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225 / 성탄절 ! 하나님의 선물 (엡2장4-9)
22년간 남편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던 여집사님에게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이 묻습니다. ‘여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선물이 갖고 싶소?’
아내가 대답하기를 ‘난 선물 같은 거 필요 없고 당신만 있으면 돼요.’라고 하자 이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그러지 말고 한 가지만 말해봐요.’
그러자 아내가 ‘정 그렇다면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성탄절 하루만이라도 당신 자신을 나에게 선물로 주세요.’라고 하자 남편이 즉석에서 ‘어려운 일도 아니네. 그럽시다.’라고 하자 아내가 곧바로 ‘그럼. 이번 성탄절엔 나랑 교회에 가요.’라고 합니다.
이에 남편은 ‘한 번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교회에 나갔는데, 그날 마침 목사님이 ‘차든지 덥든지 하지 말고 믿으려면 화끈하게 믿으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 집에 온 남편은 설교 중에 ‘화끈!’이라는 말이 맘에 든다며 이후로도 계속 교회를 나가더니 현재는 충남 금산에서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가장 소중한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보니 그만큼의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주고받는 것이 바로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주신 분이 실제로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성탄절에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앞서 가장 귀한 선물은 나 자신을 주는 것이라 했을 때,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점에서 우리 인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주어진 날이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수많은 인류 중에서 나를 콕 집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해 주신 날이 성탄절인 것을 아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의 진정한 성탄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선물을 주셨는데 받은 우리 편에서 볼 때 나 역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가장 소중한 표현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같은 교회에 있던 후배 목사로부터 만년필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자네나 쓰지’ 그랬더니 자기는 컴퓨터를 사용하기에 만년필 쓸 일이 없다며 계속 권하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는데, 한번은 심방 가서 교적부를 쓰려고 그 만년필을 꺼냈더니 여집사님 한 분이 유독 관심을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자랑삼아 아무개 목사가 선물한 거라고 했더니 ‘그래요?’ 그럽니다.
그러고는 끝난 줄 알았는데, 이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만년필이 원래는 그 여집사님이 후배 목사에게 선물한 것인데 쓸 일이 없기에 버려두느니 필요한 제가 준 것인데 선물한 여집사님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이렇듯 선물이란 건 주는 사람도 정성이지만 받는 사람도 정성껏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준 사람에게 상처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선물이 되어 우리에게 인간이 되어 예수님으로 오신 것처럼 그 선물을 받은 우리 역시 선물로 오신 예수님을 잘 믿으며 사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도 영광이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내게도 복이 되게 됩니다.
이처럼 선물 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잘 쓰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세상에서는 예의고 도리라 한다면 신앙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선물과 관련하여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면 그 사람에게 필요하고 유용한 것이 뭘까를 헤아려 나름 진중하게 선물을 고릅니다.
그리 본다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주시는 선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선물하셨을 땐 이유가 있으셨을 겁니다.
뭘까요 그게?
말씀드렸던 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나에게 선물하실 때는 예수님이야말로 나에게 꼭 필요하고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리하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좀 더 알기 쉽게 얘기해서 하나님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나에게 주시는 선물로 예수님을 보내신 걸까요?
한 문장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내가 못 하는 걸 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선물하신 겁니다.
그중 가장 첫 번째는 당연히 죄로 인한 사망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사망 권세와 심판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요한복음 5:24에 기록되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로 다가 아닙니다. 사망이든 심판이든 그건 죽음 이후에 되어지는 일이기에 당장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선물이신 예수님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는 어떤 유익함이 있는가도 알아야 합니다.
앞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이유가 ‘내가 못 하는 걸 하게 하시려고.’라 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더 현실적입니다.
솔직히 살다 보면 세상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단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것들이 우리를 근심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때론 슬프거나 분노하게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문제를 예수님을 선물하심으로써 소위 ‘한 방’에 해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의 선물로 성탄절에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너 나 없이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희망 사항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 그대로 매번 희망 사항일 뿐인 게 문젭니다.
아닌 말로 원하는 대로 다 이룰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희망 사항’이랄 수 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다 되면 그건 희망이 아니라, 확신이고 당연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세상에서의 이룰 수 없는 희망 사항을 이룰 있는 것으로 바꿔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닌이시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전적으로 기도하라고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성탄절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제껏 세상에서 가졌던 나의 ‘희망 사항’을 ‘기도 제목’으로 바꾸게 하시려고 나에게도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제까지 바랐고 원했던 모든 희망 사항을 이젠 기도 제목으로 바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탄절에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믿음의 결단입니다.
이제까지와 앞으로도 여러분에게도 희망 사항이라든지 소원들이 많았고 또 많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올 성탄절을 기점으로 이젠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기도 제목으로 바꾸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문제란 게 골머리를 앓고 끌탕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리곤 이어서 안 되는 게 될 방법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로 믿게 하시려고, 그래서 안 되는 게 되는 은혜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저와 여러분에게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성탄의 선물을 귀하게 받아 인생을 유익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또한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많은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계시겠지만, 그렇더라도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선물을 하지는 않으시듯이 선물을 한다거나 받는다는 건 그와 나 사이가 특별한 관계란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탄절이 특별한 이유는 예수님의 오심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우린 그 선물로 인해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로 여기시는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날이 성탄절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을 믿는 나는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란 것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살며 당당하지 못하다면, 또 내가 가진 것 때문에나 세상이 주는 것 때문에 늘 의기소침해하며 살아간다면 그건 믿음이 없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나는 무능하다고 할 때, 그런 하나님과 나 사이엔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요?
따지고 보면 아무런 연관성도 관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과 나 사이를 특별한 관계로 맺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약 시대에 문둥병은 천형이라 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생각들이 이러하니 당시에 문둥병 걸린 사람이라면 자기 병의 이유와 원인을 어디서 찾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에게서 찾았겠지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됩니다.
내게 있는 병이 하나님이 내린 병이라고 하니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께 고쳐달라 간구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문둥병자들은 어디 가서 누구에게 고쳐 달라고 해야 했겠습니까?
그때 그들 앞에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셨던 겁니다.
앞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나를 위한 선물로 주신 이유가 ‘내가 못 하는 걸 하게 하시려고!’였기에 당시 문둥병자의 경우엔 그가 병 고침 받는 문제가 ‘내가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면서는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어떤 분은 이 구절을 문둥병자들은 단지 동냥을 구걸한 것뿐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만, 어떤 이유로든 예수님을 향해 소원을 말했다면 그건 예수님을 향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노래 중에 ‘소원을 말해봐.’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걸 예수님께서 권고하신 “구하라.”는 말씀에 적용하여 말씀을 직접적인 대화체로 바꿔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말해봐.’라고 말씀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예수님께서 “그리하면 받으리라.”고 했던 것처럼, 성경에서는 그렇게 예수님께 소원을 말했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저희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했습니다. 즉 소원이 이루어지는 응답을 받음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내가 못 하는걸’ ‘하게’ 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는 내가 못 하는 걸 하게 하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오신 목적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믿으세요! 그들에게 그랬다면 우리에게도 그러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선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도 여러분의 소원을 예수님께 말씀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즉 ‘소원한 대로 응답되리라’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탄절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고, 그 선물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선물로 예수님을 주신 이유를 방법론적인 면에서 보자면 ‘내가 못 하는 걸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나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이유는 내가 못 하는 걸 하게 하시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내가 원하는 건 뭐가 됐든 ‘다 주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선물을 고를 때 어떤 걸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으면 현금이 가장 좋다는 말들을 합니다. 또 받는 사람들도 어설픈 선물보다는 현금이 좋다 합니다.
-왜냐하면 받는 사람이 무얼 원하는지를 모르겠기에 선물로 현금을 준다면 받은 사람은 그걸로 물건을 사든, 음식을 사 먹든, 여행을 가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금을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소원이 뭐든 그 소원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수단 내지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이유도 모든 인류가 다 같은 걸 소원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하나님은 뭐가 됐든 누구라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가능합니다. 누구에게 어떤 소원이 있든 이젠 하나님이 주신 ‘예수 선물’로 성취할 수가 있게 됐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현금은 현금 한도 내에서만 원하는 게 가능하지만, 예수님에겐 애초에 한도 같은 게 없습니다.
성경을 봐도 감사한 것이 무엇이든 구함에 있어 ‘몇 번까지만 구하라.’는 말씀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린 언제 어느 때든, 그리고 무엇이고 몇 번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을 말해봐’야 합니다.
성탄절을 그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정도로만 아는 것은 소위 석가탄신일이니 하루 놀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성탄절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 선물이 예수님이신 거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린 그간 ‘내가 못 했던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 올 성탄절만큼은 뭐가 됐든 다 받게 하시기 위해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선물로 믿어 언제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여러분 각자가 원하는 소원을 말씀드리시고. 이후, 예수님 덕분에 여러분의 모든 소원들이 다 이루어지는 은혜가 여러분의 삶 곳곳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