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작전, 영국으로 담배 8보루를 반입시켜라.
떠난 오빠와의 이별을 잠시 아쉬워하며 한숨 더 잘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짐 때문에 아까처럼 편히 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천근만근 눈꺼풀을 억지로 떼어내고
파워레인저 빔과 같은 유럽의 햇살로부터 내 거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을 사면서
면세점 눈요기를 하곤 여유롭게 런던행 게이트에 도착했다.


싱가폴 창이공항 내부 모습
출발시간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버려 온몸은 삶은 파처럼 축 퍼져서 지루함과 씨름하고 있는데
어느새 마피아 영화에 나옴직한 인상 더러운 심사관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미국 다음으로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영국의 입국 심사관들에게
부처님과 같은 자비로운 미소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입국 법 깡그리 무시하고 밀반입을 시도한 나는 어쩌라고 저들은 저렇게 밖에 생기지 못한 것인가.
무섭다. 도망가고 싶다. 면세점 캐셔가 한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로 한없이 작은 마음이 되서
입국 카드를 영한전자사전을 두들겨 가며 작성하고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입국심사대 줄에 합류했다.
중범죄라도 지은 마냥 한없이 쫄고 쫄아 쫄면이 되어가는 와중에 내 순서가 찾아왔다.
“레이디!”
‘벌써 걸린건가?’
준비해둔 골초라는 변명을 영작하려고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대뇌의 주름들을 꿈틀거렸다.
“음. 저 I'm a heavy...”
“여권에 싸인은 왜 빠뜨린거야? 싸인없으면 입국 못해. 싸인해.”
“어?? 네?? 아~ 할게요. 할게요.”
고작 싸인 해라고 말하는 데도 어찌나 차갑게 말하던지.
시베리아 바람도 그렇게 내 마음을 떨리게 할 순 없었을 것이다.
차가운 사람들.
불평도 잠시, 곧이어 몸수색을 할 차례가 왔다.
‘쫄지 말자. 이러면 더 티나. 미소라도 지어 볼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다잖아?’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_-;
그렇게 입꼬리의 경련을 일으키는 안하느니만 못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금속반응기를 통과하고
내 배낭, 캐리어, 크로스백 그리고 문제의 담배 8보루가 든 쇼핑백들이 검은 장막을 통과했다.
‘의연하게 대처하자. 어제 오빠한테 물어봤을 때 담배따위는 신경도 안 쓸거라고 했잖아.
그래. 지금 너 혼자 오바하는거야. 아무 일도 없을테니깐 그냥 태연하게 여기만 뜨면 되는거야.
알겠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 자리를 뜨는 거야. 그러면 되.’
아무래도 난 원맨쇼의 달인인 것 같다. -_-;
그렇게 내 속에 있는 극소심한 나에게 궁시렁궁시렁 위로를 하며 짐들이 검은 장막을 통과되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 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순간을 기다린 나는 부리나케 그 쪽으로 다가섰다.
“Excuse me. Lady!”
헉!!!! 딱.걸.렸.다.
‘튀자. 아..아니지. 의..의연하게..’
‘어떡하지?’
‘아! 골초! 골초! 골초라고 해야지. 그래. 골초!’
그렇게 난 나름 의연한 척하며 밑도 끝도 없이 심사관에게 태연하게 말문을 열었다.
“음. 저 I'm a heavy smo...”
"Open your bag!"
그렇게 적장의 목을 베듯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말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던 나의 기를 확 꺾어버렸다.
소심한 나는 바로 굴복하고 체념하며 쇼핑백쪽으로 다가섰다.
“아니. 그거 말고 배낭.”
‘응? 배낭? 담배가 아니고?’
일단 담배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배낭에는 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열어 보라는 것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시키는 대로 잘도 파헤치고 또 파헤쳐 배낭 속에 있는 속옷, 수영복, 가이드북, 멀티콘센트 등
모든 것들을 빼냈지만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저 작은 앞 주머니, 그거 열어봐!”
“왜왜!! 나한테 왜이러는 거야! 너희 입국심사관이면 다야?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속옷까지 대대적으로 공개했는데 내 배낭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계속 열어라는 거야?”
라고 심장은 궁시렁거렸지만 몸은 말 잘 듣는 새색시처럼 순순히 심사관에게 따르고 있었다.
그 순간!!!
정체불명의 묵직한 것들이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고
촤~하고 쏟아져 나왔다.
“너! 이거 뭐야?”
이거? 이거 뭐지? 내가 이런 걸 들고 왔었나? 뭐지 이거?
“이거 뭐냐고!”
아! 그제서야 떠올랐다.
“아~ 이거? It's Korea coins.”
그랬다.
길 위에서 좋은 사람들 만나면 선물로 주려고 동전을 구10원, 신10원, 50원, 100원별로 50개씩,
총 200개의 동전들, 그러니깐 검은 장막 카메라로 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꽤 큰 금속 덩어리가
의도한 듯이 숨겨진 모양새로 배낭의 작은 주머니에서 발견되니 심사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의심할 수 밖에.
다행이도 나를 향한 의심은 풀리고 소쿨한 심사관들은 Sorry라는 심플한 사과를 내뱉고 돌아섰다.
나는 집에서도 치밀한 설계 끝에 지퍼를 잠굴 수 있었던 짐들을 다시 배낭에 밀어 넣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며 심사대 위에서 흩어진 짐들을 챙기며 나의 백만불짜리 달팽이관은 소쿨 심사관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근데 이건 뭐야?”
“타바코”
‘응? 뭐라고? 타바코? 그러니깐 그냥 타바코? 너희 눈 뒀다 뭐하냐!
너희나라는 1보루만 들고 갈 수 있는 거잖아! 난 8개나 들고 있어! 근데 그냥 타바코? 끝?’
안 걸려서 정말 다행이긴 했지만 혼자 밀반입이니 어쩌니 하며 쌩난리부르스를 떨던
원맨쇼의 달인(원달) 배레몽의 모습이 떠올라 참으로 분했다.
걸리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심심한 관심도 두지 않는 담배따위 때문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폈다한 것이 참으로 씁쓸했다.
그렇게 분한 가슴을 꽁꽁 숨기고 정신없이 널브러진 짐들을 챙기느라 심사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소쿨 심사관들은 뒷 사람들 짐이 내 쪽으로 나오니깐 좀 비켜서 해라는 핀잔까지 잊지 않았다.
젠장. 망할.
그렇게 일대 생난리부르스 일人 퍼포먼스를 펼친 후에야 런던행 비행기에 무사히(?)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치열한 입국심사를 거치며 구겨진 비행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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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이 떴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여행에 관심을 가져주실 줄 몰랐어요.
본격적인 여행에 돌입하지 않은 상태라 사진도 많이 없고 상태들이 많이 구리네요.
빨리빨리 진행시켜야겠어요.
처음 한 해외여행이였고 더군다나 혼자여서 초반에 삽질이 많습니다.
핵심만 간추려 쓰려해도 내용이 자꾸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앞으로도 부지런히 올리겠습니다.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
첫댓글 우와~ 일등이당 ㅋㅋ 저도 조만간 갈껀덴 담배 사들고..ㅋㅋ 쿵쾅거리는거 이해가 갈듯..ㅋㅋ 나도 많이 사들고 가야겠당 소심하게 2개 생각하고 있었는데..ㅋㅋ 님 글 넘 잼있어요~ 다음 꺼도 기대 대요~!
ㅋㅋ 동전 가져갈 생각은 한번도 못했었는데.. 많이도 가져갔네요.. 밀반입(?)을 축하해요.. ㅎㅎ 더 기대되는데요..
재미있군요...항상 마음으로 성원하면서, 다음글을 기대해 볼께요..^^
빨리빨리올려주세요..ㅋㅋ 글을재밌게잘쓰시네요~ㅎㅎ
담배. 3달전 배낭여행 떠날때 런던으로 인. 17보루 샀는데요 - 무거워죽는줄알았어요..담배가 그렇게 무거울지 상상도 ;;;;;ㅋ 천으로된 큰가방이 담배사가긴 좋은거 같애요 - 혹시 걸릴까봐 걱정하기두했지만.. 전혀 검사안하더라구요^^다른분들도 괜찮으실꺼에요 ㅋㅋ 지금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을까...싶긴해요..;;;;ㅋ
17보루나 사가셨어요?? ㅎㅎ 대단하세요. 진짜 무거웠겠어요. 천으로 된가방.. 다음에 꼭 가져갈게요.. ㅎㅎ
ㅋㅋ저두 예전에 짐 홀라당 깐거 생각하면 ..........무튼..넘잼있네요.
걸린줄 알았는데 동전이었군여ㅋㅋ 여행기 정말 재밌어여~ㅎㅎ
제발 다음 편좀..얼렁 올려주세요..ㅎㅎㅎㅎ
저두 예전에 공항에서 동전때문에..ㅋㅋㅋㅋㅋㅋ 직원왈 : 고객님~ 여기 쇳덩어리는뭡니까? ㅋㅋㅋㅋ
다들 담배건은 심각하게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