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국보문학카페> '틀리기 쉬운 우리말방'.
소향 조남대 님의 '우리말'이란 제목으로 오늘도 소중한 글쓰기 자료가 게재되었다.
'도량형과 이름
정확하게 적고 말하는 습관 가져야'의 요지이다.
' ... 수량을 나타내는 우리말 중에는 그 뜻이 두루뭉술한 게 굉장히 많다. 농경시대에는 벼나 보리 등 농산물의 무게와 부피를 재는 도구가 단순했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고 에둘러 가리키는 수사(數詞)가 많았다. 이를테면 ‘두서넛’ ‘대여섯’ ‘여남은’같이 막연한 수사가 널리 쓰였다. ... 정확하게 적고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우리말과 글이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이끌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내가 위 본래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우리 민족의 성향도 떠올려서 아래처럼 댓글을 달았다.
내 댓글 1)
늘 소중한 자료 올려주시기에 고맙습니다.
덕분에 국어공부를 더 합니다.
저는 6하원칙에 따라서 글 쓰려고 하지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외에도 의문사항이 적도록 자세히 밝히려고 하지요.
특히나 제가 글 쓸 때에는 말미에 년월일을 꼭 넣습니다.
나중에 글 읽으면 그게 언제적 일이었더라?하는 당시의 느낌과 기억이 더욱 생각이 나니까요.
우리말을 우리글자(한글)로 적는데도 무척이나 서툰 사람들도 있대요.
아마도 중국 한자말에나 익숙한 유식한 사람들이라서 그러하겠지요.
위... 두루뭉술한 수식어..
저는 충분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성이기도 하기에...
'우리', '다 함께' 라는 말에는 어쩌면 위처럼 두루뭉술하게 해서 모두를 감싸안을 듯도 하고...
늘 정확해야 하지만 때로는 은근 슬쩍 눈감아 주는 아량도 필요로 하겠지요.
예전 시골에서 살 때 가을철 벼바슴을 하면 말로 헤아렸지요.
벼(쌀) 등을 말에 담아서 숫자를 헤아릴 말의 밑퉁을 한번 툭! 치면 벼(쌀) 등이 더 들어갔지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한테는 말 밑둥을 툭툭 !! 쳐서 은근슬쩍 더 담아주었지요.
이거 우리의 정서였지요.
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엄지 척!
위 '말'로 쌀을 담을 때에는 말-밑을 툭툭!! 치면 쌀이 더 들어간다!
수십 년 전인 1960년대 말.
내 아버지와 함께 경주 교동의 <최부자댁('Historic House of Rich Man Choe, Gyeongju'>에 방문했다.
아버지는 경주최씨 중앙종친회의 임원이었기에 12대 마지막 부자인 <최준>선생을 뵈었다.
'경주 최부자'는 12대 만석지기이면서도 부자-티를 그렇게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사방 백리 안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곡간 앞에 '쌀뒤주'를 놔둬서 항상 열어놨고, 가난한 사람들이 깜냥껏 쌀을 퍼가게끔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전설처럼 남아서 존경받는 최부자댁이 있다. 인심은 곡간(곳간)에서 나오기에...
최부자댁 재산은 대학교 건물을 짓다가 붕괴되고.. 삼성그룹 이병철한테 ... 훗날에는 박정희한테 ... 지금은 이름만 남았다. 경주 최부자댁 건물도 이제는 박씨네 ... 영남대학교 소유가 되어서 ...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 건설 중 붕괴 사고.. 최준 선생은 사고 수습차원에서 삼성그룹 이씨한데 협조 의뢰 ..
이씨는 삼분밀수(사카린) 사건을 무마하려고 박씨한테 최씨네 소유권을 넘겼고 ...
아쉽다. 지금은 그저 전설같은 이야기만 남았다.
12대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 선생은 1970년에 돌아가셨다.
위 12대 만석지기 최부자댁처럼 인심은 곡간(穀間)에서 나온다.
가을에 벼를 바슴해서 볏가마니에 벼를 담을 때 말로 하나 둘 셋... 으로 헤아려서 담았다.
동네 방앗간에서 벼를 찧어서 쌀이 나오면 이웃사람한테도 팔았다.
이때 말로 쌀을 퍼담는 사람은 - 쌀을 사가는 사람이 가난하면 - 쌀의 양을 헤아리는 말의 밑을 툭툭!! 쳐서 쌀이 더 들어가게끔 슬쩍 요령을 피웠다. 물론 쌀주인도 이를 알지만 모르는 체했다.
이런 것들이 당시의 방앗간 인심이었고, 시골의 정서이었고, 우리네 인정이었다.
비록 가난하고 물자가 부족한 세상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서로를 배려하고 보듬어 주는 그런 세상이었다.
'우리(we)'의 뜻은 정겨운 우리말이다.
지금은 21세기. 2021년이다.
비록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고 로켓트가 우주공간 저너머로 날아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의 정서에는 함께 하는 두레문화가 있었고, 가난한 이웃을 배려해 주는 그런 마음씀씀이가 전수되고 있다.
첨단과학으로 초정밀세계로 발전한다고 해도 때로는 두루뭉술하게 슬쩍 모르는 체하며 약자를 보듬어 주는 문화도 함께 이어질 게다.
1970년 11월 화재로 경주 교동 최부자댁 건물은 소실되었고, 새로 지었음.
쌀창고(곡간), 지게...
12대 마직막 부자였던 <최준선생>은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냈고...
나는 서울에서도 아버지를 따라서 중앙종친회 모임에서 그 분을 먼 빛으로 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아쉽다.
2021. 10. 23. 토요일.
이 글을 쓰는데 눈물이 살짝 난다. 벌써 50여 년 전의 과거이니...
내 손자의 이름은 '최준'.
마음씀씀이가 넉넉해서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나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