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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칭기력(不稱其力)
그 힘을 칭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외적인 재능과 재주보다는 내적인 덕성과 인성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稱 : 일컬을 칭(禾/9)
其 : 그 기(八/6)
力 : 힘 력(力(/0)
출전 : 논어(論語) 憲問篇(헌문편) 35章
子曰: 驥는 不稱其力이라 稱其德也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馬)에 대하여 그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칭찬하는 것이다."
(憲問 3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리마(千里馬)를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그 천리를 달릴 수 있는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순한 덕(德)을 칭찬하는 것이다."
(注)
驥는 善馬之名이라 德은 謂調良也라
기(驥)는 좋은 말의 이름이다. 덕(德)은 조련이 잘 되었음을 말한다.
○ 尹氏曰: 驥雖有力이나 其稱은 在德하니 人有才而無德이면 則亦奚足尙哉리오.
윤씨가 말했다. 명마는 힘도 있지만 찬양받는 것은 덕 때문이니, 사람이 재주가 있어도 덕이 없다면 어찌 숭상할 만하겠는가?
전국책(戰國策)에 보면, 명마(名馬)를 알아본 백락(伯樂)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말 장수가 백락을 찾아왔다. 그는 자신에게 훌륭한 말이 한 필 있는데, 팔려고 시장에 내놓아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니 자신의 말을 한 번만 감정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백락은 시장에 가서 그 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좋은 말이라는 듯 눈길을 보냈다. 당시 최고의 말 감정가였던 백락이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서로 사려고 경쟁하여 결국 말의 값은 순식간에 껑충 뛰었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말이 있더라도 그 능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말에서 백락일고(伯樂一顧; 백락이 한 번 쳐다봄)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예로부터 준마(駿馬)를 알아보는 것을 흔히 유능한 인재 발굴에 비유하곤 했다. 훌륭한 재능이 있는 사람도 그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눈앞에 여포(呂布)의 적토마(赤兎馬)가 있더라도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저 한 마리의 평범한 말에 불과하게 된다.
이처럼 뛰어난 신하가 있더라도 이를 알아보는 현명한 군주가 없다면 그 재능은 결코 발휘될 수 없을 것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유비(劉備)를 만나 세상에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 그 예이다.
공자는 명마를 가리키는 기(驥)의 기준을 '힘이 세서 무거운 것을 싣고 먼 곳까지 가는 말이 아니라 잘 길들어지고 성질이 온순한 말'이라고 정의했다. 즉 몸집이 크고 힘 센 것만으로는 결코 명마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현대사회의 인재 발굴에 적용해 보자.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성격과 심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그는 결코 좋은 인재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외적인 재능과 재주보다는 내적인 덕성과 인성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인재의 기준은 단순히 재능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장점과 특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능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에 문제가 있다면, 그 재능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하여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제대로 값어치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최근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오히려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현업(現業)에서 좋은 인재를 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최근에는 개인과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마저도 신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무한경쟁에 놓여 있다. 그야말로 난세(亂世)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난세일수록 새 시대를 열어갈 영웅호걸을 알아보는 훌륭한 지도자의 혜안(慧眼)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 불칭기력(不稱其力) 칭기덕야(稱其德也)
새로운 봄이 오면서 많은 조직에서는 어떤 사람을 채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주고 있을까요?
子曰: 驥 不稱其力이라 稱其德也니라
공자께서는 "기(驥) 즉, 천리마라는 말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그 힘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덕을 일컫는 것이다"고 이야기 합니다.
논어(論語) 憲問篇(헌문편)에 나오는 이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기(驥)라는 말을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센 말 중에는 사납게 굴어서 사람을 해치는 말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통제되지 않는 말은 못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기'라는 말은 힘이 세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잘 통하는 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는 것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능력이 있고 품행이 바른 사람'을 뽑는 것이 최선이죠. 이런 사람에게는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지만 사실 둘 다 겸비한 사람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급한대로 품행이 나빠도 능력을 우선하여 뽑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 최고의 CEO로 꼽히는 GE사의 잭 웰치 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경영 초기에는 품행이 나빠도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한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늘 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직원을 뽑고 평가할 때, '인품'이 영원불변의 제일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품행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요즘은 힘쓰는 일은 기계와 로봇이, 복잡한 계산 등의 정확성을 요하는 일은 컴퓨터가 대신해 주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더 중요한 것은 뽑을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덕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리마라는 말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그 힘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덕을 일컫는 것이다는 "기 불칭기력(驥不稱其力) 칭기덕야(稱其德也)"의 지혜는 품행이 바른 사람을 찾아 교육을 통해 덕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고전에서 배워 현재를 살아갑니다.
■ 子曰: 驥, 不稱其力, 稱其德也.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출전한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천리마는 그 힘으로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덕으로 일컫는 것이다."
驥(기)은 천리마, 준마(駿馬)라는 뜻이다. 현능(賢能)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자(朱子)는 좋은 말의 이름이라고 풀었다. 德(덕)을 주자는 조량(調良), 즉 순종하고 착한 것이라고 풀었다. 調(조)는 길이 잘 들여 다루기가 쉬운 것이고, 良(량)은 사납지 않은 것이다.
이 장에 대해 북송의 형병(邢昺)은 공자께서 "당시에 힘으로 남을 이기는 것을 숭상하고, 덕을 중시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신 것이다"고 보았다.
윤돈(尹焞)은 "천리마는 비록 힘이 있지만 천리마라 불리는 이유는 그 덕에 있는 것이니, 사람이 재능은 있지만 덕이 없으면 또한 어찌 숭상할 수 있겠는가?"고 하여 사람의 재능과 덕에 비유한 말씀으로 본다.
정약용(丁若鏞)은 윤돈의 설에 반대하며, "말이 순종하고 착한 것은 또한 재능이다. 옛사람들은 덕을 재능라고 여겼으니, 어찌 재능을 경계하였겠는가? 羿(예)가 활을 잘 쏘고, 奡(오)가 배를 끌고, 우직이 농사를 지은 것은 힘과 덕이 함께한 것이다"고 하여 형병의 설을 지지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오의해(五儀解)에는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사람을 취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공자는 "활은 조율한 뒤에 굳세어지고, 말은 길들인 뒤에 순종할 수 있고, 선비는 반드시 진실한 뒤에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합니다. 진실하지 않고 능력이 많은 것은 비유하자면 승냥이나 이리와 같으니,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이리나 승냥이는 사람의 몸을 해치지만, 도덕성 없는 인재는 나라를 망치는 법이다.
지식과 능력도 소중하다. 하지만 신실함과 같은 내면의 덕이 없으면서 지식과 능력만 많은 사람은 오히려 사회에 害惡(해악)을 끼칠 수 있다. 공자는 그 점을 경고한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는 후대의 사람이 만든 책이어서, 노나라 애공과 공자의 문답은 꾸며낸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공자가 인재 선발에서 덕(德)을 강조한 말은 바로 논어(論語) 헌문(憲問)의 이 장과 뜻이 통한다.
기(驥)는 천리마와 같은 준마(駿馬)를 말한다. 기주(冀州)라는 곳에서 양마(良馬)가 많이 나왔으므로 준마를 기(驥)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칭(稱)은 稱頌(칭송)이다. 역(力)은 하루에 천리(千里)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덕(德)은 여기서는 말이 훈련을 받아 지니게 된 순량(順良)한 바탕을 가리킨다.
준마는 오래 잘 달리는 힘이 중요하다. 하지만 힘만 있고 조련(調練)이 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훌륭한 말일 수가 없다. 말이 조련되어 지니는 순량한 바탕은 사람이 수양을 통해서 지니게 되는 德을 비유한다.
말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해서도 외적인 재능만 높이 치지 말고 인격 전체를 살펴야 한다. 공자의 당시 사람들은 재능과 역량만 존중하고 덕을 경시(輕視)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런 비유의 말씀을 했다.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 기미(驥尾)
‘높은 곳에서 손짓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팔이 길어져서가 아니다. 또 바람을 등지고 외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듣게 되는데 그것은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 아니다. 수영을 못해도 배를 타면 강을 건널 수 있다.’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編)에 나오는 말이다. 요컨대 사람이란 처해 있는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기를 들고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지만 교육을 중시하고 또 교육에서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고 설파한 점은 같다.
기미(驥尾)는 '천리마(千里馬)의 꼬리'다. 얼핏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말이나 소에 보면 흡혈충(吸血蟲)이 있다. 아주까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산다.
이 놈은 워낙 느림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움직임을 느끼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느린 놈도 일단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천리 길을 가게 된다. 그것은 흡혈충이 빨라서가 아니라 천리마에 빌붙었기 때문이다.
'기미'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마천(司馬遷)이다. 그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충절을 높이 평가해 70열전(列傳)의 맨 첫 편에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충절로 유명했던 사람이 어디 그들 둘만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곧 기록의 유무가 중요하다는 뜻인데 그것을 높이 평가해주고 기록해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성인 군자들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훌륭한 인물일지라도 그들의 붓끝 밖에 있다면 그 명성은 후세에 전해질 수가 없게 된다.
사마천에 의하면 백이와 숙제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고 또 충절의 대명사로 인구에 회자될 수 있었던 까닭은 공자(孔子)라는 성인이 그들의 충절을 높이 기려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공자가 아니었던들두 사람의 이름이 전해질 수 있었을까? 마치 흡혈충이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있으면 하루에 천리를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백락(伯樂)이 있고부터 명마(名馬)가 알려지고 명군(明君)이 있었기 때문에 현상(賢相)이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훌륭한 인물은 그를 알아주는 이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 청마 이야기
새해(2014)는 갑오년, 말띠 해다. 갑오의 갑(甲)은 청색을, 오(午)는 말을 상징한다. 이에 올해를 '청마의 해'라고들 하는 것이다. '갑'이 왜 청색과 관련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오행사상의 영향 때문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십간의 첫 번째인 '갑(甲)'은 출생을 뜻하므로, 자연스레 싹의 색깔인 청색과, 해 뜨는 동쪽 방위를 그 속에 담은 듯하다. 오행설은 중국에서 나온 것이라 그 동방에 위치한 조선을 청색의 땅으로 여겼다. 하여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 '푸른 산등성이'로 이름 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한낮, 정오를 뜻하는 '오(午)'가 왜 말을 상징하게 된 것인지는 더욱 알쏭달쏭하다. '갑골문사전'에서 '오'자를 찾아보니, 그 형상이 '짧은 끈 아래 매달린 동그라미 두 개'로 되어 있다. 이것은 말 잔등의 좌우에 늘어뜨린 등자(말을 탈 때 발을 넣은 고리)를 본뜬 것이다. 이제야 '오'자의 본래 글꼴은 사람이 말을 타고 발로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묘사한 글자인 줄을 알겠다.
이런 모습은 '말을 제어한다'고 할 때의 어(御)자 속에 살아 남아있다. 이 글자의 가운데 부분을 꼼꼼히 관찰해 보면 '午'와 '止'로 이뤄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止'는 발모양을 상형한 것이니까, 이것들은 말을 탈 때 등자에 발을 집어넣는 것을 응축한 모습이다. 곧 제어하다는 뜻의 '어'는, 주인이 말을 제 마음대로 이리저리 부리는 행동을 묘사한 글자가 된다.
이런 행태가 임금의 권능에 비유되면서, '어(御)'는 군주를 상징하는 말로 전변되었다. 임금의 명령은 '어명(御命)'이요, 임금의 용품은 '어용(御用)'이고, 임금의 자리를 '어좌(御座)'라 하고, 또 임금이 친히 보낸 감사관을 '어사(御使)'라고 이름 붙인 것은, 두루 '말'과 관련을 맺고 있다. 요컨대 말 등자를 형상한 '오'가 말 전체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은 가축들 가운데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된 동물이다. 역사서에도 말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과 긴밀하였다. 역사서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이다. 그의 성씨가 사마(司馬)다. '사마'는 글자대로 새기자면 '말을 맡아보는 직책'이다.
옛날 문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니, '말은 전쟁을 뜻한다(馬, 武也)'고 되어 있다. 곧 옛날에 말의 쓰임새는 운송용이나 농업용이 아니라, 군사 용도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마는 군사 책임자를 뜻한다. 오늘날 식으로 하자면 국방부 장관이거나, 국방 관련 고위직이다. 그런 직책을 대대로 계승한 데서 생겨난 성씨임을 알겠다. 그것이 가문 전승으로 이어지다 보니 사마천이란 이름에까지 이른 것이다.
올해의 명칭 갑오년의 문자적, 역사적 의미를 결산해보니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새해 운수를 보는 길거리 철학관에서 신수풀이하는 말투를 흉내내어 읊어보자면 이런 식이다. '에~ 갑(甲)은 청색이요 청색은 동방인지라 조선을 뜻하고, 오(午)는 말이라 전쟁을 뜻하는데, 에또~ 지난 1894년도 갑오년 해에, 조선 땅 안팎으로 전쟁이 터졌던 것이 그 증거라. 올해가 어찌 될 줄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나라 안팎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인데, 다만 동쪽의 일본이 독도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조짐이 하수상하고, 또 북녘에서 김정은이 자기 인척을 살상한 것도 괴상한 일이라. 운운.'
그러나 공자라면 이런 술사의 해설에 콧방귀를 뀌리라. 그 스스로 '점치지 않는다(논어)'라고 공언했기에 하는 말이다. 하면 공자에게 새해의 전망을 물어본다면, 어떨까. 그도 말에 의탁하여 올해를 예측하리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빌려본다. "천리마 기(驥)를 칭찬하는 까닭은 그 힘 때문이 아니라, 그 덕 때문이다."
당시 천리마로 소문난 '기(驥)'를 명마로 일컫는 까닭으로 공자는, 그 말의 빠른 속력이나 지구력 때문이 아니고 승마자의 안위를 배려하고 그 뜻을 헤아리는 덕(德) 때문이라고 짚은 것이다. 본시 말은 무력이요, 전쟁을 뜻한다. 청색은 동방을 의미했다. 지난 120년 전, 갑오년에는 조선땅 안팎으로 전쟁이 났었다. 하나, 같은 갑오년이라고 유독 전쟁과 재난이 일어나라는 법은 없으렷다.
공자가 '천리마 기(驥)'를 힘이 아니라 덕 때문이라고 칭찬한 까닭 속에는, 곧 덕행이 천지의 운수를 이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공자의 뜻을 이어, 맹자는 "전쟁에 천시와 지리도 중요하지만, 인화(人和)만은 못하다"고 하였고, 서양의 마키아벨리도 "운명을 이기는 것은 덕성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올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상대방을 아끼고, 그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며 또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의 고유한 덕성을 발휘할 수 있기만 하다면, 그깟 운수타령이야 어찌 감히 범접할 수 있으랴. 나라 밖 일도 마찬가지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예로 대함이, 날뛰는 청마의 고삐를 잡고 길들이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