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주불사
두주불사(斗酒不辭)는 ‘말* 술(斗酒)도 사양하지 않는다(不辭).’는 뜻이다. 예로부터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주호(酒豪) • 음호(飮豪) • 주선(酒仙) • 술꾼 • 억병 • 술고래 등으로 불렀는데 이런 유형들을 이르는 개념이 아닐까. 따라서 ‘술 한 말을 등에 지고는 못가도, 뱃속에 넣고는(마시고) 갈 수 있는 사람’을 말 할게다. 이의 유래는 서초패왕(西楚霸王)인 항우(項羽)와 한태조(漢太祖) 유방(劉邦)의 휘하 장수인 번쾌(樊噲) 사이의 대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이다.
이에 대한 고사(故事) 내용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전해지고 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부분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초한쟁패(楚漢爭霸) 시절 유방이 진(秦)나라 왕인 자영(子嬰)의 항복을 받고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한우는 분기탱천하여 유방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정보를 미리 전해들은 유방은 항우의 진영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리자 항우는 화해의 뜻으로 연회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이 이르기를 ‘홍문(鴻門)의 만남’ 즉 홍문지회(鴻門之會)라고 했다.
항우의 부하인 범증(范增)은 그 연회 중에 기회를 포착해 유방을 살해하려고 획책했다. 그래서 연회 중에 항우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범증은 항장(項莊)에게 연회장에서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포착해 유방을 살해하라고 은밀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 낌새를 매구처럼 간파했던 항백(項伯)이 항장과 같이 칼춤을 추면서 계속 견제했다. 이 같은 절체절명의 위험한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지켜보던 장량(張良)이 연회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방의 수하 장수인 번쾌에게 넌지시 알렸다. 그 상황을 단박에 간파했던 번쾌는 전광석화처럼 호위병들을 제압한 뒤에 장막을 제치고 개선장군 같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난데없이 연회장 안으로 밀고 들이닥친 번쾌를 발견한 항우는 내심으로 놀랐지만 위엄을 잃지 않고 차분한 것처럼 표정을 관리하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장량이 “패공(沛公 : 유방)의 수하인 번쾌라는 자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순간적으로 본 번쾌의 모습이 항우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지 항우가 다시 말했다.
/ ....... / 장사로구나. 술 한 잔 주거라(項王曰 壯士 賜之卮酒 : 항왕왈 장사 사지치주) / 곧바로 말(斗) 술 한 잔을 주었다(則與斗卮酒 : 즉여두치주) / 번쾌는 일어나서 감사의 뜻으로 예를 갖춘 뒤에 선채로 그 술을 단숨에 마셨다(噲拜謝 起立而飮之 : 쾌배사 기립이음지) / ......... /
위의 대화중에 “말술을 선채로 단숨에 마셨다.”는 내용으로부터 ‘두주불사’라는 성어가 탄생되었다는 전언이다.
세상에 술처럼 다양한 모습과 천(千)의 얼굴을 가진 기호식품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일반적인 기호식품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특정한 상황에 한정해서 어울리는데 비해 술은 상황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경우에 찹쌀궁합을 자랑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술에 대하여 예찬하거나 경계했던 예는 부지기수이리라. 고대 중국에서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주인(酒人)’이라 부르며 삼등구품(三等九品)으로 그 품격을 갈래졌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청록파(靑鹿派) 시인이었던 조지훈(趙芝薰)님은 바둑처럼 ‘술의 격(格)을 구분해 9급(級)과 9단(段)으로 갈래짓기도’ 했다.
술은 과연 언제 마시는 걸까. 생각해 보니 삶에서 ‘기쁠 때’인 ‘희(喜)’, ‘화날 때’인 ‘로(怒)’, ‘슬플 때’인 ‘애(哀)’, ‘즐거운 때’인 ‘락(樂)’엔 공통분모가 없음에도 공통적으로 마신다. 왜 이처럼 전혀 다른 상황에 술을 마시게 되는 걸까. 아마도 ‘기쁠 때는 기쁨이 배(倍)가 되고, 화날 때는 화를 삭혀주며, 슬플 때는 슬픔을 잊게 하고, 즐거울 때는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마력을 지닌 신비한 물방울이 바로 술이기 때문일 게다.
과연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에 대한 예찬은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조 선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강 정철(鄭澈)이 읊조렸던 장진주사(將進酒辭)가 그 하나의 예이리라. 그렇다고 무절제하고 무진장 마시도록 방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옛날 중국의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생전에 옆에 두고 과음을 경계하려고 사용했던 ‘의기(儀器)’나 조선시대 도공(陶工) 우명옥(禹明玉)이 만들었던 ‘계영배(戒盈杯)’가 함축하듯이 절주를 권하는 문화가 지배했다.
한편 우리 조상들은 술은 세 잔을 마시면 ‘훈훈하고’, 다섯 잔을 마시면 ‘기분 좋고’, 일곱 잔을 마시면 ‘넉넉하다.’며 그 이상은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술자리가 펼쳐지면 술을 권하게 마련인데 예로부터 동석한 사람에게는 비록 술을 먹지 않을지라도 세 차례는 권하는 게 예의라고 했다. 첫 잔을 건넬 때 권유를 예청(禮請)이라하고, 그의 거절이 예사(禮辭)이다. 두 번째 잔 권유를 고청(固請)이라하고, 그 잔의 사양이 고사(固辭)이다. 한편 세 번째 잔 권유를 일컬어 강청(强請)이라하고, 이 잔의 사양이 종사(終辭)이다. 이처럼 3번째 잔까지 권유해도 사양하면 그 뒤부터는 묻지 않아도 결례가 아니라고 주도(酒道)에서 이르고 있다.
적당히 마시면 나무랄 데가 없는 술이다. 하지만 무슨 원수라도 지은 것처럼 게걸스럽게 과음하고 ‘술먹은 개’ 같은 망동을 하거나 주취폭력(酒醉暴力) 따위를 저질러 놓고 심신미약(心身微弱)을 들먹이며 법적 책임을 벗어나려 이죽거리는 책상물림이나 언필칭 사회지도자 나부랭이들의 한심한 꼴은 언제나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까. 적당히 마시는 술은 사람 사이의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고 가슴을 뜨겁게 한다. 따라서 아무리 술에 관한한 주현(酒賢) • 주선(酒仙) • 주성(酒聖)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두주불사’의 음주는 피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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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斗) : 부피의 단위로서 곡식, 액체, 가루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현재 한 말은 한 되(升)의 열 배로 약 18리터(L : liter)에 해당한다. 한데, ‘두주불사’라는 성어가 생겨난 진한시대(秦漢時代)의 1말(斗)은 지금보다 훨씬 작은 양인 2~3리터(liter)에 해당했다고 전해진다.
수필과 비평, 2025년 2월호(통권 280호), 2025년 2월 1일
(2024년 5월 12일 일요일)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교수님
절주가 답입니다.
옛날에 우리마을 아저씨께서 술을 그렇게 먹었지요
그리고 나와 절친한 분이[청량리 세무서장] 술을 그렇게 드셨지요
아침 식전 출근하면서 4홉 소주 한병 먹고 출근하였다가 점심에 한병
퇴근 할 때는 두병을 한자리에서 먹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일찍 저승에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