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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지서(絶命之書)
목숨이 끊어질 때 남긴 글 또는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을 의미한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임종 시에 남긴 유서나 죽기 직전에 쓰는 마지막 편지 정도로 볼 수 있다.
絶 : 끓을 절(糹/6)
命 : 목숨 명(口/5)
之 : 갈 지(丿/3)
書 : 쓸 서(曰/6)
출전 : 사기(史記) 卷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이 성어는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손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한무제(武帝) 때 모반을 꾀하자 그의 부하인 오피(伍被)가 만류하는 말에서 영유한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맹자에 '주(紂; 은나라 마지막 왕) 왕은 천자의 높은 지위에 있었으나 죽어서는 필부만도 못하다(故孟子曰: 紂貴為天子, 死曾不若匹夫)'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왕 스스로 천하를 저버린 지 오래된 것이지, 그가 죽은 날에 천하가 그를 버린 게 아닙니다(是紂先自絕於天下久矣, 非死之日而天下去之).
지금 신도 대왕께서 천승의 임금을 버리려 하는 것을 남몰래 슬퍼합니다. (장차 조정에서) 목숨을 끊으라는 글을 내리시면 신하들 보다 앞서서 이 동궁에서 죽겠습니다(今臣亦竊悲大王棄千乘之君, 必且賜絕命之書, 為群臣先, 死於東宮也).
여기까지 이르자 회남왕은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해져 눈물을 떨구었다. 오피는 곧바로 일어나 계단을 한 걸음씩 밟고 물러갔다(於是(王)氣怨結而不揚, 涕滿匡而橫流, 即起, 歷階而去).
(史記/卷118 淮南衡山列傳)
절명지서(絶命之書)
절명지서(絶命之書)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풀면 '목숨이 끊어질 때 남긴 글' 또는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임종 시에 남긴 유서'나 '죽기 직전에 쓰는 마지막 편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유명 인물들이 죽기 직전에 남긴 글이나 편지가 절명지서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생애를 마무리하거나, 후세에 남기고 싶은 교훈, 가족이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 등이 담겨 있습니다. 비슷한 개념으로는 절명시(絶命詩;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詩)도 있습니다.
오피(伍被)의 절명지서(絶命之書)
오피(伍被, ? ~ 기원전 122년)는 한(漢)나라 시기, 회남왕 유안(劉安)의 신하였습니다. 오피는 학식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회남왕 유안은 황제에 대한 반역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오피도 억울하게 연루되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오피(伍被)는 억울하게 죽음을 앞두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절명지서를 남겼습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뜻을 담은 글을 썼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했고, 스승과 군주를 위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반역죄인으로 몰려 죽는다. 이는 세상의 의리가 무너진 탓이요, 나의 잘못이 아니다. 하늘이여, 이 억울함을 굽어 살펴주소서."
오피(伍被)는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변함없이 충성하고 의리를 지켰음을 하늘에 호소했습니다.
회남왕 유안은 학문과 방술(方術, 신비한 기술)을 숭상하고 신하들과 불로장생을 연구했습니다. 나중에 반역을 꾀하려다 한 무제에게 발각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피(伍被)를 비롯한 수많은 신하들도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오피(伍被)는 무고했지만 회남왕을 섬겼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오피(伍被)는 죽음에 임해서도 변명보다는 충성과 의리를 강조했습니다. 그 절명지서(絶命之書)는 중국 역사에서 '신하로서 의리를 다한 최후'로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피(伍被)의 이야기는 한서(漢書)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피(伍被) 절명지서(絶命之書)
臣伍被, 生以忠孝自勵, 事王盡節, 無負於心.
신하 오피는, 태어날 때부터 충성과 효도를 스스로 다짐하였으며, 임금을 섬김에 온 힘을 다하여 마음에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今遭橫禍, 以叛逆之罪見戮, 非臣之過, 乃時運之傾也.
그러나 지금 뜻밖의 화를 입어, 반역죄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는 저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운명이 기운 탓입니다.
天乎! 天乎!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昔孔子亦困於陳蔡, 況臣乎!
옛날 공자도 진채(陳蔡)에서 고난을 겪었거늘, 하물며 미천한 저 오피야 어떠하겠습니까!
願來世仍事明君, 伸今日之屈也.
바라건대, 다음 생에는 밝은 군주를 섬겨 오늘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고자 합니다.
공자(孔子)가 진채에서 고난을 겪었다는 것은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굶주리고 고생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오피(伍被)는 억울함을 하늘에 호소하며, 다음 생에는 뜻을 펼치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오피(伍被)와 비슷한 충신들의 절명지서
두목(杜牧, 803~852)
당나라 말기 시인 겸 관리. 두목은 죽기 직전에 쓴 절명시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의 작품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은 덧없이 잠깐 머무는 것이니, 근심 걱정도 한결같지 않다(人生如寄, 憂患何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나라를 걱정하는 시풍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악비(岳飛, 1103~1142)
송나라 충신. 금나라에 맞서 싸우다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처형당했는데, 죽기 직전 남긴 절명시는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 직전 남긴 뜻은 전해옵니다. "하늘은 훤히 알고 있다. 나는 나라에 부끄럽지 않고, 백성에게 부끄럽지 않다(天日昭昭, 不負國, 不負民). 자신의 충성과 무고함을 하늘에 맡겼습니다.
또 악비는 생전 만강홍(滿江紅)이라는 시를 남겼는데, 여기에는 충성과 분노가 절절히 담겨 있습니다. "장한 뜻을 품고 오랑캐의 고기를 먹고, 웃으며 흉노의 피를 마시리라(壯志饑餐胡虜肉, 笑談渴飲匈奴血)."
오피는 회남왕을 섬기며 충성을 다했으나 억울하게 죽으며 하늘에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하는 절명지서를 남겼고, 두목은 인생무상을 노래하며 죽음 앞에서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였고, 악비는 충성과 무고함을 믿으며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나라와 백성에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히 선언 하였습니다.
다른 시대 충신들의 절명지서 스타일
중국 고대사에는 억울한 죽음이나 충절을 지킨 인물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굴원(屈原), 안영(晏嬰), 사마천(司馬遷)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초나라 굴원(屈原, ? ~ 기원전 278년)
초나라의 충신. 간신들의 모함으로 쫓겨나자, 초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 자결했습니다. 대표 절명작으로는 어부사(漁父辭), 이소(離騷)가 있다. 이소(離騷) 중 굴원의 심정을 요약하면, "몸은 맑은데 세상은 탁하다. 나 홀로 맑음을 지키려 하니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구나. 죽을지언정, 더럽힘을 받지 않으리라." 굴원은 세상에 맞서 홀로 고결함을 지키려 했고, 죽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굴원의 '절명지서'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제나라 안영(晏嬰, ? ~ 기원전 500년경)
제나라 명재상, 한 평생 청렴과 충성을 실천했으며, 죽기 전에도 '검소함'을 강조했습니다. "내 무덤은 얕게 하고, 무덤에 금은보화를 묻지 말라. 내가 평생 나라를 위해 살았는데, 죽어서도 백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안영은 죽음 앞에서도 사치 없이, 마지막까지 백성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
역사서 사기(史記)를 지은 대역사가. 억울한 모함으로 극형(궁형)을 당했으나, 죽음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습니다. 사마천의 비장한 편지로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다. 태산같이 무거운 죽음을 택하느냐, 깃털같이 가벼운 죽음을 택하느냐. 나는 모욕을 참으며 살아 남아, 불후의 대업을 이루고자 했다."
사마천은 죽음을 거부하고, 치욕을 참고 살아남아 역사적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이는 '죽음 대신 사명을 선택한 절명지서'로 볼 수 있습니다.
추가 충신들의 절명지서/절명시
또 다른 충신들 즉, 역사적으로 이름 높은 충신들과 그들의 죽음 직전 남긴 절명지서나 절명시(죽음의 글)를 소개 하겠습니다.
문천상(文天祥, 1236~1283)
남송(南宋) 말기, 원(元)나라 군대에 포로로 잡혔지만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처형당함. 죽기 직전에 쓴 유명한 절명시가 있습니다. 정기가(正氣歌) 中에서 "인생은 예로부터 누가 죽지 않던가? 다만 이 붉은 충성심을 역사에 길이 빛내리라(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青)."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충성심을 영원히 남기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육상산(陸象山, 1139~1193)
남송(南宋)때 유학자이자 충신. 도학(道學)을 중시하며 의리와 절개를 강조했습니다. 죽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교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입니다. "하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죽음 앞에서도 의리를 저버리지 말라." 육상산은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과 도(道)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악양루(岳陽樓) 주인 소수(蘇洵, 1009~1066)
북송(北宋) 때 문학가이자 정치가로, 죽음을 앞두고 아들(蘇軾, 소식)과 소철(蘇轍)에게 남긴 말이 전해집니다. "의롭지 않은 벼슬을 하지 말고, 올바르지 않은 부귀를 탐하지 마라." 소수는 죽음 앞에서 자손들에게 ‘의리’를 최고의 가치로 강조했습니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
고려 말기, 이성계 세력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고려 왕조에 끝까지 충성. 결국 선죽교에서 암살당함. 죽기 전 남긴 절명시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죽음 앞에서도 변치 않는 충성을 노래했습니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절명시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역사 속 절명지서(絶命之書) 중 유명한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의 유언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짧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시호(諡號)를 청하지 말고, 제사를 받들게 하지 말라.
다만 평상복 그대로 관에 넣고, 얕은 땅에 묻되, 비석도 세우지 말라." 죽음 앞에서도 검소함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했습니다.
중국 제갈량의 절명지서
삼국지의 명재상 제갈량(諸葛亮)도 죽음을 앞두고 아들 제갈첨(諸葛瞻) 에게 절명지서를 남겼습니다. 출사표(出師表)와 함께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나는 평생 검소하고 근검하였다. 죽은 후에는 평상복으로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평평하게 하여 후인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 이 역시 사후의 사치와 과시를 경계한 내용입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의 절명지서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절명시(絶命詩, 젯스메이시)'를 남기는 풍습이 있었고, 일종의 절명지서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설적인 무장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는 죽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몸은 죽어도 도는 남으리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이었노라."
요약하면, 절명지서는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마지막 글로, 보통 자신의 생애에 대한 정리, 유언, 후대에 남기는 교훈 등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 속 인물들은 절명지서를 통해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후세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황현의 절명시(絶命詩)
조선이 망하자 충신이었던 황현(黃玹) 선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다음과 같은 절명시(절명지서와 비슷한 성격)를 남겼습니다. "목이 잘리고 창자가 끊어진다 한들/ 어찌 다시 임금을 저버릴 수 있으랴./ 강산은 구슬피 울고 달빛은 싸늘하다./ 목숨을 끊는 이 몸 끝끝내 부끄러움 없노라." 나라가 망하자 이를 수치로 여겨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어서 절명지서(絶命之書) 중 가장 대표적이고, 감동적인 황현(黃玹) 선생의 절명시를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一死何所憾 (일사하소감)
한 번 죽는 것이니 무슨 미련이 있으랴.
報國有餘愧 (보국유여괴)
다만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萬里鶴歸來 (만리학귀래)
만 리를 날아가는 학이 돌아오듯,
哀哀雲外吹 (애애운외취)
슬픈 바람 소리가 구름 저편에서 들려온다.
一死何所憾(일사하소감): '한 번 죽는 것이니 무슨 미련이 있으랴.' 이미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에 죽음 자체에 두려움이나 후회는 없다고 말합니다.
報國有餘愧(보국유여괴): '다만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나라가 위태로운 이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죽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깁니다.
萬里鶴歸來(만리학귀래): '만 리를 날아가는 학이 돌아오듯' 죽음 후에도 자신의 혼백은 고향이나 조국을 향해 돌아올 것임을 표현했습니다.
哀哀雲外吹(애애운외취): '슬픈 바람 소리가 구름 저편에서 들려온다.' 죽음을 맞이하는 쓸쓸한 심정과 나라를 걱정하는 깊은 슬픔을 묘사합니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은 황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평소 절개(節槪)를 중히 여겼던 그로서는 '나라를 잃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보다 수치스러웠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과 절명시는 후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史記列傳(사기열전)
卷118 淮南衡山列傳(회남형산열전)
❶회남 여왕(淮南 厲王) 유장(劉長)
❷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❸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
본 편은 회남 여왕(淮南 厲王) 유장(劉長)과 그의 아들인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의 합전(合傳)이다.
❷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은 한고조(漢高祖)의 증손이며 회남 여왕(淮南 厲王) 유장(劉長)의 아들이다. 독서와 거문고를 좋아했으며 즉위 후 백성들을 잘 다스려 명망이 높았다. 많은 문사(文士)들을 초치하여 '회남자(淮南子)'를 짓게 하였으며 회남자는 내편(內篇) 21편과 외편(外篇)을 만들고 중편(中篇) 8권에서 도가(道家)의 연단약법(煙丹藥法)을 써 예문(藝文)을 즐기던 무제(武帝)가 상을 주고 비장(秘藏)했다. 유안은 전분(田蚡)에게 회유되어 모반을 꾀하다 오피(俉被)의 고발로 무제가 대노하여 종정(宗正)을 시켜 탄핵할 때 자살했다.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1
(1)
◯ 淮南王安為人好讀書鼓琴, 不喜弋獵狗馬馳騁, 亦欲以行陰德拊循百姓, 流譽天下.
회남왕 유안(劉安)은 사람됨이 독서와 거문고 타기를 좋아하고, 사냥하거나 말 달리는 것을 싫어했으며, 또 백성들에게 음덕을 베풀어 위로하며 자신의 명성을 천하에 알리려고 했다.
時時怨望厲王死, 時欲畔逆, 未有因也.
그는 때때로 회남 여왕(淮南 厲王)이 죽은 것을 원망해 그 때마다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럴 기회를 찾지 못했다.
◯ 及建元二年, 淮南王入朝.
건원(建元) 2년(기원전 139년)에 회남왕 유안이 입조했다.
素善武安侯, 武安侯時為太尉, 乃逆王霸上, 與王語曰: 方今上無太子, 大王親高皇帝孫, 行仁義, 天下莫不聞. 即宮車一日晏駕, 非大王當誰立者.
회남왕은 평소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과 친한 사이였으며, 당시 무안후는 태위(太尉)였는데, 회남왕을 영접하러 패상(覇上)으로 마중 나갔다가 회남왕에게 말했다. '지금 황제께는 태자가 없으신데 대왕께서는 고조 황제의 친손(親孫)으로 인의를 행하시어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황제께서 갑자기 붕어하시면 대왕이 아니면 마땅히 누가 즉위할 수 있겠습니까?'
淮南王大喜, 厚遺武安侯金財物. 陰結賓客, 拊循百姓, 為畔逆事.
무안후의 말을 들은 회남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에게 돈과 재물을 후하게 주었다. 이에 회남왕은 은밀히 빈객들과 교제하며 백성들을 위로하면서 반역을 도모했다.
◯ 建元六年, 彗星見, 淮南王心怪之.
건원 6년(기원전 135년)에 혜성이 나타나자 회남왕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或說王曰: 先吳軍起時, 彗星出長數尺, 然尚流血千里. 今彗星長竟天, 天下兵當大起.
그런데 어떤 자가 왕에게 유세하여 말했다. '이전에 오나라가 군사를 일으켰을 때 혜성이 나타났는데, 그 길이가 몇 자에 불과했지만 전쟁으로 희생된 자의 피가 여전히 천리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혜성의 길이가 하늘 가득 이르니 천하의 군사들이 크게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 王心以為上無太子, 天下有變, 諸侯并爭, 愈益治器械攻戰具, 積金錢賂遺郡國諸侯游士奇材.
회남왕은 내심 황제에게 태자가 없으니, 천하에 변란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서로 다툴 것이라고 여겨 더욱더 무기와 공격용 기구를 손질하였고, 돈을 모아서 군수(郡守), 제후왕, 유세객과 재주가 뛰어난 인재들에게 뇌물로 보냈다.
諸辨士為方略者, 妄作妖言, 諂諛王, 王喜, 多賜金錢. 而謀反滋甚.
모략을 꾸미는 여러 변사(辯士)들은 멋대로 요사스러운 말을 지어 회남왕에게 아첨하니, 왕은 기뻐하면서 그들에게 많은 금전을 하사했다. 이로써 반역의 음모는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다.
(2)
◯ 淮南王有女陵, 慧, 有口辯.
회남왕에게는 유릉(劉陵)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말재간이 있었다.
王愛陵, 常多予金錢, 為中诇長安, 約結上左右.
회남왕은 유릉을 사랑하여 항상 많은 금전을 주어 장안에서 황실을 염탐하게 하고 황제의 측근들과 교제하도록 하였다.
元朔三年, 上賜淮南王几杖, 不朝.
원삭(元朔) 3년(기원전 126), 황제가 회남왕에게 안석(安席)과 지팡이를 하사하고, 조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했다.
淮南王王后荼, 王愛幸之. 王后生太子遷, 遷取王皇太后外孫修成君女為妃.
회남왕의 왕후는 도(茶)인데 왕이 그녀를 총애했다. 왕후는 태자 유천(劉遷)을 낳았고, 유천은 왕황태후(王皇太后)의 외손인 수성군(修成君)의 딸을 비(妃)로 삼았다.
王謀為反具, 畏太子妃知而內泄事, 乃與太子謀, 令詐弗愛, 三月不同席.
왕은 그동안 준비해온 반역의 도구들을 태자비가 알아 반란을 도모한 것이 조정에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해, 태자와 모의하여 거짓으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 석 달 동안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게 했다.
◯ 王乃詳為怒太子, 閉太子使與妃同內三月, 太子終不近妃.
이에 왕은 거짓으로 태자에게 화를 내는척하며 태자와 태자비와 함께 석 달동안 같은 방에 있도록 하고 문을 봉해버렸으나 태자는 끝내 태자비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妃求去, 王乃上書謝歸去之.
태자비가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니 회남왕은 황제에게 글을 올려 사죄하고 그녀를 돌려보냈다.
王后荼, 太子遷及女陵得愛幸王, 擅國權, 侵奪民田宅, 妄致系人.
왕후 도(荼)는 태자 유천과 딸 유릉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나라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러 백성들의 밭과 집을 침범해 강탈하였으며 사람들을 함부로 잡아들여 가두었다.
(3)
◯ 元朔五年, 太子學用劍, 自以為人莫及, 聞郎中雷被巧, 乃召與戲.
원삭 5년(기원전 124년)에 태자 유천(劉遷)이 검술을 배웠는데 자신과 견줄 자가 없다고 여겼으며, 낭중(郎中) 뇌피(雷被)가 검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이에 그를 불러 겨루었다.
被一再辭讓, 誤中太子. 太子怒, 被恐.
뇌피는 한두 차례 사양하다가 잘못하여 태자를 찌르게 되었다. 태자가 노하자 뇌피는 매우 두려워 하였다.
此時有欲從軍者輒詣京師, 被即願奮擊匈奴.
당시에는 군에 종군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곧 장안으로 가게 했으므로 뇌피는 곧 종군해 흉노를 물리치는 일에 전력하기를 원했다.
太子遷數惡被於王, 王使郎中令斥免, 欲以禁后, 被遂亡至長安, 上書自明.
태자 천은 여러 차례 왕에게 뇌피를 헐뜯어 이야기하니 회남왕은 낭중령에게 뇌피를 파면시키게 하고 이후에도 이러한 일을 금지시키려고 했으므로, 뇌피는 결국 도망해 장안에 이르러 황제에게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詔下其事廷尉河南.
황제는 정위(廷尉)와 하남군(河南郡)의 도위(都尉)에게 이 사건을 조사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河南治, 逮淮南太子, 王王后計欲無遣太子, 遂發兵反, 計猶豫, 十餘日未定.
하남의 도위가 그 사건을 조사하여 회남 태자를 체포하려고 하자, 왕과 왕후는 계략을 써서 태자를 보내려 하지 않았고 마침내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계획이 예정보다 늦어져 10여 일 동안 지체되었다.
會有詔, 即訊太子.
때마침 조서가 당도해 하남의 도위가 곧 태자를 심문했다.
當是時, 淮南相怒壽春丞留太子逮不遣, 劾不敬.
이 당시 회남의 승상은 수춘현(壽春縣)의 현승(縣丞)이 태자를 체포하여 보내지 않는 것에 노하여 그의 불경죄를 탄핵했다.
王以請相, 相弗聽. 王使人上書告相, 事下廷尉治.
회남왕은 이에 승상에게 선처를 부탁했으나 승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회남왕은 사람을 시켜 글을 올려 승상을 고발하니, 황제는 그 일을 정위에게 조사하게 했다.
◯ 蹤跡連王, 王使人候伺漢公卿, 公卿請逮捕治王.
사건의 실마리가 회남왕에게까지 연루되자, 회남왕은 사람을 시켜 한나라 조정의 공경(公卿)들의 동태를 살펴보게 하니, 공경들이 회남왕을 체포해 죄를 다스릴 것을 주청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王恐事發, 太子遷謀曰: 漢使即逮王, 王令人衣衛士衣, 持戟居庭中, 王旁有非是, 則刺殺之, 臣亦使人刺殺淮南中尉, 乃舉兵, 未晚.
회남왕은 이 사건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자 태자 유천이 계책을 내어 말했다. '만일 조정에서 사자를 보내 부왕을 체포하려고 하면, 부왕께서는 사람들에게 호위병의 옷을 입히고 창을 들고 정원에 있게 하여, 왕의 곁에서 시비가 생기면 즉시 사신을 찔러 죽이도록 명하시면 신도 역시 사람을 시켜 회남국 중위를 찔러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是時上不許公卿請, 而遣漢中尉宏即訊驗王.
이때 황제는 공경대신들의 주청을 허락하지 않고, 한나라의 중위 은굉(殷宏)을 파견해 회남왕을 심문하여 조사하게 했다.
王聞漢使來, 即如太子謀計.
회남왕은 한나라의 사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태자의 계책대로 따르려 했다.
漢中尉至, 王視其顏色和, 訊王以斥雷被事耳, 王自度無何, 不發.
한나라의 중위가 도착했는데, 회남왕은 사신의 안색이 온화하고 회남왕을 심문하는 것도 뇌피를 파면한 일만 물었으므로, 회남왕은 스스로 죄상이 폭로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中尉還, 以聞. 公卿治者曰: 淮南王安擁閼奮擊匈奴者雷被等, 廢格明詔, 當棄市.
중위는 돌아가서 들은 사실을 보고했다.
회남왕을 다스리려고 했던 공경대신들이 말했다. '회남왕 유안은 흉노를 힘써 물리치려고 종군하려는 뇌피 등을 가로막아 명철한 조서를 저지하고 실시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기시의 형벌에 처해야 합니다.'
◯ 詔弗許. 公卿請廢勿王, 詔弗許.
황제는 조서를 내려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경대신들은 회남왕을 폐위시켜야한다고 주청했으나 황제가 역시 조서를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公卿請削五縣, 詔削二縣.
계속해서 공경대신들이 회남국의 5개 현을 삭탈하기를 청했으나 황제는 조서를 내려 2개 현만을 삭감하도록 하였다.
使中尉宏赦淮南王罪, 罰以削地.
또 중위 굉(宏)을 시켜 회남왕의 죄를 사면하게 하고 영지를 삭감하는 벌을 내렸다.
中尉入淮南界, 宣言赦王.
중위가 회남의 국경으로 들어가 회남왕의 죄를 사면한다고 선포했다.
王初聞漢公卿請誅之, 未知得削地, 聞漢使來, 恐其捕之, 乃與太子謀刺之如前計.
회남왕은 처음에 한나라의 공경대신들이 자신을 주살하라고 청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봉지를 삭탈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므로 한나라의 사신이 온다는 말을 듣자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여 이전에 태자와 모의했던 계획대로 사신을 찔러 죽이려고 했다.
及中尉至, 即賀王, 王以故不發.
중위가 도착해 곧 회남왕에게 치하의 말을 전하자 회남왕은 이로 인해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 其後自傷曰: 吾行仁義見削, 甚恥之.
그 후 스스로 애통해하며 말했다. '내가 인의를 행했다가 봉지를 삭탈당하니 심히 부끄럽구나.'
然淮南王削地之后, 其為反謀益甚.
그러나 회남왕은 봉지를 삭탈당한 뒤에도 반란을 도모하려는 음모는 더욱 심해졌다.
諸使道從長安來, 為妄妖言, 言上無男, 漢不治, 即喜; 即言漢廷治, 有男, 王怒, 以為妄言, 非也.
장안으로부터 온 여러 사신들은 회남국에 왕래하면서 망령되고 요사스러운 말을 일삼았는데 회남왕은 황제에게는 아들이 없고 한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하면 곧 기뻐했으며, 만일 한나라의 조정이 잘 다스려지고 아들이 있다고 하면, 회남왕은 노하여 이를 망령된 말이라며 믿지 않았다.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2
이 장은 오피(俉被)가 회남왕(淮南王)에게 간언한 내용이다. 낭중이었던 오피(伍被)는 회남왕이 모반을 꾀하려는 낌새가 있자 은밀히 간했고, 왕이 장군을 맡으라 하자 반란 자체를 망국의 길이라며 반대했다.
(4)
◯ 王日夜與伍被, 左吳等案輿地圖, 部署兵所從入.
회남왕은 밤낮으로 오피(伍被), 좌오(左吳) 등과 더불어 지도를 살펴보면서 군대가 진군할 길을 배치하고 있었다.
王曰: 上無太子, 宮車即晏駕, 廷臣必徵膠東王, 不即常山王, 諸侯并爭, 吾可以無備乎. 且吾高祖孫, 親行仁義, 陛下遇我厚, 吾能忍之; 萬世之後, 吾寧能北面臣事豎子乎.
회남왕이 말했다. '황제께서는 태자가 없으니 만약 붕어 하시기라도 한다면 조정의 신하들은 반드시 교동왕(膠東王)이나 그렇지 않으면 상산왕(常山王)을 부를 것이고, 제후들도 서로 다툴 것이니 과인이 어찌 대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나는 고조의 손자로 친히 인의를 행했고, 폐하께서 나를 후하게 대우해 과인이 참을 수 있었지만, 후세에 내가 어찌 북면(北面)하는 신하가 되어 어린것들을 섬길 수 있겠는가!'
(5)
◯ 王坐東宮, 召伍被與謀, 曰: 將軍上.
회남왕은 동궁(東宮)에 머물면서 함께 의논하기 위해 오피(伍被)를 불러 말했다. '장군(將軍) 오르시오.'
被悵然曰: 上寬赦大王, 王復安得此亡國之語乎. 臣聞子胥諫吳王, 吳王不用, 乃曰; 臣今見麋鹿游姑蘇之臺也. 今臣亦見宮中生荊棘, 露霑衣也.
오피는 언짢아하며 말했다. '황제께서 관대하게 대왕을 용서하셨는데, 어찌 다시 이러한 망국의 말씀을 하십니까! 신이 듣기로는 옛날에 오자서(伍子胥)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간언했지만 오왕이 듣지 않자 말하기를, '신은 이제 사슴들이 고소대(姑蘇臺)에서 노니는 것을 볼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이제 신도 역시 회남국의 궁중 뜰에서 가시나무가 자라고 이슬에 옷이 젖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王怒, 系伍被父母, 囚之三月.
회남왕이 노하여 오피의 부모를 잡아 석 달 동안을 가두었다.
復召曰: 將軍許寡人乎.
다시 오피를 불러 말했다. '장군은 과인의 청을 받아들이겠는가?'
被曰: 不, 直來為大王畫耳. 臣聞聰者聽於無聲, 明者見於未形, 故聖人萬舉萬全.
그러자 오피가 대답했다. '못합니다, 신이 온 까닭은 대왕을 위해 계획을 세워드리기 위함입니다. 신이 듣건대 귀가 밝은 자는 소리가 없는 곳에서도 들으며, 눈이 밝은 자는 형태가 없는 데서 본다고 하는 까닭에 성인은 모든 행동에 만전을 기하는 것입니다.
◯ 昔文王一動而功顯于千世, 列為三代, 此所謂因天心以動作者也, 故海內不期而隨. 此千歲之可見者.
옛날 주나라 문왕(文王)은 한 번 움직여 공이 천세(千世)에 드러났고, 그 자신은 삼왕(三王)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는 이른바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인하여 나라 안에서는 기약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천 년 전의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夫百年之秦, 近世之吳楚, 亦足以喻國家之存亡矣.
또 백 년 전의 진(秦)나라와 근세의 오와 초나라의 사실에서 역시 나라가 존재하는 경우와 망하는 경우를 깨닫기에 충분합니다.
臣不敢避子胥之誅, 願大王毋為吳王之聽.
신도 감히 오자서(伍子胥)와 같은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으니, 대왕께서도 오왕(吳王) 부차(夫差)처럼 간언을 물리치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昔秦絕聖人之道, 殺術士, 燔詩書, 棄禮義, 尚詐力, 任刑罰, 轉負海之粟致之西河.
옛날 진(秦)나라는 성현의 도리를 끊고, 유생들을 죽이며,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불태우고, 예의를 버렸으며, 속임수와 폭력을 숭상하고, 형벌에 의지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해변에서 나는 곡식을 운송해 서하(西河)로 실어 보냈습니다.
當是之時, 男子疾耕不足於糟糠, 女子紡績不足於蓋形.
당시에 남자들은 애써 농사를 지어도 술지게미와 쌀겨조차 얻어 먹기에 부족했으며, 여자들은 밤낮으로 베를 짰지만 제 몸조차 가릴 수 없었습니다.
遣蒙恬筑長城, 東西數千里, 暴兵露師常數十萬, 死者不可勝數, 僵尸千里, 流血頃畝, 百姓力竭, 欲為亂者十家而五.
몽염(蒙恬)을 파견해 장성(長城)을 쌓으니 동서로 수천 리에 걸쳤으며, 비바람에 노출된 병사와 장수는 항상 수십만에 달했고, 죽은 자는 가히 헤아릴 수 없었으며, 시체가 천리에 널렸고 피는 흘러 많은 논밭을 적셨으며, 백성들은 힘이 다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열 집 가운데 다섯 집이었습니다.
◯ 又使徐福入海求神異物, 還為偽辭曰: 臣見海中大神, 言曰; 汝西皇之使邪.
또 서복(徐福)을 시켜 바다로 보내어 신선과 기이한 물건을 찾아오게 했는데 서복이 돌아온 후에 거짓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바다 속의 대신(大神)을 만났는데 '네가 서쪽 땅 황제의 사신이냐?' 라고 묻기에,
臣答曰: 然. 汝何求. 曰: 願請延年益壽藥.
제가 '그렇습니다'고 대답하자,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기에, '수명을 연장시키는 선약(仙藥)을 원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神曰: 汝秦王之禮薄, 得觀而不得取.
그러자 해신(海神)이 말하기를, '너는 진나라 왕의 예물이 너무 적어 그 약을 볼 수는 있으나 얻지는 못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即從臣東南至蓬萊山, 見芝成宮闕, 有使者銅色而龍形, 光上照天.
곧 저를 데리고 동남쪽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으로 가서 영지초(靈芝草)로 둘러싸인 궁궐을 보여주고, 또 사자(使者)가 있었는데 구릿빛에 용의 모습을 하였으며, 그 광채가 하늘까지 비추었습니다.
於是臣再拜問曰: 宜何資以獻. 海神曰: 以令名男子若振女與百工之事, 即得之矣.
그래서 제가 두 번 절하고, '어떤 예물을 바치면 되겠습니까?'고 묻자, 해신(海神)이 말하기를, '좋은 집안의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그리고 백공(百工)의 재주를 제물로 바치면, 약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 秦皇帝大說, 遣振男女三千人, 資之五穀種種百工而行.
진시황(秦始皇)은 크게 기뻐하며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보내고, 오곡의 각종 씨앗과 백공(百工)들을 주어 보냈습니다.
徐福得平原廣澤, 止王不來.
그러나 서복은 도중에 넓은 들판과 넓은 못을 얻자 그곳에 머물러 왕 노릇을 하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於是百姓悲痛相思, 欲為亂者十家而六.
그래서 백성들은 비통하게 생각한 나머지 난을 일으키려고 한 사람들이 열 집 가운데 여섯 집이었습니다.
又使尉佗踰五嶺攻百越.
또 위타(尉佗)로 하여금 오령(五嶺)을 넘어 백월(百越)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尉佗知中國勞極, 止王不來.
위타는 중원(中原)이 극도로 황폐해 졌음을 알고, 남월에 머물러 왕 노릇을 하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使人上書, 求女無夫家者三萬人, 以為士卒衣補, 秦皇帝可其萬五千人.
그는 사람을 시켜 글을 올려 군사들의 옷을 꿰매기 위해서 시집가지 않은 여자 3만 명을 요구했고, 진시황은 그중 1만 5천 명을 보낼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於是百姓離心瓦解, 欲為亂者十家而七.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지고 무너져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 사람들이 열 집 가운데 일곱 집이었습니다.
◯ 客謂高皇帝曰: 時可矣. 高皇帝曰: 待之, 聖人當起東南閒.
어느 빈객이 고황제(高皇帝)에게 말하기를,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고 하니,
고황제께서 말하기를, '기다려라. 성인이 장차 동남쪽에서 일어날 것이다'고 했습니다.
不一年, 陳勝吳廣發矣.
그리고 일 년도 되지 않아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일어났습니다.
高皇始於豐沛, 一倡天下不期而響應者不可勝數也.
이에 고황제께서 비로소 풍읍(豐邑)과 패현(沛縣)에서 몸을 일으켜 천하를 향해 외치니 천하가 기약도 하지 않았는데 호응하는 자가 가히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此所謂蹈瑕候閒, 因秦之亡而動者也.
이것이 소위 약점을 이용하여 틈을 엿보는 것으로서, 진나라가 망하는 것을 틈타 일어난 것입니다.
百姓願之, 若旱之望雨, 故起於行陳之中而立為天子, 功高三王, 德傳無窮.
백성들은 이것을 원하는 것으로 마치 가뭄에 비를 기다리는 것 같았고, 그런 까닭에 행군 중의 군진(軍陣) 가운데서 일어나 즉위하여 천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今大王見高皇帝得天下之易也. 獨不觀近世之吳楚乎.
그 공적은 삼왕(三王)보다 높고, 베푼 은덕은 끝없이 전해졌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고황제께서 천하를 쉽게 얻으신 것만 보시고, 어찌 근래의 오와 초나라의 사례는 살펴보지 않으십니까?
◯ 夫吳王賜號為劉氏祭酒, 復不朝, 王四郡之眾, 地方數千里, 內鑄消銅以為錢, 東煑海水以為鹽, 上取江陵木以為船, 一船之載當中國數十兩車, 國富民眾.
무릇 오왕(吳王) 유비(劉濞)는 호(號)를 하사받아 유씨(劉氏)의 좨주(祭酒)가 되었으며 입조하지 않아도 되었고, 4군(郡)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영토가 사방 수천 리나 되었고, 안으로는 구리를 주조해 돈을 만들고, 동쪽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었으며, 위로는 강릉(江陵)의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는데, 배 한 척의 무게는 중국의 수레 수십 량(輛)에 해당하며,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들은 많았습니다.
行珠玉金帛賂諸侯宗室大臣, 獨竇氏不與.
주옥(珠玉)과 황금과 비단을 나누어 제후와 종실의 대신들에게 뇌물로 주었으나 오로지 외척인 두씨(竇氏)만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計定謀成, 舉兵而西.
반란의 계책이 정해지고 모의가 이루어지자 군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갔습니다.
破於大梁, 敗於狐父, 奔走而東, 至於丹徒, 越人禽之, 身死絕祀, 為天下笑.
대량(大梁)에서 격파되고 호보(狐父)에서 패해 쫓겨 달아나 동쪽 단도(丹徒)에 이르자, 월(越)나라 사람들이 그를 사로잡아 자신은 죽고 제사는 끊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夫以吳越之眾不能成功者何. 誠逆天道而不知時也.
무릇 오(吳)와 동월(東越)의 많은 군대로도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진실로 하늘의 도를 역행하여 그 시기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方今大王之兵眾不能十分吳楚之一, 天下安寧有萬倍於秦之時, 願大王從臣之計.
지금 대왕의 군사와 백성은 예전의 오와 초나라에 10분의 1도 되지 못하며, 천하는 진나라 때보다도 만 배나 더 안정되어 있으니, 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따르시기를 원합니다.
◯ 大王不從臣之計, 今見大王事必不成而語先泄也.
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이제 대왕의 일은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며 말이 먼저 새나가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臣聞微子過故國而悲, 於是作麥秀之歌, 是痛紂之不用王子比干也.
신이 듣기로는 미자(微子)가 고국을 지나다가 슬퍼하여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주왕(紂王)이 왕자 비간(比干)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슬퍼한 것입니다.
◯ 故孟子曰: 紂貴為天子, 死曾不若匹夫.
그래서 맹자(孟子)에서 말하기를, '주왕(紂王)은 천자의 높은 지위에 있었으나 죽어서는 필부(匹夫)만도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是紂先自絕於天下久矣, 非死之日而天下去之.
이는 주왕이 먼저 스스로 천하 사람들을 오래도록 버려둔 것이지, 그가 죽은 날에 천하 사람들이 그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今臣亦竊悲大王棄千乘之君, 必且賜��️絕命之書, 為群臣先, 死於東宮也.
이제 신도 역시 대왕께서 천승(千乘)의 군주를 버리려고 하심을 남몰래 슬퍼하오니, 장차 조정에서 반드시 목숨을 끊으라는 글을 내리실테니 군신들에 앞서서 이 동궁(東宮)에서 죽으십시오.'
於是(王)氣怨結而不揚, 涕滿匡而橫流, 即起, 歷階而去.
그러자 회남왕은 원한의 응어리가 가슴에 차 얼굴색이 침울해지고, 눈물이 눈언저리에 가득해 안면에 흘러내리니, 오피는 곧바로 일어나 계단을 한 걸음씩 밟으며 물러갔다.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3
이 장은 회남왕의 태자 유천(劉遷)과 조카인 유건(劉建)과의 알력으로 인하여 반란의 음모가 한나라 조정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자, 회남왕이 오피의 조언을 받아 반란을 준비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6)
◯ 王有孽子不害, 最長, 王弗愛, 王王后太子皆不以為子兄數.
회남왕에게는 불해(不害)라는 서자(庶子)가 있었는데 자식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회남왕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왕과 왕후 그리고 태자가 모두 그를 자식이나 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不害有子建, 材高有氣, 常怨望太子不省其父.
유불해에게는 건(建)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재능이 뛰어나고 기개가 있었으나, 항상 태자 유천(劉遷)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문안드리지 않는 것을 원망하곤 했다.
又怨時諸侯皆得分子弟為侯, 而淮南獨二子, 一為太子, 建父獨不得為侯.
또 당시 제후들은 모든 자제들에게 봉지를 나누어 주고 후(候)로 삼았는데, 회남왕은 오직 아들이 둘밖에 없으면서도 한 명만을 태자로 삼고, 유독 유건의 아버지만 후로 봉하지 않은 것을 원망했다.
◯ 建陰結交, 欲告敗太子, 以其父代之.
그래서 유건은 은밀히 다른 사람들과 결탁해 태자를 고발하여 몰아내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대신하게 하려고 하였다.
太子知之, 數捕系而榜笞建.
태자가 그 사실을 알고 유건을 여러 차례 잡아서 묶어놓고 매질하였다.
建具知太子之謀欲殺漢中尉, 即使所善壽春莊芷以元朔六年上書於天子曰: 毒藥苦於口利於病, 忠言逆於耳利於行. 今淮南王孫建, 材能高, 淮南王王后荼荼子太子遷常疾害建. 建父不害無罪, 擅數捕系, 欲殺之. 今建在, 可徵問, 具知淮南陰事.
유건은 태자가 한나라의 중위(中尉)를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다 알고 있었으므로, 곧 알고 지내던 수춘현(壽春縣)의 장지(莊芷)를 시켜 원삭 6년(기원전 123년)에 황제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아뢰게 하였다.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데 이롭다고 했습니다. 지금 회남왕의 손자인 유건은 재능이 뛰어나지만, 회남왕의 왕후 도(茶)와 그녀의 아들인 태자 유천(劉遷)이 항상 유건을 시기해 해치려고 합니다. 유건의 아비 유불해는 죄가 없는데도, 멋대로 여러 차례 잡아서 가두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지금 유건이 살아 있으니 불러 심문하시면 회남왕의 은밀한 일까지 다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 書聞, 上以其事下廷尉, 廷尉下河南治.
상주문을 읽은 황제는 그 일을 정위에게 맡겼고, 정위는 하남군의 관청이 조사토록 했다.
是時故辟陽侯孫審卿善丞相公孫弘, 怨淮南厲王殺其大父, 乃深購淮南事於弘, 弘乃疑淮南有畔逆計謀, 深窮治其獄.
이때 옛 벽양후 심이기(審食其)의 손자인 심경(審卿)은 승상 공손홍(公孫弘)과 친했는데, 회남 여왕(淮南 厲王)이 그의 조부(祖父)를 죽인 것을 원한을 품고 있었으므로, 이에 공손홍에게 회남왕의 죄상을 매우 과장해 이야기하니, 공손홍은 이에 회남왕이 반란의 음모가 있다고 의심하여 그 소송사건을 철저히 규명하도록 하였다.
河南治建, 辭引淮南太子及黨與.
하남의 도위가 유건을 심문하자 그의 말이 회남 태자와 그 일당에게 까지 미쳤다.
◯ 淮南王患之, 欲發, 問伍被曰: 漢廷治亂.
회남왕이 이를 근심해 반란을 일으키려고 오피에게 물었다. '한나라의 조정은 잘 다스려지고 있소?'
伍被曰: 天下治.
이에 오피가 대답했다.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王意不說, 謂伍被曰: 公何以言天下治也.
회남왕은 내심 불쾌해하며 오피에게 물었다. '공은 무슨 연고로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고 말하는가?'
◯ 被曰: 被竊觀朝廷之政, 君臣之義, 父子之親, 夫婦之別, 長幼之序, 皆得其理, 上之舉錯遵古之道, 風俗紀綱未有所缺也.
오피가 대답했다. '제가 사사로이 조정의 정치를 살펴보니 군신간의 예의, 부자간의 친애, 부부간의 구별, 장유(長幼)의 질서가 모두 그 도리를 얻었고, 황제가 일을 처리함도 옛날의 도리를 준수하고 있으며 풍속과 기강이 아직 결여된 것이 없습니다.
重裝富賈, 周流天下, 道無不通, 故交易之道行.
많은 화물을 가득 실은 부유한 상인들이 천하를 두루 다니며 길이 통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교역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南越賓服, 羌僰入獻, 東甌入降, 廣長榆, 開朔方, 匈奴折翅傷翼, 失援不振.
남월은 복종하고 있으며, 강(羌)과 북(僰)은 입조해 조공을 바치고, 동구(東甌)가 들어와 항복 하였으며, 장유(長楡)의 요새를 넓히고, 삭방(朔方)을 열어놓으니 흉노는 날개가 부러지듯이 힘이 꺾이고 상하여 지원자를 잃고 그 힘을 떨치지 못합니다.
雖未及古太平之時, 然猶為治也.
비록 옛날의 태평스러운 시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 잘 다스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王怒, 被謝死罪.
회남왕이 노하자 오피는 죽을죄를 지었다며 사죄했다.
王又謂被曰: 山東即有兵, 漢必使大將軍將而制山東, 公以為大將軍何如人也.
회남왕은 또 오피에게 말했다. '만약 산동(山東)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나라는 반드시 대장군 위청(衛靑)을 장수로 삼아 산동을 제압할 것인데, 공은 대장군 위청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被曰: 被所善者黃義, 從大將軍擊匈奴, 還, 告被曰: 大將軍遇士大夫有禮, 於士卒有恩, 眾皆樂為之用. 騎上下山若蜚, 材干絕人.
오피가 대답했다. '제과 잘 아는 황의(黃義)가 대장군을 따라 흉노를 친 일이 있는데, 돌아와 저에게 말하기를, '대장군은 사대부를 예로 대우하고, 사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람들은 모두 그와 복무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말을 타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나는 것 같고, 재주는 남보다 뛰어납니다'고 했습니다.
◯ 被以為材能如此, 數將習兵, 未易當也.
제가 생각하기에 대장군의 재능이 그와 같고, 또 여러 차례 군사를 이끌고 훈련시켰으니 쉽게 당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及謁者曹梁使長安來, 言大將軍號令明, 當敵勇敢, 常為士卒先.
또 알자(謁者)인 조량(曹梁)이 장안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말하기를 대장군 위청은 호령이 분명하고 적을 대할 때는 용감해 항상 사졸들의 앞에 선다고 합니다.
休舍, 穿井未通, 須士卒盡得水, 乃敢飲.
주둔하여 휴식할 때에는 우물을 파서 물이 충분히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사졸이 물을 다 마신 뒤 마신다고 합니다.
軍罷, 卒盡已度河, 乃度.
군대가 출정하고 돌아올 때면 사졸들이 모두 강을 건넌 후에야 건넌다고 합니다.
皇太后所賜金帛, 盡以賜軍吏. 雖古名將弗過也. 王默然.
또 황태후가 하사한 금전과 비단은 모두 군대의 관리들에게 준다고 합니다. 비록 옛날의 이름난 명장이라고 할지라도 그보다 낫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남왕은 듣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7)
◯ 淮南王見建已徵治, 恐國陰事且覺, 欲發, 被又以為難, 乃復問被曰: 公以為吳興兵是邪非也.
회남왕은 유건(劉建)이 불려가 심문을 받고 있어 나라의 은밀한 일이 장차 발각되지 않을까 걱정하여 군대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오피가 또 성사되기 어렵다고 하므로 이에 다시 오피에게 물었다. '공은 오(吳)나라가 군사를 일으킨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被曰: 以為非也. 吳王至富貴也, 舉事不當, 身死丹徒, 頭足異處, 子孫無遺類. 臣聞吳王悔之甚. 願王孰慮之, 無為吳王之所悔.
오피가 대답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왕(吳王) 유비(劉濞)는 지극히 부유하고 존귀했으니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아서 몸은 단도(丹徒)에서 죽고, 머리와 발은 따로 떨어지고, 자손은 살아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오왕이 몹시 후회했다고 들었습니다. 왕께서도 이것을 깊이 살피시어 오왕처럼 후회하는 바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王曰: 男子之所死者一言耳. 且吳何知反.
회남왕이 말했다. '대장부가 죽는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면 족하오. 더구나 오왕이 반란의 전법에 대해 어찌 알았겠는가?
漢將一日過成皋者四十餘人, 今我令樓緩先要成皋之口, 周被下潁川兵塞轘轅伊闕之道, 陳定發南陽兵守武關.
한나라의 장수 가운데 성고(成皐)의 요새를 지나는 자가 하루에 40여 명이 된다고 하지만, 이제 내가 누완(樓緩)으로 하여금 먼저 성고의 입구를 가로막게 하고, 주피(周被)에게 영천군(穎川郡)의 군대를 거느리고 환원(轘轅)과 이궐(伊闕)의 길을 막게 하고, 진정(陳定)에게 남양(南陽)의 군사를 일으켜 무관(武關)을 지키게 하겠소.
河南太守獨有雒陽耳, 何足憂.
그러면 하남 태수가 홀로 낙양(雒陽)을 지킬 따름이니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然此北尚有臨晉關河東上黨與河內趙國.
그러나 이들 북쪽에는 아직도 임진관(臨晉關), 하동(河東), 상당(上黨)과 하내(河內) 그리고 조나라가 있소.
人言曰, 絕成皋之口, 天下不通.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고의 관문을 끊으면 천하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소.
據三川之險, 招山東之兵, 舉事如此, 公以為何如.
이곳 삼천(三川)의 험난함에 의지해 산동의 군사를 부르는 것이니 거사가 이와 같다면 공은 어떻게 생각하오?'
被曰: 臣見其禍, 未見其福也.
오피가 대답했다. '신에게는 그 화(禍)는 보이지만 그 복(福)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 王曰: 左吳趙賢朱驕如皆以為有福, 什事九成, 公獨以為有禍無福, 何也.
회남왕이 말했다. '좌오(左吳), 조현(趙賢), 주교여(朱驕如)는 모두 복이 있어 열 가운데 아홉은 성공한다고 여기는데, 공만이 홀로 화만 있고 복이 없다고 여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被曰: 大王之群臣近幸素能使眾者, 皆前系詔獄, 餘無可用者.
오피가 대답했다. '대왕의 신하 가운데 가까이 총애하던 자들 가운데 평소 군사를 잘 통솔하던 자들은 모두 조서를 받고 옥에 갇혀 있으며, 그 나머지는 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王曰: 陳勝吳廣無立錐之地, 千人之聚, 起於大澤, 奮臂大呼而天下響應, 西至於戲而兵百二十萬.
회남왕이 말했다. '진승과 오광은 송곳을 꽂을 땅이 없이도 천 명의 무리를 모아, 대택(大澤)에서 일어나 팔을 휘두르며 크게 호령하자 천하가 호응했으며, 서쪽으로 희수(戱水)에 이르자 군사가 120만 명이나 되었소.
今吾國雖小, 然而勝兵者可得十餘萬, 非直適戍之眾, 釠鑿棘矜也, 公何以言有禍無福.
지금 우리나라가 비록 작으나 군사로 삼을 수 있는 자가 10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죄를 지어 변방에 간 무리도 아니고 쇠뇌와 창 자루를 쥔 농민의 상황은 아닌데, 공은 어찌 화만 있고 복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오?'
◯ 被曰: 往者秦為無道, 殘賊天下. 興萬乘之駕, 作阿房之宮, 收太半之賦, 發閭左之戍, 父不寧子, 兄不便弟, 政苛刑峻, 天下熬然若焦, 民皆引領而望, 傾耳而聽, 悲號仰天, 叩心而怨上, 故陳勝大呼, 天下響應.
오피가 대답했다. '예전에 진(秦)나라는 포학무도해 천하의 백성을 잔인하게 해쳤습니다. 만승의 수레를 동원하여 아방궁(阿房宮)을 짓고, 백성들의 수입 대부분을 세금으로 거두고, 빈민가의 백성들을 징발해 변방을 지키게 하여, 아버지는 자식을 편안하게 하지 못했으며, 형은 동생을 안심하게 하지 못했고, 정치는 가혹하고 형벌은 준엄해, 천하는 마치 불에 탄 듯 바싹 졸여졌으며, 백성들은 모두 목을 길게 빼고서 갈망하여,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으며, 비통해하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고 가슴을 치며 황제를 원망했기 때문에 진승이 크게 호령하자 천하가 호응한 것입니다.
◯ 當今陛下臨制天下, 一齊海內, 汎愛蒸庶, 布德施惠.
지금 폐하께서는 조정에 군림하면서 천하를 다스리시고 해내를 통일하시고, 널리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덕과 은혜를 널리 베푸십니다.
口雖未言, 聲疾雷霆, 令雖未出, 化馳如神, 心有所懷, 威動萬里, 下之應上, 猶影響也.
비록 입을 열어서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그 말은 세찬 천둥소리처럼 빠르게 전해지고 비록 조령(詔令)이 내리기 전이라 할지라도, 신의 힘이 돕는 것처럼 교화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마음속에 품는 바가 있으면 그 위엄이 만리를 움직이며, 백성이 황제에 호응하는 것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았습니다.
而大將軍材能不特章邯楊熊也. 大王以陳勝吳廣諭之, 被以為過矣.
또한 대장군 위청의 재능은 장한(章邯)이나 양웅(楊熊)에 비할 정도가 아닙니다. 대왕께서는 진승과 오광으로 비유하시지만, 저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王曰: 茍如公言, 不可徼幸邪.
회남왕이 물었다. '만일 그대의 말과 같다면 요행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이오?'
被曰: 被有愚計.
오피가 대답했다. '저에게 어리석은 계책이 있습니다.'
◯ 王曰: 柰何.
회남왕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被曰: 當今諸侯無異心, 百姓無怨氣.
오피가 대답했다. '지금 제후들은 다른 마음이 없고 백성들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朔方之郡田地廣, 水草美, 民徙者不足以實其地.
삭방군의 농토는 넓으며 강물과 초목은 아름다우나, 이주하는 백성이 그 땅을 채우기에는 부족합니다.
臣之愚計, 可偽為丞相御史請書, 徙郡國豪桀任俠及有耐罪以上, 赦令除其罪, 產五十萬以上者, 皆徙其家屬朔方之郡, 益發甲卒, 急其會日.
신의 어리석은 계책이란 승상과 어사대부가 주청하는 문서를 위조하여, 군(郡), 국(國)의 호걸과 임협(任俠) 그리고 내죄(耐罪) 이상의 죄인을 옮기고, 명을 내려 그 죄를 사면시키고 재산이 50만전 이상인 자는 모두 그 가속을 삭방군으로 옮겨 가도록 하며 군사를 더 징발하여 그들의 모이는 날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 又偽為左右都司空上林中都官詔獄(逮)書, (逮)諸侯太子幸臣.
또 좌우도사공(左右都司空), 상림(上林), 중도관(中都官) 등의 조옥(詔獄) 문서를 위조하여, 제후들의 태자와 황제가 총애하는 신하들을 체포하는 것입니다.
如此則民怨, 諸侯懼, 即使辯武隨而說之, 儻可徼幸什得一乎.
그와 같이 하면 백성들은 황제를 원망하게 되고 제후들은 두려워할 것이니, 곧 변사들로 하여금 때를 맞추어 그들을 설득시킨다면 혹시 요행으로 열 가운데 하나는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王曰: 此可也. 雖然, 吾以為不至若此.
회남왕이 말했다. '좋소.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오.'
於是王乃令官奴入宮, 作皇帝璽, 丞相御史大將軍軍吏中二千石都官令丞印, 及旁近郡太守都尉印, 漢使節法冠, 欲如伍被計.
이에 회남왕은 관노(官奴)를 궁궐에 들여보내 황제의 옥새와 승상, 어사, 대장군, 군리(軍吏), 중이천석(中二千石), 도관령(都官令), 승(丞)의 인장(印章)과 가까운 군(郡)의 태수, 도위의 인장, 한나라의 사절(使節)이 사용하는 관모(冠帽)를 만들게 해 오피의 계획대로 하려고 했다.
使人偽得罪而西, 事大將軍丞相, 一日發兵, 使人即刺殺大將軍青, 而說丞相下之, 如發蒙耳.
사람을 시켜 거짓으로 죄를 지은 것처럼 꾸며서 서쪽 장안으로 보내 대장군과 승상을 섬기게 해, 하루아침에 군대를 일으키면 그들을 시켜 바로 대장군 위청을 찔러 죽이게 하고, 승상을 설득해 항복하게 하는 것은 덮개를 젖혀 여는 것처럼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4
이 장에서는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오피(俉被)의 계략대로 반란을 기도했지만 주저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국 오피가 한나라의 관리에게 자백하여 반란의 음모가 드러나자 무제가 종정(宗正)을 보내 죄를 다스리려 하자 회남왕은 자살하고 말았으며 모반에 가담한 자들은 멸족을 당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회남국은 구강군(九江郡)으로 바뀌게 되었다.
(8)
◯ 王欲發國中兵, 恐其相二千石不聽.
회남왕은 나라 안의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상국(相國)과 2천석 녹봉의 대신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다.
王乃與伍被謀, 先殺相二千石.
이에 왕은 오피와 모의하여 먼저 상국과 2천석 녹봉의 대신들을 죽이려고 했다.
偽失火宮中, 相二千石救火, 至即殺之.
궁중에 불이 난 것으로 꾸며 상국과 2천석 녹봉의 관리들이 불을 끄기 위해서 오면 바로 그들을 죽이기로 했다.
計未決, 又欲令人衣求盜衣, 持羽檄, 從東方來, 呼曰南越兵入界, 欲因以發兵.
그러나 이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으며, 또 사람들에게 도둑 잡는 사졸의 옷을 입히고, 긴급 격문(檄文)을 가지고 동쪽으로부터 와서 '남월의 군대가 국경을 침범했다'고 외치게 하여 이를 구실로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다.
乃使人至廬江, 會稽為求盜, 未發.
이에 사람들로 하여금 여강(廬江)과 회계(會稽)에 가서 도둑 잡는 사졸로 가장하게 하였으나 군사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 王問伍被曰: 吾舉兵西鄉, 諸侯必有應我者. 即無應, 柰何.
회남왕이 오피에게 물었다. '과인이 거병하여 서쪽으로 진군하면 제후들은 반드시 호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만약 호응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면 되겠는가?'
被曰: 南收衡山以擊廬江, 有尋陽之船, 守下雉之城, 結九江之浦, 絕豫章之口, 彊弩臨江而守, 以禁南郡之下, 東收江都會稽, 南通勁越, 屈彊江淮閒, 猶可得延歲月之壽.
오피가 대답했다. '남쪽으로는 형산(衡山)을 빼앗고 여강(廬江)을 치며, 심양(尋陽)의 배를 점유해 하치(下雉)의 성을 지키고, 구강(九江)의 포구를 가로막아 예장(豫章)의 입구를 차단하고, 뛰어난 사수에게 장강(長江)을 지키게 하여 남군(南郡)의 군사들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며, 동쪽으로는 강도(江都)와 회계를 공격하여 거두고, 남쪽으로는 강한 남월(南越)과 교류하며,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사이에서 강약을 조절하면 시간을 늦출 수가 있을 것입니다.'
王曰: 善, 無以易此. 急則走越耳.
회남왕이 말했다. '좋소.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이오.사태가 급하게 되면 남월로 달아나면 그만이오.'
(9)
◯ 於是廷尉以王孫建辭連淮南王太子遷聞.
이때 정위(廷尉)는 회남왕의 손자 유건의 말에 따라 회남왕의 태자 유천이 역모에 연루되었음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上遣廷尉監因拜淮南中尉, 逮捕太子.
황제는 정위감(廷尉監)을 파견해 회남의 중위를 만나는 기회를 틈타 태자를 체포하게 했다.
至淮南, 淮南王聞, 與太子謀召相二千石, 欲殺而發兵.
정위감이 회남에 도착하자 회남왕은 그 소식을 듣고 태자와 모의해 상국과 2천석 녹봉의 대신들을 불러서 죽이고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다.
召相, 相至, 內史以出為解.
상국을 부르자 상국은 도착했지만 내사(內史)는 마침 출타 중이라 하고 오지 않았다.
中尉曰: 臣受詔使, 不得見王.
중위가 말했다. '신은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온 사신을 영접하기 때문에 왕을 뵐 수가 없습니다.'
王念獨殺相而內史中尉不來, 無益也, 即罷相.
회남왕은 비록 상국을 죽여도 내사나 중위가 오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곧 상국을 놓아주었다.
◯ 王猶豫, 計未決.
회남왕은 주저하면서 계책을 결정짓지 못하였다.
太子念所坐者謀刺漢中尉, 所與謀者已死, 以為口絕, 乃謂王曰: 群臣可用者皆前系, 今無足與舉事者. 王以非時發, 恐無功, 臣願會逮.
태자는 자기가 연좌된 죄는 한나라의 중위를 죽이려고 모의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모의했던 사람이 이미 죽어서, 입을 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왕에게 말했다. '신하들 가운데 쓸 만 한자는 이전에 모두 체포되고, 지금은 함께 거사할만한 자가 없습니다. 부왕께서 때가 아닌데도 군사를 일으켜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제가 정위 앞으로 가서 체포당하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王亦偷欲休, 即許太子. 太子即自剄, 不殊.
회남왕도 역시 속으로 거사를 멈추려 했으므로 곧 태자의 청을 허락했다. 태자는 곧바로 스스로 목을 찔렀으나 죽지는 않았다.
伍被自詣吏, 因告與淮南王謀反, 反蹤跡具如此.
이때 오피는 스스로 관리를 찾아가서 자신이 회남왕과 함께 모반한 사실을 고발하고 모반한 정황을 모두 말해 주었다.
(10)
◯ 吏因捕太子王后, 圍王宮, 盡求捕王所與謀反賓客在國中者, 索得反具以聞.
관리는 이로 인해 태자와 왕후를 체포하고 왕궁을 포위해, 왕과 함께 모반에 참여한 빈객들 가운데 나라 안에 있는 자를 다 체포하고, 반역에 쓰려던 무기를 찾아 이를 황제에게 보고했다.
上下公卿治, 所連引與淮南王謀反列侯二千石豪傑數千人, 皆以罪輕重受誅.
황제는 공경들에게 명해 이 사건을 다스리게 하고, 회남왕과 함께 연루되어 모반한 열후와 2천석 녹봉의 관리들과 호걸 수천 명을 모두 각자의 죄의 경중에 따라서 처벌했다.
衡山王賜, 淮南王弟也, 當坐收, 有司請逮捕衡山王.
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는 회남왕의 동생으로 함께 연좌되어 처벌받음이 마땅했기에, 담당 관리가 형산왕을 체포하기를 청하였다.
天子曰: 諸侯各以其國為本, 不當相坐. 與諸侯王列侯會肄丞相諸侯議.
황제가 말했다. '제후는 각기 자기 나라로써 근본을 삼으니 서로 연좌됨은 마땅하지 않다. 이 문제는 제후왕, 열후와 모여 승상과 함께 의논하라.'
◯ 趙王彭祖列侯臣讓等四十三人議, 皆曰: 淮南王安甚大逆無道, 謀反明白, 當伏誅.
이에 조왕(趙王) 팽조(彭祖)와 열후 조양(曹讓) 등 43명이 논의했는데,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회남왕 유안은 심히 대역무도하고 모반의 죄가 명백하니 마땅히 사형당해야 합니다.'
膠西王臣端議曰: 淮南王安廢法行邪, 懷詐偽心, 以亂天下, 熒惑百姓, 倍畔宗廟, 妄作妖言.
교서왕(膠西王) 유단(劉端)이 이렇게 주장했다. '회남왕 유안은 함부로 법을 폐지하고 사악한 행위를 일삼았으며 거짓된 마음을 품어, 천하를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미혹 시켰으며, 종묘를 배반하고 함부로 요사스러운 말들을 퍼뜨렸습니다.
春秋曰, 臣無將, 將而誅.
춘추(春秋)에 이르기를, '신하는 모반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니, 만일 모반할 마음을 품었으면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 安罪重於將, 謀反形已定.
유안의 죄는 모반할 마음을 품은 것보다 무겁고, 모반할 계획이 이미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臣端所見其書節印圖及他逆無道事驗明白, 甚大逆無道, 當伏其法.
신(臣) 단(端)이 본 바로는 문서, 부절, 인장, 지도와 그 밖의 대역무도한 일의 증거가 분명하고, 그 대역무도함이 심하니 마땅히 그를 법에 따라 사형하여야 합니다.
而論國吏二百石以上及比者, 宗室近幸臣不在法中者, 不能相教, 當皆免官削爵為士伍, 毋得宦為吏.
또 나라의 관리들 가운데 봉록이 2백석 이상인자와 이에 상당하는 자와, 종실과 가까워 총애를 받던 신하로서 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서로 가르치지 못한 자들은, 마땅히 모두 관직에서 파면시키고 작위를 삭탈해 사졸로 삼아서 다시 관리가 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其非吏, 他贖死金二斤八兩.
그 밖에 관리가 아닌 사람들은 속사금으로 금 2근 8량을 바쳐야 합니다.
以章臣安之罪, 使天下明知臣子之道, 毋敢復有邪僻倍畔之意.
이로써 신하 유안의 죄를 알려 천하로 하여금 신하의 도리를 분명히 알게 해, 감히 다시는 사악한 모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옳지 않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 丞相弘廷尉湯等以聞, 天子使宗正以符節治王.
승상 공손홍(弘), 정위 장탕(湯) 등이 이를 보고하니, 천자는 종정(宗正)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회남왕의 죄를 다스리게 했다.
未至, 淮南王安自剄殺.
종정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회남왕 유안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王后荼太子遷諸所與謀反者皆族.
왕후 도(荼), 태자 유천 그리고 모반에 가담했던 자들은 모두 멸족당했다.
天子以伍被雅辭多引漢之美, 欲勿誅.
천자는 오피가 정직하게 말하고 한나라의 선정(善政)을 여러 차례 인용해 죽이지 않으려고 하였다.
廷尉湯曰: 被首為王畫反謀, 被罪無赦.
정위 장탕이 말하였다. '오피는 회남왕의 모반을 획책한 주모자이므로 오피의 죄를 용서하시면 안 됩니다.'
遂誅被. 國除為九江郡.
결국 오피를 죽였다. 회남국은 없어지고 구강군(九江郡)이 되었다.
▶️ 絶(끊을 절)은 ❶회의문자로 绝(절)은 간자(簡字), 撧(절)과 絕(절)은 동자(同字)이다. 실 사(糸; 실타래)部와 卵의 오른쪽 부분, 刀(도; 날붙이, 자르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실이 끊어지다, 실을 끊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絶자는 '끊다'나 '단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絶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色(빛 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糸자와 色자의 조합만으론 '끊다'라는 뜻을 유추하기 어렵다. 그러나 絶자의 갑골문을 보면 본래는 絲(실 사)자 사이에 여러 개의 칼이 그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문에서도 위아래로 잘린 실과 刀(칼 도)자가 그려져 있어서 역시 칼로 실을 잘랐다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소전에서는 刀자가 色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絶(절)은 ①끊다 ②단절하다, 숨이 끊어지다, 죽다 ③다하다, 끝나다 ④막히다, 막다르다 ⑤뛰어나다, 비할 데 없다 ⑥건너다 ⑦기발하다, 색다르다 ⑧으뜸 ⑨매우, 몹시 ⑩심히, 극히 ⑪결코 ⑫절구(시의 한 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끊을 절(切), 끊을 초(剿), 끊을 절(截), 끊을 단(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을 사(嗣), 이을 소(紹), 이을 계(繼)이다. 용례로는 상대하여 견줄 만한 다른 것이 없음을 절대(絶對),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체념함을 절망(絶望), 힘을 다하여 부르짖음을 절규(絶叫), 이것과 견줄 만한 이 뒤에는 다시없음을 절후(絶後),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경치를 절경(絶景),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을 절경(絶境), 산의 맨 꼭대기를 절정(絶頂), 아주 기묘함을 절묘(絶妙), 병 등으로 음식을 끊음을 절곡(絶穀), 더할 수 없이 좋음을 절호(絶好), 세상과 교제를 끊음을 절세(絶世), 먹을 것이 끊어져 없음을 절식(絶食), 출판하여 낸 책이 다 팔리어 없음을 절판(絶版), 매우 두드러지게 뛰어남을 절륜(絶倫), 기절하여 넘어짐을 절도(絶倒), 다시 생환할 수 없게 아주 뿌리째 끊어 없애 버림을 근절(根絶), 남의 제의나 요구 따위를 응낙하지 않고 물리침을 거절(拒絶), 참혹하리 만큼 구슬픔을 처절(悽絶), 막히고 끊어짐을 두절(杜絶), 유대나 연관 관계 등을 끊음을 단절(斷絶), 어떤 일 특히 임신을 인공적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함을 중절(中絶), 빼어나게 아름다움이나 매우 좋음을 가절(佳絶), 정신이 아찔하여 까무러침을 혼절(昏絶), 정신을 잃음을 기절(氣絶),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는 뜻으로 좋은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함을 이르는 말을 절장보단(絶長補短), 이 세상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절세대미(絶世代美), 세상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절세가인(絶世佳人), 배를 안고 넘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우스워서 배를 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음을 일컫는 말을 봉복절도(捧腹絶倒), 궁지에 몰려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를 일컫는 말을 절체절명(絶體絶命) 등에 쓰인다.
▶️ 命(목숨 명)은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命(명)은 (1)목숨 (2)운명(運命) 등의 뜻으로 ①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②운수(運數), 운(運) ③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④명령(命令), 분부(分付)⑤성질(性質), 천성(天性) ⑥말, 언약(言約) ⑦규정(規定), 규칙(規則) ⑧가르침 ⑨작위(爵位),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⑩하늘의 뜻, 천명(天命) ⑪도(道), 자연의 이법(理法) ⑫호적(戶籍) ⑬명령하다 ⑭가르치다, 알리다 ⑮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을 숙명(宿命),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맡겨진 임무나 맡은 일을 사명(使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을 수명(壽命), 사람의 목숨을 인명(人命),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에 이름이나 거의 죽게 됨을 이르는 말을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일컫는 말을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일컫는 말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일컫는 말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일컫는 말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의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뜻으로 의로움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書(글 서)는 ❶회의문자로 书(서)는 간자(簡字)이다. 성인의 말씀(曰)을 붓(聿)으로 적은 것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글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書자는 '글'이나 '글씨', '글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書자는 聿(붓 율)자와 曰(가로 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붓'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말씀'을 뜻하는 曰자가 더해진 書자는 말을 글로 적어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참고로 일부에서는 曰자가 먹물이 담긴 벼루를 표현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書(서)는 성(姓)의 하나로 ①글, 글씨 ②글자 ③문장(文章) ④기록(記錄) ⑤서류 ⑥편지(便紙) ⑦장부(帳簿) ⑧쓰다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책 책(冊), 글월 문(文), 글 장(章), 문서 적(籍)이다. 용례로는 책 또는 경서와 사기를 서사(書史), 편지를 서신(書信), 글 가운데를 서중(書中), 남이 하는 말이나 읽는 글을 들으면서 그대로 옮겨 씀을 서취(書取), 책을 넣는 상자 또는 편지를 넣는 통을 서함(書函), 글씨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을 서가(書家), 글방을 서당(書堂), 글씨와 그림을 서도(書圖), 책의 이름을 서명(書名), 대서나 필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서사(書士), 글자를 써 넣음을 서전(書塡), 책을 보관하여 두는 곳을 서고(書庫), 남편의 낮은 말서방(書房), 책을 팔거나 사는 가게서점(書店), 이름난 사람의 글씨나 명필을 모아 꾸민 책을 서첩(書帖), 글씨 쓰는 법을 서법(書法), 유학을 닦는 사람을 서생(書生), 글방에서 글을 배우는 아이를 서동(書童), 글씨와 그림을 서화(書畫), 문서를 맡아보거나 단체나 회의 등에서 기록을 맡아보는 사람을 서기(書記),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일을 서도(書道), 책 내용에 대한 평을 서평(書評), 글자로 기록한 문서를 서류(書類), 책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을 서재(書齋), 문자의 체제를 서체(書體), 참을 인 백 자를 쓴다는 뜻으로 가정의 화목은 서로가 인내하는데 있다는 말을 서인자일백(書忍字一百),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서불차인(書不借人), 편지로 전하는 소식이 오고 간다는 말을 서신왕래(書信往來),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함을 이르는 말을 대서특필(大書特筆), 책을 빌리면 술 한 병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책을 빌릴 때와 돌려보낼 때의 사례로 술 한 병을 보낸 것을 이르는 말을 차서일치(借書一瓻), 영 땅 사람의 글을 연나라 사람이 설명한다는 뜻으로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끌어대어 도리에 닿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영서연설(郢書燕說), 책을 읽느라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마음이 밖에 있어 도리를 잃어버리는 것 또는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독서망양(讀書亡羊), 아무 생각 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또는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독서삼매(讀書三昧), 글 읽기를 백 번 한다는 뜻으로 되풀이하여 몇 번이고 숙독하면 뜻이 통하지 않던 것도 저절로 알게 됨을 이르는 말을 독서백편(讀書百遍), 소의 뿔에 책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소를 타고 독서함을 이르는 말로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하는 데 힘쓰는 태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각괘서(牛角掛書), 눈 빛에 비쳐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가난을 무릅쓰고 학문함을 이르는 말을 영설독서(映雪讀書), 저지른 죄가 너무 많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는 말을 경죽난서(磬竹難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