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적천사를 찾아갔다.
청도는 가까우면서도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만촌 로타리에 청도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었으나 개발에 밀려 사라지면서 청도로의 여행길은 더 어려워졌다.
또 하나는, 청도에는 운문사를 제외하고는 이름 난 사찰이 적어서 절집 답사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청도에는 내가 답사여행으로 들려 본 사찰이 한 두 절 정도이다. 그러나 적천사는 예전에 답사팀과 함께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적천사가 찾아가보고 싶은 절로 떠올랐다.
인터넷 검색으로 교통편을 찾아보니 시외버스 보다는 무궁화 호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해보였다. 무궁화 호 기차는 생각보다 자주 다녔다. 그러나 청도읍에 닿은 후는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할 터인데. 청도읍에서 면, 읍 단위로 가는 시내버스는 하루에 3회 정도였다. 다른 지역의 마을버스와 같았다. 그런 버스를 계획표에 넣을 수 없다. 그래서 청도에서 가깝고, 택시로도 갈 수 있는 곳을 선정하여, 갈 때는 택시로, 내려 올 때는 내리막 길이니 운동삼아 걸어오면 좋을 듯하다. 그런 절을 선정하여 덕사에 갔다. 막상 덕사에 가니 너무 가까운 거리여서 하루 여행을 끝내려니 마음에 차지 않았다.
“절 하나를 더 다녀오자.”
내가 집사람에게 말을 꺼냈다. 아내도 좋다고 했다. 청도 시내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아내는 어디서 안내판을 보았는지 적천사까지는 3.4km라고 했다. 다시 계산을 해보고 나서는, 그러면 갈 때는 택시로 가고,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니 걸어서 오면 운동량으로 적당하겠다고 했더니 집사람도 좋다고 했다.
택시를 불러서 적천사로 갔다. 밀양 쪽의 국도를 한참이나 내려가더니 골짜기로 들어가서 산길을 올라갔다. 화악산이라고 했다. 골짜기의 산길을 오르면서 택시 기사 아저씨는 골짜기 길은 운동삼아 내려오시고, 국도가 나오면 전화를 하세요. 읍내까지는 꽤 멀어요 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3.4km인데, 걷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절 앞의 몇 아름이나 되는 은행나무 밑에 내려주었다. 은행나무를 기리는 비문에 이 절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여기의 주인이 절인지, 나무인지 헷갈린다.
이 절을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심지왕사가 주재했으며 고려 때의 지눌선사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원효대사 창건설은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역사상으로 지눌선사와는 관계가 깊은가 보다.
청도에 와서 이 절을 말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 앞의 은행나무 이야기를 했다. 800년 너머 된 노거수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눌선사와의 관계를 많이 이야기 했다. 지눌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더니 뿌리를 내리고, 잎이 돋았다는 것이다. 이 절의 절문 바로 앞에 서 있으니 1000년 가까이 절을 찾아오는 이 고을 백성들을 지켜보았고, 그 백성들 또한 나처럼 이 나무를 기억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나무는 이 절을 지켜온 지킴이 이며, 이 절의 정신적 지주이면, 이 절의 역사였다.
이 절의 영산전에는 오백 나한님이 계셨으나 지금은 모두 운문사로 거처를 옮겨서 그 곳에 계신다고 하였다. 아마도 예전에는 이 절의 위세가 더 높았으나. 어느 시기부터 절의 위세가 운문사에게 밀렸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의 운문사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느라 속세의 시끄러움이 그대로 찾아와서 조용한 절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는 화악산 골짜기가 깊어서인지 정말 산속 절간마냥 조용하다. 절다운 분위기가 더 깊이 느껴진다. 이 절을 두고 왜 시끄러운 운문사로 거처를 옮겼을까. 부처님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두고, 어디 속세의 잡스런 생각으로 속 깊은 부처님을 속단하느냐며 나무라실 것 같다.
지난날에 답사팀과 더불어 이 절을 찾아왔을 때보다는 절집 건물들이 더 많이 들어서 있다. 하기야 요즘에 절을 찾아가보면 중창의 망치소리가 요란하고, 절은 새옷으로 단장한 새댁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절의 축대며, 절 마당의 돌 하나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석재들은 오래된 역사가 묻어 있는 듯 옛티를 풍기고 있어 무거워 보인다. 나는 절 앞의 바위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쉬었다.
아내가 절 안을 돌아보고, 법당에까지 들린 후에 나에게 왔다. 우리 부부는 준비해간 도시락을 꺼내서 점심식사를 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도시락 밥을 먹는 우리 모습이 신기한 듯이 말을 건넨다. 내려가는 길은 자기네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운동삼아 걸어서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네 두 분이 함께 다니는 것이 보기 좋다는 말을 했다.
이제는 내려올 참으로 은행나무 밑으로 와서 다시 절을 올려다 보았다. 옛 모습이 가득한 절의 분위기가 고요롭다. 인악 대사가 지었다는 시가 생각난다. 조용한 절의 분위기를 정말 잘 표현하였다 싶다.
숲 넘어 먼 산에서 종소리 들려오니
푸른 봉우리에 절간이 있겠구나.
나무가 울울한 나무는 문 두드리는 달빛을 가리고
골짜기 물소리가 문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에 화답하네
물은 흰 짚을 깔아놓은 듯 돌 위로 흐르고
무지개는 푸른 담쟁이가 늙은 소나무 위에 걸친 듯이 보인다.
신령한 노인이 며칠을 머물더니
옛날 보조가 유적을 보였다네.
제법 늦은 오후녁이지만 햇살은 아직 많이 따갑다. 우리 부부는 내리막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내리막길이라 조금은 수월하고, 녹음으로 뒤덮인 골짜기의 풍광이 더 없이 보기 좋다. 길가에는 석류나무, 대추나무 감나무가 서 있고, 꽃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다. 간간이 팬션이라고 하던 집들이 색색의 지붕을 하고 있어 그림 같다. 밀양으로 가는 국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의 마을에 닿았다. 마을 앞의 정자가 있는 곳의 나무 밑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으니 승용차 한 대가 선다. 차창이 내려가더니, 절에서 만났던 부부가 우리더러 또 태워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걸어가겠다면서 친절을 고마워하면서도 사양했다.
국도를 따라서 청도역까지 걸어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도 멀었다. 밀양까지의 거리 표식으로 가늠해보면 거의 3km가 넘지 않나 싶은데, 아내의 잘못된 계산으로 1km 쯤으로 생각하였으니 --- 산 모퉁이를 돌아가면 또 산 모퉁이가 나타나고, 어쨌거나 잘못된 계산 덕에 오늘도 걷기 운동은 충분하게 하였다.
청도역에 오니, 우리 부부가 대구로 가는 무궁화 호 출발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했다. 노인네라고 차비마저 깎아주어서 대구까지 차비가 1500원이었다. 경주의 시내버스비보다 싸다.
오늘도 절집 답사를 무사히 마쳤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