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느낌에 대해 말하시오. (배웠거나 들었거나 읽었거나 생각한 것들 중에서 그대가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을 말하면 됩니다.)
저의 대답:
→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거기에는 느낌도 함께 있다고 합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에도, 성냄이 있는 마음에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에도 느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말할 때에는 느낌과 탐욕을•느낌과 성냄을•느낌과 어리석음을 함께 동시에 언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즐겁다.’ ‘그는 괴롭다.’, ‘그는 지금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 등으로 느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마음 상태는 ‘지금 나에게는 탐욕이 일어났다’, ‘지금 나에게는 성냄이 일어났다.’, ‘어리석음이 일어났다.’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는 이와 다르게 ‘지금 그에게는 탐욕을 뿌리로 하여, 즐거움이 함께 하고 사견이 결합되어 있는 자극받지 않은 마음이 일어났다.’는 표현 방식으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 경에서는 느낌을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으로 설명하거나 /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노(意)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등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김철수를 보고 즐거운 느낌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해당합니다.
→ 한편, 경에서는 이렇게도 많이 나타납니다.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있다. ...” 하고. 그래서 동영상 법문 등에서는 ‘느낄 때에는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이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취착의 대상이 되는 존재 더미가 있어서(有身), 그 존재 더미를 ’자아‘라고 여기고 거머쥐면서, 그 ’자아‘가 느낌을 경험한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설법하십니다.
→ ‘정신과 물질’이라고 할 때, 느낌은 정신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또는 육체적 고통(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이라고 할 때에, 육체적이란 말이 눈•귀•코•혀•몸 중에서 몸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 ‘눈+형색→눈의 알음알이’ - 감각접촉 – 느낌 ]에서
“ ‘눈-형색-눈의 알음알이’에는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은 없고 단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 있다고 합니다. ‘귀, 코, 혀’도 마찬기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몸-감촉-몸의 알음알이’에서 몸은 몸의 알음알이가 생길 때, 여기(몸의 알음알이)에는 즐거운 느낌도 있고 괴로운 느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체적 즐거움과 육체적 고통(괴로움)이라고 할 때에는 ‘눈•귀•코•혀’의 알음알이 말고 ‘몸’의 알음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몸에 병이 나면 육체적 고통도 있고, 배우지 못한 범부라면 그것(몸에 병이 나서 육체적 고통을 느낌) 때문에 정신적 괴로움도 겪겠습니다. (한자어로 표현하면 (해설서에서는) 과보의 마음 중에서 眼識•耳識•鼻識•舌識은 不苦不樂이고, 身識은 苦이거나 樂 중에서 하나라고 합니다.)
→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일어난다.”는 경문에서. 느낌일 일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마음이 일어났는데, 이 마음에는 느낌이 특징적이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김철수가 어느 날 모자를 쓰고 왔다면 그리고 이 모자가 중심 주제라면 ‘김철수’, ‘학생’, ‘남자’ 등의 내용보다는 ‘모자’를 드러내겠습니다. 그리고 ‘갈애가 일어난다’고 할 때에, 여기에는 갈애(오온으로 보면 行에 해당)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마음(識)이 일어났는데, 여기에는 갈애도 있고 느낌(受)도 있고 인식(想)도 있는데, 이 순간의 마음에서는 갈애를 주제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갈애가 있는 마음에서는 느낌이 대체로 즐거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갈애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마음은 성내는 마음이 되겠습니다. 즉 성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성내는 마음에도 느낌은 있습니다. 이때는 괴로운 느낌입니다.
→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어떤 일에 몰두할 때에는 대체로 무덤덤한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는)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잘 풀면 즐거운 느낌이 일어날 것이고, 문제를 못풀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런 무덤덤한 느낌은 일상에서 늘 있겠지만 배우지 못한 범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평온이라고 표현하면, 삼매를 닦은 수행자가 느끼는 평온은 배우지 못한 범부가 느끼는 평온과는 다르겠습니다. 그래서 삼매를 닦지 못한 욕계 중생은 삼매과 관련된 평온은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주의: 혹시 이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