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와 로고의 전쟁]
고대국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문장 ⑨ 현대의 메두사
 
유명 브랜드 로고로 인기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 메두사 로고로 유명…‘美·척사’ 의미 담아
시칠리아 문장은 ‘세 다리 사이에 고르곤’…과거 도시국가 문양 계승
시칠리아의 문장 |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전문장(前紋章)’을 살펴봤다. 학술적 규범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고대의 독수리·사자·메두사 등이 문장의 탄생과 확산을 이끌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울러 전쟁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나머지는 현대 문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고대 메두사의 현대판 버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대 괴물을 평정하다
메두사는 고대 괴물 세계를 평정한 절대 강자였다. 한 연구자는 “그리스 초기의 역사적 유물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 세이렌, 스핑크스 등도 같은 부류로 분류된다”고 주장한다. 공통점이 전혀 없진 않지만 명쾌하게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켄타우로스는 메두사에 말의 하체를 합성했고 스핑크스나 세이렌은 여인과 사자 또는 새가 합쳐진 혼성괴물이기 때문에 메두사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이런 주장에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괴물들도 메두사의 진화 과정에서 생긴 후손이나 돌연변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메두사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집중해보자. 고대 지중해에서 가장 위협적인 머리 아홉 달린 뱀 ‘히드라’(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뱀)나 괴물 문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에서 아테나와 메두사의 위상을 고려해 볼 때 고대에 악명을 떨친 괴물들이 메두사로부터 파생됐다는 가설이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서양 괴물사(史)의 정점에 메두사가 있다는 얘기로 정리될 수 있다.
메두사를 차용한 현대의 상징들
현대에도 메두사는 생소하지 않다. 고대 최고의 상징답게 자주 등장하는데 그 의미가 다양하다. 신화 또는 현실에서 고대 메두사가 현대 상징에 사상(寫像·Mapping)된 유형을 몇 가지 정리해 봤다.
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징표
메두사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1981년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Versace)’는 회사 설립 당시부터 줄곧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신고전주의를 추구해 왔다. 물론 로고는 메두사다. 패션은 물론 액세서리에도 메두사 로고를 사용해 큰 인기를 끌었다. 베르사체의 메두사 머리가 박힌 가방을 포함한 액세서리는 주장이 강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패션 리더를 공략했다.
특히 기능성 제품인 선글라스에 황금빛 메두사를 둘러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베르사체의 메두사는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로고다.
② 척사 또는 액막이 부적
메두사 하면 사악한 기운·재앙을 막아주는 척사(斥邪)나 액(厄)막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술적 이유로 흉측한 메두사는 고대로부터 성문의 가장 높은 곳에 새겨져 출입자를 감시했고, 석관·비문 위에서 망자를 지켰으며, 기와 등에도 종종 새겨졌다.
그뿐만 아니라 술·물·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새겨졌다. 용기에 담긴 음식물이 변질되거나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술을 마실 때 술잔의 바닥에 그려진 고르고네이온과 마주하면 과음으로 인해 생기는 현기증이나 구토 등 불편함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일종의 불가사의한 힘을 얻기 위한 부적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펜던트·목걸이·귀걸이·반지·팔찌 등에 메두사를 새긴 액세서리만을 취급하는 ‘가르디아(Guardia)’는 대표적인 액막이 패션 브랜드다.
우리에게도 이런 것이 있다. 거북선에 사용된 귀면(鬼面)이나 붉은악마의 치우천왕 깃발, 경복궁 같은 건축물에 새겨진 용 등이 그것이다.
2015년 보석 세공업자가 창업한 ‘모르페(Morphe)’ 역시 메두사를 로고로 사용한다. 얼굴이 작은 대신 머리 위 독사들의 비중이 커 이색적이다.
편의상 둘로 구분해 설명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위에 소개한 사례는 아름다움과 척사를 동시에 추구하는 브랜드로 보는 것이 옳다. 굳이 구분하면, 베르사체는 미(美), 가르디아는 척사, 모르페는 중간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③ 과거 번영에 대한 염원
그런가 하면 과거 도시국가의 문양을 계승하기도 한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 시칠리아(Sicily)는 오늘날 두 가지 특별한 문양을 결합한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 시칠리아는 고대에 ‘삼각형 모양의 땅’이라는 뜻으로 트리나크리아(Trinacria)로 불렸다.
그 때문에 문장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세 방향으로 대칭되는 세 개의 다리 ‘트리스켈리온(Triskelion)’을 사용한다. 이는 어느 방향으로도 쓰러지지 않는 영원불멸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고대 아테네와 동맹의 상징인 고르고네이온을 추가해 아테나가 수호하는 가운데 찬란했던 과거의 번영을 되찾는 염원을 담았다.
<윤동일 육사 북극성연구소 책임연구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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