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지리산 웅석봉 기슭 심적사. 서부경남 지역에서 오백나한을 최초로 봉안.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
심적사(深寂寺)의 창건과 역사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 경순왕 3년(929년)에 창건, 인조 7년(1630년)에 중건하였다는 구전으로 전하는 산청문화원의 기록이 있다. 홍유스님의「산음심적암기(山陰深寂庵記)」의 기록에는 광해군 2년(1610년) 운일스님의 심적암 창건 이후 여러차례 중건과 중수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퇴락한 심적사터에 제2창건을 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심적사에는 오래 전에 강원도 모처에서 나한님을 모셔와 봉안하였고,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한 때 절을 산청읍 심적정사 내로 옮겼고, 이때 같이 모셔졌던 22분의 나한님은 심적사로 돌아오지 못한채 심적정사에 그대로 봉안되었고 경남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심적사는1991년에 복원불사가 시작 되었고, 마침내 2002년에 서부경남 지역에서는 최초로 오백나한을 봉안하면서 옛 나한도량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심적사 중창복원비'사찰 입구에 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역시 사찰 입구, 부처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양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양에는 반가사유상이 있다.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얹은 자세다. 왼손은 오른쪽 다리의 발목을 잡고, 오른 팔꿈치는 무릎 위에 붙인 채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보살상이다.
심적사의 가람 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설선당(說禪堂)이 위치하고, 우측으로는 종무소가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에서 나와 우측 언덕을 돌아가면 산신각이 앉아 있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 편에는 범종각이 덩그러니 서 있고, 범종각에서 우측으로 가면 삼층석탑과 오백나한전, 심적선원이 함께 새로운 구역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설선당(說禪堂)이란 설법과 참선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도정(塗丁)이라는 분이 쓴 설선당(說禪堂) 편액
심적사의 종무소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에 팔작지붕
대웅전 대웅보전 편액, 우송(友松) 민효식(閔孝植) 선생 글씨.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다포식 공포에, 정면 어칸은 4분합, 협칸은 3분합, 좌우측면은 1분합문을 달았다. 정면 어칸 기둥에는 용두가 조각되어 있으며, 법당 안으로 꼬리가 조각하여 법당 자체가 반야용선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대웅전 내부 불단에 모셔진 삼존불이며, 본존불은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고 그 바깥쪽 좌우에는 16나한을 봉안하였고, 삼존불 뒤로는 아미타후불탱을 봉안하였다.
산신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이다. 자연석 돌계단을 올라가면 다듬돌 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주기둥을 세웠다. 산신각 편액은우송(友松) 민효식(閔孝植) 선생 글씨.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의 산신상과 동자상이 함께 봉안되어 있고, 그 뒤로는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민간에 널리 신앙되었던 토속신이다. 산신각은 우리나라의 토속신인 호랑이와 산신을 봉안한 곳으로, 불교에 수용되면서 사찰을 수호하는 외호신이 되여 사찰의 제일 위쪽에 위치한다.
범종각
최근 만든 심적사 삼층석탑
책을 보고있는 석상 앞의 표지석 내용은 . "공부합니다/ 공부 안할려고 공부합니다/ 밥 먹고 공부합니다./ 공부할려고 밥먹고 공부합니다./ 공부도 안하고 밥도 안먹으려고/ 공부합니다."
오백나한전은 근래에 조성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주심포식 공포에 겹처마이다. 정면 어칸과 협칸은 4분합이고 창살은 모두 빗살무늬문을 달았다. 건물 외벽에는 각종 현판들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우송(友松) 민효식(閔孝植) 선생이 쓴 오백나한전 편액
나한전 내부 불단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으로 불단의 중앙에는 석가모니와 협시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2002년에 서부경남 지역에서는 최초로 오백나한을 봉안하면서 옛 나한도량의 모습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보처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하고 그 옆으로 오백나한을 봉안한 법당이다. 나한은 부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인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이 있으며, 부처님으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때까지 중생을 교화하라는 수기를 받은 분들이다.
심적선원에는 불교의 자비사상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보관의 정수리에는 아미타불을 근본 스승으로 삼고 항상 모신다는 뜻으로 아미타불의 화불을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