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앞두고
시월 첫째 목요일은 다가오는 한글날을 앞두고 내 고향 의령에서 당겨 갖는 기념식과 학술 강연회가 열려 문학 동인 셋과 같이 참석하기로 했다. 의령은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33인 가운데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한뫼 안호상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이런 분을 둔 고장답게 의령에는 근래 국어 사전박물관을 건립하려는 운동이 일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령에는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큰형님이 계신다. 올여름 평생에 걸쳐 궁구한 한학에서 남긴 칠언율시와 한문 문장을 문집으로 엮어 아우는 형님이 대견스러웠다. 추석을 쇤 보름 전 벼를 거둔 논에 마을을 심는 일손이 필요했는데 하필 그날 다른 일정이 잡혀 도와주질 못하고 안부 전화만 나누었다. 이번에도 동행이 있어 고향 집은 들리지 않을 예정이었다.
성근 빗방울이 듣는 아침에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행사 참석하기로 한 회원들과 같이 의령행 버스를 탔다. 나는 고향 걸음으로 가끔 타 본 시외버스이나 일행들은 근교의 낯선 소읍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남해고속도로 군북 나들목에서 국도를 따라 정암교와 의령 관문을 통과했다. 남강이 휘감아 흐르는 벼랑 아래는 의령을 상징하는 솥바위 정암(鼎巖)이 내려다보였다.
버스가 읍내로 들어가 홍의장군 곽재우의 충절을 기린 의병탑과 충익사 사당 맞은편에 내려 행사장인 군민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행사 시작 시각과 거의 맞추어 문화 공연장에 들어서니 우리보다 먼저 다수가 자리를 채워 있었다. 식전 행사로 보육 시설에서 해맑게 자라는 지적 장애 소녀들이 밝은 옷차림에 귀여운 표정으로 핸드벨 공연을 펼쳐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어 방송국에서 파견 나온 아나운서의 사회로 참석 내빈이 소개되고 식순에 따라 국민의례와 지역대학에서 국어학을 가르쳤던 교수가 연단에 올라 평생 모으고 남긴 자료를 군청에 기증했다. 군수와 의회 부의장의 의례적인 기념사와 축사가 이어졌고 유인물로 배포된 한글날 노래를 모처럼 제창하기도 했다. 기념식 마지막은 국어 사전박물관 건립 추진위원회의 취지문 낭독이었다.
기념식에 이어 서울에서 내려온 국어학 권위자 홍윤표 연세대학 명예교수의 특별 강연이 있었다. 노교수는 화상으로 띄운 충실한 자료로 국어 사전박물관 건립 당위성과 그 장소가 왜 의령이어야 하는 명분을 제시하면서 지역 인사들이 입법화에 대한 노력을 당부했다. 그는 지난날 남북 교류가 제한적으로 있었을 당시 북쪽 국어학자들과 겨레말 사전 편찬에 얽힌 일화도 곁들였다.
기념식과 강연회를 마치고 시장 골목으로 들어 의령의 대표하는 소바와 만두를 먹었다. 메밀국수를 의령에서는 소바로 불렀는데 망개떡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메밀 전분으로 빚어내는 국수와 청미래덩굴의 잎으로 감싼 망개떡은 양곡이 부족했던 시절의 음식이지만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고 외부까지 알려져 의령을 드러내는 먹거리가 되었다.
점심 식후 우리 일행들은 남은 오후 일정 전권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의병탑과 충익사 사당을 거쳐 의병기념관의 시화전 전시 관람은 산책 동선에서 제외했다. 시화전을 빼고는 일행들이 지난날 둘러본 코스라 남천 둘레길을 안내하려고 퇴계 이황 선생을 향사는 덕곡서원 앞으로 이동했다. 가례동천에 이르는 남천 일대에는 퇴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선생의 처가여서다.
백암정 역사 문화 탐방로로 드니 미개통 구간이 있어 남천 둘레길을 걸었다. 마침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선배가 있어 평탄한 둑길을 걷게 되어 다행이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한 숲길을 걸어가니 냇물 건너편 퇴계의 처조부가 지었다는 백암정이 보였다. 퇴계는 허 씨 부인을 일찍 사별하고 후실을 두었지만 가례 처가를 잊지 않고 찾았으며 백암정에서 강론도 했다고 전한다. 22.10.06
첫댓글 선생님!
고향소식 반갑고 제가 다 고맙습니다
그러잖아도 소바라도 드셨는지?
궁금 했었습니다~~^^
환절기 더욱 건강 유의하십시오
염려와 배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