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수 백 억 원대의 부자가 거지의 삶. 예수병원에 또 5천만 원 천사기부자.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인지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삶일 것 입니다. 권력이나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남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돈을 벌어 성공했으면서도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초라하게 사는 인생을 검소하다고 표현한다면 지나침이 있을까요? 우리 주위에 재산은 100억대가 넘게 있으면서 참으로 불쌍하게 살아가는 분이 계십니다.
필자가 잘 아는 전주 덕진동에 사시는 어느 80대 후반의 구두쇠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젊은 시절에 일찍 여의고 다섯 명의 자녀들을 열심히 키우며 악착같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머리가 비상하였고 셈이 빨랐으며 투자의 안목도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화장품영업과 보험영업 식당과 옷가게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일정한 돈이 모일 때마다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 하였습니다.
돈이 모일 때마다 건물과 토지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며 나름 마음속의 행복함과 만족함을 누렸습니다. 건물의 세입자와 토지의 임대세입자 인원수도 엄청 늘어났습니다. 그 많은 임대세입자를 혼자서 관리한다는 것은 이제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부동산 관리업체에 일임하여도 될 테인데 수수료가 아까워 당신이 직접 관리하였지만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전주의 남부시장 상가에서부터 중앙시장 및 인근의 수십 개의 상가와 건물, 전북대 병원 근처의 원룸과 약국건물. 의료기건물. 중국집건물. 익산의 대형건물과 토지, 완주용진의 몇 개의 널려있는 토지, 송천동과 신시가지의 신축건물 등등 ?
그리고 금암동의 모텔과 대로변의 건물 등등의 어쩌면 전주시내 각 동마다 하나씩을 있을법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였지만 은행에 대출이나 설정은 어느 곳 하나 없는 빚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여기까지는 할머니의 부동산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에 독자여러분들은 할머니의 성공적인 삶의 인생을 부러워하거나 참 열심히도 살았음을 느끼실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할머니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맛있는 것을 사먹거나 허투로 돈을 낭비하거나 치장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행색은 늘 초라하였고 상가 거리에 빈 박스와 빈병이 버려져있으면 자신의 작은 손수레에 싣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은 택시도 타기도 하였지만 할머니의 부동산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당신의 건물이 보이고 들여다보고 가야하기에 전주시내를 거의 걸어 다니셨습니다.
할머니의 수첩에는 맞춤법도 틀린 월세 일정표가 각 지역의 본인소유의 부동산마다 빼곡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많은 부동산들에 대한 주소와 입주업체 층별 보증금과 월세 내역 등은 정확히 모두 암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할머니의 머리는 비상하였고 지혜도 있었습니다. 할머니 소유의 건물에 세입자가 하루만 월세가 늦게 입금되어도 세입자는 밤낮으로 수십 통의 독촉전화를 받아야 했고 다음 날 새벽같이 직접 가계를 찾아와 난리를 피웠습니다.
건물에 누수가 생기거나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여도 할머니는 모두 나 몰라라 외면하였습니다. 그것은 세입자들이 고쳐 쓰거나 아예 관리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할머니의 피도 눈물도 없는 세입자에 대한 가혹한 갑질은 계속되었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제대로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기한약속도 없이 막무가내로 재계약을 하라며 재 계약시 추가 월세를 인상한다는 조건도 붙였습니다. 그러니 어느 세입자가 그러한 조건으로 재계약을 할 것이며 할머니와의 인연을 맺으러 하겠습니까??
어느 날 할머니는 필자에게 부탁을 해 오셨습니다. 금암동의 건물세입자가 3개월의 월세를 주지 않고 있으니 당신의 사위라고 하면서 월세를 받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필자는 할머니의 그동안의 살아오신 삶을 모르기에 순수하게 돕자는 마음으로 세입자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세입자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건물 지붕이세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나 할머니에게 수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막무가내였고 급기야 세입자가 자신의 돈을 들여 수리하기에 이르렀던 것 입니다.
건물을 나간다 해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건물의 수리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보니 급기야는 할머니의 자녀들에게 전화를 해서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일부 세입자는 할머니의 막무가내 주장을 필자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필자는 할머니를 설득하여 보증금을 반환 해 준 것만 해도 5건이나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할머니는 필자를 의지하였고 설득에 그래도 동의를 해주셨습니다. 몇몇의 세입자는 오히려 필자에게 감사와 고맙다는 인사를 해 오셨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세입자의 보증금을 입금시키기 위해 은행에 함께 가보았습니다.
은행의 관계자는 할머니가 들어서면 특급 고객으로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출은 없지만 모든 세입자의 보증금과 월세를 거래하다보니 그만한 대우는 은행에서 받을 만 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자녀들은 모두가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의사와 금융회사임원 그리고 교수 등의 훌륭한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매월마다 일정금액의 용돈을 또 받고 계십니다.
이 또한 용돈이 늦어지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하였습니다. 또한 건물세입자들은 할머니와의 대화가 통하지 않다보니 상기의 자녀들에게 전화를 해 대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저는 모르는 일이니 어머니에게 전화하세요."?하며 일방적인 통화 거부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세입자들에게 엄청 많은 전화를 받다보니 이제는 스트레스가 쌓여 거부를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할머니에게 코로나 영향은 건물세입자들에 대한 매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급기야 계약기간이 끝나자 보증금 반환소송을 하게 되고
건물에 가압류를 하게 되자 그때서야 보증금 반환을 하면서도 악착같이 한 달 분 추가 월세를 더 받아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의 건물들은 세입자들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에 누구하나 입점 계약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은 할머니의 건물 반 이상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빈 건물과 빈 점포로 썰렁하게 임대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신축한 신시가지 대형건물과 송천동 대로변의 입지 좋은 건물도 모든 세입자가 나가고 건물전체가 통째로 비워져 있습니다.
이에 할머니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급기야는 치매가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건물과 부동산을 8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매입하기만 하였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절대로 매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모원장님은 그분의 허름한 부동산을 매입하여 새롭게 병원을 증축할 예정으로 꾸준히 접촉을 하였지만 평당 2천만 원을 달라는 상식에 맞지 않는 주장으로 속앓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할머니께서는 필자가 보기에 정신적인 강박관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손을 움켜 쥘 줄은 알았지만 절대로 펼 줄은 몰랐던 것은 그동안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공부시키며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가까운 친구나 대화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것 입니다.
자식들도 모두가 먹고살만하니 어머니의 재산에 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세입자들의 항의전화에 오히려 귀찮아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부동산을 늘여야 한다는 일종의 정신적인 강박관념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필자는 돈이 아까워 잘 드시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한정식집이며 삼계탕 등 보양식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마치 그렇게 맛난 음식을 처음 드셔보는 양 그 작은 체구에 남김없이 모두 드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할머니는 비싼 음식이니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평소에 드셔보지 못한 음식이라 대식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동안 필자가 많은 일들을 도와주다보니 할머니는 그래도 그 일들이 고마왔는지 하얀 봉투에 30만원을 담아 억지로 필자의 차안에 던져놓으시고 고맙다며 사라지셨습니다.
아마도 평생을 구두쇠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베풀어주는 보기 드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마음이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그 할머니는 필자에게 더 이상의 전화 연락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치매가 더욱 심해지고 건강이 안 좋으셔서 요양병원에 계신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무엇이 할머니의 삶을 이렇게 기구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맛있는 먹을 것 입을 것 여행 등~
그러한 것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고생고생만 하다가 결국은 그 많은 수 백 억 원대의 재산은 어떻게 정리가 될지 필자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보게 됩니다.?자식들에게도 외면을 받아온 할머니의 재산은 당연히 자식들에게 유산 상속되어 나누어지겠지만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고생된 슬픈 삶을 조명해보면 씁쓰레한 마음이 드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요?
할머니는 전주시내의 워낙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였고 세입자들의 입살에 오르내리어 웬만한 부동산 중개사무실은 대부분 알고계시는 유명한 분입니다. 필자는 그동안 할머니 건물에 세입하여 들어와 대부분 불편을 겪었을 분들에게 할머니의 말도 안 되는 갑질을 이제는 용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찌보면 이 사회의 많은 갈등 요소가 할머니에게 간접적인 피해자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이 사회는 갈수록 삭막해지고 인간적인 정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 64년 전 죽음의 위기 속에서 돈 없이 무료로 위암수술을 해준 전주예수병원을 찾아 5천만 원을 기부한 고창에 사시는 88세의 어느 할머니를 소개하는 칼럼을 올려드렸습니다.
필자의 5만 여명의 독자여러분들의 감동 댓글들이 잇따랐고 돈이 없어 수술을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11월 1일 전주 예수병원에 또 익명의 기부자가 5천만 원을 기부하였습니다.
필자는 익명의 기부자가 어느 분인지는 알고 있지만 본인 이름을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탁이 있어 공개하지 않습니다. 마치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천사 같은 마음으로 23년째 익명으로 계속 기부하는 천사가 떠오릅니다.
금번 예수병원에 5천만 원을 기부한 기부금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치료비와 수술비로 아주 귀하게 쓰일 것 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는 훌륭한 분들이 계시기에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이 있어도 움켜쥐고 있으면 오히려 재산이 짐이 되고 자식들에게는 재산 싸움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최근 자녀들에게 재산 물려주지 않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훌륭한 성품의 부모와 자녀들은 이에 동조하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녀들도 부모님의 재산은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귀한 것에 쓰시고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뜻에 순종 하겠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 태어나면서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평생에 걸쳐 열심히 살아온 성공적인 삶을 이제는 소외된 이웃과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예수병원"과 "전주대학교"에 기부하는 아름다운 천사의 손길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오늘의 말씀.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 잠언 22장 1절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