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주지하는 비와 같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이는 ‘양적인 증가가 바람직한 결과나 효과를 거두리라는 기대 즉 예상을 하는 경우’에 쓰인다. 따라서 원하는 바를 더욱 많이 얻거나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할 경우에 주로 통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더 보고, 듣고, 알고, 배우고, 가지고, 소유하는 만큼 생활이나 사고의 폭은 넓고 깊고 높아져 풍요해질 테니까. 이의 탄생 배경과 상황을 바탕으로 그 의미와 만남이다.
물론 다다익선이 모든 경우에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는 없다. 지나친 탐욕이나 도를 넘는 과잉 행동을 비롯해 비정상적인 축재(蓄財) 따위는 되레 화를 부르는 단초가 될 개연성이 높다. 그런 때문에 예로부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해서 경계토록 이르고 있다. 이런 유형에 비해서 더 많은 노력,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직접 혹은 간접적인 경험과 지식 등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거두리라는 기대에서 다다익선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출전(出典)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이다. 유의어로서 다다익판(多多益辦)이 있다. 출전에서 전하는 내용을 기본으로 이와 관련된 부분을 간추려 살피기로 한다. 유래는 유방(劉邦)이 어느 날 방담의 자리에서 한신(韓信)에게 “과인이 거느리고 통솔할 병사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하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유방(劉邦)이 여러 장수들과 함께 초(楚)나라를 멸하고 천하 패권을 쥐기 위해 힘을 기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무렵의 어느 한가한 날이었던가 보다. 고조(高祖)인 유방과 한신이 군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장수들의 능력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과정으로 추정된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유방이 한신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 슬며시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군사를 어느 정도 거느릴 수 있는가?”라고. 이에 한신이 “폐하께서는 10만 정도를 거느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이 말에 다시 유방이 “그렇다면 그대(한신)는 어느 정도인가?”라고 되물었다. 이 물음에 이어지는 한신의 답변이다.
/ ...... / 신(臣)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臣多多而益善耳 : 신다다이익선이) / ..... /
위 내용에서 ‘다다익선’이 비롯되었다. 여기서 뜻하는 함의(含意)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정확한 수(數)는 달라질 유동성이 있음을 전제로 한 표현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 한편 한신의 위와 같은 대답을 듣고 난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런 능력을 지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사로 잡혔다(전적으로 나를 믿고 따르는가)는 말인가?” 라고. 이에 한신이 했던 답이다.
“폐하께서는 병사를 (많이) 거느릴 수 없지만 ‘장수의 장수(장수를 거느려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실 천부적인 능력을 지니시고 (태어난 특별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소신이 폐하께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이는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바꾸거나 거역할 수 없는 것 이지요.”
위에서 한신의 말은 지옥과 천당을 오간 부분이 포함되어있다. 감히 유방에게 기껏해야 “군사 10만을 거느릴 재목”이라고 얘기했던 대목은 제왕의 진노를 살 위험한 언사로 지옥 앞까지 갔던 위험한 말이었다. 한편 유방에게 “하늘이 낸 왕재(王才)로 인간이 거역하거나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은 제왕의 기분을 최고조로 고조시켰을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는 신의 한 수 같은 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군의 임기웅변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 분명하다. 또한 이 대화 내용은 한신의 뛰어난 기지와 유방의 됨됨이와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면이 아닐까?
역사적 사실에 따져 볼 때 한신의 뛰어난 군 지휘 능력이 한(漢)나라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런데 그 점이 유방에게는 되레 불안한 위협의 요소로 느껴지며 심적으로 배척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되었으리라. 그런 마음이 의심과 불신을 일으켜 제거해야겠다는 계획을 은밀하게 추진하도록 만들었지 싶다. 유방은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항우(項羽)가 자결한 뒤에 한신의 대원수 지휘권과 제왕 직위를 박탈하고 초왕(楚王)으로 강등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얼마 후에는 회음후(淮陰侯)로 다시 강등시키는 동시에 그의 휘하의 부대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그 외에도 끝없는 의심 때문이었는지 모든 권력의 몰수는 물론이고 측근들까지 차례로 제거하며 항상 감시를 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과 세상에 염증을 느낀 한신은 이리저리 피하려 애를 쓰다가 결국은 교묘한 덫에 걸려들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몸부림치다가 끝끝내 반란 누명을 쓰고 변방에서 체포되었다. 그 즉시 수도(首都)로 압송되어 투옥되었고 마침내 자결하라는 강요에 정나미가 떨어져 결국 자진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한신의 사연을 대하면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흔히들 하늘에 해가 둘일 수 없듯이 나라에 임금이 둘 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예로부터 권력이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했던가 보다. 어쩌면 어렵던 시절 피붙이보다도 더 알뜰살뜰하게 서로를 챙기며 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각별한 관계이기에 조강지처(糟糠之妻)보다도 가깝고 분신 같은 충신들이었을 게다.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 그 이상도 참으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야 했던 걸까. 수많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며 환희와 좌절을 공유했을 개국 공신이 끝내 팽(烹) 당하는 냉엄한 과정을 ‘다다익선’이라는 성어를 통해 되새겨봤다. 순간 과연 권력과 삶이 무엇인지 회의가 몰려오며 세상의 비정함에 머릿속에 묘한 혼란이 일어 갈피를 잡기 어렵고 무척 어지럽다.
수필과 비평, 2025년 1월호(통권 279호). 2025년 1월 1일
(2024년 6월 19일 수요일)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교수님
유방과 한신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선조와 이순신이 떠 오르는것과 최근의 우리 나라 정치 상황을 볼 때 시간이 흘러도 권력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_()_
교수님 늘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