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가로 나가
간밤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에서 한 해의 문집 발간을 기념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원로 회원들을 뵙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간 코로나로 모이질 못하다가 모처럼 얼굴을 뵈었더니 반가움이 더했다. 좌장 어른은 건강을 회복해 마음이 놓였고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온 분도 있었다. 생활 근거지를 진주로 옮겨 살던 한 분은 추석 무렵 작고하셨다는 부음을 접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구월 마지막 날은 한 달 한 차례 길을 나선 뚜벅이 트레킹 일정이 잡혔다. 본래는 넷이 종일 떠나는 여정인데 한 분이 사정상 점심 이후 근무지인 도서관으로 복귀할 사정이라 계획 일부를 변경했다. 처음엔 대산 들녘 강변으로 나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창원역 근처에서 승용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동행하는 회원은 나를 포함 넷인데 현지에서 한 분이 더 늘 예정이다.
창원대로에서 굴현터널을 넘어 79번 국도를 달렸더니 아침 안개가 짙게 끼어 사위의 분간이 어려웠다. 마금산 온천장 주변에서 본포를 거쳐 강변을 따라 모산까지는 시원스레 뚫린 확장 신설도로를 따라 달렸다. 농로에 해당할 좁은 길로 드니 주변은 벼들이 익어가는 황금 들판이 드러나길 시작했다. 우리는 우영우 변호사 소덕동으로 더 알려진 북부동 동부마을 팽나무를 찾아갔다.
마을 안길을 거쳐 강둑에 차를 세워두고 강변 언덕 우뚝한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노거수 아래로 갔다. 나는 여러 차례 들렸지만 나머지 일행은 얘기로만 들어왔던 당산나무였다. 데크가 설치된 나무둥치에는 왼새끼를 꼬아 둘러친 새끼줄에 시월 상달 동신제 기금과 이웃 돕기 성금에 해당한 지폐가 끼워져 있었다. 보호수의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지역민과 갈등은 조정이 된 듯했다.
거목 팽나무에서 안개가 걷히지 않은 둔치 자전거 길을 따라 걸어 암반이 드러난 쉼터로 올라갔다. 각자 가져간 음료와 과일을 꺼내 간식을 먹으며 한담을 나누었다. 우리가 찾아간 둔치 쉼터는 4대강 사업으로 생태공원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평소 찾는 이가 아주 드물었다. 쉼터에서 내려와 물억새의 이삭이 패는 둔치 자전거 길을 걸어 차를 세워둔 둑으로 올라 다음 목적지로 갔다.
유등배수장을 지나니 들판 어디쯤부터 행정구역은 창원시에서 김해시로 바뀌었다. 가동에서 술뫼로 내려갔다. 숟가락 시(匙)에 뫼 산을 결합한 시산으로 불리는 술뫼 둔치는 파크골프장이 꾸며져 동호인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나는 그곳 강변 농막에 안면을 트고 지내는 지인이 있어 가끔 찾아갔더랬다. 이번에는 일행들과 함께 찾아간다는 연락을 먼저 해 놓았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지인 텃밭 케일 잎이 싱그러워 주섬주섬 따 함께 간 일행에게 건네주었다. 주인장이 풋고추도 따 가십사고 권해 한 줌 따 보탰다. 이후 농막의 거실로 드니 일행들은 창밖의 탁 트인 강변 풍광에 놀라워했다.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저녁이면 붉은 놀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인이 끓여낸 결명자차를 들면서 창작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점심 자리로 이동했다.
한림 면 소재지를 지난 화포 습지의 알려진 맛집에서 메기국으로 점심을 들고 일행 가운데 한 분은 공무로 일찍 창원으로 복귀했다. 남은 셋은 지인의 승용차로 한림배수장 근처 모정으로 갔다. 경전선이 복선화되면서 예전 단선 터널은 자전거 길로 꾸며 놓았더랬다. 터널을 통과한 찻집은 문이 닫혀 우리는 내친김에 생림의 샛강을 거쳐 강심에 가로 놓인 철교를 건너 삼랑진으로 갔다.
일행들과 삼랑진역에서 부전을 출발해 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창원역으로 돌아왔더니 해는 중천을 지나는 즈음이었다. 아직 해가 남아 사림동 사격장 잔디밭으로 올라가 일찍 낙엽이 지는 벚나무 아래에서 가을의 서정을 느껴 보다가 버섯전과 함께 이른 저녁을 들고 헤어졌다. 나는 귀로에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을 찾아 새벽에 잠을 깨 읽을 책을 몇 권 골라 배낭에 넣어 왔다. 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