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남매의 장남인 내가 군대가서
부모님께 사전 연락도 안해 드리고 월남전에 참전하여
육개월만에 휴전이 되어 귀국하는데
귀국 한 달 전 쯤에 73년 3월 5일 귀국한다고 집에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귀국하는 날 나트랑 공항에서 뱅기타고 북쪽 다낭 공항에 들렸다가 4시간 인가 날아서 대구 공항에 내렸는데
그날 대구 신천동에 있는 육군 간호학교인가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동대구 역에서 귀국 환영회가 있었는데
귀국 병사들은 전부 열차안에서 앉은 채로 밖을 내다보고 귀국하는 장병대표가 내려가서 꽃다발도 받고 했는데
그 시간이 불과 2,30분이었다
지금도 보면 열차 선로는 지하 처럼 아래에 있고 동대구역 광장은 위에 있듯이
귀국 환영회를 관람하는 시민들은 광장 위에서 내려다 보는데
내가 마침 광장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우측 자리에 앉았던 터라 그 어느 순간
저 멀리 광장 위에서 누굴 찾느라고 눈이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와 동생을 발견한 거라
나를 못 본 것 같아 내가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계속 흔드니 동생이 팔을 뻗어 손짓을 하면서
엄마보고 저기 당신 아들 형님이 있다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데
그때 병사들은 아무도 열차밖으로 나기지 못하도록 했기에 내려갈 수도 없었고
열차가 출발 직전인데 거리가 멀어 이야기도 말 한마디 나눌 수가 없어
팔을 흔들며 일주일후에 집엘 간다고 칠자를 그려보였는데
그 때 동생이 형이 일주일후에 집에 온다고 알아보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집에 와서 들은 애기로는 내가 비행기타고 귀국한다하니 어떻게 알아보고 대구 비행기장에 찾아갔다가 못 만나고
대구 친척집에가서 하룻밤 자고 수소문하여 알아보고 동대구 역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돈도 없던 때라 택시를 타지도 않았을 텐데 두 모자가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그래서 열차로 수원까지 가서 새로 생긴 부대에 가서 하룻밤 자고
동기생들은 벌서 한달 전에 다 제대를 했는데
바로 제대시켜주지 않고 일주일 휴가갔다 오라 해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따블백을 울러매고 휴가를 왔다가 일주일후 귀대하여 대구 오십사단을 거처 군생활을 마쳤던 것이다
그래서 동대구역을 지날때면 50년전 그때 추억을 그려보곤 한다
첫댓글 옛 추억을 되살리셨군요
예 감사합니다
돈벌러 월남간다는 그때는 살기힘던때라 고생많이 하셨으요.
그랬지요 돈 번다고 간 사람도 있고 억지로 차출되어 간 사람은 없었는지 저도 모르지요
저가 월남 갔단 얘기들은 울 아버지가 그랬다고 하더군요
가난하게 사는 집 생각해서 간 것인가 하고요
그런데 육개월만에 왔으니 한달에 우리 돈으로 만오천원정도 집에 부쳐주어 뭐 도움이 안되었지요
옛말에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는데
아름답고 값진 추억 공유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
그러하지요 남자는 군대 추억이 많지요
감사합니다
그날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글을 읽는 제가 눈물이 글썽..
정말 극적 상봉이라도 할 뻔 했는데
먼 발치서 바라만 보았으니 그 심정 이해하지요
그땐 교통도 지금보다 불편했는데 포항에서 대구까지 아들 마중하러 갔는데
만나지도 못했으니까요
진주님 고맙습니다
나는 육군 항공대에서 상사로 근무했던 때입니다.
육군 항공병과는 월남 파병가기 어려웠어요, ㅎㅎㅎㅎ
병과마다 필요한 병력이 달랐던거 같습니다
전투병과가 가장 많았겠지요
저가 갔을 때는 휴전 직전이고 마지막 파병이었기 때문에 일찍 가서 귀국하지 않고 근무연장된 장병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헌병병과였는데 주월야전사령부 정문 후문 경비근무와 별 하나 야전사령관 전선에 시찰나가면 소대장과 하사 한 사람이 헌병차타고
경호하는 임무만 보았고 본부 쪽에는 헌병들이 어떤 근무를 하는 지 보지도 못하고 귀국 제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저가 6개월 갔다오고 국가유공자 되었네요 ㅎㅎ
동대구의 추억이 눈물겹군요 그렇게 아들이 보고싶어 자나깨나 보고싶어 수소문 하여 포항에서
동대구까지 가신다는게
그당시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보이지도 않고 애타게 손만 흔드실때 그마음이 얼마나 애태우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동안 포항에서 어머님께 효도하시고 편안하게 아드님의 효도받으시다
가신 어머님도 아들의 고마움에 좋은곳에 계시리라 믿어요
어쩜 글도 마음을 흔들어 놓으시는지
저쪽에 글 올리실때
함께 대경방에 복사하여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가 글을 쓰기가 좀 망사려지는 데 글도 잘 못쓰지만
댓글에 답글 써 드리기도 좀 어렵고
그래도 대경방 총무 친구님 하명이라면 가끔 쓰잘대기 없는 이야기라도 올려보겠습니다
친구님 표현과 같이 그 때 우리집은 가난해서 동생들 고등학교도 못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월남 갔다고 나중에 아시고 아버지께서는 저가 돈 때문에 월남간것 같다고 우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지요
그대는 우리집에 포항 시내도 아니고 영일군 시골 면소재지에서도 십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내가 귀국한단 편지를 받고 버스를 몇번이나 갈아타고 대구까지 가서 동촌 비행장을 찾아가서 아들 얼굴 보지도 못하고 저녁에 친척집 찾아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동대구역에 열차를 타고 간다는 걸 어떻게 알아보고 동생하고 역광장에 나와서 아래 열차를 내려다 보고 아들을 찾고 있었으니
어쩌면 참 극적이었다고나 할까..
아이 친구님 고맙습니다 연말 잘 보내세요
@우경(愚耕) 친구님 고맙습니다
@우경(愚耕) 우경님 반갑습니다.
저는 71년 6월28일입대하여 전,후방각지에서 30년 군생활마치고
지금은 내고향 경산에서 살고있습니다.저와 거의비슷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것같아 인사드림니다.자주인사드리겠습니다.
@김종업(경산) 김종업님 반갑습니다 저는 포항입니다
30년이나 군대 생활을.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퇴직하신 시기는 저가 공직 퇴직시기와 비슷한 시기이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