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37~44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장)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묵상/요 7:37-44)
◆ 목마르거든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떠났다. 이제 몇 명 남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정말 그리스도가 맞다는 사람도 있고, 그럴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웅성대는 사람들 속에는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예수님은 위축되지 않으시고 목청을 높여서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누구든지'라는 말은 자격 제한이 없다는 의미다. 어떤 자든 상관없다. 만일 목마름을 느낀다면 예수님께 나아오라. 주님께서 무조건 받아주신다.
풍부한 식량과 온갖 음료수를 쌓아놓았어도 느끼는 목마름이 있다. 곧 영적인 목마름이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인간 속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텅빈 공간을 내 버려두고 다른 곳을 아무리 채워보아야 절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어떤 형제가 유튜브와 드라마에 중독되었다. 그는 점점 영적인 것에 관심이 멀어지고 기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의례적으로 집회에 참석하지만 지루할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지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마약에 중독되듯이 중독된 것이다. 어느날 마음 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냐?' , '정말 즐거우냐?'... 갑자기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다른 사람이 만든 헛된 이야기, 쓸데없는 오락에 홀린 것 뿐이었다. 정말 헛된 것이었다. 영적으로 비참해진 자신을 느꼈다. 자신이 목마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비로소 기도가 나왔다. '주님, 저를 건져주십시오.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인간들은 애써 자신 안에 있는 공허함을 잊으려고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것을 일깨우신다.
'목마르거든...'
목마름을 느끼는 것 조차 복이다. 그래야 생수를 찾기 때문이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당장의 갈증이 해소되는 듯 하지만, 잠시 후에 더 큰 갈증이 몰려온다. 결국 그는 죽게 된다. 생수를 마셔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바로 이 생수를 주겠다고 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을 믿을 때 목마름이 해소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함으로써 해소된다. 성령은 물질세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시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지만, 위로부터 다시 부어주시는 성령을 체험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평생을 성령과 동행하셨지만, 세례요한에게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다(마 3:16). 그렇다면 그 이전에 함께 하셨던 성령과 비둘기처럼 임하신 성령은 다른 분인가? 그렇지 않다. 똑같은 성령이지만, 물질세계에서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비슷한 예가 없을 뿐이다.
거듭난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롬 8:9). 거듭난 자들은 목마름이 해결된다. 거듭나고서도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세계관이 정립되고, 새로운 가치관, 인생관이 생긴다. 언제라도 떠먹을 수 있는 생수의 샘이 그 속에 생겼는데, 다른 샘을 찾아 헤맬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생수의 샘'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다. 샘과 강은 다르다. 샘은 늘 솟아나서 마르지 않지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강은 머물러 있지 못한다. 댐으로 막으면 잠시 멈추지만, 결국 넘치게 되고 터져 나오게 된다. 오늘 본문의 생수의 강은 후에 제자들이 받을 '성령 세례'를 가리킨다. 성령 세례는 신자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에 더해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도록 부어주시는 '위로부터의 능력'(눅 24:49)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의 갈증까지도 해소하게 만드는 '예수의 증인'으로 세우신다(행 1:8). 이런 '예수의 증인'들을 가리켜서 우리 주님께서는 '세례요한보다 큰 자'들이라고 하셨다(마 11:11).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는 이 영광스러움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교사 시절에 학교 앞에서 교문지도를 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침에 나와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한 명씩 붙잡고 '얘야, 예수님을 믿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누가 시킨 것일 수가 없다. 스스로 참지 못하고 나온 것이리라. 그게 효과가 있든 말든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데, 어떻게 가만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을 가상의 인물이니, 지어낸 이야기니하며 비난한다. 그것이 모두 지어낸 것이라면 지금 내 속에 흐르는 생수의 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주님,
저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기뻐하며 잘 감당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요 7:37-44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