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 희망찾기>삼척 중앙초등학교 텃밭 가꾸며 즐기는 외국어교육 “자연과 Sing 세계로 Go”
밀·파프리카·참외·수박 등 다양한 채소 직접 가꾸는 아이들 22시간 집중 영어 교육·글쓰기·작은 발표회 등 ‘쏠쏠’
▲지난해 여름 학교텃밭에서 자신이 직접 길러 수확한 파프리카, 고추, 가지, 참외, 수박 등을 자랑하고 있는 학생들.
전교생이 29명인 삼척중앙초등학교는 다른 작은 학교들처럼 외진 시골 마을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 인접해 있는 삼척·정라초등학교의 학생수가 각각 1000명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중앙초 교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만 말이다. 울창한 나무들과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학교는 푸른 잔디운동장 너머 멀리 바다가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고흐, 고갱, 클림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이 한가득 그려진 교실 벽과 노란색, 연두색, 분홍색 등 반마다 다른 색깔로 꾸며진 아담한 교실 내부가 눈길을 끈다. 이런 아름다운 학교모습에 반해 자녀를 통학시키고 있는 부모들도 적지 않을 정도다. 60년대 후반 인근에 위치한 23사단 군인 자녀들을 위해 지어진 이 학교는 80년대 군 관사가 동해시와 시내로 분산되면서 학생수가 급격히 줄었다. 시내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데다, 바닷가 마을이라 정주 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학생수 감소는 걷잡을 수 없게 돼 지난 2012년에는 학생수가 18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지난 2012년 최희규 교장과 전희주 교무부장이 부임하면서 본격화된 ‘작은학교 희망만들기’ 덕에 올해 신입생만 10명이 됐다. 아름다운 학교 경관과 작은학교의 장점을 익히 알고 있는 학부모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남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통학하는 학생수가 늘었고, 또 통학을 희망하는 문의도 이어지고 있지만, 현행 규정상 통학버스나 차량을 운행할 수 없어 어려움이 큰 상태다. 동문회의 지원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다른 작은 학교의 사례도 있지만, 중앙초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지역을 자주 옮기는 군인가족들이 주로 다녔던 탓에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동문 수가 적다. 자연히 일부 동문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동문회의 지원도 다른 학교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강사 섭외가 쉽지않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는데도 애를 먹었다. 인근 부대의 지원과 재능기부도 받기는 하지만 부대 사정에 따라 불안정한 조건 때문에 정기적인 연계활동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학교는 동문회의 활성화와 지역 사회와의 교류와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자신만의 강점을 십분 활용해 차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변 자연 환경을 활용해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교육과정을 부각시켰고, 작은 시골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지만 세계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외국어 교육을 강화했다. 중앙초의 적은 학생수는 학생들이 외국인 강사와 영어회화 전문 강사와의 접촉 시간과 소통 기회를 높이는데 아주 적합했다. 아이들도 ‘잘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하는 것’을 강조하는 학교 방침에 따라 선생님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배우는 영어와 중국어 수업을 좋아하게 됐다.
▲ 외국인 강사 ‘제시카’선생님과 즐겁게 수업하고 있는 학생들.
최희규 교장과 교직원들은 아이들을 특정한 목표나 성과에 꿰맞추기 보다는 정말로 아이들이 외국인과 소통하는데 익숙하고 자연스럽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학교는 정규 교과시간에서 영어시간을 15시간 더 늘리고, 방과후 영어교실을 운영해 주 7시간의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반에 3명에서 10명 사이인 학생들수는 수업의 효과를 더욱 높인다.
방학 때 이뤄지는 야영·캠프 등에서는 외국인 교사 등을 활용해 영어로 생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 중국어 교육도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은 중앙초 학부모이기도 한 중국어 강사가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중국어 교육을 담당해오고 있다.
형식적으로 운영되기 쉬운 학교 텃밭은 학년별, 학생 별로 서로 다른 작물들을 직접 재배하는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중앙초 학교 텃밭에는 매우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고추, 오이, 콩, 가지, 파프리카는 물론, 참외와 수박도 학교 텃밭에서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최근에는 ‘우리밀’을 아이들이 집적 수확했다. 학생들은 봄부터 선생님과 함께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학년별, 개인별로 맡은 채소들을 길러내고 수확한다. 이렇게 직접 가꾼 채소들을 수확해 급식실에서 나눠 먹거나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 텃밭가꾸기를 오랫동안 해온 고학년 학생들은 “이제는 혼자서도 채소를 심고 키울 수 있다”며 입을 모은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활하고 접하고 있는 자연에 대해서 알고 이해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와 마을 주변의 식물과 새, 들꽃들의 이름과 특징들을 알아나가도록 교육한다. 학교 주변의 들꽃과 나무, 새들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각자 화분을 분양 받아 교실에서 키우고 있다. 1년 동안 무사히 화분을 잘 키운 학생들에게는 교장선생님의 특별 선물이 주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의 작은학교 학생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거나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툰 경우가 많다. 학교는 학생들의 표현력과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 글쓰기 교육과 매주 1회 ‘작은 발표회’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시간을 활용해 진행되는 ‘작은 발표회’에서는 미리 선정된 학생들이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자신이 지은 시를 발표하거나 악기연주, 태권도 품새 등을 선보이는 식인데, 1학년 장난꾸러기 김지민 학생은 최근 물구나무서기를 보여줘 전교생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친구들이 어떤 것을 준비해오던지 크게 칭찬해주고 즐거워해준다. 아직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겁내는 학생들에게는 응원도 잊지 않는다. 이런 작은 발표회를 통해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주변의 호응과 성취감을 조금씩 맛보며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면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3학년 담임 전희주 교사의 지도로 진행되는 글쓰기 교육은 학생들의 표현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숨겨진 재능을 찾고 개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3학년 때 전학을 와 4학년부터 글쓰기 지도를 받은 박하은 학생은 최근 병무청 주관 전국 글쓰기 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했다. 이 외에도 삼척시와 도내에서 열리는 글쓰기 대회 수상자 명단에서 박하은 학생을 비롯해 삼척 중앙초등 학교 학생들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학생들이 빼어난 글솜씨를 뽐내고 있다.
박하은 학생은 “어떤 친구는 글씨도 서툴고 글쓰는 것도 어려워 했는데, 지금은 글씨도 예뻐지고 글 쓰는 것도 아주 좋아하게 됐다”며 “나 역시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시내 정라초등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하은이는 “다른 큰 학교와 달리 작은 일들도 함께 즐거워하고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다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연 속에서 친구, 교사들과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이 작은 학교는 어린 시절 특별한 경험을 자녀에게 선물하고 싶은 부모들이 찾는 곳이 되고 있다.
▲독서시간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단짝 친구들.
한 부사관 부모는 “어렸을 때 학교를 몇 곳 옮겨 다녔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시골 분교를 다녔을 때”라면서 “자연 속에서 즐겁게 아이들과 어울려 지냈던 경험을 우리 아이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통학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