다. 미리 베드로야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하리라.
-주님은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미리 알고 가야지요. 미리 알고 가요. 우리도 이런 갈등을 만날 때가 있어요. 우리도 흔들릴 때가 있구요. 누구나 답답할 때가 와요. 미리 알고 가야지요.
-자녀들에게도 미리 가르쳐 주셔야 해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당할 때 온다, 그럴 때 어떻게 할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온다, 그때 어떻게 할래?
-몸이 아플 때도 오고, 뭔가를 잃어버릴 때도 온다. 인생이란 그렇다. 그때 어떻게 할래? 미리 생각하도록 해야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인상적인 것이 미리 말씀하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미리 설명해 주세요.
-베드로야, 네가 나를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 할 것이다.
-나중에 베드로는 회개한 후에 새벽에 닭울음 소리가 들리면 벌떡 벌떡 일어나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너무 죄송해서,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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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우리 안에 왜 그렇게 시기와 미움이 떠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용서하지 못할까요? 나도 모르는 내다, 가시나무 같은 내가 얼마나 많은 걸까요?
-왜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할까요? 왜 그렇게 이기적일까요? 왜 그렇게 게을러지고 방심할까요?
(예)언젠가 청년 한 명이이 느닷없이 전화를 했습니다. 10년 만에, 목사님 아버님이 위독하십니다. 병원인데 한 번 오셨으면, 그런데 목사인 제가 속으로, 아니? 10년이나 한 번 연락도 없더니, 이제 다급하니까? 전화 해? 목사가 이래요.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없고, 오후에 가지요.”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시간이 있었어요. 제 안에 거짓말이 살고 있었어요. 이기적인 내가 살고 있어요. 전화를 놓고, 성령께서 책망하시는데, 니가 목사냐?
-그래서 너무 괴로워서 다시 전화를 걸고 달려갔습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청년 아버님을 위하여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그때,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정말 후유했습니다. 만약, 오후에 갔더라면, 평생 죄책감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큰소리치는 것과 나중에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하, 이게 우리구나. 우리 모습이구나.
-나도 모르는 이기적인 내가, 시기하고 미워하는 내가 살고 있구나. 나도 모르는 내가 내 안에 살고 있구나.
-이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내가,
-여기서부터 구원이 시작되고 소망이 시작됩니다.
-자기 부정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이런 시몬을, 이런 베드로를 회복시키실까요? 이런 비겁하고 형편없는 시몬을, 이런 베드로를 어떻게 주님이 좋아하시는 베드로로 만들어 가실까요?
1-31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시몬아,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는 데,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한다. 시몬아, 시몬아, 베드로야
-주님이 아시는 베드로가 있어요. 이게 가장 정확해요. 나도 나를 몰라요. 그러나 주님은 아세요. 나를 아세요.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를 아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대로 나를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시는 대로 나를 알고 주님이 보시는 대로 나를 보는 것이 중요해요.
-시몬아, 베드로 이전의 이름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는데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한다.
-이게 얼마나 뜨거운 말씀이었을까요?
-나중에 베드로는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이 오늘 나를 위해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새기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 그렇구나, 주님이 내 믿음이 떨어질까봐 지금도 기도하시는구나. 나 같이 비겁한 나를 주님이 그렇게 아셨구나.
-사람이 아는 나도 중요합니다. 내가 아는 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는 나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아실까?
-그래서 성경 앞에, 말씀 앞에 서야지요. 말씀이 나를 뭐라 하시나?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서야지요. 주님이 아시는 내가 가장 정확하니까요.
(예)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에게 청년 하나가 와서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가서 요한복음 5:24을 읽으시오.
#요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얼마 후에 다시 왔어요. 그래도 확신이 없습니다. 다시 읽으시오. 수백 번, 그래도 의심? 무디가 호통을 쳤다고,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아시오.
-성경이 보는 나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보시는 나는 누구일까요?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시는 나를 보실 수 있어야.
2-31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이 나를 믿어 주시고 나를 필요로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믿어 주셨어요.
-이 형편없는 베드로를, 너는 쓸모없어, 비겁한 인생이야, 내가 그렇게 지적해 주었는데도 너는 고집 불통이었어, 그러신 게 아닙니다.
-비겁한 베드로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만들 거다. 그래서 기도한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네 형제를 굳게 하는 사도로,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님에게 베드로는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어요.
-베드로는 죄책감으로 절망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자존감을 세워 주셨습니다. 회복
<!-인류 최대의 사랑 고백은 십자가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십자가만큼 소중한 존재다. 너를 믿는다. 네가 너무 필요하다. 그래서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잊지 말 것은, 주님은 나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십자가로, 그 생명을 쏟으실 정도로 나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함부로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드디어 도망친 베드로를 쫓아가셔서, 아침 밥 상을 차려 놓으시고, 밥 먹자 하시더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의 죄책감을 해결해 주셨어요.
-베드로의 자존감을 회복시키셨어요.
-내가 보는 나는 비겁해요. 미움과 시기와 원망과 불평이 가득해요. 가시나무 새 같아요. 찔러서 늘 피가 흘러요.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시는 나를 보면, 내가 필요하시대요. 하나님은 나를 믿어 주신대요. 죄를 용서하셔서 힘을 내기를 원하세요. 지금도 우리를
(예)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심어 주어야할 것이 이것입니다. 엄마가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어느 목사님이 형과 동생이 대화를 해요. 동생이 잘못해서 아빠에게 혼났어요. 그러니까, 형이, 너 아빠를 그렇게 속상하게 하면 안돼. 아니다, 아빠는 너희가 잘못하면 아픈 마음으로 사랑하고, 너희가 잘하면 기쁜 마음으로 사랑한다.
-아빠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이거 하나는 잊지 말라.
-내가 아는 나는 형편없어요. 내가 모르는 나는 더 실망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는 나는 쓸모있어요. 필요하시대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는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몰라요. 사람들은 몰라도 상관없어요.
-한 주간, 십자가를 통해서 보는 나를 볼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주님이 보시는 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주님이 보시는 나를 보면서, 십자가의 은혜 안에 젖어서 지내는 고난주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