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통일(三國統一) -
진주(晉主) 사마염(司馬炎)은 양호(羊祜)의 유언(遺言)에 따라 두예(杜預)를 진남 대장군(鎭南大將軍) 도독 형주사(都督荊州事)에 봉(封)했다. 두예(杜預)는 부지런하고 노련(老鍊)했으며, 학문(學文)을 좋아했다. 특(特)히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전(春秋傳)을 즐겨 읽어, 자리에 앉든지 눕든지 항상(恒常) 손에서 춘추전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두예(杜預)에게는 '좌전벽(左傳癖 : 좌전에 미친 사람)'이라는 별명(別名)이 있었다. 두예(杜預)는 황제(皇帝)의 어명(御命)을 받들어 양양(襄陽)으로 가서 백성(百姓)들을 돌보고 군사력(軍事力)을 양성(養成)하며 오(吳)를 정벌(征伐)할 준비(準備)에 매진(邁進)했다.
그무렵, 오(吳)나라에서는 노장(老將) 정봉(丁奉)과 육항(陸抗)이 모두 세상(世上)을 떠났고, 오주(吳主) 손호(孫皓)는 매일 술잔치를 벌여 놓고 즐기느라 여념(餘念)이 없었다. 손호(孫皓)는 괴팍(乖愎)한 술자리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하(臣下)들로 하여금 술을 진탕 마시게 해놓고는 잔치가 파하면 감주관(監酒官)에게 신하들의 술취한 실태(實態)를 낱낱이 고(告)하게 하여 잘못이 있는 자(者)의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알을 뽑아내는 형벌(刑罰)을 내리는 것이었다. 손호(孫皓)의 이러한 행태(行態)에 조정(朝廷)의 신하(臣下)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백성(百姓)들도 모두 공포(恐怖)에 떨었다.
진(晉)나라 익주 자사(益州刺史) 왕준(王濬)은 오(吳)나라의 상황(狀況)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침내 황제(皇帝)에게 상소(上疏) 하나를 올렸다.
“오주(吳主) 손호(孫皓)의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흉폭(凶暴)한 태도(態度)가 날이 갈 수록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속(速)히 오(吳)를 정벌(征伐)하소서. 혹여(或如) 손호(孫皓)가 죽고 다시 어진 임금이 옹립(擁立)하면 동오(東吳)의 기강(紀綱)이 단단해져서 깨치기 어려워 질 것이옵니다. 게다가 신이 함선(艦船)을 만든지 벌써 칠 년째라 날이 갈 수록 함선(艦船)이 낡고 있습니다. 또, 신의 나이도 이제는 칠십(七十)이라 언제 죽을지 앞날을 알기 어렵사옵니다. 지금을 놓치면 언제 또 기회(機會)가 올지 알 수 없사옵니다. 부디 폐하(陛下)께서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잃지 마소서.”
진주(晉主)는 상소(上疏)를 읽고는 동오(東吳) 정벌(征伐)에 관해 상의(相議하기 위해 신하(臣下)들을 소집했(召集)다. 진주(晉主)가 말한다.
"왕공(王公)이 올린 상소(上疏) 내용(內容)이 바로 양호(羊祜) 도독(都督)의 뜻과 같소. 짐(朕)은 이미 뜻을 정(定)했소."
시중(侍中) 왕혼(王渾)이 나서서 아뢴다.
"신(臣)이 듣자하니 손호(孫皓)가 우리와 맞서기 위해 군사(軍士)들의 기세(氣勢)를 바짝 올리며 만반(萬般)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하옵니다. 제 풀에 지치도록 일 년만 기다렸다가 공격(攻擊)하면 동오(東吳)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경(卿)의 말도 타당(妥當)하군." 진주(晉主)는 중신(重臣)들의 의견(意見)을 따라서 동오(東吳) 정벌(征伐)을 일년(一年) 후로 미루기로 했다. 진주가 비서승(秘書丞) 장화(張華)와 더불어 심심풀이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두예(杜預)로부터 표문(表文)이 올라왔다는 신하의 보고(報告)가 들어왔다. 진주(晉主)는 바둑판을 앞에 둔 채 두예(杜預)가 올린 표문(表文)을 펼쳤다.
“지난날 양호(羊祜) 장군(將軍)은 동오(東吳) 정벌(征伐) 계획(計劃)을 조정의 신하들과 두루 의논(議論)하지 않고 폐하(陛下)께 은밀(隱密)하게 아뢴 까닭에 조정(朝廷) 신하들의 의견(意見)이 분분(紛紛)했던 것으로 아옵니다. 일을 도모(圖謀)함에 있어 이해관계(利害關係)는 마땅히 따져야 하는 것이온데, 이번 거사(擧事)에 이로움을 얻기란 십중팔구(十中八九)이고, 혹여(或如)라도 얻을 해(害)로움이라고 해봐야 공(功)을 세우지 못한다는 정도(程度)일 것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오(吳)를 정벌(征伐)하려는 우리의 계획(計劃)이 이미 적(敵)에게 노출(露出)되었으니, 만일(萬一) 계획을 중단(中斷)하면 손호(孫皓)에게 준비(準備)할 시간만 주는 꼴이 될 것이옵니다. 손호(孫皓)는 일 년의 시간동안 도읍(都邑)을 무창(武昌)으로 옮기고, 강남(江南)의 모든 성곽(城郭)을 수리(修理)하여 백성(百姓)들을 그곳에 살게 할 가능성(可能性)이 아주 크옵니다. 그렇게 되면 적(敵)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이 될 것이며, 들판에서 식량(食糧)을 약탈(掠奪)할 수도 없게 되온즉, 결국(結局) 우리로서는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옵니다.”
진주(晉主)가 표문(表文) 읽기를 마치자 그 자리에 있던 비서승 장화(秘書丞 張華)가 바둑판 위의 바둑돌을 손으로 쓸어리더니 두 손을 모으고 아뢴다.
"폐하(陛下)께서는 성(聖)스럽고 용감(勇敢)하시며, 나라는 윤택(潤澤)하고 군사(軍士)는 강(强)하옵니다. 그에 비해 오주(吳主)는 음탕(淫蕩)하고 포악(暴惡)하여 백성(百姓)들이 어려움에 처(處)해있고 나라 상황(狀況)은 피폐(疲弊)합니다. 지금 오(吳)를 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평정(平定)할 수 있사오니 폐하(陛下)께서는 주저(躊躇)하지 마시옵소서."
진주(晉主)가 결심(決心)을 확고(確固)히 하고 말한다.
"지금(只今) 경(卿)의 말은 이해득실(利害得失)을 잘 살펴서 한 말이니 짐(朕)이 무얼 주저(躊躇)하겠는가?"
진주(晉主)는 즉시(卽時) 대전(大殿)으로 나가서 오(吳)를 정벌(征伐)하라는 명을 내렸다.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를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아 십만 대군(十萬大軍)을 이끌고 강릉(江陵)으로 나아가게 했다. 진동대장군 낭야왕(鎭東大將軍 瑯琊王) 사마주(司馬伷)는 오만 군사(五萬軍士)로 도중(涂中)으로 진격(進擊)하고, 정동대장군 왕혼(征東大將軍 王渾)은 오만 군사(五萬軍士)로 횡강(橫江)으로 진격(進擊)하고, 건위장군(建威將軍) 왕융(王戎)은 오만 군사(五萬軍士)로 무창(武昌)으로 진격(進擊)하고, 평남장군 호분(平南將軍 胡奮)은 오만(五萬軍士)로 하구(夏口)로 진격(進擊)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장수들은 두예(杜預)의 지휘(指揮에 따르도록 했다. 또, 용양장군 왕준(龍驤將軍 王濬)과 광무장군 당빈(廣武將軍 唐彬)에게는 수륙군(水陸軍) 이십만 명(二十萬名), 전함(戰艦) 수만 척(數萬隻)을 이끌고 장강(長江) 하류(下流)를 따라 동(東)쪽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관군장군(冠軍將軍) 양제(楊濟)에게는 양양(襄陽)에 머물며 여러 갈래의 군마(軍馬)를 통제(統制)하도록 했다.
진(晉)나라가 대대적(大大的)으로 군사(軍士)를 움직이자 그 소식(消息)은 금세 동오(東吳)에 알려졌다. 깜짝 놀란 오주 손호(吳主 孫皓)는 승상 장제(丞相 張悌)와 사도 하식(司徒 何植), 사공 등수(司空 騰修)를 불러모아 적(敵)을 물리칠 계책(計策)을 상의(相議)했다.
장제(張悌)가 오주(吳主)에게 아뢴다.
"거기장군 오연(車騎將軍 伍延)을 도독(都督)으로 삼아 강릉(江陵)으로 진격(進擊)하여 두예(杜預)를 막게 하시고, 표기장군(驃騎將軍 손흠(孫歆)에게 하구(河口)를 비롯한 각 방면(各方面)의 적군(敵軍)을 막게 하십시오. 신(臣)은 좌장군(左將軍) 심영(沈瑩), 우장군(右將軍) 제갈정(諸葛靚)과 더불어 십만 군사(十萬軍士)를 이끌고 우저(牛渚)로 나아가서 여러 방면(方面)의 군사(軍士)들을 지원(支援)하겠사옵니다." 손호(孫皓)는 장제(張悌)의 제안(提案)을 받아들였다.
장제(張悌)를 위시하여 여러 장수들이 각 방면으로 떠나고, 손호(孫皓)가 후궁으로 들어가는데 그 표정에 근심이 떠올랐다.
중상시 잠혼이 손호(孫皓)에게 묻는다.
"폐하, 어찌하여 용안에 근심이 가득하시옵니까?"
"진(晉)의 대군이 쳐들어오다고 하여 각 방면으로 군사를 보내긴 하였으나... 장강(長江)을 따라 내려오는 왕준(王濬)의 전함 수와 군사 수가 많고 그 예기 또한 날카롭다고 하니 걱정이로다."
"신에게 계책(計策)이 있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왕준(王濬)의 배쯤이야 산산조각 낼 수 있사옵니다."
손준이 눈을 한 번 크게 반짝 뜨며 잠혼에게 묻는다.
"계책(計策)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강남(江南)에는 철(鐵)이 많이 나옵니다. 그 철을 이용하여 길이가 수백 장 되는 쇠사슬을 수백 개 만들되, 각 고리의 무게는 이삼십 근 정도로합니다. 그 쇠사슬을 장강 연안의 중요한 길목마다 가로질러 깔아놓으십시오.그리고 길이가 일 장 정도 되는 송곳을 수만 개를 만들어 물 속에 설치하십시오. 전선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다가 송곳과 부딪히면 배는 침몰하게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쇠사슬이 곳곳을 막고 있으니 저들이 무슨 재주로 강을 건너겠습니까?"
"놀라운 계책(計策)이로군. 당장(當場) 시행(施行)하시오."
손호(孫皓)의 명에 따라 즉시 도성 안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소집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쇠사슬과 송곳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장강의 요해처에는 무수한 송곳과 쇠사슬이 설치되었다.
한편, 진(晉)나라 도독 두예(杜預)는 군사들을 이끌고 강릉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아장 주지(牙將 周旨)에게 수군 팔백 명과 작은 배를 주고 은밀히 장강을 건너 낙향(樂鄕) 땅을 야습하도록 명했다.
주지가 출격하기 전, 두예(杜預)가 주지를 불러다가 작전을 일러둔다.
"낙향을 점령하면 파산(巴山)에 매복하라. 숲 속에 깃발을 많이 꽂아두고, 낮에는 포를 쏘면서 북을 치고, 밤에는 여러 곳에 횟불을 올려 적의 이목을 흐트려라."
이튿날, 두예(杜預)는 본대를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동시에 나아갔다. 두예가 길을 재촉하는데 앞서 갔던 정탐꾼이 달려와 급보를 전한다.
"적이 세 방면으로 오고 있습니다. 오연은 육로, 육경(陸景)은 수로, 그리고 선봉장 손흠군의 선단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두예(杜預)는 결전의 의지를 다지며 계속 진군해나갔다. 손흠은 이미 당도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양쪽 군사들이 처음으로 싸움에 붙으려는데, 돌연 두예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손흠은 얼른 연안으로 상륙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두예의 뒤를 쫓았다. 오군이 두예군을 정신없이 추격하는데 갑자기 포가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사방에서 진군(晉軍)이 쏟아져나왔다. 당황한 오군들은 급히 퇴각했다. 손흠군에게 쫓기던 두예군이 이번에는 손흠군을 뒤쫓기 시작했다. 힘의 흐름이 바뀐 틈을 타서 두예가 군사들을 휘몰아 오군을 마구 무찔렀다. 이때 죽은 오군의 수는 셀 수가 없었다. 오군 선봉 손흠은 더이상 대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성까지 부리나케 도망쳤다. 패잔병들이 성 안으로 진입하는데, 주지의 군사 팔 백이 성 앞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패잔병에 몰래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해가 저물고 사위가 고요해진 시각, 성벽 위에 횃불이 높이 올랐다. 패잔병에 섞여서 잠입했던 주지의 군사들이 올린 횃불이었다.
횃불을 보고 손흠이 놀라서 외친다.
"적군은 날개라도 있는 것인가! 어떻게 강을 건너 성 안까지 온 것인가!"
손흠이 황급히 퇴각하려는데 주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주지는 손흠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 모습을 목격한 오군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달아났다. 전함에 있던 육경은 강남 연안에서 불길이 치솟고 파산 위에 '진남장군 두예'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사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육경은 얼른 배에서 내려 뭍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뭍에 발을 내린 순간 진의 장수 장상(張尙)이 나타나서 육경의 목을 쳤다. 오군(吳軍) 주장 도독 오연은 각 처의 군사들이 모두 대패한 것을 알고 성을 포기하고 달아나다가 진의 복병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오연은 결박된 채로 두예 앞으로 끌려갔다.
두예(杜預)는 오연을 흘낏 보더니 말한다.
"이런 놈은 살려둬봤자 쓸모가 없다. 목을 베어라!" 두예(杜預)는 어렵지 않게 강릉(江陵)을 점령했다. 강릉이 함락되자, 원수(沅水), 상강(湘江) 일대와 광주(廣州)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의 수령들은 진나라 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전부 성문을 열고 나와 인(印)을 바치며 항복해왔다. 두예는 점령지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군사들로 하여금 노략질을 절대로 하지 않도록 명했다. 두예의 계속되는 진격에 무창성 역시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자진하여 항복했다.
기세를 크게 떨친 두예는 드디어 오나라의 도읍 건업(建業)을 칠 마음을 먹었다. 장수들을 소집하여 건업을 공략할 계책을 상의했다.
호분(虎賁) 이 말한다.
"백 년이나 대적해온 적을 일시에 손에 넣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는 봄물이 불어나서 오래 머물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내년 봄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업(建業) 정벌(征伐)을 미루자는 호분(虎賁) 의 의견에 두예(杜預)가 답한다.
"지난날 악의(樂毅, 연나라 장수는 제수(濟水) 서쪽 지역에서 결전을 벌여 강성한 제나라를 억눌렀다. 지금 우리 군사의 위세가 하늘 높은 줄을 모르니 지금처럼만 나아가면 적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크게 힘을 쓸 것도 없다." 두예는 여러 장수들에게 격문을 보내 건업 정벌의 뜻을 밝히고 일제히 건업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이때 용양장군 왕준(王濬)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서 하류로 내려오고 있었다. 전방에서 앞서가던 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오(吳)나라에서 쇠사슬과 쇠송곳을 만들어 강(江)에 설치해놓았습니다."
왕준(王濬)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까짓 것으로 나를 막겠다는 것인가? 가소롭군. 혼쭐을 내줘야겠어. 하하하하!"
즉시 군사들로 하여금 뗏목 수십 개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뗏목 위에 갑옷을 입히고 무기를 든 허수아비를 세워서 송곳과 쇠사슬이 있다는 곳으로 흘려보냈다. 오군(吳軍) 장병(將兵)들은 멀리서 허수아비를 보고 진짜 사람인 줄 알고 그대로 달아났다. 오(吳)나라에서 깔아놓은 송곳은 뗏목에 걸려 모조리 뽑혔고, 또 다른 뗏목에 기름을 붓고 불을 올리자 불 올린 뗏목과 닿은 쇠사슬은 녹아내려 끊어졌다. 진의 수군(水軍)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동오의 승상(丞相) 장제(莊濟)는 좌장군 심영(沈瑩)과 우장군 제갈정(諸葛瀞)에게 명을 내려 진군(晉軍)을 맞아 싸우도록 했다. 하지만 대세(大勢)는 이미 진(晉)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심영(沈瑩)이 제갈정(諸葛瀞)에게 말한다.
"상류에서 적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적군이 반드시 여기까지 올 것이오. 승리를 거두면 다행히 강남(江南)을 안정시킬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패한다면 만사는 끝장이오."
"공의 말씀이 맞소."
둘의 대화가 계속되는데 급보가 들어왔다. 진군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그 기세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심영과 제갈정(諸葛瀞)은 급히 장제에게 달려갔다. 제갈정이 장제에게 말한다.
"승상,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달아나지 않고 앉아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장제(莊濟)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나라에 망국의 기운이 들어찬 것은 똑똑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아는 바이오. 그렇다고 국난 중에 목숨을 던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임금과 신하가 모조리 항복하고 만다면 그 또한 치욕이 아니겠소?"
장제(莊濟)의 말을 듣고 제갈정(諸葛瀞)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다. 군사들 대부분도 전의를 상실하여 진영을 버리고 흩어졌다.
장제(莊濟)와 심영(沈瑩)은 얼마남지 않은 군사들을 이끌고 적과의 마지막 싸움을 위해 나섰다. 얼마가지 않아 오군(吳軍)은 진군(晉군)에게 둘러싸였다. 포위망(包圍網)이 점점 좁혀지는 가운데 주지가 달려나와 장제와 맞섰다. 장제(莊濟)는 창(槍)과 칼(劍)이 모두 꺾이도록 분투(奮鬪)했지만 진군(晉군)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싸움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영(沈瑩)은 주지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오군(吳軍) 병사(兵士)들은 흩어져서 달아났다.
진(晉)나라 군사는 우저를 점령하고 오나라 경계까지 침투했다. 왕준은 이 소식을 낙양에 보고했다. 진주 사마염은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옆에 있던 가충(賈充)이 아뢴다.
"우리 군사가 땅과 물이 낯선 외지에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풍토병에 시달리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으니 이제는 군사들을 거두시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가충(賈充)의 말을 듣고 장화가 말한다.
"우리 대군이 이미 적 깊숙이 들어가서 오(吳)나라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고, 손호(孫皓)를 잡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군사를 거두는 것은 안 될 일이옵니다. 이대로 군사를 물리면 지금까지의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텐데, 그렇다면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겠사옵니다."
진주主가 끼어들 새가 없이 가충(賈充)이 장화를 나무란다.
"그대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 시기가 지금 와 있는 것인지, 땅의 형세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 있는 것인지 판단할 줄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망령되이 공훈만을 탐내어 군사들을 괴롭히려 하는 것이오? 그대가 자진하여 목을 내놓는다하여도 그 죄를 다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진주는 가충(賈充)을 저지하며 말한다.
"오나라를 깨치려하는 것은 곧 짐의 뜻이오. 장화는 단지 짐의 뜻과 함께하는 것이니 경들은 말다툼을 그만 두시오."
이때 두예(杜預)의 표문이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두예의 표문 역시 서둘러 진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주는 두예의 표문으로 더욱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전장에 나가 있는 군사들에게 끝까지 진격하여 오나라 정벌을 완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왕준(張華)과 두예(杜預) 등이 진군하는 곳마다 그 기세가 거침이 없어서 오(吳)나라 사람들은 적군의 깃발만 보고도 성문을 활짝 열어 스스로 항복해왔다. 오주(吳主) 손호(孫皓)는 그런 상황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신하들이 손호(孫皓)에게 묻는다.
"북쪽에서 온 군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건업(建業 : 난징(南京)의 옛 이름)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강남의 군사와 백성들은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손호(孫皓)가 어두운 낯빛을 하더니 도리어 신하들에게 되묻는다.
"어찌하여 싸우지 않는 것인가?" 손호(孫皓)의 물음에 모든 신하들이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날 이런 화가 닥친 것은 모두 중상시(中常侍) 잠혼(岑昏) 때문이옵니다. 청컨대 폐하께서 잠혼(岑昏)에게 극형(極刑)을 내리십시오. 저희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나가서 적과 싸우겠습니다."
손호(孫皓)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한다.
"하찮은 환관(宦官) 따위가 무슨 재주로 나라를 망칠 수 있겠는가?"
모든 대신(大臣)들이 입을 모아 아뢴다.
"폐하(陛下)께서는 촉(蜀)나라의 황호(黃皓 : 환관)를 못 보셨습니까?"
마침내 대신들은 오주(吳主)의 명을 받지도 않은 채 잠혼(岑昏)을 붙잡아다가 갈갈이 베어 죽이고 그 살을 씹어 삼켰다.
끔찍한 처결이 끝나고 도준(陶濬)이 손호에게 아뢴다.
"신이 가진 전선은 규모가 모두 작사옵니다. 군사 이만과 큰 배만 있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손호(孫皓)는 즉시 어림군(御林軍)을 도준에게 내주며 상류에서 적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전장군 장상(前將軍 張象)에게는 수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했다. 두 장수가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서북풍이 크게 일더니 배 안에 세워두었던 기치가 우수수 쓰러졌다. 불길한 징조였다. 오군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배에서 내려 도망쳤다. 그러고나자 장상에게 남은 병사는 겨우 십여 명 뿐이었다.
한편 진(晉)의 장수 왕준(王濬)이 돛을 높이 달고 삼산(三山)을 지나가는데 배를 젓는 군사가 왕준에게 말한다.
"바람이 세고 물결이 높아 배가 앞으로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시지요."
왕준(王濬)은 칼까지 빼들고 화를 낸다.
"지금 석두성(石頭城) 점령이 코앞인데 멈추자는 것이냐!"
그리고 당장 크게 북을 울리며 진군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오나라 장수 장상은 가망이 없는 싸움을 벌이려는 마음을 접고, 십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왕준에게 와서 항복하기를 청했다.
왕준(王濬)이 장상(張尙)에게 말한다.
"그대가 진정으로 항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면 선봉이 되어 공을 세우라."
장상(張尙)은 곧장 자신의 전선으로 돌아가서 석두성에 이른 뒤, 성 안으로 소리를 쳐서 성문을 열도록 했다. 이리하여 왕준은 싸움 없이 석두성을 손에 넣었다.
진(㬜)나라 군사가 입성했다는 보고를 받은 손호(孫皓)를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려고 했다. 그때 중서령 호충(中書令 胡沖), 광록훈 설영(光祿勳 薛瑩)이 손호(孫皓)를 말린다.
"폐하, 안락공(安樂公) 유선의 예를 따르심이 어떻겠습니까?" 손호(孫皓)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항복(降伏)의 절차에 따라 수레에 관을 싣고 스스로를 결박한 채 문무대신들을 뒤따르게 하고 왕준의 군사 앞으로 나가 항복했다. 왕준은 손호를 풀어주고 관을 불에 태우게 한 후, 왕의 예로써 그를 대해 주었다.
이제 동오(東吳)의 4주(州) 43군(郡) 313현(縣), 52만 3천 호(戶), 3만 2천 명의 관리(官吏), 군사(軍士) 23만 명, 남녀노소(男女老少) 230만 명, 미곡(米穀) 2백80만 섬, 배 5천여 척, 궁녀(宮女) 5천여 명은 모두 진(晉)나라의 것이 되었다.
나라의 대사(大事)가 정해지자 왕준(王濬)은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모든 창고에 봉인을 붙였다.
이튿날 도준의 군사는 임금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무너졌다. 이어서 진의 낭야왕 사마주와 왕융의 대군들도 전부 와서 왕준이 세운 큰 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다음날에는 두예도 도착하여 삼군에게 큰 상을 내리고 대도독의 직권으로 식량 창고를 열어 오나라 백성들을 구제했다. 두예의 넉넉한 인심에 그제서야 오나라 백성들은 마음을 놓았다.
오의 건평태수 오언(建平太守 吳彦)은 성(城)을 지키며 끝까지 항거하고ㄹ자 하였으나 오(吳)나라가 이미 멸망(滅亡)했다는 소식에 곧 항복했다.
왕준(王濬)은 낙양(洛陽)에 승첩(勝捷)을 띄웠다. 조정(朝廷)에서는 오(吳)나라를 평정(平定)했다는 소식에 임금과 모든 신하가 한마음으로 축하(祝賀)했다.
축하연(祝賀宴)에서 진주(晉主) 사마염(司馬炎)은 술잔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늘의 영광은 모두 양태부 양호(羊祜)의 공로인데 그가 살아서 직접 보지를 못하니 애통하도다!"
표기장군(驃騎將軍) 손수(孫秀)는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종손(宗孫)으로, 위(魏)나라 때부터 조정(朝廷)을 섬겨왔다.
손수(孫秀)는 승전 축하연이 끝나고 조정에서 나오면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한다.
"지난날 토역장군(討逆將軍, 손견(孫堅 : 손권의 부친)은 일개 교위(校尉)의 신분으로 기업(基業)을 세웠는데, 오늘 손호(孫皓)는 강남(江南)을 모조리 남에게 넘겼으니, 유유히 흐르는 푸른 하늘이여!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을 내셨나이까?"
한편 왕준(王濬)은 낙양(洛陽)으로 개선(凱旋)했다. 오주(吳主) 손호(孫皓)도 낙양(洛陽)으로 함께 데려와서 진주(晉主)를 뵙게 했다. 동오(東吳)의 패주(敗主) 손호(孫皓)는 진주(晉主) 사마염(司馬炎)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진주(晉主)는 손호(孫皓)에게 자리를 내주어 앉기를 권하며 말한다.
"여기 앉으시오. 짐(朕)은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마련해놓고 경(卿)이 오기를 기다렸소."
"신도 남녘 땅에 자리를 마련해놓고 폐하(陛下)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끌려온 와중(渦中)에도 손호(孫皓)는 이렇게 당차게 대답했다.
진주(晉主) 사마염(司馬炎)은 손호(孫皓)의 당당(堂堂)한 태도(態度)에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곁에 있던 가충(賈充)이 손호(孫皓)에게 묻는다.
"남쪽 땅에는 사람의 눈알을 뽑고 얼굴 가죽을 벗기는 형벌(刑罰)이 있다던데 대체 무슨 죄(罪를) 지으면 그런 형벌을 받는 것이오?"
손호(孫皓)가 곧장 대답(對答)한다.
"신하(臣下)로서 제 군주(君主)를 시해(弑害)하려는 자(者)와 간사(奸邪)하고 불충(不忠)스러운 자(者)에게 가(加)하는 형벌(刑罰)이오."
손호(孫皓)의 대답(對答)에 가충(賈充)은 당황(唐慌)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손호(孫皓)는 그저 사실(事實)대로 말했을 뿐인데 가충(賈充)이 느끼기에는 마치 '너 같은 놈'이라고 지적(指摘)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주(晉主)는 손호(孫皓)에게 귀명후(歸命侯)의 작위(爵位)를 내렸다. 그리고 그 자손들은 중랑(中郞)으로 삼고, 함께 항복(降伏)한 오(吳)나라 신하(臣下)들은 모두 열후(列侯)에 봉(封)했다. 또한 끝까지 충심(忠心)을 다해 싸우다 죽은 승상(丞相) 장제(莊濟)의 자손들에게도 빠짐없이 작위를 내렸다. 오(吳)나라 정복(征服)에 가장 큰 공(功)을 세운 왕준(王濬)에게는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의 작위(爵位)와 함께 큰 상(賞)을 내렸고, 그 밖의 군사(軍士)들에게도 후(厚)하게 포상(褒賞)했다.
이로써 오래도록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던 삼군(三國)이 모두 진제(晉帝) 사마염(司馬炎)의 수중(手中)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천하대세(天下大勢)는 합쳐진지 오래면 다시 분열(分裂)하고, 분열한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진다[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라는 말 그대로였다.
그뒤 촉주(蜀主) 유선(劉禪)은 태시(泰始) 7년(271년)에, 위주(魏主) 조환(曹奐)은 태안(太安) 원년(302년)에, 오주(吳主) 손호(孫皓)는 태강(太康) 5년(284년)에 세상(世上)을 떠났다.
후세(後世) 사람들이 삼국(三國)의 발자취를 시(詩) 한 편으로 적어 노래했다.
高祖提劍入咸陽 한고조 칼 빼들고 함양에 들어갈 때,
炎炎紅日升扶桑 이글이글 붉은 해 부상에 떠올랐네.
光武龍興成大統 광무제 크게 일어 대통을 이으니,
金烏飛上天中央 금빛 까마귀 하늘 한가운데 비상하였다.
哀哉獻帝紹海宇 슬프도다, 헌제가 천하를 이어받고서,
紅輪西墜咸池傍 붉은 해는 서쪽 함지 곁으로 떨어졌구나.
何進無謀中貴亂 하진이 무모하게 십상시의 난을 일으키니,
涼州董卓居朝堂 양주의 동탁이 조정을 차지했네.
王允定計誅逆黨 왕윤이 계책 세워 역당을 죽였으되,
李傕郭汜興刀槍 이각, 곽사 창칼을 들고 날뛰었네.
四方盜賊如蟻聚 도적이 사방에서 개미떼처럼 일어나니,
六合奸雄皆鷹揚 이 세상 간웅들 매처럼 날개를 편다.
孫堅孫策起江左 손견, 손책은 강동에서 일어나고,
袁紹袁術興河梁 원소, 원술은 하량에서 떨쳤도다.
劉焉父子據巴蜀 유언 부자는 파촉을 차지하고,
劉表軍旅屯荊襄 유표의 군대는 형양에 주둔하네.
張燕張魯霸南鄭 장연, 장로는 남정의 패권을 쥐고,
馬騰韓遂守西涼 마등, 한수는 서량을 지키도다.
陶謙張繡公孫瓚 도겸, 장수, 공손찬도
各逞雄才占一方 각기 웅재 떨쳐 한 지방을 차지했네.
曹操專權居相府 조조가 승상에 앉아 권력을 틀어쥐니,
牢籠英俊用文武 문무 영재를 수하로 끌어들인다.
威挾天子令諸侯 천자에게 위엄 떨치고 제후들에게 호령하더니,
總領貔貅鎭中土 사나운 군사로 중원을 진압하네.
樓桑玄德本皇孫 누상촌 유현덕은 본래 한나라 황손,
義結關張願扶主 관우, 장비와 의형제 맺어 천자 돕기를 원하네.
東西奔走恨無家 동분서주하여도 기반이 없음을 한탄하니,
將寡兵微作羈旅 적은 장수, 미약한 군사와 떠도는 신세여라.
南陽三顧情可深 남양의 삼고초려 그 정이 어찌나 깊었는지,
臥龍一見分寰宇 와룡은 첫 만남에 삼분천하를 알아보네.
先取荊州後取川 형주를 차지하고 후에 서천을 얻으니,
霸業圖王在天府 패업과 임금의 길 서천땅에 있었더라.
嗚呼三載逝升遐 안됐구나, 유현덕 삼 년만에 승하하며
白帝託孤堪痛楚 백제성 어린 아들 부탁하는 그 마음 찢어지게 아프도다.
孔明六出祁山前 공명이 여섯 번 기산으로 나아가니,
願以只手將天補 기울어가는 하늘 한 손으로 붙잡으려함이었네.
何期歷數到此終 어이하리, 운수가 다한 것을
長星半夜落山塢 한밤중 장성이 산기슭에 떨어지네.
姜維獨憑氣力高 강유 홀로 제 혈기, 능력에 의지하여
九伐中原空劬勞 아홉 번 중원을 쳤으나 공 없이 헛수고네.
鍾會鄧艾分兵進 종회, 등애가 두 길로 진격하니,
漢室江山盡屬曹 한나라 강산, 조씨 것이 되었네.
丕叡芳髦纔及奐 조비, 조예, 조방, 조모, 조환을 거치는 동안
司馬又將天下交 천하가 사마씨로 바뀌었네.
受禪臺前雲霧起 수선대 앞은 운무가 자욱하고,
石頭城下無波濤 석두성 아래는 물결조차 일지 않는구나.
陳留歸命與安樂 진류왕, 귀명후, 안락공이여
王侯公爵從根苗 왕후공작은 그런 뿌리에 나온 싹이네.
紛紛世事無窮盡 분분한 세상사 끝이 없고,
天數茫茫不可逃 아득한 하늘의 운수에서 도망갈 길 없네.
鼎足三分已成夢 정족삼분은 이미 꿈으로 돌아갔거늘,
後人憑弔空牢騷 후세 사람은 애도한다며 공연히 떠드네.
삼국지(三國志)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