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이 치열한 특허전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삼성은 엄청난 주문량을 자랑하는 고객인 애플을 버릴 수 없고, 애플은 자신의 요구에 맞는 저전력·고사양의 CPU를 요구한 시간 내에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제조사인 삼성을 아직 버릴 수 없다. 애플은 미국에서 삼성의 구 모델 판매 금지 조치를 얻어냈고 삼성으로부터 받을 배상금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애플의 승리라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5S에 사용한 A7 칩을 삼성이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A7이 삼성에서 만든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애플이나 삼성 모두 이에 대한 언급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두 회사는 아직도 활발히 ‘거래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두 기업의 거래가 결렬됐다면 어느 한 쪽이나 양쪽 모두 분명 민감한 부분들을 사용해서 공개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애플이 삼성을 특허로 선제공격한 이유는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견제를 위해서다. 애플이 보기에 삼성은 제 1의 라이벌이다. 미국 내에서야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이 단연 1위이지만 세계 시장으로 나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 애플의 A7칩 (사진: www.dailytech.com)
A7은 세계 최초로 일반 소비자용 스마트폰에 사용된 ARM 기반의 64비트 모바일 CPU다. 인텔 CEO는 A7칩을 평가하기를 “28nm의 집적도를 사용한 인텔보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기술을 사용한 칩”이라는 언급을 했다.
하지만 실제 성능을 비교해봤을 때 대부분의 테스트에서 A7이 인텔칩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여줬다. 심지어 일부 테스트에서는 인텔의 야심작인 베이트레일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나타냈다.
인텔이 보기엔 “뒤떨어지는 기술”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쟁사 스마트폰보다 더 나은 성능과 더 긴 배터리 사용시간을 가져왔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애플과 삼성이 인텔보다는 더 스마트한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쟁 기종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냅드래곤의 쿼드코어보다 A7의 듀얼코어가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준 것은, 기기의 성능이 코어의 숫자에 의존적이기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잘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애플은 iOS라는 탄탄한 소프트웨어가 뒷받침을 한다. iOS7에 대해 디자인이 어떻고 성능이 떨어지고 하며 말들이 많지만, 안드로이드나 윈도 RT와 비교해 본다면 보안이나 하드웨어와의 궁합에서 iOS가 더 앞서 있다.
한편 인텔은 최근 브로드웰 14nm 공정의 칩을 한 분기 늦춰 출시할 것이라고 언론에 공개했고 공정 내에서 발견된 오류로 인해 생산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인텔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Brian Krzanich)에 따르면 이 연기 결정은 “아주 작은 일시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고 우려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브로드웰의 후속 제품인 스카이레이크는 절대 지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도 더했다. 브로드웰 칩이나 스카이레이크 모두 14nm의 공정을 갖는다. 브로드웰이 성공적으로 생산라인이 구성되면 스카레이크는 동일한 집적도 내에서 설계만 바꾸는 것으로 물리적으로 집적도를 높이는 과정에 비해 지연될 가능성이 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은 출시 지연으로 인한 과장된 루머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된다. 특히 무엇보다도 생각지도 못한 오류가 발견됐었는데 그것을 바로 잡았다는, 그리고 브로드웰이 곧 출시될 것이라는 간접광고의 효과를 누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건은 피부로 와닿는 체감속도인데, 아이비에서 하스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유저들의 불만은 눈에 띄는 성능 향상의 부재였다. 하지만 하스웰은 인텔의 마케팅 중심이 데스크톱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는 과도기라 해석할 수 있겠다.
▲ 베이트레일과 윈도 8.1이 탑재된 델 Venue 8 Pro(사진: zdnet.com)
PC 애호가들에게는 슬픈 소식일 수 있으나 인텔은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모바일 시장에 더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 인텔이 발표한 베이트레일은 안드로이드 테스트에서 대부분의 다른 ARM 기반의 칩들의 성능을 높은 수치의 차이로 제치는 당찬 성능을 보여줬다. 델은 이미 지난 18일부터 베이트레일과 새로운 윈도 8.1을 탑재한 태블릿, Venue 8 Pro의 예약 판매를 받고 있다. 299달러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베이트레일의 고성능을 갖춘 이 제품은 테블릿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데스크톱과 모바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데스크톱과 모바일로 구분되기 보다는 워크스테이션과 모바일로 구분될 수 있다. PC는 모바일이 범접할 수 없는 고성능의 그래픽과 대용량을 갖추게 될 것이고 모바일은 현재 PC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와 웹서핑 및 단순한 게임의 용도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PC는 저가형 PC 보다는 고성능 고가로 시장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의 64비트 A7칩을 만들었던 삼성은 자체적으로 새로운 64비트 칩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은 갤럭시S4의 저조한 판매실적의 영향으로 S5의 출시를 서두르고 있는데 빠르면 내년 1월에 출시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삼성이 개발하고 있는 64비트 칩인 엑시노스 5430이 내장될 가능성이 높은데 8개의 코어(옥타코어)가 동시에 사용 가능하게 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삼성이 만든 이전 옥타코어는 진정한 의미의 옥타코어가 아니고 저전력으로 구동이 가능한 네 개의 코어와 상대적으로 고성능인 네 개의 코어로 이뤄진 칩이었다.
Heterogeneous Multi-Processing (HMP)라는 기술을 적용한 엑시노스 5430은 이런 과거의 단점을 깨고 필요에 따라 두 개, 네 개, 여덟 개의 코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엑시노스 5430은 20nm의 공정으로 제조될 것이라는 소문과 동시에 삼성이 14nm의 칩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서 인텔과의 기술 격차를 무서운 속도로 줄여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엔 엑시노스 5430이 14nm로 생산될 것이라는 상당히 과장된 소문도 돌고 있다.그러나 인텔도 고심하고 있는 14nm의 집적도를 삼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은 좀 정도가 지나친 소문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서 삼성이라는 예상치 못한 강적을 만나게 됐다. 베이트레일이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시장에 강수를 두었으나 28nm의 1.3GHz 듀얼코어인 애플이 디자인하고 삼성이 만든 A7칩의 성능에 이기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데스크톱이 주류였던 과거에는 AMD가 인텔의 라이벌이었다면 모바일이 주류가 되어가고 있는 현재는 삼성, 퀄컴과 엔비디아가 인텔의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것. 모바일에서는 그 Hz의 수치나 코어의 숫자보다는 효율, 즉 발열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느냐가 기기의 성능을 더 좌우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CPU의 집적도도 향상되고 코어수도 늘어나고 클럭 주파수도 높아지겠지만 발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향후 모바일 CPU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기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