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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개요 및 구성
'알토랩소디'는 괴테의 시 '겨울의 하르츠산 여행'이란 시에서 발췌한 가사로 괴테의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번민'의 탐독자이자 그와 같은 고뇌를 겪고 있는 젊은이에게 괴테가 조언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브람스는 자신이 슈만의 딸 율리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쓰라린 상처를 달래는 곡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실연의 사무치는 아픔의 실제 체험을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일기장처럼 옮겨놓은 곡이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 입니다. 괴테의 시 <겨울의 하르츠 여행>이라는 12연으로 된 시에서 3연을 발췌한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인데, 브람스의 일화를 살펴보기 전에 이 괴테의 시와 관련된 일화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이 곡을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아래의 해설 내용은 주로 이성일 님의 「브람스 평전」과 지금은 폐간된 잡지 「클래식 피플」1996년 9월호에 실렸던 이성일님의 글을 근거로 해서 참고하였습니다.
괴테의 이 시는 괴테 자신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1774년에 쓴 유명한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번민>을 읽고 세상을 비관, 절망에 빠진 젊은 친구 프레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쟁 중에 항상 끼고 다니면서 탐독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한 여인을 짝사랑하는 마음의 깊은 심연, 깊고도 격렬한 극적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 이른바 ‘베르테르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남자들은 베르테르의 복장을 흉내내 파란 상의에 노란 조끼를 입고 다녔으며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 소설의 여주인공 롯테와 같이 사랑받기를 꿈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베르테르에 너무 몰입된 젊은이가 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홍역처럼 번지는 열풍에 당시 신학을 전공하고 괴테를 높이 존경하고 있던 청년 프레싱 역시 베르테르가 준 충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절망하여 괴테에게 편지를 썼던 수많은 젊은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괴테의 시 “겨울의 하르츠 여행(Harzreise im Winter)”은 이 젊은이를 데리고 1777년 위험이 많고 험준한 겨울산인 하르츠 산을 여행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로 그를 위로하며 그 감회를 적은 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시가 브람스에게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 강렬한 동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인데 브람스 나이 36세 때인 1869년에 그가 겪었던 지독한 비련의 고통과 연관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슈만이 타계한 뒤에도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의 가족과 변함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그러던 중 슈만의 셋째딸 율리에게 은근한 연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당시 율리는 24세였고 브람스는 36세였는데, 율리는 여기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24세 한창 꽃다운 나이로 파란 눈에 창백한 하얀 얼굴, 황금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의 굉장한 미모에다 클라라의 기품을 이어받아 정신적 향기 가득 풍기는 그녀를 바라보며 결국 짝사랑이었지만 브람스의 마음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슈만의 집을 드나들며 율리에 대한 환상과 흥분을 느꼈을 것인데 이런 와중에 브람스가 지은 작품이 성악 사중창과 피아노 이중주로 된 「사랑의 노래 왈츠 op.52」인데 이 작품에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들뜨고 즐거운 기분을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가슴 두근거리던 브람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리게 되는데 율리가 건강상의 문제(결핵)로 잠시 이탈리아에 체류하다 이탈리아의 젊은 귀족 마르모리토 백작과 약혼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율리에 대한 브람스의 감정을 거의 의식하지 않던 클라라가 딸의 약혼 소식을 브람스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브람스의 반응에 대해 클라라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브람스가 자기 딸 율리에게 진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클라라는 브람스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에 대해 헤아리는 이러한 글을 1869년 7월 16일자 일기에 남기고 있습니다.
결국 그해 9월 22일 율리는 약속대로 백작과 결혼해서 브람스 곁을 떠나게 되는데 그후로 얼마간 브람스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깊은 상심에 빠진 브람스는 자신의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한 이 곡을 완성했을 때 출판사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음악 속에서 나는 말합니다.” 라고 이전에 클라라에게 말한 적이 있는 브람스가 율리가 결혼하고 나간 어느 날 클라라의 집으로 새로운 작품을 가지고 찾아왔을 때, 클라라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표현한’ 그 문제의 작품이 바로 「알토 랩소디(Alt Rhapsodie op.53)」로서 브람스 역시 이 곡에 상당한 애착을 느껴 악보를 베개 밑에 두고 잤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 애착 안에 깃든 상념들이 얼마나 상처 투성이로 범벅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토 독창, 남성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 작품은 괴테의 12연으로 된 시 「겨울의 하르츠 여행」에서 그 시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간부인 제5,6,7연을 각각 제1부, 제2부, 제3부로서 채용하고 있습니다.
브람스가 채택한 이 3개의 연은 브람스가 보기에, 고통받는 젊은 친구 프레싱을 위로하려는 괴테의 임무를 가장 직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의 두 연이 불안과 갈등 그리고 혼란과 고뇌로 가득하며 절규하는 듯이 흐느끼는 탄식이라면, 세 번째 연은 경건한 기도로서 고통받는 인간과 구원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리듬적인 긴장과 알토의 압도하는 낭독조의 힘, 서창(레치타티보 스타일)과 아리오조(레치타티보의 도중 또는 끝부분에 나타나는 선율적 부분)를 포괄하는 오케스트라 서주에서 아리아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형식의 전개를 보여주는 오페라적인 특성도 다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기 편성은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현악합주, 알토(콘트랄토라고도 함)독창, 남성합창(테너2, 바리톤2) 등으로 단촐한 구성과 절제된 면을 보이고 있으며, 곡은 3부분으로 되어 있고, 1870년에 짐로크사에서 출판하였고, 그해 3월에 예나에서 비아르도 가르시아의 알토 독창으로 초연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곡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부른 알토 가수는 요아힘의 부인 아말리에였다고 합니다.
16분 남짓한 곡이 시의 각연에 따라 3부로 나뉘어 각 부를 반복하면서 연이어 불려지는 곡인데, 각각을 감상을 위해 분석해 보면,
<제1부> 아다지오(느리게). 4분의 4박자, c단조
제1부에서는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비방하며 자기를 학대하는 청년 프레싱을 둘러싼 정서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가사를 먼저 보시면,
갑자기 강력한 액센트를 넣는 스포르찬도에 의해 심각한 정경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는데, 저음의 심각함에 더해 상성부에서는 현이 트레몰로로 전하면서 불안감과 혼란한 심상을 가중시키며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쓰이는 모호한 조성은 혼란과 방황의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키며, 음형 진행에 따른 강약의 대비를 통해 듣는 이를 계속 긴장시킵니다.
이 긴장이 점점 느슨해지고 안정되면, 마치 오페라의 서창처럼 알토가 독창으로, 원래 시의 중간 발췌부분임을 알게 하는, Aber(그러나 But)라는 접속사로부터 시작하여, 탄식하는 이러한 가사를 노래합니다. “Aber abseits wer ist’s? (그러나 저 멀리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Ins Gebüsch verliert sich der Pfad,(그가 걸어가는 흔적은 덤불 속에 가려 있고)”
반복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와 탄식으로 가득한 선율에 이어 알토의 선율이 상행하면서 “hinter ihm schlagen (지나고 나면)” “Die Sträuche zusammen,(덤불은 다시 엉켜 붙고) das Gras steht wieder auf,(풀은 다시 일어나 무성해지며)”라고 한 후 음량은 아주 작아지며 가물가물해지며 이 부분을 반복합니다. 이후“die Öde verschlingt ihn.(황야는 그를 삼켜 버린다.)”라며 1부의 결말을 내리고 막바로 2부로 이어집니다.
제1부에서는 겨울에 하르츠 산을 여행하는 사람의 쓸쓸한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데 실연한 브람스의 심경을 노래하면서 브람스의 섬세하고, 세련된 감정처리와 극한 상황에서도 진실을 보기 위해 내적으로 침잠해가는 신중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제2부> 포코 안단테(약간 느리게). 4분의 6박자, c단조.
2부로 들어오면서 템포가 다시 빨라지면서 서주 없이 막바로 저음현의 지속음에 실려 알토 독창이 제2탄식으로 돌입합니다. 이제 황야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고통과 방황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설명을 하게 됩니다.
“Ach, wer heilet die Schmerzen (아, 누가 이 고통을 치유해 줄 것인가) des, dem Balsam zu Gift ward? (향유가 독으로 변해 버린 그의 고통을?)”라고 노래하면서 불행한 사람의 심경이 절절히 노래됩니다.
시작할 때는 달콤하지만, 실연으로 끝나면 그토록 절망적이고 치명적인 것도 없는 것이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선택, 죽음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죽음이란 또 하나의 육체적 고통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을 안겨주는 실체는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고통을 심신에 감고 극단적인 해결을 보려고 합니까?
이어서 반주부의 싱코페이션(여린 박이 센박으로 바뀌는 것) 리듬과 함께 조성이 f단조로 바뀌며 인간의 졸렬한 심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 증오’를 강조하며 고통의 근원이 되는, 즉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람을 원망해 봅니다. 실연의 대상 윤리에 대한 알랑한 복수의 감정이 브람스를 이런 식으로 괴롭혔는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반복하며 읊는 “Der sich Menschenhass aus der Fülle der Liebe trank?( 사랑의 샘에서 인간 증오의 물을 마셔버린 그)”라는 표현에서, Menschenhass는 영어로 misanthropy로서 사람을 싫어하는 자(Manhater), 인간증오, 염세주의자, 인간 불신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이제까지 젊은이의 방황과 고통 그리고 필경은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독약의 근원이 다름아닌 실연임을 처음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음악의 흐름은 점차 고조되고 긴장은 더욱 더 가슴을 조입니다. 이제 “Erst verachtet, nun ein Verächter,(처음 멸시 당하다가 이제는 멸시하는 사람이 된)”이라는 표현을 통해 실연을 당한 이후 이제 그렇게 매달리던 사랑에 대해 증오하고 멸시하는 입장으로 바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증오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직접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미운 것은 실연이지 사랑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고통의 원인을 자신의 이기심 탓으로 돌리고 맙니다.
곡은 제1부, 제2부보다 얼마간 밝은 느낌의 C장조로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었는지 빠르기도 원래의 아다지오로 돌아옵니다. 단순하면서도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남성 합창이 마치 하늘과 땅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내려오며 부르는 듯하고, 현의 피치카토와 조용한 합창의 반주에 실려 알토 독창이 “Ist auf deinem Psalter,(당신의 시편에,) Vater der Liebe,( 사랑의 아버지시여,) ein Ton seinem Ohre vernehmlich,(그가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소리가 있다면,)”하고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 제3부에서는 불행한 청년의 구원을 신에게 호소하는 시인의 기도가 노래됩니다.
아주 평이한 선율의 흐름이 ‘화해’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이끌며, 적절한 기도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so erquicke sein Herz!(그의 마음을 위로하소서!)”란 기원을 반복 구사함으로써 기도의 간절함을 표현하고, 한가닥 실낫 같은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듯 “öffne den umwölkten Blick (그의 흐려진 시야를 맑게 하시어) Über die tausend Quellen neben dem Durstenden in der Wüste!(사막에서 목말라하는 그에게 수천의 샘물을 발견하게 하소서.)”라고 나머지 후반부를 노래하고 이어
3부 내용 전체를 다시 반복하고,
“erquicke (위로하소서!)”를 반복하다 잠시 쉰 후 “sein Herz! (그의 마음을!)”이란 말을 하늘에 바치고 평안하게 마무리합니다.
「브람스전」의 저자 니만은 이 제3부를 “기원의 노래”라고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기적을 갈구하는 소리가 되풀이되는 언저리는 정말 “기원의 노래”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러브 레터」중에서 눈덮힌 산에서 애처롭게 죽은 연인의 안부를 기원하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던 여주인공의 모습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하는, 숙연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곡입니다.
한편, 그렇게 시집간 율리는 3년 후에 결핵 때문인지 몰라도 1872년에 두번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27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브람스는 또 한번 몸서리쳤을 것입니다.
셸리의 시 중에 묘사하듯, 사랑은 마치 그리스 조각에서 회전하는 원반 위를 3사람이 각각의 뒤를 쫓아 돌아가는 모습과 같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여 쫓아가면 그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쫓아가는 모습을 노래했는데 인간의 애정관계는 참으로 미묘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 후에 브람스는 마지막 기원의 멜로디를 사용하여 파사칼리아(느릿한 3박자의 변주곡)로 만드는데 여기에 괴테의 다른 시의 구절을 인용하게 됩니다. 그 일부 내용이란
언젠가 젊은 분이 실연으로 죽음을 고려하며 고민하던데 저는 그런 분에게 만약 음악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이 곡을 통해 찢어질 듯한 마음의 상처를 위안받기를 권하고 싶었던 곡입니다. - 글: 조경훈
글출처: 참마음참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