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양산
좋은 커피집이 있다고 해서 갔다오고
물론
나는 저렇게 비싼 곳은 좋아하지 않지만 마눌이 친구들과 만나 얘기할 거리
식당
커피집 등등
새로
생거거나
좋다고 하는 곳은 반드시 함께 간다.
그게
내
의무이고 할 일이다.
돈
몇년 더
부지런히 벌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마눌
노후자금도 만들어야 하고
통행료를 주고
산을 넘어 암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10개
길은 계속 갈라진다.
영축산 입구까지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하나씩 선택해서 올라갔다.
마눌에게
30여년전 얘기도 해주고
지금은
요전에 죽고없는 친구와 걸어서 다녔던 얘기
가지산 석남사
입구
계곡에서 하룻밤을 텐트에서 자고
통도사 입구
조선시대 도적들도 아닌데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불교를 좋아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
옆
서리마을로 해서
돌고
돌아
영축산에 올라갔다.
제법
많이 돌아서
길
지그재그로 해서 올라가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넘으니
배내골이다.
동네에서 물 한모금 먹고
다시
넘어가는데
이런 산속에 혼자 들어가 살면 세상과는 분명하게 단절이다.(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이름없는 도사들처럼 그런 삶이다.)
그렇게
밀양 천황산과 제약산을 가서
고사리 분교
막거리를 한잔하고 둘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내려왔다.
읍내는
버스를 타고(표충사는 버스가 많은데 얼음골은 별로 없었던 시절이다.)
수십번도
더
다녔던 얼음골(지금은 철창으로 다 막아 놓았지만 그때는 직접 앞에서 쳐다보고 만져보기도 했었던 시절)
절에서 갔던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불법승
세절을 마눌과 같이 새벽부터 다녔던 그대가 그립다.
동네
주지 스님이 입적하시기 전이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지금은 마눌과 딸이 운영을 하는데 마눌과 나는 아직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항상
마눌은 대웅전
나는
산신각에서 혼자 앉아 경을 읽는다.
특히
비 오는 날은 너무 좋다.
혼자
조용하게 앉아서 경을 읽고 비소리도 넉넉하게 들으니
이십대 시절
고시 공부한다고
절에 가서 헌법과 형법과 민법 책을 공부하던 그때도 정말 그립고
이번
통도사 나들이는
마눌과 통도사 절을 넘어 구석구석 까지 갔다왔다.
산 넘어
저곳에는 뭣이 있을까하고
내가
살아서
마눌을 만나고
마눌과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너무 고맙다.
남자는
적어도 입을 열개 정도는 먹여 살려야하는 의무가 있다.
열
입
힘
그게 남자다.
점심은 늦게
통도사 입구에서 산채나물밥을 먹었는데 근래 가장 좋은 음식이었다.
이런
한번의 식사는 천상의 맛이다.
살아서
마눌과 함께 요런 좋은 곳을 찾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행복이다.
거래처
대표들을 만나면 대부분 그런다.
왜
저런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마눌도
믿지 못한 것들이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을 만나 약속을 한다고
웃기는 짬뽕이다.
오늘
일요일 아침
5시 일어나 동네를 돌고 사무실왔다.
요즘
자주 오지 못한다.(일이 있으면 잠깐 왔다가 가고 : 헬스를 하니 샤워나 빨래를 할 일이 하나도 없어서 : 화분에 물주는 정도)
삼층석탑
다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을 절대 헛되이 보내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택
하나 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서 어느 것을 선택해도 아쉬움이나 미련을 남길 수 밖에 없다.
그게
사람이다.
부처는
지금 세상을 쳐다보면
절
중
스님
웃을까?
아니면 울까?
욕심
과욕
탐욕이 넘치니 답은 없을 것이다.