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의 신작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를 태풍 속 폭우 소리를 배경음 삼아 읽는다. 47년생, 만 75세 할머니 시인의 넘치는(여전히!) 사랑과 자의식이 태풍처럼 내 가슴 속으로 밀려든다. 감탄스럽다. 1969년 등단해 지치지 않고 14권의 시집을 펴냈다. 글이든 뭐든 이렇게 꾸준한 사람은 대단하다, 믿을 수 있다. 불온한 그녀의 시편들은 시인 혹은 문학을 하는 예술가와 시 혹은 문학 그 자체에 대한 푸념과 넋두리로 채워져 있다. 분노와 불평으로 점철돼 있다. 자신이 문인, 시인이라는 현실을 매우 자주, 아니 매순간 의식한다. 그리고 문인과 시인의 선민의식,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존심이 넘쳐난다. 보통 사람 눈으로 보면 가끔 재수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용감하다. 눈치보지 않고 여기저기 욕을 날린다. 이 더런 세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조롱한다, 비아냥거린다. 누구나 하고 싶은 가슴 속 말을 쉬운 언어로 아이처럼 낭랑하게 맑은 눈빛으로 내뱉는다. 게다가 그는 시간의 냄새를 포착해 지금 이 자리의 시를 쓴다. 어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이땅의 언어를 건진다. 시는 성전에 모셔서 제사를 지내는게 아니라 하루하루의 남루하고 지루한 일상생활 속에서 불쑥 솓아오른다. 평론가는 문정희를 시집 낼때마다 새로 태어난다며 그녀를 산모, 태아, 산고에 비유했다. 시마다 다른 개성을 입고 있는 이유다.
그가 써온 시들은 영화로 따지면 멜로, 액션, 공포 같은 장사꾼 냄새뿐 아니라 고독, 해탈, 00 같은 독립영화의 영성으로 빛난다. 매번 이렇게 달리 연기(연출)을 할 수 있다니! 장인이다! 스펙트럼이 넓은건지, 싫증을 잘 내 옷을 자주 갈아입는지 모르겠다. 자의식 과잉의 시인들은 아기와 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지가 젤 잘 났다. 그러다가 금방 실망,좌절,포기,자책한다. 한없이 추락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양극단의 롤러코스터가 그들의 힘이다. 자의식, 심지어 자만심 가득한 천당의 건방진 중2병 환자가 금새 지옥의 80대 노인처럼 무력하고 심드렁하며 니힐해진다. 천당-지옥, 이 간격만큼의 결핍이 시를 낳는다. 지독한 자존심과 바닥모를 모멸감이 만든 균열만큼의 진폭을 시의 진앙에 부여한다. 그러한 시들은 가슴과 머리를 사정없이 진도 8의 강도로 흔들어대고 모든 것을 붕괴해시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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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문학 自意識文學
문학 개인의 의식이 첨예화된 문학. 작가는 대중적인 집단 정서를 나타내기보다는 의식의 대상을 자아에 두고 자의로 해석한 자기만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언어와 기호를 만들어 쓰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 이상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