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68장 (구 486장) / 에베소서 4 : 1 - 1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68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절 – 10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당선 된 후, 가장 먼저 한 말이 “우리는 하나” 였습니다. “나는 민주당도 아닙니다. 공화당도 아닙니다, 나는 진보도 아닙니다. 나는 보수도 아닙니다. 나는 오직 미합중국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 이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이미 성경이 말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가장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지만 편지를 많이 쓰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 할머니가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려고 줄을 서 계십니다. 연말이어서 줄이 꽤 길었는데 우체국 직원이 할머니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혹시 우표 사시려고 줄 서 계신 것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 그러자 우체국 직원이 “할머니! 저기 우표를 사는 자동판매기가 있는데, 저 기계에 돈을 투입하시면 우표가 나옵니다.” 라고 말하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알아요. 하지만 저 기계는 저 앞에 서 있는 직원 아가씨처럼 나에게 요즈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아픈 데는 없는지 묻는 일이 없답니다.” -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는 성도들의 삶을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바꾸면 교회란 “형제님! 자매님! 어떻게 사셨어요. 어디 아프지 않으셨어요?” 라는 물음과 돌봄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는 시간에는 삶을 나누는 일까지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셀 목장입니다. 불과 열 명 내외의 성도들이 교회 내의 작은 공동체인 셀 목장이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삶을 나누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소그룹 셀 목장을 통해 건강한 친교로 서로가 평안으로 충만함을 경험할 때 우리는 샬롬! - 곧 화평케 되는 친교로, 삶의 활력을 얻고 영적 승리의 원천인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가 셀 목장 모임으로 모일 때마다 이런 화평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셀 목장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샬롬 대신에 갈등과 상처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 되는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는 힘써 개발해야 할 인격적인 덕목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덕목들이 네 가지인데,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나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그런데 네 가지 덕목들은 두 가지씩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겸손과 온유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겸손이란 말은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이고, 온유는 “자신의 감정을 부드럽게 절제함” 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온유할 때 이웃을 향해 겸손한 자세로 설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을 겸손과 온유로 대한다는 말은, 때로 정말로 화가 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오히려 그를 섬기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9) 우리를 마땅히 심판하실 그분이 오히려 자신을 낮추시고 오셔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는 진실로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제자들입니다. 여러분! 화평의 코이노니아를 열망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학습하십시오. 그냥 겸손이 아니라 모든 겸손이라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모든 상황, 모든 곳, 모든 자리에서의 겸손과 온유의 태도야 말로 우리를 화평의 삶으로 인도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정말로 겸손합시다.
다른 하나는 오래 참음과 용납입니다. 우리가 부부간이든지 성도들 간이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대하여 오래 참지 못하고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자신을 거역하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 탕자에게 오래 참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받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참고 용납해 주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탕자는 비로소 새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화평의 사람이 되려면, 사랑으로 우리 곁의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상대방의 변화가 일어나고, 서로 화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떤 성도님이 목사를 찾아와 기도를 부탁하기를 “목사님! 저는 오래 참음이 부족합니다. 제가 누가 뭐라 하든 오래 참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목사가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성도님에게 환난을 보내 주시옵소서.” 그러자 그 성도님이 기도하고 있는 목사의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환난이 아니라 오래 참음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성도님! 환난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오래 참음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에서 바울이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 그렇습니다. 진실로 오래 참음은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당했을 때에 배울 수 있는 사랑의 성품입니다.
환난 중에 가장 지독한 환난은 사람 때문에 당한 환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저와 여러분이 오래 참는 사랑의 열매인 동시에,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사람을 통해서 환난을 당하도록 합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워 질 때 정말 삶은 지옥처럼 숨 막히는 고통일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자매간의 관계, 직장동료와 고객들과의 관계,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 등등, 우리는 관계를 통해 오래 참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고 도저히 오래 참을 수 없고, 용납할 수 없을 때에, 여러분!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하루에도 수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롱하고 대적한 사람들, 날마다 죄와 허물로 가득한 악한 우리 인생들을 보시면서도 오래 참으시고 용납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임을 믿는다면, 우리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오래 참고, 사랑으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상처를 입고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오래 참고 용납하고 양보 할 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결국은 그렇게 오래 참고 용납하는 내게 유익이 되고, 복이 온다.” 고 말씀합니다. 무슨 유익과 복입니까? 오래 참음과 용납을 통해서 우리의 모나고 거친 성격과 인격이 다듬어져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되는 유익과 복입니다.(엡 4: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과 서로 용납하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화평을 누림으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행복이 되는,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가지는 유익이라는 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