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20:4의 <에제산>의 뜻은 came to life, lived again임.
1. 용어의 정의와 용례
"예수께서 가라사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명사 <아나스타시스>는 <일어나다>는 뜻의 헬라어 <아니스테미>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① <아니스테미>는 이는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살리신 자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② 또 다른 표현으로 <에게이로>가 있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비롯하여 수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③ 또 하나가 바로 <자오>입니다.
<자오>의 일반적 의미는 <살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내세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기 위해 살아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이 말씀에서 <죽어도 살겠고>의 <살겠고>에 <자오>가 사용이 되었는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겠고(come to life again)>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에서 <생명>이 <조에>로서 <자오>의 명사형이니
그럼 이 말씀이 <나는 부활이요 다시삶>이니.....라고 번역을 해야 하는 거냐고 빈정거립니다.
자! 생각을 해 봅시다.
단어는 문장 속에서 문맥에 맞는 용례를 따라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사전적 정의야 모든 용례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정의를 내려야 하지만,
이 사전적 단어의 의미가 문장 속에서 적용되는 것은 각 문맥을 살리는 의미로 사용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에 사용된 <조에>의 의미는 <생명>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 것이고,
<죽어도 살겠고>의 <살겠고>에 <자오>는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겠고(come to life again)> 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임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의 근원으로 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며,
죽어도 산다는 것은 죽더라도 다시 살아난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통념상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계20:4의 <에제산>의 정의와 용례
자!
다음은 계20:4 말씀에서 <살아서>에 해당하는 <자오>의 부정과거형 동사 <에제산>이 사용이 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문맥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계20:4에서 <에제산>의 의미가
① 어느 과거에 살고 있었다(lived)라는 의미인지,
② 어느 과거에 몸이 다시 살아난 것(came to life, lived again)의 의미인지 분별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계20:4 말씀은 사도 요한이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성도들이 앉아 있는데, 그 중에 분명히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나서 앉아 있더라는 것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목베임을 당하여 죽은 자들과, ②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짐승의 표도 받지 않아 죽임을 당한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감동된 것은 이들이 분명히 순교하여 죽었는데, 살아서 그 보좌에 앉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보좌에 앉아 있는 주체가 <영혼>으로서 인지, 아니면 <부활체>로서인지 분별을 해보면 되겠습니다.
순교자들은 이미 영혼이 거듭나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증거입니다.
이미 영혼이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순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영혼이 거듭났기 때문에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짐승의 표도 받지 않아 순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교한 자가 죽임을 당한 것은 <영혼>이 아니라 <몸>입니다. <소마>입니다.
한번 거듭난 영혼은 죽임을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거듭난 자들의 영혼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자!
다음은 그러면 그 순교자들이 순교한 후 그들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사람의 몸이 죽으면 그 영혼은 성도들의 영혼은 <낙원>으로 올라가고,
악인들의 영혼은 <음부>로 내려갑니다.
낙원에 있는 순교한 성도들의 영혼은 요한계시록에서 6장 9절과 7장 9절, 11절에 나타납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은 계6:9에 나타납니다.
이들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순교자들로서 구약 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계6:9)."
②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짐승의 표도 받지 아니하여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은 계7:9에 나타납니다.
이들은 큰 환란에서 올라오는 자들로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한 영혼들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7: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이와 같이 핍박이나 환란에서 순교하는 경우,
그 영혼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이 죽임을 당하는 것임은 분명해 졌습니다.
그러면 계20:4에서 <에제산>의 대상이 <영혼들>일까? <죽은 몸>일까?
① <에제산>의 대상이 <영혼들>이라면 낙원에 살던(lived) 영혼들이 천년 왕국 보좌로 옮겨졌다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
② <에제산>의 대상이 <죽은 몸>이라면 영혼들의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남(came to life again)을 입어 그 부활체로 천년 왕국 보좌에 앉아있다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천년설주의는 이를 ①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순교자들의 영혼들은 죽었던 몸의 부활을 입기 위해 마지막 나팔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4)."
그리고 예수님은 계11:15에 일곱 째 나팔과 함께 오셔서, 세상에 있던 성도들, 즉 하나님의 나라를 부활 휴거시켜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이시고 주께서 세세무궁토록 왕노릇 하실 것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11:15)."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남을 입는 부활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때 부활을 입지않기로 작정한 영혼들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 부활한 자들을 <첫째 부활>이라 하고 있으므로,
부활체가 아닌 영혼이나 사람의 육체를 입고 천년 왕국 보좌에 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계20:4의 <에제산>은 영혼으로 낙원에 <① 살던(lived)> 영혼들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죽었던 몸이 부활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② 살아났다came to life, lived again)>라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음이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낙원에서 지내던 순교자들의 영혼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함께 내려와 그 잠자는 몸이 부활하는 사건을 반드시 지나, 휴거되어 하나님 나라에 바쳐지므로 천년 왕국 보좌에 앉아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문적으로도 계20:4 말씀의 주절에 사용된 동사 "(보좌에)앉은"이 <에카디산(ἐκάθισαν)>으로서 <부정과거 시제>이므로, ①의 천년 왕국 보좌에 앉기 전에 다른 곳에서 살았다(lived)는 의미로 말하기 위해서는 <살았었다>라는 의미의 <완료형 동사>가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부정과거형동사>로 사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에제산>을 <에카디산>과 동일하게 <부정과거>로 사용하려면 그 의미가 came to life, lived again으로서, <살아났다> 또는 <다시 살아났다>라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계20:5의 <첫째 부활>의 의미와도 상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헬라어 사전도 계20:4의 <에제산>의 정의를 "came to life, lived again" 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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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멸절설 사이비 이단은 가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말꼬투리 잡고 늘어지는 영혼들이 있어서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양해하소!
계20:4의 <에제산>은 계11:15에서 성도들이 부활 휴거되는 것을 말한다!
라는 말을 길게 한 것입니다.
구라쉐키 오면 난장판이 될 것이니 미리 충분한 정보를 주려고 그런 겁니다.
에제산이 또 나왔어요? ㅎㅎㅎ.
10년도 더 되지 않았나요? ㅎㅎㅎ
네~!
구라쉐키가 자신의 오류를 땜빵하려고 <에제산>을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자리 펴 주었습니다. ㅎㅎㅎ
또 구라를 치네....
몸은 니몸이 디시 사는것이 아니라
죽은자들의 영의몸을 말하는
것이야 ....
죽은자들의 부활때...
죽은자들이 영의몸으로 일으켜
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러나 다윗은 땅의영광이라
부활할때는 땅에사는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것이야
그러니까
니가 부활때 육의몸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영의몸으로 들어 가느냐는
순전히 너의 믿음에 달려있는겨....
언더스탠?
주님내안에님은 일단 좀 물러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에제산>에 대한 토론이지 <부활>이 뭐냐?라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 주제로는 님이 별도로 게시글로 올려 주시면 거기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crystal sea
그래?
열심히 해라 .....
@주님내안에
가시더라도 이거 한 번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냥 가시면 서운하니......ㅎㅎㅎ
@crystal sea
확대해도 글씨가 흐릿해서
잘 안보이는데
확실한건 니가 쓴글은 대부분
이단사설이라는 것
부활은 구약의 죽은자들이 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혹시나 니육신이 부활하면 그곳은
유황불못임을 명심하거라.....
https://m.cafe.daum.net/aspire7/9z7T/35498?svc=cafeapp
이런 글도 있던데?
이 글에 의하면 병자네
@번개플러스 순수도시 구라 삵쾡이는 상대 안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crystal sea 순수도시님한테는 이 자의 구라가
안 통하나봐요.
@crystal sea 순수도시님한테 트라우마가 있나보네. 아무나 보고 그러네 헛것이 보이시나보네.
@번개플러스
부르르 떨지 마시고 집에 들어가세요~!
순수도시님은 저와 설전을 벌이다 밑천이 다 떨어져 도망간 분입니다.
@crystal sea 사단아 물러가라
@쉐키나
구라쉐키야~!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36계 줄행랑은 누가 치느냐?
순수도시는 성경의 근거가 없으니 도망을 간 것이다.
구라쉐키의 구라는 한도 끝도 없구나. ㅋㅋㅋ
@번개플러스
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