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조도 등대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 1-2 번지
하조도 등대는 1909년 2월 1일 불을 밝혔다. 하조도 등대는 진도와 조도 사이를 지나 서해로 올라가거나 남해로 내려가는 어선, 화물선, 무역선 등에 불을 밝혀 안전항해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또 하조도 등대를 기준으로 서해와 남해가 좌우로 나뉜다. 그러니까 오른쪽은 남해, 왼쪽은 서해가 되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은 추자도는 물론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돈대봉에서 보는 다도해와 함께 조도에서 꼽는 경치는 하조도 등대에서 보는 일출이다.
하룻밤을 머물러야 가능한 일이다. 등대는 불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TV는 구경도 못한 사람도 많았다. 당시 섬에서 유일한 문화생활인 TV를 시청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TV 드라마 ‘여로’, ‘파도’는 섬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최고였다. 저녁을 마친 주민들은 초등학교에서 의자를 가지고 등대 마당으로 모였다. 또 조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단골 소풍 장소 역시 등대였다. 조도 사람은 등대 앞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제는 주민들보다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로 바뀌었다.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
관광객들이 상ㆍ하조도에서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상조도 도리산(210m) 전망대다. 도리산 입구에서 1.8km 거리다.
도리산 전망대는 하조도 돈대봉 정상과 함께 다도해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도리산 정상에 서서 360도 눈과 몸을 돌리며 바라보는 신비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떼 같다던 섬들이 한눈에 펼쳐내는 풍경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하조도를 비롯해 나배도, 대마도 등 주변의 올망졸망한 섬들과 멀리 독거도, 동거차도, 맹골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사방에 떠 있는 섬들을 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빠져든다. 이곳에서 섬과 섬 사이에 떠올랐다가 다시 섬과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해넘이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도대교 한 가운데 흰 교각이 보인다. 다리 건너 왼쪽이 상조도, 오른쪽이 하조도다.
1816년 9월 대영제국의 중국사절단(암허스트경 일행)을 수행한 호위함 라이러호의 함장 바실 홀 대령(28세) 일행은 상조도 도리산에 올라 사방의 보석같은 섬들을 둘러보면서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the glamor of the world, the earth-)”라고 말했다. 브라질을 거쳐 6개월의 긴 항해 끝에 목적지인 중국 천진항을 경유 이 곳에 왔고, 세계 곳곳을 다녀봤던 군인 겸 여행가의 입에서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한국의 ‘카프리’, 한국의 ‘하롱베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당시를 부언하자면, 이들 이방인들은 상조도 주민들에게 얼마나 경계의 대상이었을까? 주민들에게 여러 차례 대화 시도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주민들의 파이프 담배(곰방대)가 영국인들에게 권해지고 이에 화답하여 주민들에게 와인을 일곱 병이나 전달돼 “좋다”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전해진다.
1817년 8월11일, 귀국길의 바실 홀은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귀양 중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아버지의 파리 군사학교 동기)를 만나 동방의 나라 조선에 대한 얘기를 전하면서 조도군도의 섬들을 설명했고 그의 설명을 들은 나폴레옹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홀 선장의 조도 얘기는 일본 오키나와(沖繩) 일대까지 탐사해서 1818년 영국 런던에서 펴낸 ‘조선 서해안과 류큐섬 탐색항해 전말서’란 책에 기록돼 전하고, 상조도를 그린 당시 그림이 영국 런던 캠브리지 국립해양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 중 조선과 관련된 내용은 <10일간의 조선항해기>(삶과 꿈)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바실홀 기념공원
바실홀 기념공원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도리산전망대 인근에 조성된 공원이다.
바실홀은 영국 해군 장교이자 여행가로 1816년9월 라이러호를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후 돌아가던 중 조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진도군은 이를 기념하고자 상조도 도리산에 바실홀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바실홀은 자신의 저서인 "조선 서해안 및 류큐제도 발견 항해기(10일간의 조선 항해기)"에서 조도를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바실홀 기념공원에는 조도를 발견하고 떠나는 바실홀의 모습 등을 조형물로 표현한 작품도 설치되어 있다.
조도의 도리산에 올라 이곳의 장관을 표현한 내용도 10일간의 조선 항해기에 담겨져 있다.
지금도 영국지도에는 하조도는 엠허스트섬, 상조도는 몬트럴섬 등 선원의 이름을 따서 섬 이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바실 홀을 따라서①…10일간 조선해안 탐사
이효웅 해양전문가
아틀라스뉴스 기사 승인 2022.05.07. 12:10
1816년 9월 영국 해군함장 바실홀, 옹진군 소청도, 충남 서천, 진도 상조도 탐사
바실 홀(Basil Hall)은 1816년 인도 총독 애머스트경(Lord Amherst) 일행이 대영제국을 대표해 청의 가경제를 알현하러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수행한 영국 해군장교다. 영국 사절단이 베이징에 머물 때 홀은 조선 서해와 동지나해를 탐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동양과 서양의 패권이 부딛친 아편전쟁 전의 일이다. 때는 순조 16년(1816), 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던 조선 해안에 두 척의 영국 전함이 열흘간 훑고 지나갔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그레이트게임을 벌이던 영국이 극동아시아로 확전하기 앞서 동아시아 바다에 대한 지리 정보를 확보하려는 차원이었다.
1816년 8월 두 척의 영국 함정이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를 출발했다. 한 척은 맥스웰(Murray Maxwell) 대령이 지휘하는 알세스트(Alceste)호이고, 다른 한 척은 바실 홀 중령의 리라(Lyra)호였다. 조선 해안에 대한 지도 작성과 정보 수집이 목적이었다. 바실 홀은 항해를 마치고 2년후(1818)에 ‘조선 서해안과 류큐 항해기’(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he Great Loo-choo Island)를 출간했다. Loo-choo는 류큐(琉球), 즉 오키나와 열도를 의미한다.
바실 홀(1788~1844)이 서술한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가 첫 상륙한 곳은 북위 37° 50‘, 동경 124° 50’으로,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의 피부색은 구릿빛이었고 무서운 얼굴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약간 야만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그들의 지위는 모자로 구분이 되었는데 모자의 차양은 지름이 1미터이고 모자의 높이는 23센티미터였다. 모자라기 보다는 양산 같았다.“
그가 양산 같았다고 한 모자는 양반들이 쓰던 갓이었다. 영국인들은 마을로 들어가 대표자들을 만났다.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아 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조선인들의 생각을 짐작하는 게 전부였다.
바실 홀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곳 사람들은, 태연자약과 무관심이 한데 섞인, 일종의 우쭐대는 몸가짐의 소유자들이었다. 때로 몸짓, 손짓과 그림을 통해 던진 질문의 내용이 명확히 확인되었을 경우에도 그들은 비웃음과 콧방귀로 깔아뭉갰다. …… 이곳 사람들은, 태연자약과 무관심이 한데 섞인, 일종의 우쭐대는 몸가짐의 소유자들이었다.”
마을의 대표들은 나이 많은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 양반들의 허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실 홀이 소청도에 만난 조선 사람의 모습은 삽화로 그려져 그의 책에 삽입되어 있다. 삽화는 다른 사람이 그렸는데, 조선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생활습관이 담겨 있다.
영국인들은 소청도를 떠나면서 이곳 세 개의 섬을 에든버러 학술원 총재이자 바실 홀의 부친인 제임스 홀의 이름을 따 'Sir. James Halls Group'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 다음 도착한 곳은 9월 4일 마량진(馬梁鎭)이다. 조선시대 마량진은 지금의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다. 영국인이 이곳에 도착한 사실이 순조실록(16년 7월 19일)에도 기록되어 있다. 실록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이르렀다.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이상한 모양의 배가 떠 있는 곳으로 가서, 한문으로 써서 물었더니 모른다고 머리를 젖기에, 다시 언문으로 써서 물었으나 또 모른다고 손을 저었다. …… 그들이 책 두 권을 끄집어 내어, 한 권은 첨사에게 주고 한 권은 현감에게 주었다. 그 책을 되돌려 주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기에 받아서 소매 안에 넣었다.”
영국인들이 준 책이 바로 영어로 된 성경이다.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 했던 것이다. 서천군에는 성경전래지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마량진의 조선인들은 서양인들이 귀찮기만 했다. 마량리 관리들은 영국인들이 빨리 섬을 떠나길 바랬다. 말도 통하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 곤장을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신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곤장을 칠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마량진을 떠난 두 척의 영국 함선은 1816년 9월 8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상조도에 도착했다. 영국인들은 지금 도라산 전망대가 있는 상조도 정상에 올라 100여개의 섬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오르려고 마음 먹었던 높은 봉우리의 산은 비탈이 가파르고, 높다란 잡초에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해발 600피트(180m)의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지쳤다. 산마루에 오르니 북쪽에서 동쪽으로 조선 반도가 어렴풋이 분간되었다. 눈길이 닿는 한 올망졸망한 무수한 섬들이 북서에서 동으로 돌아 암쪽으로 뻗어가는 장대한 광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28세의 영국 해군장교는 다도해를 바라보고 “지구의 극치”, “세상의 극치”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바실 홀은 조선 서해안을 탐사한 이후 동지나해로 남하해 오키나와 열도를 탐사했다.
그는 1817년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만났다. 홀은 나폴레옹에게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고, 나폴레옹도 조선에 대해 동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조도 등대 위치도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