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C 23세 이하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4강에 올랐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이 후반 경기력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을 것 같다. 전반과 같은 팀이라고 보이지 않는 경기력으로 후반엔 요르단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심판의 오심이 아니었다면 경기는 연장전으로 갈 수 있었고 그 이후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무력한 경기력을 보이고 말았던 것일까.
현재 대표팀에 프로 선수들이 많다지만 아직 어린 선수들이라는 것을 실감해준 경기였다. 전반과 후반의 차이는 단 한 가지였다. 득점이 필요해진 요르단이 전방 압박을 펼쳤다는 것이다. 전반전 요르단이 물러나서 수비 전술을 펼칠 때는 후방에서는 안정적으로 볼을 돌리다가 공격 진영에서 패스 템포를 올려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요르단의 전방 압박 때문에 후반전엔 우리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공이 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골키퍼 구성윤의 불안한 볼처리도 문제였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상대의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 이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흐름을 잃고 답답한 후반전을 맞이했던 올림픽 대표팀 출처:KFA홈페이지)
우선, 물러날 곳이 없는 요르단의 ‘간절한’ 압박에 우리 수비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요르단의 기세는 오를대로 올랐다. 전술이 먹힌다는 생각이 들자 분위기는 반전 되었고 요르단은 더욱 가열차게 압박을 가했다. 특히 요르단은 전방에 4명을 배치하면서 우리 수비수들을 거의 1:1로 압박했다. 압박을 가한다는 것은 공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리 패스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빠르게 공을 받아 연결해야 한다. 특히 공을 받아줘야 하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은 빠른 타이밍에 연결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움직여줘야 했다. 요르단의 압박이 펼쳐지면서 더 유기적인 움직임이 필요했지만, 우리 대표팀의 톱니바퀴 사이에 ‘압박’이란 돌멩이가 끼어들자 조직력은 깨어지고 말았다. 수비수들은 줄 곳이 없어 공을 잃고 마는데, 전방에서는 공이 오지 않아 답답해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직은 23세의 경험으론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경기 양상이었다. 압박에 대응해서 미드필더들이 전방으로만 올라갈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빌드업을 도와야 했고 우리의 리듬 자체도 빨라져야 했다. 전반에 비해 형편없는 패스를 돌리게 된 것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전반과 같은 방식과 템포로 후방에서 빌드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문제는 간격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다. 수비진이 공격과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수비가 불안하자 전방으로 전진하는 데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긴 연결로 전방으로 때려넣거나, 역습을 펼치는 상황에서도 수비진이 수비라인을 끌어올리지 않고 후방에 머물렀다. 때문에 공격 실패 후 세컨드 볼 싸움에서 요르단에게 거의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또다시 수비에 임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공이 전방으로 향하면서 공-수 간격이 벌어지면 수비진은 간격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따라붙어야 한다. 수비 라인이 올라가면 어차피 상대 공격수들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수비 라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즉 공격수들을 위험지역에서 먼 곳까지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비들이 계속 후방에 머무르면서 간격은 벌어졌고, 공을 빼앗긴 후엔 위험지역에 있는 공격수들에게 재차 공이 투입되었다. 우리가 전반전에 라인을 올린 상태로 요르단의 뒷공간으로 때려넣는 단순한 축구에는 상당히 잘 대처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전술적 미스였다.
마지막으로 공격진부터 체계적인 수비가 되지 못했다. ‘수비’라는 개념을 두고 공을 향해 열심히 뛰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축구의 수비는 ‘개인’의 차원에서 펼쳐지면 효과가 없다. 팀 차원에서 다같이 수비를 가할 때 의미가 있다. 우리 수비의 장점은 미드필더부터 잘 짜여진 조직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방식에 있다. 그런데 수비가 불안하자 모든 선수들이 당장에 ‘공을 빼앗으려는 움직임’으로 상대에 달려든 것이 문제였다. 요르단은 우리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이를 이용해 드리블 돌파는 물론 발뒤꿈치를 이용한 패스까지 이용하면서 무너진 수비 조직을 농락했다.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수비 시에 부여된 역할이 있다. 각자는 각자의 몫을 해내면 충분한데, 어느 순간부터 수비진이 불안해지자 모두가 공을 빼앗으려는 움직임을 취한 것이 문제였다.
선수들이 이런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능력이 부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흐름을 잃은 것이 문제이다. 수비부터 빌드업이 잘 되지 않자 미드필더들도 경기 운영에 여유를 잃었다. 수비적으로도 여유를 잃고 달려드는 수비를 했다. 한 곳의 밸런스가 깨지자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어린 선수들의 경우 흐름을 한 번 놓치면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개인 기량과 관계없이 청소년 대회에서 많은 이변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맞불을 제대로 놓은 팀은 없었다. 요르단처럼 우리를 전방에서 강하게 누르려고 한 팀은 더더욱 없었다. 요르단은 탈락의 위기에서 잃을 것이 없었기에 이번 경기처럼 무모할 수도 있었던 시도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더욱 당황했고 후반 전체를 망쳐야했다. 개인 기량은 뛰어날지 몰라도 잃은 흐름을 되찾을 만큼의 노련미를 바라기엔 아직 어린 선수들이었다. 다만 이번 경기에서 느낀 것들이 선수들에겐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 올림픽 대표팀은 전방 압박 전술에 대해서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신태용 감독은 4강전을 어떻게 준비할까? 출처:KFA홈페이지)
이번 경기에서 확실한 약점을 보였으니 다음 팀들도 우리 대표팀을 전방부터 강하게 누를 것을 전술적으로 준비하고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요르단을 상대로 강한 전방 압박에 흔들린 것 자체는 문제였다. 하지만 상대의 전방 압박에 시달리면서 좋은 예방주사를 맞았다. 신태용 감독은 요르단 전처럼 상대의 압박 전략에 흐름을 잃지 않도록 대비할 것이 분명하다. 결과가 중요한 토너먼트였고 오심 덕이긴 해도 승리를 거뒀다. 오히려 요르단 정도의 전력을 상대로 우리 대표팀이 전방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 본선 진출과 우승에 있어 좋은 보약이 될 수 있다.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