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찾아간 장춘사
시월이 시작된 첫날은 토요일로 개천절까지 사흘간 빨간색이 칠해져 있었다. 자연학교 학생에게는 공휴일과 평일의 구분이 없는 연중무휴 등교였다. 이른 아침 원이대로로 나가 북면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났다.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에서 감계 신도시를 거쳐 무동에서 내렸다. 무동도 감계만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신설된 초중학교가 보였다.
북면 무동에서 조롱산으로 가는 야트막한 고개로 오르니 레이크힐스 골프장이 나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울타리 너머는 잔디밭을 누비는 골퍼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롱산 등산로가 아닌 좁은 농로를 따라 소목마을로 향했다. 소목이라는 마을은 정병산 기슭에도 있는데 무릉산 기슭에도 같은 지명이 나오는데 무척 오지였다. 행정구역은 함안 칠원 산간 마을이었다.
고갯길에서 아직 다 저물지 않은 물봉선꽃 군락지를 만나고 외딴집 농가 고샅에서는 화사하게 핀 코스모스를 봤다. 산짐승의 피해를 막아 보려고 그물망을 둘러친 밭뙈기에는 덩치가 큰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놀라 탈출을 시도하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허둥대며 고생하고 있어 안쓰러웠다. 내가 녀석을 해칠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나를 상위 포식자로 알고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
농로가 끝난 소목마을 앞에 이르니 미역취가 피운 노란 꽃과 기름나물의 하얀 꽃을 만났다. 둘 다 가을 산자락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었다. 소목마을 앞에서 무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들었다. 무릉산은 작대산이 운곡에서 골짜기로 내려와 다시 솟아오른 봉우리로 예전에 물레산으로 불렸다. 멀리서 쳐다보면 전체 산의 모습이 둥글게 보여 커다란 물레가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단감과수원으로 연결되는 임도에서 장춘사로 가는 길로 들었다. 장춘사로 향하는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임도는 길게 이어져 호젓한 길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해발고도가 점차 높아지니 참취는 하얀 꽃을 피웠고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꽃을 피우려고 봉오리를 맺어갔다. 당국에서는 산불 예방의 선제적 조치로 길섶의 소나무들은 간벌해 중장비를 동원해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그냥 지나쳐 장춘사로 향해 갔다. 장춘사는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이 없이 대나무 사립문이 이색적이었다. 대웅전 뒤 돌계단을 올라간 비탈에는 약사전과 독성각과 산신각에 이어 최근 비로전까지 세워져 금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산사는 진입로부터 불편을 감수하고 고즈넉해야 하는데 어느 절이나 자동차로 쉽게 다가가는 편리함만 쫓아 아쉬움이 남았다.
무릉산 서편 산기슭에 들어선 장춘사는 신라 하대 무염국사가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절이다. 장춘사 산사 풍경은 함안에서 선정한 9경의 하나에도 들었다. 창원 근동에서는 성주사와 성흥사와 우곡사도 무염국사가 세웠다는 절이다. 장춘사에는 물맛이 좋기로 알려진 약수터가 있었는데 한때 문화관광부가 정한 우리나라 약수 100선에도 들었던 샘물이었지만 지금은 수량이 줄었다.
장춘사 약수는 창건주 무염국사와 얽힌 전설이 전하는데 함께 수행하던 덕원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제자가 불치의 병을 앓자 스승 무염국사가 치유를 염원하는 기도를 하는 중에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떠나지 않고 지저귀는 곳을 파 보니 샘물이 솟아나더란다. 스승이 그 샘물을 제자 덕원에게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 나았다는 이야기로 지금은 약사전 곁에 돌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장춘사 경내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려 절집에서 나와 양촌으로 내려가니 남정네와 아낙들이 길바닥의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칠원 읍내로 가려고 양촌에서 운곡을 거쳐 운서로 나가는 들녘에는 벼들이 익어 고개를 숙여갔다. 이맘때 조물주가 빚어내는 자연의 색상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야흐로 가을이 이슥해져 가는 즈음이었다. 2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