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서 연재되고 있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은 전국 각지의 우리 입맛을 찾아다닌다.
'우리의 맛'을 찾아다니는 여행도 꽤나 멋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싶다.
제 5권은 '술의 나라'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발전을 해 온 우리의 전통주는 조선시대에 오면서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조선시대엔 집집마다 고유의 술이 있었다고 한다. 극심한 흉년에만 금주령을 내렸고 그 이외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아마도 제주(祭酒) 가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집집마다 명주를 빚었는데, 일제 강점기때 주세령이 내려 많은 가양주(家釀酒)가 사라졌다. 해방후 정부에서도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을 금지시켜 우리 전통주의 맥을 놓치는데 한 몫을 하고 말았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통주 살리기에 나서 그나마 남아있는 우리의 술 전통주를 이어감을 고마워해야 하나?
어렸을 적에 엄마도 밀주를 담으셨다.
종가집이라서 일 년에 제사만도 10번이나 되었다.
명절과 합치면 거의 매 달 밀주를 담으셔야 했다.
종부에게 암묵적으로 법을 어기게 했던 것이다.
제삿장을 보러 가실 때면 나도 쭐래쭐래 별 도움도 안되지만 따라나섰다.
칠성시장, 서문시장에서 주로 제삿장을 보는데 술을 빚기 위해선 누룩이 필요했다.
집에서 술빚는 것을 나라에서 금했기에, 누룩은 내놓고 살 수도 팔 수도 없었다.
누룩장사에게 은근슬쩍 얘길 하면 신문지에 누룩을 둘둘 말아서 아무말 없이 엄마의 장바구니로 쿡 찔러넣었다. 그러면 엄마는 슬그머니 돈을 내놓고 그 자릴 얼른 피했다.
"그게 뭔데?"
큰소리로 물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어 다음부턴 누룩을 살 땐 말없이 뒤따르기만 했다.
망치로 누룩을 툭툭 깨고, 찹쌀 꼬두밥 식힌 것과 마구 주물러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는다.
항아리를 아랫목에 고이 모셔놓고 뿌글뿌글 소릴 들으려 귀를 대곤 하셨다. 뿌글거리던 것이 다시 가라앉고 새로 뿌글거리는 찰라 술을 뜨는 것을 봐왔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한 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맑은 술을 뜨고 제사를 지낸 뒤 음복을 할 때면, 종조부님도 당숙도 술 몇 잔에 얼굴이 불콰해지셨다. 다른 술 보다 제주가 도수가 세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나면 산더미 같은 엄마의 일들이 늘어져 있었다.
밀주를 담을 때마다 늘 엄마의 불법이 난 마음에 걸렸었다.
'우리엄마가 왜 나쁜 일을 하지?'
그걸 정당화시킬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찾질 못해 얼마나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었던지?
이제야 그 명분이 생겼다.
일제가 없앤 '우리의 술' '우리 집의 술'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노라고.
첫댓글 아네스님 어머님 덕분에 우리의 술이 이렇게 잘 이어가고있지않습니까? 명분이 아니라 정말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