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鹿)을 가리켜(指) 말(馬)이라고 하다’는 뜻이다. 원래 이 말은 ‘아랫사람이 권세와 거짓말을 동원하여 윗사람을 농락하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방약무인의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를 의미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사사로운 이(利)를 취하기 위해 옳고 그름을 바꾸거나 윗사람을 속이고 자신의 뜻대로 권력을 휘두름’ 혹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시켜 거짓을 사실처럼 인정하게 만듦’ 따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탄생 배경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불경스러움이 내재되어 있다.
지록위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의 대강부터 요약한다. 고대 중국의 진(秦)나라 초대황제인 진시황(秦始皇) 승하했을 때 태자인 부소(扶蘇)는 아버지와 갈등으로 변방에 나가 있었지만 차기 황제에 오를 유력 후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진시황을 모시던 환관(宦官) 조고(趙高)는 부소가 차기 황제로 등극하면 자기 처지가 위험해 진다는 판단을 했다. 그런 이유에서 승상(丞相)이었던 이사(李斯)와 모의해 진시황의 유서를 변조해 태자인 부소를 죽이고 어리고 어리숙한 호해(胡亥)를 황제로 즉위시켰는데 그가 이세황제(二世皇帝)였다. 그 후 조고는 수많은 군신들을 숙청시킨 뒤에 스스로 승상(丞相) 자리를 꿰차고 어린 이세황제 대신에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쥐락펴락하며 천하를 호령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탐닉하며 되지 못하게 헛된 꿈을 키웠다.
예로부터 환관 나부랭이들이 정권을 쥐락펴락하는 나라 중에 국태민안을 이룩했던 경우는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조고 역시 옛날에 뜻을 같이했던 승상 이사를 위시해 수많은 군신들을 무고(誣告)로 얽어 처형했다. 그리고 어린 이세황제를 허수아비처럼 앉혀놓고 나라를 자기 맘대로 주무르며 권세를 휘두르다보니 역모를 일으켜 왕권을 쥐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혔다. 이 고사를 담고 있는 출전(出典)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이다. 그 내용의 대강이다. 한편 유의어로 이록위마(以鹿爲馬), 위록위마(謂鹿爲馬) 등이 있다.
분수를 넘어선 탐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역모를 일으키려다가 군신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도중에 중단했다. 그렇지만 그 헛된 몽상을 저버리지 못해 꾸며낸 방책이 자기를 따르지 않을 군신들을 정확히 색출해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의 달성을 위해 조고는 어리고 실권이 없는 명목상의 황제를 바보처럼 대하는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대역죄를 저지르고도 신하로서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연한 듯 한껏 자기를 과시했던 것 같다.
조고는 자기에게 동조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군신을 색출하기 위해 방자하기 짝이 없는 실험에 무엄하게 왕을 대상으로 펼쳤다. 어느 날 만조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이세황제에게 ‘사슴(鹿)’을 바치며 “말(馬)이 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어이가 없었던 황제는 “말이 아니오. 승상이 잘 못 알거나 착각한 것이 아니오?”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하셨소!(謂鹿爲馬 : 위록위마) /
우선 위의 말에서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가 비롯되었단다. 한편 이에 조고는 천연덕스럽게 “아니옵니다. 분명히 말이 옵니다”라고 이죽거리면서 주위에 도열해 있던 만조백관들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조고가 예측한대로 대답은 정확히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비굴한 아첨배로 조고를 따르던 기회주의자들은 “정녕 말입니다”이라고 답했다. 그에 비해서 무색무취(無色無臭)를 표방하는 회색분자들은 입을 꼭 닫고 “묵묵부답(黙黙不答)”으로 일관했다. 정의를 추구하던 소신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아닙니다. 사슴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조고는 “사슴입니다”라고 답한 소신파를 정확히 파악해 두었다. 그 뒤에 이들 모두를 교묘한 죄목으로 엮어서 처단함으로서 뭇 사람들에게 두려운 저승사자 같은 악인으로 각인되어 경원시했다고 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옛날 옛적 얘기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믿을 수 없다. 그렇지만 역사 기록인 사기(史記)에 기록된 내용이 아니던가. 그래도 그렇다. 아무리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연출된 일종의 시험이라 해도 감히 황제를 대상으로 하다니 언어도단이었다. 그러한 모멸적인 행위는 삼척동자가 생각해도 황제를 능멸하며 한껏 조롱한 작태가 분명하다. 이는 불충한 대역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세월이라면 능지처참을 당했으리라. 이에 더하여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할만한 사건이 분명함에도 허수아비 같은 어린왕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도 끽소리도 내지 못했지 싶다.
태자 부소를 죽이면서 한 때 뜻을 함께하며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는데 일조했던 승상 이사를 교묘하게 죄를 덮어 씌워 처단했다. 게다가 이세황제(호해) 앞에서 ‘사슴을 사슴이라고 답했던’ 소신파이자 정의파였던 수많은 군신들에게도 묘한 올가미를 씌워 처형하고 승상에 올랐던 조고이다. 그것으로 도저히 만족 못해 발악하며 끝내 이세황제까지 죽게 만들고 자신이 직접 황제에 등극했던 조고는 끝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아 이승의 삶을 마감했다. 자고로 ‘선행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따르고(積善之家必有餘慶 : 적선지가필유여경)’, ‘악행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積不善之家必有餘殃 : 적불선지가필유여앙)’고 했다. 일개 환관이 지나친 환상에 사로잡혀 끝 모를 악행을 되풀이 하며 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대역죄를 저질렀으니 생의 말년이 평탄할 수 있었겠는가? 지은 업보가 무겁고 엄중하기에 비명횡사할 밖에......
한올문학, 2024년 12월호(Vol.180), 2024년 11월 30일
(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첫댓글 이사가 순자의 제자인데 진시황 시절 분서갱유를 단행하여 스승의 빛나는 업적이 사그러지는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이런 고사 성어에 나쁜 쪽에 꼭 등장하는 인물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