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한 몸이 된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심사(心事)는 한 없이 맑다
採菊東籬下 캘 採, 국화 菊, 동녘 東, 울타리 籬, 아래 下.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다”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으로 이어진다.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어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한폭의 그림같은 이 구절은 도연명(陶淵明)의 연작시‘음주’(飮酒)의
다섯번째 작품에 나온다.
채(採)자는 채(采)로 표기되기도 한다. 둘다 캐다는 뜻이다.
도연명(365~427년)은 중국 동진 후기에서 남조 송대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이다.
호는 연명(淵明), 본명은 도잠(陶潛)이다.
집에 버드나무 다섯그루가 있다고 해서 오류(五柳) 선생으로도 불린다.
중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호방한 이백, 인생살이의 고단함이 배인 두보와 달리 욕심없는 마음으로
자연에 심사(心事)를 담은 맑은 시가 특징이다.
복숭아꽃 피는 유토피아인 무릉도원(武陵桃源) 고사를 낳은
‘도화원기’(桃花源記)와, 전원 생활의 동경을 담은
‘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대표작이다.
‘음주’의 다섯번째 작품은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는지 지금도 절로 감탄이 나온다.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사람사는 곳에 오두막집 지었지만) /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시끄러운 수레 소리 없네) /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어찌 그럴 수 있나 물으면) /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마음이 멀면 사는 곳도 절로 외딴 곳이 된다네) /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밑 국화를 꺾어 들고) /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산 기운은 해 기울자 더욱 아름답고) /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나는 새들도 서로 짝지어 돌아오네) /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이가운데 참 뜻 있어) /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분별하려 해도 말을 잊었네).
몸은 사람 사는 곳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속세를 떠나 번거로움과 번뇌가 사라졌다.
가을의 한폭 그림을 보는 듯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사물과 나를 모두 잊은
‘물아양망’(物我兩忘), ‘물아동망’(物我同忘)의 경지다.
자연에 감정을 이입시켜 물아일체를 느끼는 건 소중한 미적체험의 일종이다.
푸른 가을 날, 선인이 남긴 시에 한때나마 물아일여를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일부
永遠不滅天命無限 (인생사랑 영원한 하늘의 명은 사랑으로 한이 없다)
鳳飛千仞飢不啄粟 (봉황이 천리를 날아 아무리 배가 고파도 조를 쪼아 먹지 않는다.)
渴水飮盜泉天 (목이 말라도 도둑 샘물은 마시지 않고)
熱不息惡木陰 (몸이 더워도 나쁜 나무 그늘에는 쉬지 않는다)
梅花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접지 아니하고)
桐梧千年老持律格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그 가락을 잃지 않는다)
우리 옛 선현들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아도 남의 물건을 탐 하거나
아무리 그 지위가 천박하게 되었어도 그 기개와 품격을 지키며 살아왔다.
조그마한 연못에는
연꽃이 미소를 짓는다
연꽃 향기가 온누리를 덮는다
날아든 벌에게 꿀을 나눈다
생명이 자라고 있다
연꽃은 더려운 진흙속에
몸을 담고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지조있게 살아
맑고 향기로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한다
香遠益淸(향원익청) 處染常淨(처염상정)
자신의 향기 잃지 않고 지조로 살아라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제 가락을 지니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디 모습 남아있고
柳經百別又新枝(류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연꽃같은 處染常淨(처염상정)으로 세상을 정화 시키고
소나무처럼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 잃지 않는지조로 살며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제 가락을 지니고
不賣香(불매향)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향기를 지니고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디 모습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나는
지조의 친구가 참된 친구이다 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