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섭목사님의글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외로움 #공동체
#외로움으로인해수단이되고소비되는관계와공동체
1.
혼밥, 혼술, 혼캠, 혼영 바야흐로 '혼0'의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냥하지 말라>의 송길영씨는 변화는 시대의 키워드 세 가지가 '혼자','장수', 무인' 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세가지 키워드를 자세히보면 '외로움' 이라는 공통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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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국가 중 대한민국은 자살률 1위인데, 그중 노인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 장수하는 사회가 되지만 가족이 서로를 돌보지 못하고, 혼자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은 경제적 고통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외로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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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국은 2018년부터 '외로움 장관'을 임명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혼밥의 시대가 되면서 혼자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은 언제나 홀로 있으면 외로운 존재가 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좋지 않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의 연합의 관계성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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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홀로 있지만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느슨한 연결, 즉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디지털의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맞대고 인격적인 만남이 아니기 때문에 헌신이 없는 관계성일 뿐이다. 최명화 대표는 MZ세대의 특징은 '외롭지 않을 정도로 관계를 맺지만 상대방의 삶에는 헌신하지 않는 것' 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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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지털 세대는 외롭지만 자신이 외로운지 모르는 이상한 형태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외로움의 대안이 공동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대안이 될 수 없고 또 공동체가 곧바로 답으로 주어지면 개인의 삶이 무시될 우려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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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시대>를 읽고 있다. 노리나 허츠의 통찰력은 궁금하던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녀는 이제는 외로움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단순히 애정, 동반자, 친밀감을 상실한 느낌이 외로움이 아니라, 외로움은 동료시민, 고융주, 마을 공동체, 정부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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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어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인간 안에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결국 시민으로, 정치적 분노로, 직장에서 공정하지 않는 배제로 이어지는 것에 민감해진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순히 경쟁 시스템 속에서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닌, 개인의 외로움이 사회적 분노로 표출된 것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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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와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외로움이 아니라 정치인과 정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우리의 일과 일터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 사회의 소득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 스스로 힘이 없고 무시당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까지 아루른다. 결국 세계가 이처럼 분열되고 파열되고 양극화된 것은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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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디지털은 우리의 공감능력을 상실시킨다. 왜냐하면 인격과 인격이 만나서 다양할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댓글 논쟁 끝에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고 더욱 성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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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립의 시대의 외로움은 이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정치에 이처럼 열광하고 양극화 하는 이유도 단절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시기에 홀로 있는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공동체로 달려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있음의 참된 시간을 배워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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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 회퍼는 고독이 무서워서 공동체를 찾게 되면, 대개 실망을 맛보며 자신의 잘못이 마치 공동체의 잘못인 양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를 주의해야 한다" 경고하며 "성도의 교제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말한다. 홀로 있음과 함께 있음, 고독과 교제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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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외로움이 진정한 고독으로 이어지려면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홀로 있음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자기에 대한 교만과 열등감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홀로있음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은혜를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교제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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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느 것 하나를 완벽하게 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단순한 개인주의의 해결책이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에 지쳐서 또 다시 개인이 되는 잘못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을 쓴 데니스 오크홈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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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과 홀로 있지 못하고 늘 외부의 자극에만 반응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용히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막막하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친밀한 교제를 배우게 되었고, 하나님과 침묵가운데 교제하는 사람들이 결국 다른 사람의 필요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면에 질서가 잡혀갈 때 삶은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언제나 순서가 중요하고, 하나님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흘러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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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팀 켈러도 <기도>에서 기도를 정의하기를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고 또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면서 우리는 사람을 섬기고 싶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싶은 동기를 가지게 된다. '혼자'의 시대, '장수'의 시대, '무인'의 시대에는 인간소외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대안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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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머무는 고독과 사람을 함께 은혜를 나누는 교제를 통해 혼밥의 시대 속에서 우리를 장악하는 외로움의 실체들을 벗겨내야 한다. 디지털의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야하고, 서로를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