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여러가지 편견이 있지만 심형래에게 주어지는 편견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심형래는 현재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특수효과 영화감독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개그맨으로 생각한다. 어디 그뿐인가. 강서구 오곡동 수천평의 부지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특수효과 스튜디오인 ‘영구아트무비’를 운영하고 있는 점도 세상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LA에서 두달 반에 걸쳐 로케이션 촬영을 한 것은 더욱 그렇다. 80여대의 컨테이너 차량이 항상 대기하고 9.11 테러사태 이후 LA 시내에선 처음으로 걸프전에서 사용됐다는 실제 탱크 4대가 동원됐지만 그런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심형래가 설마’하는 표정을 짓곤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할리우드는 지금 그의 새영화 <디 워>에 주목하고 있다. 그건 여기에 나온 배우가 일본영화 <주온>을 리메이크한 작품 <그러지>로 요즘 할리우드에서 차세대 스타 대우를 받고 있는 제이슨 베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재키 브라운> 등에 나왔던 로버트 포스터도 이 영화에 나온다.
<디 워>는 영구아트무비측에서 공개하기를 꺼러셔 그렇지 어림잡아 2백억원을 훌쩍 뛰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메이저들은 이 작품에 ‘실제로’ 군침을 흘리고 있다. 특수효과 영화는 꼭 극장이 아니더라도 비디오나 DVD,컴퓨터 게임 등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다. <디 워>는 잘만 하면 정말 수억 달러, 우리 돈으로 수천억원을 벌어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잘났다’는 할리우드가 우리사회 일부 지식인들이 그렇게도 폄하하는 심형래 ‘따위’에 주목을 하고 있는 이유는 CG기술의 높은 퀄리티때문이다. 1999년에 만든 그의 영화 <용가리>를 생각하면서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믿는다’는 사람들은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디 워>의 화면 질감을 보면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심형래의 가장 큰 미덕은 처음엔 매우 수준낮은 특수효과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후 만드는 영화마다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그는 정말 계속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영화 ‘감독’이다. 한가지 더. 현재 한국 감독 가운데 할리우드가 있는 LA시내 한복판을 막고 탱크를 동원해 영화를 찍는 감독은 심형래밖에 없다.
LA현지에서 신작 <D-War>를 제작중인 심형래 감독. 맨 오른쪽이 배우 로버트 포스터. ⓒ디앤디미디어
문 : 어떻게 보면 그게 다 자업자득일지도 모르지 심형래 : 뭐가 또~?
문 : <용가리>때 너무 요란하게 홍보를 했으니까 말에요. 심형래 : 신지식인 1호니 뭐니 얘기를 한 건 내가 아니잖아. 물론 지금 생각하면 돈 얘기를 너무 많이 했어.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실제로 실적이 조금 미치지 못하니까 <용가리>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조차 마구잡이로 비판하더라니까. 근데 막상 <용가리>를 본 사람들 가운데, 특히 젊은 층에서는 격려 이메일이 굉장히 많이 왔었어.
문 : 그만큼 찬반이 엇갈렸다는 얘기죠. 심형래 : 근데 내 느낌엔 찬성보다는 반대쪽의 이야기가 더 많이 부풀려져서 나간 것 같아. 당신 같은 기자들이 그런 거지. 나 상처 많이 받았어. 심지어 내가 뭐 사기를 쳤네, 그래서 소송에 휘말렸네 등등 있지도 않은 얘기들 해대고 말야. 오히려 내가 사기를 당했어. 그래서 해외 판매분이 내게 회수가 안되고 그 이익이 엉뚱한 사람한테 갔어.
이 얘기가 나오면 인터뷰는 한도 끝도 없이 간다. 그리고 이 얘기는 거짓말 보태지 않고 백번은 들었던 얘기다. 무엇보다 <용가리>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서는 누가 옳든 그르든 미안하지만 이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늘 그렇지만 과거보다는 앞일이 더 중요한 거니까. <용가리>로 다소 억울한 면이 있었다 한들 이제 그에겐 새로운 작품 <디 워>가 있다. 이 영화에 관한 한 그는 절대로, 절대로 <용가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문 : 그래서 그런 거에요? 심형래 : 뭐가 또~
문 : <디 워> 촬영을 몰래 숨어서 하는 거 말에요. 심형래 : 내가 무슨 도둑이야? 숨어서 몰래 하게? 그보다는 말야, 해보니까 말야, 영화찍는 데만도 너무 너무 바빠. 일일이 사람들 만나서 설명하고 자랑하고 할 시간이 없어. 그리고 지금 생각에는 하루빨리 영화 만들어서 극장에 걸고 싶을 뿐이야. <용가리> 만들고 나서 만 4년이 지났어. 이 영화 만들려고 2년 기획하고 2년 가까이 촬영해 왔어. 그런데 앞으로 1년은 더 작업해야 할 것같아. CG 제작이 그 정도는 걸리니까. 물론 2005년 여름방학을 겨냥해서 모든 제작이 끝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근데 그렇게 해서 최상의 퀄리티를 내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영구스러운’ 일이 없다는 거 <용가리>때 다 배웠어. 이제 그런 짓 안해.
문 : <디 워> 얘기합시다. 그거 이무기가 용이되는 내용이라면요? 왜 맨날 용이야? 무슨 강박증 있는 거 아녜요? 심형래 : 참 나. 당신이나 용 얘기하면 '오 지겨워' 하지, 밖에 나가 봐라 인간아. 굉장히 신기하고 재밌는 얘기라고들 해. 서양에 용이란 게 있어? 물론 있지. 있는데, 이무기라는 큰 뱀이 용으로 변한다는 얘기 있냐고? 그래 그래 없단 말야. 그래서 매우 독창적인 스토리라고들 생각해.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다는 아니고 당신 같은 사람들은 참 이상해. 할리우드 영화에서 갖가지 이상한 동물이 나오고, 공룡이 DNA 기술로 복제되고 등등에 대해서는 '아 재미있다' 하면서 왜 우리나라 고대 설화나 전설 얘기를 하면 하품부터 할려고 해? 그것도 다 할리우드가 최고라는 잘못된 인식이 박혀 있어서야. 그 편견부터 버리라고.
문 : 그러니까 이무기가 용이 되는데, 그러고나선 어떻게 된다는 건데요?
심형래는 그리 말주변이 뛰어나지 않다. 그래서 그가 설명하는 자신의 영화 <디 워>를 여기서 일일이 다 옮기고 싶지는 않다. <디 워>는 대략 이런 얘기다. 천년에 한번 용으로 승천하는 이무기들 가운데 사악한 존재가 있는데 이름하여 ‘브라키’다. 이 ‘브라키’가 여의주를 갖게 되면 세상은 악의 무리의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여의주는 5백년 전의 조선 여인 ‘나린’이 품고 태어나게 되고 ‘브라키’ 무리는 과거로 돌아가 조선을 공략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얘기가 여기서 끝나면 할리우드가 등장할 이유가 없다. 조선여인 ‘나린’은 현재의 미국여성 ‘새라’로 환생하게 된다는 데에 이 영화에 할리우드가 혹하는 이유가 있다. 영화는 SF 특수효과 영화답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미국 여인 ‘새라’ 역에는 역시 조디 포스터 주연의 <파이트 플랜>에 나오며 할리우드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만다 브룩스가 맡았다.
문 : 배우들하고 영어로 얘기했다고요? 심형래 : 흠흠..
문 : 근데 어떻게 촬영을 했대요? 심형래 : 내가 하는 영어는 따로 있으니까. 보통 할리우드에서는 라스트 씬 촬영할 때 그걸 ‘마티니 샷’이라고 하더라구. 마지막 샷을 찍고 나서 마티니 한잔씩을 하는 모양이지? 난 그걸 ‘소주 샷’으로 바꿔 불렀지. 그러는 당신은 영어 잘해?
문 : 할리우드에서 촬영하는 게 어떤 점이 달라요? 심형래 : 엄청 달라. 할리우드 치켜 세우는 건 아니지만 거긴 여기보다 더 조직적이고, 더 효율적이고, 더 전문적인 것 같아. 안타깝지만 그건 사실이라구.
문 : 예를 들면? 심형래 : 예를 들어서 영화 속에서 응급차가 잠깐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거 한 컷 찍는다고 거리의 조명을 다시 다 세우더라구. 우리는 그거 인서트 용으로 그냥 찍고 말거든. 아 근데 거기는 안 그래. 그러고 나서 나중에 모니터를 보니까 정말 ‘때깔’ 다르더라구. 그러니까 걔네들이 더 철저하다는 얘기 아니겠어?
문 : 이번 영화는 거의 할리우드 스텝들을 썼죠? 심형래 : 거의 모두. 촬영은 (조금 더듬으며) 위베르 택자..노..프스키란 사람이 했는데 촬영도 촬영이지만 이 사람이 운용하는 조명팀을 보고 깜짝 놀랐어. 예전에 내 경험으로 그런 조명으로는 절대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은데 그게 되더라구. 영화는 빛의 예술이라는 거, 한 수 톡톡이 배웠지.
문 : 할리우드를 정복하려면 할리우드 사람을 쓴다? 심형래 : 그거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에 들어간다는 속담하고 같은 얘기지. 맞아 그럼.
문 : 이번 영화로 돈은 얼마나 벌 것 같아요? 심형래 : 왜 기자들은 그렇게 돈,돈,돈 하는지 몰라. 나도 몰라. 얼마나 벌지 말야. 내년 2월에 할리우드 메이저와 빅 거래가 있어. 그때 모든 게 결정나겠지만 음..좀 벌지 않겠어? 엄청나게 말야.(웃음)
문 : 앞으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의 막대한 제작비, 그리고 이 수천 평의 스튜디오는 무슨 돈으로 다 만들었대요? 심형래 : 난 문화관광부에서 무슨 기금 같은 거 받는 사람이 아니고 대신 산업자원부 같은 데서 산업진흥기금 같은 거 받는 사람이거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얘기지.
문 : 또 잘난 척.. 심형래 : 에구 그랬나. 그럼 이렇게 써줘. 그래도 여전히, 계속해서 심형래의 노력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에게 이익금을 많이 나눠주기 위해서 이번 영화 꼭 대박 터뜨리고 싶어. 진짜 대박말야. 세계적인 대박. 그러니까 내년 말에 개봉될 <디 워>를 꼭 기억해 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