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왼쪽)에 대한 검찰 수사가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확대된 가운데, 지난 6월 29일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이 빗썸 관계사 주가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다. photo 뉴시스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인물들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미 자본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이들에 대한 수사는 어느 정도 진척된 상황이지만, 최근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검찰의 칼날이 일부 대기업 오너 일가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회장을 필두로 ‘1세대 기업사냥꾼’이라고 평가받는 이들은 2000년대 초중반 무자본M&A(인수합병)로 기업사냥에 나서 상장사 주가를 조작하거나, 무자본M&A 세력에 자금을 댄 투자자로 이름을 알렸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들을 ‘투자의 귀재’ 혹은 ‘회장님’으로 칭송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사정당국은 이들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남 금융시장에 흘러들어간 조직폭력배 출신 사채업자, 혹은 그들과 손잡은 세력으로 보고 주시해왔다.
대표적 인물이 ‘대북송금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다. 과거 전북 전주 지역에서 조직폭력배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은 2010년 쌍방울 인수 이후 호남지역 폭력조직 조직원들과 공모해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2014년 5월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2014년 광림에 쌍방울 지분을 넘기고 표면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실질적으로 쌍방울그룹을 지배해왔다.
최근 남부지검에서 집중적으로 수사 중이거나 재판에 넘긴 주요 인물 대부분은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김 전 회장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대북송금 의혹(수원지검)과 KH그룹 주가조작 의혹(남부지검), 알펜시아 리조트 입찰비리 의혹(중앙지검) 등에 연루돼 해외도피 중인 배상윤 KH그룹 회장과 지난 4월 코스닥 상장사 무자본M&A 및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우동 조광ILI 대표는 2010~2011년 김 전 회장이 쌍방울과 유비컴 주가를 조작할 때 공모했거나 가담한 전력이 있다.
먼저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2018년 6월 19일 쌍방울 주가조작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배상윤은 쌍방울 주식에 관한 시세조종 범행 전부에 공모 가담했고, 범행으로 금액 불상의 이익을 얻었다”고 명시했다. 배 회장은 이후에도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공동체’로 평가받았다. 김 전 회장이 이끄는 쌍방울그룹과 배 회장이 이끄는 KH그룹은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전환사채(CB)를 투자조합을 통해 인수하는 방식으로 공조해왔다. 지난해 4월 쌍방울그룹이 쌍용차 인수 시도에 나설 당시에는 KH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했고, 때문에 두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등락을 함께할 정도였다.
배상윤ㆍ김우동ㆍ원영식 등 거론
김우동 조광ILI 대표는 2018년 6월 19일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으로부터 유비컴 인수 자금을 지원받고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우동은 피고인 김성태 등과 공모해 유비컴 주식에 관한 시세조종 범행 전부에 가담했다”고 판시했다. 김 대표는 조광ILI와 대유를 통해 앤디포스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배임한 혐의 등으로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김 대표는 2021년 앤디포스의 최대주주 지위와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쌍방울과 쌍방울 관계사 포비스티앤씨에 100억원을 지급하고 사모펀드 지분을 양수받은 바 있다. 사모펀드 청산으로 투자조합 지분을 받고, 투자조합의 해산에 따라 앤디포스 주식을 현물배당 받는 과정을 거쳐 ‘김 대표→조광ILI→대유→앤디포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김 대표는 최근 검찰 수사단계에서 해당 업계 ‘선수’로 불리는 인사들에 대해 협조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김씨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며 “덕분에 배상윤 KH그룹 회장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거래소 빗썸 관계사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돼 지난 6월 29일 구속된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 역시 2021년 투자조합을 통해 대유와 앤디포스의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또 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초까지 투자조합을 통해 CB를 매입해 KH필룩스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데다, 2018년 12월 KH그룹이 삼본전자(현 KH전자)를 인수한 직후 삼본전자가 발행한 CB를 대량 매입해주는 등 배 회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원 회장은 과거 무자본M&A 세력에 사채를 빌려주고 부를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6년에는 코스닥 상장사이던 반포텍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리며 ‘코스닥 큰손’으로 이름을 날렸다. ‘셸(shell·껍데기 기업)’인 반포텍과 ‘펄(Pearl·호재성 이슈)’인 당시 장동건 소속사 스타엠엔터테인먼트가 주식교환으로 우회상장하면서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반면 스타엠 경영진들은 횡령으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원 회장이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꼽히는 이유다.
원 회장 역시 2020년 9월 24일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를 쌍방울그룹에 매각하면서 김성태 전 회장과도 연이 닿았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포비스티앤씨(현 디모아)는 아이오케이를 850억원에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초록뱀그룹으로부터 100억원을 단기 대여했다. 포비스티앤씨가 초록뱀미디어가 최대주주로 있는 우리들휴브레인을 대상으로 1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가 5일 만에 만기 전 취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빗썸 실소유주로 알려진 강종현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때부터 검찰수사의 칼끝이 원 회장을 향할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때문에 원 회장에 대한 수사 역시 김 회장과 배 회장을 포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원 회장의 지인은 “원 회장이 배 회장과는 호형호제했던 사이가 맞지만, 김성태 회장과는 결이 달랐다”며 “안면은 있지만 교류는 없었던 사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4월 검찰은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자금 중 일부가 범LG가 3세 구본호 전 범한판토스 부사장으로부터 나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구씨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코스닥시장에서 CB 투자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며 ‘미다스의 손’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2012년 주가조작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후 잠행을 이어왔다. 2020년 5월에는 쌍방울그룹 지주회사 격인 광림의 100억원 규모 CB를 인수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회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