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9층 목탑과 금당의 장육존상은 2027년에 복원되고, 전체적인 마무리는 2035년에 끝난다고 한다. 지난 2006부터 오는 2035년까지 30년 사업으로 진행 중인 황룡사 복원 사업은 2,900억원(국비2,030, 도비 261, 시비 609)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종합계획수립 및 기반 구축, 관람환경 정비, 연구센터 건립, 복원심화 연구, 목탑, 금당 등 주요 건물 복원 등의 순으로 진행될 황룡사 복원은 지난 2005부터 2011년까지 황룡사 복원 연구를 마치고 1-5차 기초연구를 완료했으며, 2007부터 2011년까지 황룡사터 내에 연구센터를 건립 (2,530㎡)했고, 부지 선정 및 발굴 조사, 연구센터 기본 설계를 완료했다. 또한 지난 2008-2011년에는 9층 목탑 모형을 제작했고. 1/20 부분 모형 6개안을 제작 완료했다.
황룡사 복원정비 종합계획 안에 따르면 2017년까지 복원설계 및 정비사업에 착수, 담장, 중문 의 설계 및 복원이 이뤄지고,목탑 설계,연구센터 건립,사지(寺址) 내 관람 환경정비도 실시된다. 이어 2027년까지 진행되는 황룡사 건축물 복원 단계에선 경주시의 랜드마크로 기능하게 될
황룡사 9층 목탑과 금당이 복원된다. 황룡사 9층탑은 아파트 30층에 해당하는 80m 높이로 신라
왕경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된다.
목탑과 더불어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로 5.7m 크기의 장육존상과 그 불상을 봉안하게 될 금당
도 함께 복원된다. 전체 예산 중 9층목탑 복원에 1,354억, 장육존상 및 금당 복원에 434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다..
2035년까지 진행되는 마지막 역사, 문화환경정비 단계에서는 동강당, 서강당, 중문, 동승방, 서승방, 남회랑 등 부속 건물을 비롯해 주변 역사, 문화환경 정비를 모두 마무리한다. 특히 황룡사 동쪽 일대의 왕경 유적지에는 스님들의 거주시설과 템플스테이, 명상센터, 불교 미술 공예관 등 시설이 들어서며, 황룡사 진입로를 중심으로 공연 및 전시 공간, 쇼핑거리, 숙박, 음식을 판매하는 신라촌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조성된다.
그러나 복원된 황룡사를 사찰 기능이 상실된 청주 흥덕사처럼 할 것인지, 스님들의 거주가 확보된 사찰로서의 기능을 갖춘 시설로 할 것인지에는 이론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예산 집행과 국가유산청의 문화재 복원 의지이다. 언제나 계획은 거창하고 그럴 듯 하게 세우지만 실제 실행은 항상 더디기만 하다. 2035년 완공이라고 하면 스테파노 생전에 볼 수 있는 영광이 있겠지만 기일이 늦어진다면 사후에 하늘에서 내려다 볼 일이다.
경주 보문단지 엑스포대공원내 경주의 랜드마크인 경주타워(음각, 처녀탑 : 82m)는 황룡사 9층 목탑을 현대식 유리 탑으로 재현해 놓은 예술적인 작품인데 길 건너 편에는 이에 대응하는 중도타워(양각, 총각탑 높이 : 81m)가 우뚝 솟아있다. 이는 황룡사 9층 목탑을 본 떠서 만든 것으로 동국제강에서 현대식으로 건축한 "황룡원"으로 연수원같은 호텔의 일종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테파노는 황룡사지를 수 차례 답사했는데 아직은 황량하기만 하다. 요즘은 문화재 발굴 과 복원에 따른 공사가 한창이다. ...................................................................
황룡사(皇龍寺)는 국가적 대찰로서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와 더불어 황룡사의 9층 목탑
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은 신라의 3보로 숭상(崇尙)을 받아왔으며, 국가적인 행사나 우환이
있을 때는 황룡사에서 고승을 청하여 백고좌(百高座)를 설치하였고 왕이 친행 예불한 장소로는
황룡사 이외의 곳에서 예불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왕조가 바뀌어 고려조에 이르러서도 광종 5년(954)때에 벼락으로 목탑이 소멸하자 60여년이
지난 1012년 다시 재건을 시작하여 9년만에 완공했고 정종 2년(1035), 현종 1년(1095)에 보수
공사 3년(1012)에 조유궁(朝遊宮)을 헐어서 9층 탑을 수리하는 등 보호에 힘썼으나 고종 25년 (1238)
몽고의 난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회진(灰塵)되고 말았다.
남겨진 절터에 의하여 황룡사의 규모를 추정할 때, 경내는 약 2만평으로 추정되며 남에서부터
중문(中門), 탑, 금당, 강당(講堂)이 남북선상에 서고, 구당과 중문을 연결하여 동서로 회랑을
돌려 내정에 금당과 구당을 두는 일탑식(一塔式) 가람제도(伽藍制度)로서 황룡사지(皇龍寺址)는
그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절터이다.
회랑으로 형성되는 내정(內庭)에는 금당 좌우와 중문 좌우에 각각 건물자리가 있고 탑의 기단 4면
에는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1976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발굴 조사의 결과 전면 10간, 측면 4간의
큰 강당 자리가 비로소 밝혀졌다.
주위에는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으리라고 추측되며 발굴에 따라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국가적
대찰에 부끄럽지 않는 대황룡사의 모습이 차차 드러나고 있다.
"철반이상(鐵盤已上)"이라는 표현을 보면 상륜(相輪)은 금속제이었을 것이다. 탑지 북쪽에는 금당지
가 있어 정면 9간, 측면 4간의 대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중앙에는 거대한 석조 불대좌(佛臺座)
3기가 있어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이 이곳에 안치되었으리라고 추측된다. 또한 솔거(率居)의
노송도(老松圖)도 이곳에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넓은 황룡사지를 거닐면서 눈을 감고 회상해 보면 찬란했던 신라인의 불국토의 이상국이 되살아 난다.
모든 전각이 일어나고,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 군왕과 대소 신료들의 행렬이 주마등처럼 스치어 간다.
The Poet and I... ─┼ * Frank Mills *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하며 황룡사지 바로 옆에 건립된 전시관으로 황룡사지의 연구와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내부에는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 역사전시실 등으로 이루어져 졌다.
1층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도 전시되어 있다. 모형탑 전시실 옆에는 황룡사지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아담한 로비 카페가 있다. 관람료는 어른 3천 원, 군인, 청소년 2천 원, 어린이 1,500원이며, 65세 이상, 장애인, 유공자는 무료이고 주차비 역시 무료이다.
관람시간은 평일 09:00-18:00, 토, 일요일, 공휴일 : 09:00-19:00이고, 휴관일은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그 시대의 간절한 소원이 표현 된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 율사가 당에서 귀국하여 황룡사에 탑을 세울 뜻을 선덕여왕 에게 아뢰니 선덕여왕이 군신에게 의논하였는데, 신하들이 “백제에서 공장(工匠)을 청한 연후에야 바야흐로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서 백제에게 청하였다.
장인(匠人) 아비지가 명을 받고 와서 목재와 석재를 경영하였고 이간(伊干) 김용춘이 주관하여 소장(小匠) 200명을 이끌었다. 장인(匠人)은 이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 탑을 완성하였다. 그런 만큼 이러한 소원과 포부가 이 탑에 반영되었다.
규모가 장대무비하였는데 9층까지 높이는 탑지(塔誌) 기록 당시의 당척(唐尺)으로 따진다 하더라도 약 53.45m, 상륜부(上輪部)까지 합하면 약 66.7m나 되는 거대한 것이고, 조영(造營) 당시의 척수인 동위척(東魏尺)으로 따진다면 80m 이상으로 그보다 더 높은 초대형 건축물이었다.
또한 황룡사 9층탑을 만들어낸 의지와 역량을, 삼국 가운데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후,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 타버렸고 현재는 탑의 초석(礎石)만이 남아 있다. 중앙의 심초석(心礎石)에서 1964년 12월에 도난 당하였던 금동사리함(金銅舍利函)이 1972년 10월 28일 국립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이 사리함의 3면에 걸쳐 탑의 조성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 경문왕(景文王) 11년(871)에 탑을 중수 하면서 탑의 조성과 중수 사연을 적은 것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삼국유사의 기록과 유사하지만 당시의 확실한 명문(銘文)에 의하여 황룡사의 위관(偉觀)을 재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황룡사 9층 목탑의 모습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경주타워가 2007년에 완공되었고, 이 목탑의 모습을 본따서 만든 중도타워가 2016년에 완공되어 있다.
황룡사 9층탑의 1층은 일본, 2층은 중국, 3층은 오월, 4층은 제주(탐라) 5층은 응유(중국 강소성 동쪽 섬)
6층은 말갈, 7층은 거란, 8층은 여진, 9층은 예맥을 복속시키는 것을 상징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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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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